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dget

모두 다 사랑하리

2010.09.03GQ

샌프란시스코에서 2011년형 폭스바겐 제타를 담백하게 시승했다.

뉴욕에서 걸려온 전화에서까지 열기가 느껴지는 폭염이었다. 반팔만 입고 샌프란시스코에 내렸던 건 무지였을까 냉기에 대한 갈증이었을까?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내린 건 지난 7월 26일 오전 11시 40분경이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나라다. 샌프란시스코는 진보와 낭만으로 상징되는 도시다. 동성애자에게 공식으로 결혼증명서를 발급하기로 결정한 곳, 하비 밀크가 동성애자 최초로 시의원에 당선된 도시. 공항 밖에선 소름이 다 돋았다. 바람이 불어오는 그 쪽이 바다려니 생각했다. 언덕 꼭대기에서 손수건을 흔들어줄 사람 대신, 샌프란시스코에서 폭스바겐 제타보다 먼저 에디터를 반긴 건 나무가 없이 건조한 산과 세일 중인 백화점이었다. 산은 황토색으로 바싹 말라 있었다. 나무는 듬성듬성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짙지만 비는 거의 오지 않는 도시. 그리고 60퍼센트씩 세일하는 마이클 코어스의 바다색 블레이저, 랄프 로렌의 도톰한 더플코트…. 하지만 가장 작은 사이즈도 도포처럼 펄럭였으니, 이곳은 과연 미국이었다.

인도에서 걷는 사람들 사이에선 ‘인종’이라는 단어가 제 의미를 잃었다. 도로에서 달리는 차들은 국적이 또 필요없었다. 폭스바겐, 토요타, 현대, 기아, BMW, 벤츠, 포르쉐가 한데 엉킨 교차로가 곧게 뻗어 있었다. 현대기아가 전체 시장의 80퍼센트를 장악하고 있는 한국에선 못 볼 풍경이었으니 이곳은, 과연 미국이었다.

가장 열려있는 시장이 가장 치열하다. 샌프란시스코는 캘리포니아주의 중심이다. 기후와 취향에 따라, 어쩌면 가장 다양한 차종을 볼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폭스바겐이2011년형 제타를 미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덴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동차의 국적이나 이미지보단 실용에 최대 가치를 두는 미국 시장의 가능성을 다분히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지난 6월 초, 곧 한국에도 출시될 폭스바겐 페이톤은 중국 하이난에서 시승행사를 열었다. 중국은 대형 고급차 소비 시장에서 가장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돈은 있고, 쓸 준비도 된 고객들을 기업이 놓칠 이유가 없다.

미국 전역엔 총 6백여 개의 폭스바겐 딜러가 있다. 제타는 폭스바겐의 붙박이 볼륨 모델이다. 많이 팔기 위해 만든 모델이고, 실제로도 많이 팔린다. 2010년 현재, 제타는 미국에서만 1년에 11만 대 이상 팔렸다. 2011년형 제타는 지난 6월에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미리 선보였다. 케이티 페리는 폭스바겐 행사장에서 쇼케이스를 열었다. 얇은 고무로 만든 수박색 미니 드레스를 입고 맨발로 제타의 보닛 위에서 춤 췄다. 그녀는 미국 <맥심>이 2010년에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였다. 케이티 페리의 오밀조밀한 얼굴과, 의외로 시원하게 뻗는 목소리와, 왼손으론 다 쥐어지지도 않는가슴과, 무릎을 5도만 굽히면 단단해지는 허벅지와 제타 사이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비틀처럼 눈에 띄길 원치 않거나, 컨버터블의 낭만은 필요가 없거나, SUV, 중형세단, 쿠페의 필요 또한 못 느끼는 사람들의 지갑은 대개‘준중형 세단’으로 수렴해 열린다. 폭스바겐에선 제타가 그 자리에 있다. 해치백은 어색하지만 폭스바겐의 절제와 실용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구 어디에나 있으니까. 미국 시장은 그 중에서도 상징적이다. 제타는 골프로 만든 세단이라고 생각하면 맞다. 운전 감각, 내구성, 연비까지도. 그 만큼의 실용에그 이상의 공간, 그리고 절대 다수의 가족을 생각하는 차다.

2011년형 제타의 지향점은 안팎으로 달라졌다. 새롭게 적용되기 시작한 폭스바겐의 패밀리룩을 적극 수용했다. 대신 안정과 혁신 사이에서 균형의 묘를 찾았다. 서글서글했던 5세대 골프의 눈매가 납작하게 눌리면서 날카로운 인상을 갖게 된 것처럼. 제타의 눈매도 라디에이터 그릴을 따라 납작해졌다. 처음엔 낯설었던 6세대 골프도 곧 표준이 됐다. 제타의 눈빛에도, 곧 익숙해질 것이다.

