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끝내줘요

소방수는 온데간데없고 방화범만 남았다. 마무리 투수가 사라졌다.

야구는 민감한 스포츠다. 공 하나에 승부가 결정된다. 그 가운데 투수만큼 감각적으로 민감한 포지션도 없다. 작은 물집만 생겨도 호투가 실투로 돌변하기 일쑤다. 그래서일까, 유년 야구에서 투수였던 선수가 성인이 돼서도 좋은 투수로 성장하는 확률은 7퍼센트 이하다. 마무리 투수는 살아남은 7퍼센트 가운데 극히 소수만이 맡는 보직이다. 가장 구위가 뛰어나고 성격이 대담한 투수만이 마무리를 맡을 수 있다. 마무리 투수는 힘든 보직이다. 현역 시절의 경험에 비추어 봐도, 매일 대기해야 하는 긴장감과 박빙의 승부가 주는 스트레스, 그리고 연투에 대한 체력적 부담으로 마무리 투수는 늘 고통을 호소하곤 했다. 오죽했으면 패전 투수와 원 포인트 릴리프, 마무리를 투수계의 3D 업종이라고 했겠는가. 하지만 1994년 LG가 투수분업화를 통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마무리는 명성이나 연봉 면에서 선발 못지않은 대우를 받았다. 그 시기를 기점으로 정명원, 이상훈, 임창용, 진필중, 조용준 등 정상급 마무리들이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리그 정상급 마무리가 눈에 띄게 줄었다. 올 시즌엔 풀타임 마무리 가운데 손승락과 이용찬만이 제 역할을 했을 뿐이다. 젊은 마무리가 너무 많았던 탓이다. 과거 선동열, 정명원, 이상훈 등 정상급 마무리들은 하나같이 선발 투수와 셋업맨으로 많은 경험을 쌓았다. 위기를 호흡처럼 빈번하게 겪었던 베테랑들이었다. 이들이 마무리로 보직을 변경했을 때 위축되지 않고 더 좋은 활약을 한 것도 풍부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한기주, 이용찬 등 프로 2, 3년 차 투수들이 마무리를 맡는다. 빠르면 프로 1년 차에 마무리를 맡기도 한다. 물론 당시엔 잘 던질 수 있다. 알고 던질 때보다 멋모르고 던질 때가 효과적이란 말도 있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 스트레스로 흔들리게 되고, 무조건 위기를 막아야 한다는 부담으로 무리하다 결국 부상을 당하곤 한다. 2006년 이후 많은 젊은 투수들이 마무리를 맡았지만, 지금 그들을 마운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언젠가 많은 경험을 갖고 선발 투수만큼 압도적인 구위를 보이는 투수들이 마무리로 전향하게 되면 다시 마무리 전성시대가 올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 프로야구에서 젊은 투수들이 차지하는 높은 위상을 볼 때, 아직은 좀 더 기다려야 하지 싶다. 이용철(KBS 야구해설위원)

모팀 감독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넥센 손승락이 세이브 왕이라는 게 진짜야?”26세이브라 답하자, 그 감독은“세이브 왕치곤 너무 약해”하며 슬쩍 웃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선발, 셋업맨, 마무리가 확실하게 정착한 2000년 이후 20세이브대로세이브 왕에 등극한 투수는 단 두 명이었다. 2001년 23세이브를 기록한 진필중과 2009년 26세이브를 거둔 이용찬.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26세이브 왕이 탄생한 게 문제가 아니라 눈에 띄는 마무리 투수가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실제로 손승락과 25세이브로 이 부문 2위에 오른 이용찬, 20세이브를 기록한 이승호를 빼면 20세이브대 마무리 투수는 없다. 죄다 10세이브대다. 따지고 보면 지난해도20세이브대마무리는3명뿐이었다.‘눈에 띄는 마무리가 없다’는 허 위원의 지적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그 많던 마무리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기존마무리들이 동시에 부상에 시달린 것이 가장 큰 이유다.

