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NG LOVING YOU

그룹 폴리스의 리더인 스팅은 클래식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월드투어를 진행 중이다. 뉴욕에 있는 고급 아파트에서 50대의 스팅을 만났다. 여전히 스물일곱의 에너지가 넘쳤다.

센트럴파크 남서쪽 콜럼버스 서클에서 5분 정도 걸어가자 맨해튼에서 가장 유명한 아파트 브렌트모어가 보였다. 대리석으로 장식된 원형의 중앙홀을 지나자 현관 안내인이 엘리베이터로 인터뷰 일행을 인도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곧바로 스팅의 집에 도착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진 600제곱미터짜리 복층형 아파트가 나온다. 80년대에는 빌리 조엘이 살았다. 그러나 스팅은 곧 2천6백50만 달러에 구입한 테라스가 있는 펜트하우스로 이사할 예정이다. 2층까지 올라가는 몇 초 사이, 폴리스 첫 콘서트에서 보여준 신들린 듯한 베이스 연주부터, 완벽하게 모드족을 구현해낸 영화 데뷔작 < 콰드로피니아(1979) >, 미국 로큰롤 시대의 최고 스타였던 코크런의 열성 팬으로 열연했던 < 라디오 온 (1979) >, 그리고 암네스티 인터네셔널 쇼에서 보여준 환상적인 퍼포먼스 등이 차례로 머릿속을 스쳐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회색 티셔츠에 군복바지 차림의 스팅이 기타로 바흐를 연주하고 있다가 기타를 내려놓고 일어나 우리를 맞았다. 이 만남은 새 앨범 < 심포니시티즈 >와, 그와 동시에 시작한 월드투어를 소개하기 위해 마련됐다. 록의 감성에 클래식 편곡이라는 새로운 시도는 도박이나 다름 없었지만, < 뉴욕타임스 >를 비롯한 각종 언론매체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 후 호평을 쏟아냈다.

스팅은 요가 수행으로 탄탄한 몸매까지 겸비한 록 스타이자 인권과 환경운동가이며, 재능 있는 영화배우이자 한 가정의 훌륭한 가장이기도 하다. 58세에도 호기심과 열정은 녹슬지 않았다. 1985년 솔로 전향 후 클래식, 재즈, 록, 컨트리, 레게, 켈트, 아랍, 아프리카, 브라질 음악 등 폭 넓은 장르를 접목해 최고의 세션 연주자들을 앨범에 참여시키고 있다.

2010년 7월, 미국 투어 마지막 단계인 뉴욕 공연을 마친 스팅은 유럽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다. 새 앨범 < 심포니시티즈 >는 영국을 대표하는 관현악단인 로열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Next to you’, ‘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등 스팅의 폴리스 시절과 솔로활동 대표곡들 뿐만 아니라, ‘We work the black seam’, ‘The end of the game’ 등 잘 알려지지 않은곡들을 새롭게 편곡한 음반이다. 전날 니콘 앳 존스비치 시어터에서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3시간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 받는 작곡가 아론 코프란드에 비견되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시대를 초월해 영원히 사랑 받고 꾸준히 연주되는 곡을 가져야 해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처럼요. 니콘 앳 존스비치 시어터 공연 후 본격적으로 클래식과 록을 접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클래식 오케스트라는 음악 색채와 리듬 표현에 한계가 없으니까요.”

우리 앞엔 또 다른 스팅도 있다. 아마존 보호를 위한 기금을 조성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차별 퇴치를 위해 세계 순회공연을 벌이며, 티베트 독립운동에 지지를 표하고, 최근에는 아이티 지진 이재민 돕기에 나서는 스팅 말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우디 A8의 홍보 모델이고, 20년 전 바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부부관계를 위해 요가를 한다는 발언으로 기자들을 당혹시키기도 한 인물이다. 이 모두가 진짜 스팅이다. 그래서 언론은 그의 사회 활동뿐만 아니라 사생활까지 주시한다.

롱아일랜드 공연에서 86년 발매한 첫 솔로 앨범인 <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 >에 수록된 ‘Russians’을 연주하기 전 그는 말했다.“이곡은 냉전중에 만들었어요. 하루는 컬럼비아대 공대생이었던 내 친구가 위성을 통해 러시아 방송 신호를 수신했어요. 우리는 러시아와 우리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마침 시차 때문에 우린 일요일 아침에 방영되는 어린이 방송을 봤는데, 그때 러시아인들도 우리처럼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요.” 말을 마친 뒤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됐다.

사람들은 운동으로 다져진 그의 탄탄한 몸에도 열광했다. 그에게 특별한 식이요법이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버거류를 절대 먹지 않아요. 맥주보다는 와인과 데킬라를 마시고요. 꾸준히 조깅을 하고, 가끔은 헬즈장에 가서 필라테스도 하고, 요가는 매일 해요. 몸관리 하는 데는 섹스도 아주 중요해요.” 곧 탄트라 섹스에 대한 스팅과 스타일라 부부의 특별한 취향을 떠올렸다.“8시간 동안 관계를 가지면 지루하지 않은가요?” 그는 시선을 하늘로 던지며 웃었다.“꼭 8시간을 투자할 필요는 없죠. 그렇지만 원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긴해요.”

