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찾아온 남자

알아채긴 힘들지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얼굴로, 어젯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수없는채, 갑자기 송새벽이 왔다.

턱시도 수트와 셔츠는 모두 살바토레 페라가모
턱시도 수트와 셔츠는 모두 살바토레 페라가모

얼굴에 날카롭고 잔인한 뉘앙스가 있다. 피부는 창백하고 눈은 투명한 갈색이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양띠다, 79년 양띠. 근데 아침부터 피를 보니 좀 당황스럽다.

어차피 가짜 피니까. <해결사>가 개봉한 게 9월 9일이다. 오늘(9월 14일) 새벽까지 찍고 온 작품은 뭔가? 충무로 영화들은 당신이 다 찍고 있는 느낌이다.
전보다는 좀 찍는 편이다. 지금은<7광구>라는영화찍고있다.

당신의 모든 인터뷰는 <방자전> 이후에 쏟아졌다. 당신의 전라도 사투리를 두고 말이 많았지만…. 사실 말투가 웃긴 건 아니었다. 자연스럽기만 했다. 고향이 군산이라 그랬나? 군산엔 짬뽕을 먹으러 종종 갔다. ‘쌍용반점’이라는….
하하. 거길 어떻게 아나? 군산은 크게 볼거리 그런 건 없는데 음식이 맛있다. <방자전> 끝나고는 ‘실제로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았다. ‘당신 진짜 연기자 맞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약간 그런 느낌이었다고들 했다. 갑자기 스태프가 카메오로 출연한다거나 하는.

확실히 아마추어처럼 보이는 지점이 있었다. 미숙해서가 아니라, 다른 공기를 마시고 있는사람 같았다. 연극판 12년차라서?
내가 그렇게 어리숙해 보였나, 그런 생각 많이 했다.

당신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들은, 구식이라서 새로웠다. ‘원나잇 재미없잖아요’라든가.
사랑은, 부모님 세대 사랑이 더 예쁜 것 같다.

‘사람들이 못 알아봐도 좋으니까 죽을 때까지 연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못 알아봐도 상관없다. 나라고 왜 안 힘들었겠나. 제대 하자마자 사지 멀쩡한 거 믿고 아무 연고 없이 맨몸으로 와가지고 몸으로 막 부닥치면서 저기한 부분인데. 솔직히 조금 힘들고 그랬는데, 그걸 표현하고 싶지가 않았다. 누구나 다 고생들 하는데 내가 막‘이랬어요 저랬어요’하는게 마치 저 혼자 다 고생해가지고 저기 한 것처럼. 그게 싫었다.

연극판 생활이 어땠냐고 물으면, 싱겁게 ‘좋았다’할 것 같다. 그래서 버텨낸다는 쾌감도 있지 않나?
실제로 재밌었다. 가난한 거 다 잊을 정도로. 어느 부분은 쾌감도 있을 수 있다. 뭐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다. 다른 거 없고, 자기가 좋아서. 1년에 조선팔도에서 한 천 명정도 연극하겠다고 오면 7,8백 명은 빠져나간다. 좋아하지 않으면 못 버틴다.

배우들이 그런 말 참 많이 한다. “연기 너무 좋아요. 제가 아닌 여러가지 인생을 살아 볼 수 있어서요.” 진짜 그래서 좋은건가? 그게 이유인가?
‘여러가지 모습을 표현 할 수 있어서’ 라는 것은 어느 직업을 하든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다만 나는 표현을 그냥 하는 것 뿐이지. 마음속에는 다 누구나 광대 정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 정서에 흥과 끼와 한이 있다.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들이 있다. 월드컵 때 처럼 일상이 무대처럼 변하면, 발산된다. 아무도 못 말리는 식으로.

그래서 한국에 카니발이 있어야 한다.
그러게 말이다. 국민들이 얼마나 답답하고 그동안 얼마나 거시기하셨을까. 먹고 사시느라. 일생을 살아내시느라.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을 동시에 받았을 때, 얼마나 얼떨떨했나?
그래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끝나자마자 다른 영화 촬영 바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럴 겨를도 없었고.

그걸 즐길 시간이 없었다니, 순간이지만 달콤하지 않았나? 방송 출연 제의는 안 받았나?
섭외가 왔었단 얘기는 들었는데, 못 하겠더라. 그런데 나가려면 말도 막 잘해야 하고, 사람들 웃길 줄도 알아야 되고 그런데. 하하. 못하겠더라.

당신은, 애초에 콘셉트 같은 건 없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백지 같은 남자…. ‘변학도’도 연기처럼 안 보였다. <해결사>에서 설경구와의 호흡은 어땠나? 설경구의 연기는 당신과는 많이 다른데.
안 그래도 <방자전> 끝나고 변태란 얘기 굉장히 많이 들었다. 경구형은, 아니 선배님은 처음 뵙는데 워낙에 무서운 선배 이미지가 있었다. 그래서 좀 위축이 됐다고 해야 하나? 위축보단 살짝 말 건네기가 그런 거. 그랬었는데, 너무 편해서 짧은 시간에 굉장히 친해졌다. (오)달수 형님도. <방자전>에선 둘이 붙는 장면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해결사에선 단짝으로 나왔으니까.

