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당신의 이야기.1

비 오는 저녁, 조규찬을 만났다. 그는 얼마 전 아홉번째 앨범을 발표했고, 곧 유학을 떠난다. 행복하다는 말이 빗방울처럼 흩날렸다.

연보라색 셔츠는 이스트 하버 서플러스, 하늘색 스트라이프 스카프는 브리버, 모두 샌프란시스코 마켓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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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비가 오락가락한다. 비 안 맞았나?
오늘은 하나도 안 맞았다. 일부러 우산 챙겨 나왔다. 촬영하는데 머리 망가지면 안 되니까. 낚시 갈 땐 일부러 맞기도 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는 나들이인데, 가끔 흩뿌리는 비를 맞으면 상쾌하고 좋다. 낚시터 공기도 좋고. 도시에서 일부러 맞고 그런 일은 없다.

도시보다는 한적한 곳이 더 좋은가?
누구나 그렇지 않나? 사람의 몸을 닮은 자연을 좋아할 수밖에.

글쎄,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못 견디는 사람도 있다. 음악 만들 때 날씨를 타거나 그런 게 있는 편인가?
날씨보다는 시간을 좀 타는 편이다. 아침, 오후, 밤, 새벽 느낌이 다 다르다. 그런데 그게 정해진 시간을 따른다기보다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예를 들어 아침까지 밤을 새우면 아침에 깊은 밤의 느낌을 가질 때도 있는 거고.

녹음하는 시간에 따라서도?
작업하는 곡은 이미 결정된 정서가 있고 그걸 표현하는 것에 대한 계획이 확실히 서 있는 편이다. 작업하는 도중에는 결코 흔들림이 없다. 악상을 떠올려 구체적인 작업에 돌입시키기 전 단계, 그러니까 청사진을 그리는 단계에서는 어느정도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당신의 곡은 대체로 비 오는 날처럼 물기가 있다. 반면 목소리는 마른 장작처럼 팽팽한구석이 있다. 그래서 더 슬픈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의도적인 연출인가?
데미언 라이스의 노래를 들어보면 입술 떨어지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 들숨 날숨, 목이 갈라지는 소리. 공간계 이펙터를 거의 안 써서 그렇다. 이펙터는 어쨌든 목소리를 가공하는 거니까. 좀 더 솔직한, 옷을 벗은 목소리다 보니 더 슬프게 들리는 것 같다.

이펙터 사용을 즐기지 않는 건가?
무조건 안 쓰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런 편이다. 특히 공연 때 무대 위로 올라오는 소리, 그러니까 모니터 환경에는 일절 어떤 이펙터도 쓰지 않는다. 관객들에게 나가는 소리는 듣기 좋게 어느 정도 효과가 들어가지만, 내가 노래하면서 듣는 소리엔 어떤 울림이나 포장도 간섭하는 것이 싫다. 정확히 내가 내는 소리나 호흡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자기 목소릴 ‘생’으로 들으면 민망하고 웃겨서 노랠 못 부르는 가수들도 있다고 들었다.
나는 표현 자체, 표현하는 과정 자체에 무게감을 많이 두기 때문에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음정이 어떻게 미묘하게 움직이고, 목소리가 어떻게 떨리고 있고 그런 것들. 그런데 이펙터를 쓰면 “아!”하면 “아~ 아~ 아~아”하지 않나. “아!”가 “아!”가 되어야지, 그렇게 느낄 수 있어야 밖에 나가는 사운드를 조절할 수 있다.

