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그런 남자 아닙니다. part2.

2010.10.05GQ

송승헌은 여러 번 고개를 흔들었다. “안 그래요.” “성격이 그렇지가 않아요.” “첫인상과는 전혀 달라요.” “사람들은 나를 잘 몰라요.” 그리고 이렇게도 말했다. “전형적인 B형남자에요.” ’“황소고집에 억지도 잘 부려요.” “철없고, 눈치없단 얘기 많이 들어요.” <무적자> 개봉을 코앞에 둔 그는, 당구하다 얘기하듯 드문드문 느슨히 말했다.

흰색 면 티셔츠, 제임스 퍼스. 검정 턱시도 팬츠, 디올 옴므.

흰색 면 티셔츠, 제임스 퍼스. 검정 턱시도 팬츠, 디올 옴므.

 

소매를 잘라낸 회색 스웨트 티셔츠, 아메리칸 어패럴. 낡은 청바지, 김서룡 옴므.

소매를 잘라낸 회색 스웨트 티셔츠, 아메리칸 어패럴. 낡은 청바지, 김서룡 옴므.

 

고개를 숙일 때마다 아직 어쩌자는 계획 없이 기르고 있다는 앞머리가 콧등으로 뚝 떨어졌다. 새까만 속눈썹이 짙은 음영을 만드는 옆모습에서 의 비밀 많은 섬약한 청년 민규가 보였다. 10년도 더 지난 일인데. 무톤 소재의 조종사 점퍼, 버버리 프로섬.

고개를 숙일 때마다 아직 어쩌자는 계획 없이 기르고 있다는 앞머리가 콧등으로 뚝 떨어졌다. 새까만 속눈썹이 짙은 음영을 만드는 옆모습에서 <그대 그리고 나>의 비밀 많은 섬약한 청년 민규가 보였다. 10년도 더 지난 일인데.

무톤 소재의 조종사 점퍼, 버버리 프로섬.

주름 장식의 흰색 셔츠, 닐 바렛. 회색 플란넬 팬츠, YSL.

주름 장식의 흰색 셔츠, 닐 바렛. 회색 플란넬 팬츠, YSL.

글쎄, 송승헌이 최민식처럼 연기하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배우로서 당신이 지닌 매력과 최민식이 연기로 뿜는 매력은 거의 별개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 배우마다 색깔이 있고 가진 그릇이 있다. 그런데 연기파라는 말, 누구는 연기파고 누구는 연기파가 아닌가, 그런 얘기 자체가 좀 답답할 때도 있다. 무지개처럼 배우도 다 자기 색깔이 있는 것 같다. 이 색깔만 맞다고 얘기하는 건 좀…. 이번에 송해성 감독님이 최민식 선배님하고도 같이했고 설경구 선배님하고도 같이 작품을 했는데, 초반에 잘나가는 멋진 남자를 연기할 땐 크게 터치를 안 하셨는데, 망가진 모습을 촬영할 땐 갑자기 촬영을 접기도 했다. 모니터 앞에서 계속 혼자 고민을 하시더니, “야 오늘 접자”이랬다.

당신이 여전히 멋있기만 해서?
그런 얘기를 안 해주고 계속 고민만 하시는 거다. 아, 감독님 왜 저러시나, 솔직히 속으로 짜증이 났는데, 술이나 마시자고 해서 화가 더 났었다. 나중에 하시는 말씀이, 인물이 안 나온다, 눈빛이 더 탁해야 한다, 피부도 안 좋아야 되고, 담배도 다시 피워라, 대충 씻지도 말고 촬영하러 와라, 이런 거였다. 5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 그럼 감독님 그냥 3년 후에 찍으면 어떠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결국 20일 후에 다시 찍었다.

결과적으로는, 물론?
감독님이 그냥 대충 찍자고 했으면 지금 많이 후회했을 것 같다. 나중에 결과를 보고서 왜 그런 주문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고맙게 생각한다. 어쨌든 눈빛을 탁하게 만들어보라는 주문은 생전 처음 들어봤다.

