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같은 내 어플

기업 어플리케이션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오래 두고 볼 만한 앱은 드물다. 전문가도 시장도 없는 상황에서 마음만 급한 탓이다.



아이폰 4는 사전 예약 10시간 만에 12만 대가 팔렸다.
아이폰 사용자는 현재 100만에 육박한다. 아이패드 역시 한글 지원이 가능한 iOS4가 적용되는 11월 발매가 예상된다. KT, 아이스테이션 등 국내 기업도 타블렛 PC를 출시했다. 하드웨어의 보급은 기업이 어플리케이션 시장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고교생 어플대박.’ ‘인생 역전 젊은 개발자’같은 기사는 달콤했다. 현재 약 3천2백억원의 국내 모바일 광고시장이 2012년 5천억원 규모로 성장할 거란 전망은 좀 더 현실적인 유혹이었다.

기업은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줄 디자이너와 개발자를 찾기 시작했다.
자연히 웹, 여타 모바일 시장에서 일하던 디자이너와 개발자들이 속속 어플리케이션으로 넘어왔다. 아이폰이 국내에 상륙한 지 고작 1년도 되지 않은 상황, 앱 전문 인력은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기업의 의사결정 속도는 디자이너와 개발자들이 전문성을 갖추는 속도보다 빨랐다. 앱 개발은 크게 4단계로 구분된다. 기획, UI 설계, GUI 디자인, 그리고 개발이다. 그중 개발 과정은 기술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은 일이 아니다. 웹과 여타 모바일에서도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C/C++ 언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다. 숙련된 개발자들은 설계와 디자인의 메커니즘을 알고 있다. 기획을 비롯한 UI와 GUI 설계, 디자인을 담당하는 전문 인력은 부족하고 어플리케이션의 수요는 큰 상황에서 개발자들이 기획, 설계자로 둔갑했다. 개발자들은 상상력을 펼치기보다 실제로 제작할 수 있는 것만 하려는 습성이 있다. 그들에게 전문성이 있냐고 묻는다면, 기술이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A는 한국에서 기업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UI/GUI 디자이너다.
한국에 스마트폰 열풍이 불기 전, 1년 반 정도 미국에서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했다. A는 지금의 상황을 공공 디자인 열풍과 비교했다. “2년전에 디자인 수도다 뭐다 해서 디자인업계에 돈이 엄청 들어왔어요. 그때도 공공 디자인 전문가는 몇 명 없었는데 다들 공공 디자인 회사로 등록하고 돈을 엄청 받았죠. 그래서 지금 서울에 뭐가 남았나요? 사실 현재 국내에서 어플리케이션 기획, UI, GUI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저를 포함해 5~6명 정도라고 봅니다.”

기업에도 전문가는 없다.
기업은 실체가 없는 사업에 사람을 고용하는 데 대한 부담이 있다. 외주를 맡기려 하니, 몇 안 되는 전문가는 이미 대기업 디자인실에 있다. 현재 삼성전자의 디자인연구소에서는 800명이 넘는 디자이너가 일하고 있다. 어플리케이션 전문 인력은 200~300명, 타블렛 PC는 30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 정도면 싹쓸이다. 콘텐츠를 가진 기업들이 뒤늦게 어플리케이션 시장에 뛰어들길 원하지만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사람도, 어플리케이션을 아는 사람도 남아있지 않다. “이제 1년 이상 계약 안 하면 안 해요. 아무 준비도 없이, 아이패드 한번 만져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신문기사만 보고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달라고 해요. 짧은 시간 안에 그 기업이 제공할 콘텐츠며 특성 같은 걸 어떻게 파악하겠어요?” A의 말이다. 그는 어플리케이션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의사소통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엔 전문가가없고 다알아서 만들어달라는데, 사실 업체는 기업의 한마디에 벌벌 떨어야 돼요. 업체가 기업을 가르쳐주는 게 어디 있어요. 기업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저 ‘다할수 있습니다’ ‘3개월이면 만들 수 있어요’하는 업체랑 일을 진행하게 되죠.” 전문가의 공급은 부족하고 비전문가가 비전문가를 선택하는 상황. 이런 와중에도 어플리케이션은 계속 나온다. 만듦새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비전보다 일단 얼른 만들어 발표하는 걸로 ‘최초’라는 홍보 효과를 기대하는 듯하다. 물건의 품질은 배제한 채 10원을 놓고 경쟁하는 대형 마트의 ‘최저가’ 경쟁과 비슷한 형상이다.

시장의 불확실성 또한 어플리케이션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데 한몫한다.
현재 출시되는 어플리케이션 대부분은 일회성 앱이다. 아직 수익을 달성할 비즈니스 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어플리케이션의 정기적인 유지보수 비용은 최초의 개발비만큼이나 꾸준한 액수가 든다. 선뜻 투자를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매혹적이다. 타블렛 PC는 풀 페이지 광고, 모션그래픽 등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 광고 모델의 잠재력이 크다. 미국에선 아이애드가 출시 2개월 만에 6천억달러의 예약 매출을 거두었다.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온몸으로 뛰어들자니 리스크가 크고, 가만히 있자니 올 초 아이폰의 폭발적인 반응이 생각나 한 발 정도만 담그고 있는 꼴이다. 이래선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

통신사 및 단말기 회사의 역할은 지금 같은 전문가 부재, 콘텐츠 부실 상태에 대한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KT는 자회사 KTH를 통한 개발을 시작으로, 어플리케이션 시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하드웨어가 팔리기 위해선 지금까지 지켜온 소프트웨어의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 KT는 얼마 전 개발자와 콘텐츠 회사의 담당자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개발비 지원 및 수익 분배에 대한 내용을 발표했다. KT가 어플리케이션 개발비를 지원해줄 테니, 3자가 수익을 나누자는 것이다. 삼성, LG 등 단말기 회사도 독점 어플리케이션를 넣음으로써 자신의 단말기를 차별화하고자 한다. 둘 다 콘텐츠 회사의 위험을 떠안는 대신 좋은 콘텐츠를 제공해달라는 말이다. “지금 나오는 어플리케이션들은 고객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하나도 안 되어 있어요. 사실 웹도 마찬가지예요. 백화점 홈페이지 들어가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나요? 주문이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예를 들면 모바일 웹에서 플래시가 구동되지 않는 것부터 해결하는 게 먼저란 말이죠. 일단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찾아가서 사먹고 사 입을 텐데, 지도는 정작 플래시라 볼 수가 없죠. 소비자가 원하는 게 뭔지는 고민하지 않고, 뭘 자꾸 만들 생각부터 하고 있어요.” 안철수연구소 김홍선 대표의 말이다. 뭘 만들까, 언제까지 만들까의 고민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어떻게, 누구와 만들까다. 사람도, 시장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하루 수백 개의 어플리케이션이 태어나고 곧 잊힌다.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