조여정 엉덩이 때리고 했던 게 과연 변태였나 싶은 마음도 있다. ‘그 정도로 뭘…’ 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모 기자분한테 그랬다. ‘아니, 사람은 누구나 안에 다 변태적 기질이 있는 거 아니에요?’ 그랬더니 ‘학!’놀라면서 ‘위험한 말씀’이라고 하더라. 카메라나 관객 앞에서 멋있게 보이고 싶은 그런 건 추호도 없다. 현 세대를 같이 살아가는, 진짜 그야말로 멜로드라마 대사처럼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아가는 것’처럼…. 그런게 나한테는 중요한 부분이고 같이 나누고 싶은 심정이다. “아!” “저게 맞아!”그런거 있잖나. 연기보면서. “저럴 수 있어! 맞어! 나라도 저래!” 그런 것 들.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따로 있는 건가?
근데 보이려고 애쓰니까 더 안 되더라. 난 계산한 티가 너무 난다. 못 본다, 진짜 웃겨서.

그런가하면 숨소리까지 계산하는 배우도 있다.
대단한 것 같다. 나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다 놓고 빠져드는 거 밖에 없다. 카메라는 의식해야 한다. 그거 안하면 다큐지.

다큐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진짜 변태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명세에 고픈 적은없었나?
누구나 안 고팠을까? 특히 경제적으로 찢어졌을 때. TV에 연예인들 막 나오면 야, 쟤는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라노: 연애조작단>과 <해결사>개봉 직후라 뚜렷한 반응이 오기 전이다보니, 자꾸<방자전> 얘기를 하게 된다.
솔직히 그랬다. “야…이게, 영화가 영화구나. 진짜 다르구나. 내가 연극이 12년짼데. 백날 연극해도 이런 건 하나도 없었는데.” 변학도 그 몇신 안했는데. 그게 아이러니였다. 물론, 규모의 차이다. 하지만 그냥 배우로서 생각하면 묘했다. 똑같은 연기한 건데.

미디어라는 게, 동물 같지 않나?
그런 느낌이다. 그런 거에 휘둘리면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을 일단 했다. <방자전> 끝나고 관객들이 블로그에 쓴 걸 보면…. 사람이라는게 웃긴다. 누군가가 막 저기 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살짝 목에 깁스를 하더라고. 그래서 아, 이거 득이 아니라 독이 되겠구나 싶었다. 근데, 이런 얘기 하면 또 전 솔직하게 얘기 한건데, 남들이 보면 또 ‘지가 뭔데…’그러지 않을까?

그럴 리가. 대학까지 군산에 살다가 맨몸으로 온 서울이 괴물처럼 느껴지진 않았나?
우리 엄마 아빠가 좀 그렇다. 아홉시 뉴스 보면 맨 사고란 사고는 서울에서 다 터지는 거 같으니까. 엄마는 ‘서울 여자 만나지 말라’고 그런다. 서울 여자는 고생 안 해서, 여자는 고생 안하면 못 쓴다고. 어르신들은 그런다.

서울에서, 여자는 만나나?
남자니까 당연히 여자 만나야지. 결혼 해야지. 안 그래도 외로운 인생인데 등 긁어주는 사람 있어야 한다. 남자가 여자 등 긁어줘야 되고. 결혼 안 한 선배들 그렇게 외로워 보일 수가 없다. 말로는 “나 뭐 자유스럽고 좋아” 그래도 걸어가는 뒷모습이 그렇게 외로울 수 가 없다. 가을되고 그러면 한도 끝도 없다. 집에 가서 밥 먹고 차마시고 같이 TV보고. 그런게 얼마나 저기한데, 진짜로. 결혼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그래서, 사랑은 하고 있나?
오프 더 레코드다. 여자 친구 있다. 근데…‘오프’ 안 하셔도 된다. 사실, 아! ‘오프’로 부탁한다.

그렇게 중요하진 않은데, 당신이 결정해야 한다.
중요하진 않다. 그런데 여자 친구가 자기 얘기 하는 걸 싫어하더라. 이 전에 인터뷰 가는데 여자 친구가 자기 얘기 하지 말라고 했다. 싫어서가 아니라 쑥스러워서. 하하, 괜찮다. 욕 한번 먹지 뭐.

지금 네편 째 ‘주목받는 조연’이다. 주연 욕심….
다음 달에 첫 주연작 들어간다. <위험한상견례>라고. 근데 주연이라고 해서 뭐 그런 거 없다. 연극 할 때도 주연 했었고.

당신이 끌어간다는 느낌이 더 강할 것 같다.
초반엔 그런 생각을 좀 했다. 나름의 부담감도 있었다. 그런데 조연이 다섯 씬, 주연이 열 씬이라고 치면, 조연을 했을 때랑 주연을 했을때랑 뭐 씬 저기만 다른 거지 매번 가서 집중해야 하는 건 똑같은 거다. 주연 연기 따로 있고 조연 연기 따로 있는 건 아니니까.

<해결사>의 반응은 오고 있나?
이따 인터넷으로 봐야 한다. 그냥 ‘송새벽’ 딱 쳐서.

촬영이 바빠서, 가을이 오는 건 느꼈나?
아무리 바빠도 계절 못 느낀다는 건 다 뻥이다. 다 느낀다. 그야말로 기분이 좋다. 어느 순간 집 언덕길 걸어가는데 바람이 불어오면 씻겨나가는 것 같다. 뭔가 전환이 되는 시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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