스팅에게 오래 사는 것, 좋은 부부 금슬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 또한 예술가로서 롱런하는 것은 꾸준한 노력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어렸을 때 매일 아침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기타로 연주하면서 실력을 다져온 그에게 노력이야말로 중요한 가치니까. 2003년 발표한 앨범 < Sacred love >의 실패로 인기가 추락했을 때, 그는 바로크 음악에 열중함으로써 힘든시기를 이겨냈다.“16세기의 음악가인 다울런드의 음악은 요즘도 애창되잖아요? 존 다울런드의 바로크 음악을 현대적 감성으로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어요. 마침 유니버설 뮤직과의 계약이 끝난 뒤라서 시도해봤죠. 그의 음악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류트(16세기의 현악기)를 배웠어요. 에딘 카라마조프에게서 트레이닝 받았고요. 그와 함께 녹음을 하려고 스튜디오에 갔을 땐 단 한 번에 녹음을 마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이렇게 녹음한 CD를 여러 음반사에 보냈다. 관심을 보인 곳이 도이체 그라모폰이다. 그렇게 발표된 앨범 < Songs from the labyrinth >는 예상을 뒤엎고 2006년 음반 판매 집계 1위에 랭킹되었다. 3년 뒤, 포크, 캐럴과 재즈를 넘나드는 수록곡들이 가득 찬 신보 < If on a winter’s night >는 미국과 영국 팝 차트에서 동시에 성공을 거뒀다.

한편,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투어 공연을 위해 20년 만에 폴리스가 재결합했다.“우리가 다시 모이게 돼 정말 행복해요. 우린 서로 미워했던 적도 없고, 대중도 우리를 잊지 않고 있었잖아요. 그러나 오래전에 했던 일을 다시 시작한다는 게 쉽진 않았어요. 재결합은 향수에 젖게 하기 충분하지만, 결코 이런 감정에 빠져 있으려고 하진 않았어요.”

스팅의 음악은 풍부한 감성과 서정성으로 대표되기도 하지만, 안정감을 추구하며 현실에 안주하기보단 영국, 토스카나, 캘리포니아, 카리브 해 등 각 지방의 특색을 탁월하게 표현해내면서 항상 성장해 나간다. 편안한 바지에 흰 셔츠 차림으로 탬버린을 연주하고 있는 음유시인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스팅 그 자체였다. 콘서트홀의 주인공이 된 스팅은 흐르는 연주를 배경으로 뉴캐슬에 있는 생가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 조상은 대대로 선원이었어요. 아버지는 내가 특별한 운명을 지녔다고 믿었고요. 선조들처럼 나 역시 항해를 나섰지만 좌절이컸어요.” 그뒤 뉴올리언스 공연에서 ‘Moon over bourbon street’를 연주할 땐 뱀파이어 망토를 걸친 채 테레민(전자악기)으로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했다.‘Russians’도입부에서는 프로코피예프의 화음을 선보였고 롱아일랜드의 별빛 아래 누워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모두를 전율케 했다. 그러나 지금 스팅은 샹송 스타 아즈나브르처럼 음악가로서의 황혼기를 걷고 있는 것일까? “나는 틀 속에 가두어 범주화하는걸 좋아하지 않아요. 스스로 음악가로 보이길 원치 않는다는 뜻이에요. 음악가인 두 자식도 매일곡을 쓰고, 나도 몇년 간 작곡을 쉬지 않았어요.” 한때 교사였던 스팅은 여섯자녀를 모두 성공적으로 교육시켰다.“네명은 음악과 영화를 공부해 학위를 마쳤어요. 막내는 누구도 개척하지 않는 새로운 일을 할 거예요. 아이들에게 교육이나 성공적인 결혼 생활에 대해 특별한 조언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렇게 성장한 게 놀라워요.”

스팅은 기타와 새로운 모험에 익숙한 비틀스 세대였다. 비틀스는 음악적으로 반드시 천착해야 하는 혁신적 앨범을 매번 만들어냈다. 다양한 요소를 조화시키는 비틀스만의 방식은 짧은 시간에 팝의 모든 방향을 다뤄볼 수 있게 만들었다.“그 후 나는 크림과 지미헨드릭스에 빠졌어요. 보컬리스트는 로버트 플랜트 같은 로커보다는 엘라 피츠제럴드나 레나 혼 같은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들을 좋아했죠.” 그리고 요즘 리얼리티 쇼에 나와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해주었다.“음악을 연습하는데만 시간을 소비하지 말고 당장 사람들 앞에 나서서 그것을 들려주거라.” 자서전에서 스팅은 자신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에 대해 설명했다. ”정말 불행했다고 하더라도 어린 시절을 바꾸고 싶지는 않아요. 그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테니까.” 니콘 앳 존스비치 시어터 공연에서 그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도와 우유 배달, 버스 운전, 세금 수납, 교사를 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그룹 뉴올리언스 딕시랜드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며 음악을 시작했다고도 했다. “그땐 정말 끔찍하게 힘든 시간이었지만, 스물일곱이라는 어린 나이에 성공을 맛본 것은 내 인생의 큰 선물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함으로써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십여 개의 그래미상을 거머쥔 남자. 3억 5천만 달러 재산을 가진 남자. 그러나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고 말한다. “아직도 어렵기만 한 피아노를 더 배우고 싶어요.” 그는 인터뷰를 마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아, 빨리 이사도 가고 싶어요. 집을 옮기는 게 혹시 창의력에 도움이 될까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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