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쇼 보러 와서 쇼 하는 사람들

2010.09.03GQ

밀라노로 쇼를 보러 갔다. 쇼보다 기억에 남는 건, 곳곳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쇼.

GOOD

브루스 패스크 ( 남성 패션 디렉터)
패션 저널리스트가 패션쇼장에서 입어야 할 옷에 대한 현명한 답이다.

무명씨 (에트로 마니아)
에트로의 쇼장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에트로식 페이즐리인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페이즐리가 뒤덮인 모델이 나올 때마다,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모건 프리먼 (배우)
턱시도의 맵시는 나이로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매튜 매커너히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따라갈 수 없다.

톰 브라운 (디자이너)
몽클레르 감므블루 쇼의 피날레가 끝나고 병목같은 출구에 서서, 손님 한 명 한명과 인사를 나눴다. 지구에서 가장 따뜻한 피날레.

마시밀리오 지오르네티 (살바토레 페라가모 수석 디자이너)
쇼의 피날레가 끝났는데, 갑자기 또 한 명의 모델이 나왔다. 몇 걸음 걷다 꾸벅 인사를 하는 걸 보고서야, 그가 수석 디자이너인 줄 알았다.

존 코타자레나 (모델 겸 배우)
톰 포드의 쇼룸에 가면 <싱글 맨>의 카를로스가 새 옷을 입고 나온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톰 포드 광고.

닉 우스터 (니먼 마커스 남성 패션 디렉터)
머리가 희끗한 이 아저씨는 어떻게 소화할까 궁금했던 재킷만 골라 입고 온다. 타이는 항상 재킷과 소재와 패턴이 같은 걸 고른다.

곱슬이 (보테가 베네타의 모델들)
보테가 베네타는 이 쇼를 위해 지구 방방곡곡의 복슬복슬한 모델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모델 캐스팅으로 쇼의 분위기를 말할 땐 보테가 베네타가 최고다.

버럭씨 (소리치는 사진가)
런웨이 끝의 사진가가 가장 경멸하는 건 런웨이의 맨 앞줄에 앉아서 함부로 다리를 꼬는 사람들이다. 다리 치우라는 불호령이 떨어질 땐, 속이 뻥 뚫린다.

에니 레녹스와 프란츠 퍼디난드 (가수)
돌체 & 가바나와 프링글 오브 스코틀랜드의 쇼는 콘서트가 됐다. 쇼만으로도 감동인데, 이들의 라이브라니.

토미 톤 (길거리 사진가)
쇼장 앞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사진을 찍는 똘망똘망한 중국계 남자를 봤다면 바로 이 남자다. 길 위에서 만난 기막힌 옷 입기의 예를 부지런히 낚아챘다. 미국 의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BAD
프락치 (쇼 중간에 박수치는 쇼 관계자)
박수 유도하지 마세요. 맥빠진 룩을 환호로 메우려는 거, 다 알아요.

이탈리아 김여사 (남의 자리 뺏는 아줌마)
남의 자리에 당당히 앉아서 버티는 아줌마를 만났다. 순간 여기가 서울 지하철인가, 착각했다.

트친님 (문자 혹은 트위터 삼매경에 빠진 사람)
에디터는 쇼를 보는 것과 이 둘을 동시에 할 수 없었다. 그는 대단한 뇌 용량을 가졌거나, 쇼엔 관심이 없거나, 그랬을 것이다.

무개념씨 (프링글 오브 스코틀랜드 쇼의 출입 관리자)
쇼는 초대장으로 출입하는 거 아닌가요? 아저씨의 인맥이 아니라?

바빠서 미안 (피날레에 나가는 에디터)
이런 사람은 콘서트장에서도 ‘앙코르’ 곡을 부를 때, 차 빼러 주차장으로 간다.

선글라스녀 (선글라스 끼고 쇼 보는 여자)
안나 윈투어는 하도 주변에서 플래시를 터뜨리니까 그렇다 칩시다. 당신, 아무도 안 봐요.

카메라남 (쇼 중간에 카메라를 드는 남자)
기똥찬 쇼, 나중에 또 보고 싶겠죠. 근데, 당신 덕분에 뒷사람은 당장 쇼를 못 봐요.

존 바바토스(디자이너)
그렇게 늦게 쇼를 시작할 거라면, 냉방이라도 빵빵하게 해두던지. 땀 뻘뻘 흘리면서 쇼를 보는 것도 의도된 ‘록 스피리트’인가.

불공정 운행 (셔틀버스)
돌체 & 가바나와 D&G 쇼는 셔틀버스 코스에서 빠졌다. 여러 역학관계가 작용했다는 소문이 있지만,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전 세계 손님들.

사라 버튼 (알렉산더 맥퀸 수석 디자이너)
피날레가 끝나고, 모두는 누군가 나오길 기다렸다. 결국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알렉산더 맥퀸의 빈자리는 컸다. 옷에서도, 쇼에서도.

라프 시몬스 (질 샌더 수석 디자이너)
질 샌더의 이번 쇼는 밀라노가 아닌 피렌체에서 쇼 기간보다 일찍 진행됐다. 덕분에 많은 에디터가 그 쇼를 놓쳤다. 톡톡 튀는 색깔은 사진보다 실제가 더 예뻤을 텐데.

삼총사 (우정이 지나친 남자들)
구찌 쇼장에서 만난 두 이탈리아 아저씨가 뒤에 서 있던 친구를 굳이 자기 옆에 앉히는 바람에 에디터는 짧은 드레스를 입은 중국 에디터와 밀착됐고, 괜한 눈초리를 받았다.

    에디터
    박태일
    아트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 이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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