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의 전성시대

아무리 기를 쓰고 찾아보려 해도, 올 시즌 이대호에겐 약점이 없다.

이대호는 8월 12일 KIA전에서 아킬리노 로페스의 시속 142km짜리 몸쪽 싱커를 받아쳐 왼쪽 담장을 넘기는 솔로 홈런을 날렸다.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8경기 연속 홈런 기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30여 년 역사의 메이저리그에서도 켄 그리피 주니어, 돈 매팅리, 데일 롱 등 세 명밖에 이루지 못한 대기록이다. (결국 이대호는 9경기 연속 홈런으로 세계기록을 갈아치웠다.) 기록 만큼이나 대단한 스윙이었다. 로페스의 공은 다소 높긴 했지만 이대호의 몸쪽으로 들어갔다. 게다가 구종은 싱커다. 오른손 투수인 로페스가 던지는 싱커는 우타자 이대호 몸쪽으로 휘어지며 떨어진다. 몸쪽으로 바짝 붙는 공은 배트에 정확하게 맞더라도 파울이 되기 쉽다. 상대 투수가 ‘쳐 봐야 파울’이라는 생각으로 던지는 공이다. 제대로 맞지 않으면 내야 땅볼이 된다. 그러나 이대호의 타구는 오히려 파울 지역에서 휘어지며 안쪽으로 들어왔다. 골프에서 말하는 ‘페이드’다.

박노준 SBS 해설위원은 “스윙 때 오른쪽 팔이 몸에 이상적으로 붙어서 나와 때려낸 홈런이었다. 헤드가 몸쪽을 향했다가 공이 맞은 뒤 자연스럽게 퍼져 나가는 ‘인-아웃In-Out’스윙이 제대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통의 우타자들은 오른쪽 팔이 몸에서 떨어지며 공이 맞는 순간‘덮어버리는’ 식이 된다”고 덧붙였다. 간단히 요약하면 로페즈는 일반적인 우타자의 약점을 노리고 공을 던졌고, 이대호는 그 약점을 극복하는 좋은 스윙을 했다.

포수들에게 ‘좋은 투수 리드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면 대개 두 가지를 말한다. 첫 번째, 우리 팀 투수의 장점을 살리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상대 타자의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야구 경기의 목적인 ‘승리’도 마찬가지다. 이기기 위해선 내 팀 선수들이 좋은 플레이를 해야 하고 상대 팀의 약점을 공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팀의 약점은 극복해야 하고, 극복할 수 없는 약점이라면 약점이 노출되는 상황 자체를 줄여야 한다.

야구에서 약점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가령 이대호는 올해 SK 정대현에게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특정 선수가 특정 타자에게 강하다, 또는 약하다는 말을 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한 시즌에 투수와 타자의 맞상대는 10번도 이뤄지기 어렵다. 올해 8타수 1안타라면 타율 1할2푼5리로 타자의 완패다. 하지만 지난해에 7타수 4안타였다면 두 시즌 합계는 3할3푼3리로 타자의 승리다. 결국 샘플사이즈가 작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다. 하지만 이대호의 경우엔 좀 다르다.

이대호는 지난해에도 정대현 상대 성적이 10타수 무안타였다. 2008년에는 8타수 무안타. 사실, 2007년 9월 12일 1타점 적시타를 친 뒤로 네 시즌에 걸쳐 23타수 연속 무안타다. 이쯤 되면 정대현은 이대호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김성근 SK 감독이다. 한 경기에 길어야 1이닝을 던지는 정대현은 한 시즌에 많은 타자를 상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2009년 이대호에게 10타수 무안타였다는 건 이대호 타석에서 작정하고 정대현을 등판시켰다는 얘기다. 최고 타자 이대호에겐 굴욕이다.

이대호는 정대현의 공에 대해 “눈에는 잘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 두 선수의 경기 화면을 재생해 보면 배트에 잘 맞은 공 자체가 드물다. 이 약점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박정태 롯데 2군 감독은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말한다. 어떤 타자에게나 ‘천적’은 있다. 몇 타수 몇 안타라는 결과가 문제가 아니라 배트 스윙 궤적과 투수의 팔 각도가 공 움직임이 상극이라 나오는 결과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 타자 반열에 올라선 삼성 양준혁도 왼손 투수 이혜천의 공은 전혀 치지 못했다. “이혜천이 등판하면 아예 경기에서 빠지고 싶었다”는 게 양준혁의 회상이다. 박 감독은 “타자는 모든 투수의 공을 잘 칠 수 없다. 천적을 상대로 스윙 폼을 바꾸는 모험을 하느니 대다수 투수를 상대로 좋은 결과를 내는 지금 스윙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대호는 올해 정대현을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약점을 잘 극복했다. 스크라이크존을 9등분할 때 대다수 타자들은 바깥쪽 높은 공, 한 가운데, 몸쪽 낮은 공으로 이어지는 대각선 코스를 잘 친다. 스윙을 한 번 해 보면 세 코스 모두 일정한 스윙 궤적으로 공을 배트 가운데에 맞출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반면 스윙 궤적이 짧아지는 몸쪽 높은 공, 반대로 궤적이 길어지는 바깥쪽 낮은 코스에는 약점을 보인다. 8월 12일 로페스가 승부구로 몸쪽 높은 코스를 선택했던 것도 이 이유다. 로페스 뿐 아니라 7개 구단 투수들은 이대호를 상대로 이 두 코스 공을 가장 많이 던진다.

11일 현재 이대호의 코스별 타율은 바깥쪽 높은 공에 5할(48타수 24안타), 한 가운데에 8할(12타수 10안타), 몸쪽 낮은 공에 5할(16타수 8안타)다. 이 대각선 코스는 역시 잘 친다. 그러나 반대쪽 대각선도 마찬가지다. 몸쪽 높은 공에 3할5푼4리(64타수 23안타), 바깥쪽 낮은 공에 4할3리(67타수 27안타)다. 타율이 가장 낮은 몸쪽 가운데 높이 코스에도 3할6리(36타수 11안타)다.

지난 플레이오프, SK는 두산을 맞아 김현수를 봉쇄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해 3할5푼7리를 기록한 김현수는 결국 플레이오프에서 집요한 바깥쪽 승부를 걸어오는 SK 투수들에게 무너지며 2할7푼8리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준플레이프 성적은 5할대였다. 이런 경우만 봐도 왜 투수들이 “도통 이대호에게는 던질 곳이 없다”고 말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상대 투수들은 이대호에게 어떤 약점을 찾아야 할까. 투수 출신인 이효봉 MBC Life 해설위원은 “이대호는 코스로는 잡을 수 없다. 타이밍으로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몸쪽으로 공을 붙인 뒤 바깥쪽 유인구나 꽉 차는 직구를 던지거나, 반대로 정타가 잘 나오지 않는 바깥쪽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몸쪽으로 공을 붙이는 게 ‘코스로 잡는’ 방식이다. 이대호에겐 이게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직구를 노릴 타이밍에 체인지업이나 커브를 던지고, 변화구 타이밍엔 반대로 직구 식으로 타이밍을 무너뜨리는 승부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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