<그대 그리고 나>에서 하늘 보고 울 것 같은 사슴 눈이 탁해질 수도 있는 건가? <남자 셋 여자 셋> 같은 옛날 작품을 다시 보기도 하나?
못 본다. 아, 어떻게 저렇게 연기를 못했나 싶다. 변명을 하자면 정말 준비 없이 했던 작품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방송국에서 다음주부터 연기를 해야 된다고, 대본 던져주면서 그랬다. “너 다음주부터 녹화니까 나와라”그래서 시작했으니 그걸 신선하다고 할 수 있는 건지. 지금도 뭐, 내가 연기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정말 어색한 시작이 있으니까 또 중간이 있는 거고 지금도 있고 그런거라고 본다.

90년대 어느 날 거리에 대문짝 만한 당신 사진이 걸렸던 거 기억나나?
물론이다. 어느 날 만날 다니던 성신여대 앞이며 대학로며 매장에 내 사진이 막 이렇게.

하하.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돈다.
너무 너무 신기해서 밤에 혼자 가보기도 하고, 친구들이랑도 가고 그랬다. “야, 너무 신기하지 않냐?” 그땐 인터넷이 발달했을 때가 아니라서, 갑자기 막 편지가 오기 시작하는데 순식간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너무 신기했다. 왜들 이러지? 그때처럼 기분 좋았던 적은 지금까지도 없는 것 같다. 어떤 큰 상을 받고, 어디서 뭘 하고, 시청률이 얼마가 나오고, 그런 걸 떠나서 그때만큼 충격적으로 좋았던 적은 없다. 밤에 가게 셔터가 내려갔어도 밖에서 가게 안에 있는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서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무조건 잘 될 거라고 했다. 난 아무것도 아닌데 뭘 보고 저 사람들이 저러나 신기하기도 했다. 돌아가고 싶다고 돌아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사실 지금보다 그때가 훨씬 더 좋았다.

그때 스톰 청바지에 좀 붙는 니트를 입은 당신은 어떤 표상이었다. 하지만 요즘 수트를 입은 당신은 글쎄, 꼭 그렇지는 않다.
하하, 그런가?

왜 타이를 안 매나?
타이 매는 걸 답답해서 싫어한다. 청바지에 티 입는 걸 너무 좋아한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이렇게만 입고 다닐 수는 없지만, 뭔가 갖춰서 입는 걸 못 견딘다.

누구보다 갖춰 입는 것이 어울릴 것 같으니 하는 말이다. 어떤 손가락에 반지를 껴야 하는지도 챙기면서.
어우, 그런 거 못한다.

하필 당신의 첫인상이 의류 브랜드 모델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5년 전이다. 당신의 청춘은 끝났나?
언제까지가 청춘일까? 결혼하기 전까지는 청춘 아닌가? 그런 것 같은데?

아직 어린가?
사실 어리…. 맞다. 어리다고들 한다.

부끄러워 하는 건가?
철이 없다고 해야 되나? 어른스럽다고 보는 건 첫인상이고, 막상 알게 되면 철이 좀 없다고 한다.

눈치도 없나?
맞다. 그 얘기도 좀 듣는 편이다.

눈치 없는 당신의 고독은 뭔가?
고독이라…. 참 아이러니한데, 내가 그동안 보여준 모습이 “외로움을 많이 타세요?”이런 질문을 하도록 만드는 모양이다. 근데 난 그런 거 정말 모른다. 성격적으로도 어떤 일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 아 몰라, 그런가 보지 뭐, 혼자 막 고민하면서 아, 어쩌지, 이런 게 없다. 낙천적이라고 해야되나? 뭐 잘되겠지, 확 타올랐다가도 금방 풀어지고 까먹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런다.

여자들이 힘들어하겠다.
만일 여자친구랑 헤어지네 마네 하면서 싸웠다고 쳐도,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가서 얘기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우리가 지금 이렇게 얘기할 때냐고 더 화를 낸다. 그럼 나는 그런다. “야, 그럼 울면서 얘기하냐?” 그런 성격이다. 여자친구는 더욱 화가 나서 “나는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하는데, 오빠는 정말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그런다. 나는 그러니까 좀….

