시대의 초상

모두 앙드레 김이란 이름을 안다. 하지만 아무도 앙드레 김을 모른다.

앙드레 김을 여러 번 만났다. 패션쇼 취재나 인터뷰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를 본 건 늘 동네에서였다. 몇 년 전, 앙드레 김 의상실과 노상 드나드는 사진 스튜디오가 한건물에 있었다. 알파벳 e 위에 불어 악상이 붙은 ‘앙드레 김’간판이 달린 문으로 들어가 지하 스튜디오로 내려갈 때면 의상실 안쪽에 그가 있는지 매번 곁눈으로 살폈다. 작게 틀어놓은 음악과 간유리 너머 기척으로 안의 상황을 짐작할 뿐, 그는 자주 문 밖에 나와보는 쾌활한 주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주일에 사흘씩 그 건물에 드나들다 보니 결국 만났다. 대시보드와 핸들까지 흰색으로 개조한 늘씬한 세단에서 막 내린 앙드레 김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건장했다. 늘 코미디 소재가 되는 머리 모양과 화장도 실제로 보면 우습거나 망측한 대신 기묘하고 괴이했다. 그리고 쏘아보는 것 같은 눈. 거칠게 그은 검정 아이섀도 안쪽의 눈동자는 궁사의 것 같았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남기고 그는 하얀 성안으로 서둘러 사라졌다. 그 후 다시 마주칠 때마다 혹시 그가 텔레비전에서처럼 수줍게 웃거나 의상실 포치에 놓인 꽃 화분의 생육 상태를 살펴보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일은 없었다. 의상실에서의 그는 엄격한 절대 군주였다.

얼마 후 그를 다시 만난 곳은 맥도날드였다. 미친 오리를 떼로 풀어놓은 것처럼 시끄러운 하굣길 패스트푸드점에서 그는 옆줄의 익숙한 얼굴을 찾아내고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동네에서 몇 번 마주친 사람끼리 할 수 있는 가장 세련된 인사였다. 그래서인지 그가 뭉게구름 같은 옷을 입고 빅맥 상자를 들고 있어도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솔직히, 일 관계로는 그를 만난 일이 없다. 대중들에게는 패션의 동의어와 상징어로 쓰이는 앙드레 김이란 이름은, 패션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패션을 희화하고 비꼬는 농담이었으니까. 그를 둘러싼 해괴한 루머와 질척한 소문들 역시 반갑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회색 플란넬 재킷이 유행일 때도, 라펠이 극도로 얇은 검정 재킷이 온 지구를 휩쓸 때도 여전히 용자수가 놓인 흰색 볼레로 재킷만 만드는 완고함이 불편했다. 그래서 현대 패션을 말할 땐, 일부러 그를 잊었다. 대명사로서의 ‘앙드레 김’은 오래된 성곽이나 바로크 음악처럼 극도로 화려한 것이긴 하되, 결국은 ‘과거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를 만난 후, 소문이 아닌 실체로서의 그는 전혀 우습지 않았다. 그저 지나친 상징성을 가진 대담한 예술가 같았고 그 모습을 기억한후로는 코믹한 루머, 가령 그가 숫자를 셀 때“원,투, 오우 쓰리, 사”라고 한다는 식의 얘기도 말 같지 않게 들렸다.

앙드레 김은 1962년에 소공동 지큐 의상실 한쪽을 세내 ‘살롱 앙드레’를 차리고 장안의 옷 좀 입는다는 여자들을 다 불러 모았다. 이 시절의 그는 라펠이 넓은 줄무늬 재킷에 하운드투스 체크 타이를 두툼하게 매고 김지미와 문희, 윤정희의 ‘투피스’를 만들던 최신식 남자였고, 반도호텔에서 연 첫 패션쇼 옷들은 초기 지방시처럼 간단하고 우아했다. 로코코풍의 자수와 레이스로 뒤덮인 드레스는 어떤 ‘의도’에 의해서 한참 후에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라고 비아냥조로 불리는 그 옷들은 세심히 살펴보면 완벽한 ‘마스터피스’였다. 패션을 일상과 환상으로 나눌 때 앙드레 김의 것은 후자였다. 한 인터뷰에서 “그 비싼 돈 주고 입지도 못할 옷을 누가 사겠나?”란 질문에 그는 특유의 나긋한 톤으로 답했다. “천경자나 김기창의 그림을 좋아하지만 집에 걸어두지 못했다. 하지만 그 그림을 책이든, 화랑에서든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매일 입을 수 있는 옷만 좋은 옷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견 교만하게도 들리지만, 예술품이 거래되듯 다른 방식으로 팔리는 그의 옷을 생각하면 수긍이 가는 말이다. 결국 앙드레 김에 대한 모든 평가는 전무후무, 전대미문인 그의 캐릭터를 향한 것이었고, 실제로 그가 만드는 옷과 생각에 대해서는 누구도 별 관심이 없었다. 한번 보면 잊지 못할 상징을 지닌 대가로 그가 겪은 일들은 쓰고 독했다. 사진은 1990년, 패션쇼 피날레에서의 앙드레 김 모습이다. 좋아했건 싫어했건, 그저 웃었건 일부러 잊었건 그는 50년이 넘도록 서울 패션의 한 초상이었다. 그를 만났을 때 손 한번 잡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