미디어 행사가 열린 샌프란시스코 세인트 레지스 호텔 5층 지붕 위에서, 현지에서 만난 폭스바겐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의 제타는 폭스바겐 모델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이미지가 있었어요. 세대를 거듭하면서도 크게 변하진 않았죠. 이번엔 다릅니다. 실내는 더 넓어지고 운전은 더 편해졌어요. 대신 얼굴엔 약간의 공격성을 가미했습니다.”

폭스바겐의 일관된 인테리어.단순하고 실용적이다. 휠 베이스를늘여서 뒷좌석은 더 넓어졌다.

인테리어의 균형은 오밀조밀했다. 꽉 맞물린 시계톱니, 50년 동안 잠겨있었던 자물쇠처럼 단단해 보였다. 부품과 부품 사이가 꽉 맞물려서 믿음직했다. 가장 얇은 쇠자로 찔러도 어느 한군데 들어갈 틈이 없을 만큼. 그는 “저먼 엔지니어링German Engineering”을 발음하면서 씨익 웃었다.

둘째날 아침부터 시승이 시작됐다. 두 종류의 엔진이 준비돼 있었다. 170마력을 내는 2.5 FSI 엔진과 200마력을 내는 2.0 TSI(터보차저) 엔진. 샌프란시스코 도시를 벗어나 절벽과 해안이 좌우로 갈려있는 산길을 달릴 땐 2.5 FSI 엔진을 타고 달렸다. 호텔에서 해안으로 나가는 길은 용문신처럼 굽이굽이였다.

자동차의 성능은, 대개 극적일 때 드러난다. 북악 스카이웨이를 세 배로 늘려놓은 산길에서 격한 가속과 감속, 혹은 핸들링의 극한을 실험하면서 자동차의 무게 중심을 갈음할 때. 끝까지 뻗은 도로에서 속도의 한계를 넘나들 때.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고속도로엔 평일 오후의 강변북로만큼 차들이 있었다. 왼쪽 차선이 고속차선, 오른쪽이 저속차선이라는 기본이 확실해서 달리는 맛은 있었지만 굳이 한계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은 안 들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엔 일단의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제타가,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로 ‘달리기’에 집착하는 차도 아닐 것이다. 말하자면, 도시 일상과 한적한 주말 드라이브에 최적화된 길이었다. 차체가 커진 건 그래서다. 휠베이스는 5세대 제타보다 7센티미터 길어졌다. 전장은 9센티미터 늘었다. 바퀴와 바퀴 사이가 멀어지면 차는 안정적이된다. 요철을 밟아 넘을 때 앞바퀴와 뒷바퀴가 흡수하는 충격에 7센티미터만큼의 시간차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만큼 안락하다. 뒷좌석에 앉았을 때의 편안함도 일반적인 준중형 모델들을 상회한다. 역시, 길어진 차체에서 찾은 여유다. 세로로 몇 개의 골프가방을 넣을수 있는 트렁크에도 아쉬움은 없었다. 누가, 이 차를 미워할 수 있을까?

금문교를 건너고, 산을 넘고, 바다 옆을 달릴 땐 그래서 여유가 있었다. KBS라면 93.1메가헤르츠일 어떤 미국 방송에선 <고금의 재즈>정도 되는 프로그램이 세 시간도 넘게 나오는 것 같았다. 1940년대 비밥, 이후 스윙, 냇 킹 콜이 치는 피아노, 그러다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를 갑자기 부르는 줄리 런던의 목소리는 우연이었을까? 지역방송이었겠지 생각하면서 앨커트래즈 섬을 바라볼 때의 속도는 시속 75킬로미터였었다.

마지막 날 새벽엔 안개가 짙었다. 매일 아침이 그런 도시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 실리콘 밸리에 있는 폭스바겐 ERL(Electronic Research Laboratory)를 순회했다. 구글과 어도비, 야후와 애플, 시스코 본사가 있는 곳에서 폭스바겐은 그 지역의 모든 기술과 자동차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었다. 대시보드에서 조작하는 모든 버튼을 아이폰 화면을 만지는 것 같은 터치스크린으로 구현하는 기술도 진행 중이었다. 운전자가 쇼핑몰 입구에 내리면 차가 알아서 공간을 찾아 주차하고, 다시 입구에서 차를 호출하면 알아서 주인을 찾아오는 기능은 스마트폰으로 가능했다.

2011년형 제타는 미국시장에서 네 가지 엔진으로 출시된다. 115마력 4기통 가솔린 엔진, 140마력의 클린 디젤 TDI 엔진, 170마력의 2.5리터 가솔린 엔진, 200마력의 2.0 TSI 엔진이다. 한국에 언제 어떤 엔진으로 들여올지는 시장 추이를 지켜보며 조율중이라고, 폭스바겐 코리아가 조용히 알려왔다.

    에디터
    정우성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