아….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감상하는 사람보다 많은 것을 준비하고 끝없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한 곡, 아니 한 호흡 안에서 계속 이루어진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노래하면 너무 기계적이고 감정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그런데 진정한 감정 표현은 구체화될 수 있는 기호, 공식에서 나온다고 본다. 그걸 위해선 반드시 공부를 해야 한다. 호흡이, 리듬이, 프레이징이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가, 그것의 구조는 무엇인가를 알고 분석하고 적용하고 정반합을 거치는 그런 것이 있지 않고선 내가 내노래를 한다고 볼 수 없다. 그렇게 아주 정제된, 정성스러운 소리, 배음, 노래 같은 게 관객에게 다가설 때 비로소 관객은 그것을 자신의 상황, 감정, 시간에 용해시켜서 느끼게되는 거다.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고 다 다른 형태의 감정, 얼굴,가슴을 안고 거기 앉아 있다. 내가 슬픈 노래를 부를 때운다고 해서 관객이 울까? 내가 너무 불쌍하게 울면 울어줄 수는 있겠지.

이전에 당신은 목소리도 하나의 악기의 비중과 똑같이 취급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당신의 음악을 들어보면 연주자들이 악기를 바꿔 잡듯 목소리를 곡에 맞춰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잦다. 그래서 보컬을 배우러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의아할 필요 없다. 예를 들어 바비 맥페린이 오케스트라 지휘를 한다. 말없이 20분 동안 지휘를 하다가 갑자기 “둠둠두둠둠~”하며 스캣을 한다. 그 상황에서 사람들은 ‘저 사람은지휘자인데 왜 갑자기 노래를 하지?’라고 느낄 수 있다. 그 사람은 지휘자로서 음악 자체, 전체에 대한 해석을 게을리 하지 않고 항상 집중하고 있지만, 노래라는 하나의 주 무기가 있는 거다. 그의 음악 표현에서 주된 수단. 나 역시 편곡, 작곡 등을 오랫동안 해왔고 곡에서 목소리를 악기 하나 정도의 무게감으로 분할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덜 중요한 게 아니다. 목소리가 가진 최고의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악기와의 평형감이 생기고 균형을 자유자재로 맞출 수 있게 된다. 언어에 비유하면, 1000개의 단어를 갖고있으면서 12개의 단어를 쓰는 것과 12개 단어를 갖고 12개 단어를 쓰는 게 다른 것처럼.

아직도 본인 성대에 대한 불만이 있나?
글쎄…. 내 목을 어떻게 다루느냐, 활용하느냐에 따라선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옛날에 성대에 불만이 있다는 얘길 한 적이 있다. 이제 큰 불편은 못느낀다. 단지 방금 이야기처럼 1000개의 단어를 갖고 싶은 그런 욕구가 있다. 999개를 갖고 있어도 나머지 한 개, 또 하나의 모습을 갈망한다. 이를테면 굉장히 파워풀한 AC/DC의 브라이언 존슨의 목소리. 그런 건 연습해서 그 음역에 올라갈 순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의 키 같은 거다. 원래 작은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키가 더 클 수 없다. 그 키로 축구을 잘해서 메시가 될 순 있지만 덩크슛을 할 수는 없는 거다.

이번 앨범에 박완규나 정인같이 당신과 상반된 목소리를 가진 뮤지션의 피처링이 있는 건 그런 이유인가?
박완규가 그렇다. 박완규의 노래는 박완규가 불러야 된다. 이번 앨범의 ‘Without You’같은 노랠 박완규가 부르는 건 당연하다. 물론 내가 불러도 못 부르진 않는다. 하지만 박완규가 자연스럽게 유영하는 바다물고기라면, 나는 바다물고기이고 싶어서 수조에서 뛰쳐나온 물고기라고나 할까.