그렇게 말하는 여자가 이해도 안 되는 스타일?
그랬던 거 같다. 성격이, 이렇게 고민하고 외로움 타고 고독하고 그렇지가 않다. 친구가 많고 그냥 어울려 노는 게 편하고 좋다.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고독을 씹고 외로움을 타는,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연애 안 한 지는 얼마나 됐나?
연애…. 좀 오래됐다.

연애를 오래 안 하면, 그냥 덜컥 결혼을 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좀 어린애 같을 수도 있는데, 누군가를 만나가면서 점점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한꺼번에 확 빠지는 스타일이다. 항상 그렇게 만났다. 데시도 내가 해야 하고, 콩깍지도 내 눈에 씌어야 한다. 여자가 나를 좋다고 그래서 사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무조건 첫눈에 반해야 한다.

한눈에 반했다가 한눈에….
아니, 오래 갔다.

그럼 요즘은 성직자처럼 산다는 건가? 가끔 야동이나 보면서?
“그게…. 그냥 살아지더라고요. 죽기야 하겠어요? 뭐 죽지 못해 살고는 있습니다.”

송승헌은 톱인가?
아니다. 아직은 더, 솔직히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당신 위에 몇 명 있나?
하하. 내 기준으로 그걸 딱 구분짓는 건 웃기다. 아직까지는 해야 될, 보여주고 싶은 모습도 많고, 안 해본 것도 많고, 소위 영화 흥행으로 재미도 보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그런 생각은 못하겠다.

가장 두려운 건 뭔가?
글쎄, 두려움이라…. 성격이 뭐랄까, 그냥 즐기는 스타일이랄까? 어떤 일을 하면, 열심히 하고 잘해야 되겠지만, 그걸 목숨 걸고 정말 죽네 사네 이러진 못한다.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 두려움은 잘 모르겠다.

죽네 사네 하는 연기도 어쩐지 어울리진 않는다.
그런가?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고 싶다. 음, 그래도 두려운 거라면, 결혼? 내가 본 건 아니고 누가 점을 봐줬는데, 늦게 할 거라고 했다. 늦게 하고 싶진 않은데.

출연료는 마음에 드나?
<무적자>를 끝내고 일본에 가서 바로 한 40일 만에 영화를 찍고 왔는데, 일본 배우들에 비해서 우리 배우들 개런티가 절대 적은 게 아니었다. 할리우드에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일반 직장인에 비하면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일 수도 있고. 적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포기하는 것도 있지만, 적은 건 아니다.

그래서 마음에 드나?
글쎄,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

그럼 출연료에 불만인 걸로 정리하고.
하하, 아니다.

돈은 어디에 쓰나?
진짜 지금까지 근 15년 가까이 뭘 사거나 이런 거에 관심이 없었다. 좋은 오디오를 갖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도 안 했다. 그래서 돈을 어디다 쓰냐 하면 먹고 마시고, 친구들 만나면 항상 내고, 그럴 때 말고는, (매니저에게) 나 돈 어디에 쓰지?

제멋대로 하는 건 뭔가?
다 내 멋대로다. 그것에 관해서는 매니저가 할 말이 많을 거다.

본인은 할말 다했나?
음, 이번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촬영 분위기에 맞춰 아침에 면도를 하고 온 탓인지 그는 자주 턱을 만졌다. 소나무처럼 굵은 팔과 세필로 그린 것 같은 날선 턱의 부조화는 서른이 넘은 지금도 송승헌이 ‘청춘의 표상’으로 불리는 이유다. 흰색 러너 톱, 아메리칸 어패럴. 청바지, 리바이스 빈티지.

촬영 분위기에 맞춰 아침에 면도를 하고 온 탓인지 그는 자주 턱을 만졌다. 소나무처럼 굵은 팔과 세필로 그린 것 같은 날선 턱의 부조화는 서른이 넘은 지금도 송승헌이 ‘청춘의 표상’으로 불리는 이유다.

흰색 러너 톱, 아메리칸 어패럴. 청바지, 리바이스 빈티지.

    에디터
    강지영, 장우철
    포토그래퍼
    목나정
    스탭
    메이크업/ 임해경, 어시스턴트 / 하연주, 어시스턴트 / 홍서진, 헤어/김현진, 어시스턴스/양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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