박완규 외에도 이번 앨범엔 특히 피처링이 많다. 들어 보면 손님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듯한 느낌도 든다. 결과물을 들었을 때 어땠나? 조규찬의 오랜 팬들, 조규찬이라는 단 한 사람을 위한 앨범을 기대한 사람들은 어색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마커스 밀러와 데이비드 샌본이 함께 연주한 ‘Slam’을 들어보면 시쳇말로 마커스 밀러가슬랩 베이스 연주를 ‘살벌하게’한다. 그런데 만약 그 곡에서 마커스 밀러가 데이비드 샌본의 앨범에 들어가는 곡이라는 배려에 단순한 핑거링만 했다면 ‘Slam’이란 곡이 그런 멋을 가질 수 있었을까? 중요한 건 모든 상황을 누가 만들었냐는 거다. 누구의 정서냐, 누구의 손끝에서 연주되고 편곡되었냐. 다른 사람의 목소리지만 그 뮤지션들은 조규찬과 한마음이 되어 조규찬의 음악을 연주한 거다. 물론 동시에 그들의 음악이기도 하고.

그런데 다른 가수에게 곡은 왜 잘 주지 않나?
이소라 말고는 당신의 곡을 다른 누군가가 부르는 걸 거의 못 봤다. 소속사나 프로듀서들이 내 곡을 잘 받으려고 하질 않는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아예 연락을 안 한다. 조규찬은 원래 곡을 안 주는 작곡가란 인식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라고 좋은 가수가 내 노래를 부르는 게 왜 싫겠나. 두 번째는 내가 가이드를 해서 곡을 주면 “조규찬 씨가 부르면 어울리는데 우리가수가 부르기엔 좀 어려울 것 같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곡을 너무 어렵게 쓰는 거 아닌가?
난이도 문제일 수도 있고 상대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내가 아무리 공유할 수 있는 어떤 정서를 끌어내서 특정 가수에 맞는 곡을 쓰려고 해도 결국 내게서 나온 거다. 조규찬스럽다는 거다. 딱 받아서 편하게 부를 만큼 쉽지도 않고.

이 인터뷰가 끝나고 이소라 앨범 작업을 하러 간다고 들었다.
유학 떠나기 전에 앨범의 송 디렉팅을 맡아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송 디렉팅이라…. 정확히 어떤 걸 함께하는 건가?
함께 앨범의 전체 느낌을 구상하는 것은 물론 개별 곡의 디테일까지 상의한다. 곡을 주는건 아니고. 특히 보이스 어레인지먼트에 관해 의논을 많이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이스 어레인지먼트가 가지는 비중을 너무 작게 본다. 보컬을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따라 곡이 아예 달라질 수 있다. 이소라와 나는 그런 부분에 많은 공을 들인다.

조규찬에게 이소라는 어떤 사람인가?
이소라는 계속 성장통을 겪어 나가는 친구다. 데뷔 전부터 봐왔고, 그녀의 어떤 중요한 전환점마다 내가 항상 있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성장통을 앓고 그 아픔을 기꺼이 감내하며 정면으로 맞서는, 세상을 향해 용감하게 질문을 던지는 친구다.

이소라와 부른 ‘WOW’는 이전 이소라와의 듀엣곡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그대 내게’나 ‘난 그댈 보면서’에서의 이소라와 조규찬이 연인 같았다면, 이번엔 친구 같다. 아마 이제는 조금 더 광의적인 사랑, 한 상황 속에서 교차되는 감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거다. 슬픔 속에서 기쁨을 얘기하고, 기쁨 속에서 슬픔을 얘기하는 그런 교차되는 감정.

그 말을 들으니 ‘풍선’의 가사가 떠오른다. 이별 노랜데 2절에서 되레 희망을 말한다. 옛날의 당신은 슬픔을 추적하는 사람처럼 슬픔의 밑바닥까지 내려가곤 했다. 이런 변화는 결혼 때문인가?
결혼은 조규찬이라는 한 사람이 살면서 얻게 되는 가장 큰 행복이다. 특히 아이를 갖게 된다는 것. “우리 아들이 글쎄 나한테 ‘제발’이란 표현을 썼어.” 이런걸 아내와 얘기하며 느끼는 경이로움,즐거움. 그러나 결혼과 음악을 등식으로 엮는 건 무리가 있다. 음악의 궤도는 그것과 별개로 흐른다. 음악은 음악대로의 흐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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