2000년대 중반까지 마무리로 이름을 날렸던 구대성과 조용준은 부상으로 2008년 이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 연속 세이브 왕에 올랐던 오승환도팔꿈치 부상으로 2009 시즌 중반 이후 푹 쉬었다. 한기주도 2009년 부상으로 부진하다가 올 시즌 수술을 받고 개점휴업 했다. 외국인 마무리 투수가 감소한 것도 한 이유다. 2008, 2009시즌에는 세이브 10걸 가운데 외국인 투수가 2명이나 됐다. 하지만 올 시즌엔 16세이브로 4위에 오른 오카모토 신야가 유일하다. 한화 한대화 감독은 올 시즌 훌리오 데폴라를 마무리로 썼다가 후반기부터 선발로 기용했다. 이유는 간명했다. 한 감독은“팀이 원체 약체라, 매번 지다 보니 데폴라에게 세이브 기회가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며“, 그냥 놀리느니 선발로라도 쓰는 게 낫지”하고 속내를 털어놨다. 한 감독은“4강 이하의 약팀에서 외국인 마무리 투수는 낭비”라고 말했다.

리그 주축 마무리들의 동반 부상에 외국인 마무리 투수들까지 줄어들며 한국 프로야구에서 마무리들의 입지가 줄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선 지나치게 과장됐던 마무리의 거품이 빠지고 있다고 평한다. 한 베테랑 선발 투수는“선발은 6이닝 이상 3실점 이하를 기록해야 좋은 투수로 평가 받지만, 마무리는 1이닝만 잘 던지면 영웅이 된다. 2008년만 해도 8개 구단 마무리의 평균 연봉이 1, 2선발 평균 연봉보다 많았다. 그러나 요즘 감독들은 컨디션만 좋으면 셋업맨을 9회까지 던지게 한다”는 말로 마무리 거품이 빠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마운드의 분업화를 강조한 이광환 전 LG 감독은 ‘강팀의 조건’으로 5가지를 꼽았다. 톱타자, 에이스, 해결사, 좋은 포수, 그리고 마무리 투수. 그러나 현재 프로야구 4강 중 확실한 마무리가 있는 팀은 두산뿐이다. 그나마 두산의 이용찬도 올해로 겨우 2년 차다. 지난해 SK에서 가장 많은 세이브를 거둔 선수는 정대현이었다. 10세이브였다. 올해 이승호는 20세이브를 거뒀지만, 그가 내년에도 SK의 뒷문을 책임질지는 알 수 없다. 삼성도 오승환이 빠지자 아예 마운드를 집단 마무리 체제로 재편했다. 불펜의 모든 투수가 마무리요, 마무리가 곧 불펜이었다. 롯데는 올 시즌을 앞두고 지난해 마무리로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 애킨스를 내보냈다. 그리고 선발 투수인 사도스키를 보강했다. 조정훈-송승준-장원준이라는 선발진이 있는 상황에서, 롯데는 마무리 대신 선발 보강을 택했다. 세 팀 모두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강팀이다.

이처럼 마무리 투수는 더 이상 강팀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리그 환경이 변화한 탓이다. 스트라이크존을 늘려도 해결되지 않을 만큼 타고 투저가 극심해지면서 자연스레 선발 투수들의 투구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류현진, 김광현, 장원준 정도를 제외하면 완투가 가능한 선발 투수도 드물다. 이래서는 선발이 길게 던지고 셋업맨이 1이닝 정도를 처리한 후 마무리로 연결하는 이상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가 없다. 경기 중반까지 승부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 이기는 경기를 매듭짓는 것보다 경기의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자연스럽게 마무리 투수에게 주어지던 비중이 중간계투로 옮겨온 것이다.

그러나 이를 마운드 운용이 퇴보하고 있는 증거로 단언하긴 힘들다. 절대적 기준이라 할 순 없지만 국제대회성적이 리그 수준을 판가름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고 볼 때, 최근 한국 야구의 성적은 퇴보의 우려를 불식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뛰어나다. 게다가 지난 2009 WBC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투수는 다름 아닌 중간계투 정현욱이었다. 그는 대회를 통해‘국민노예’란 별칭을 얻었다.

돌이켜보면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전문 계투 요원은거의 국가대표로 뽑히지 않았다. 각 팀의 에이스와 특급마무리만이 국가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계투 전문 선수들이 국가대표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고창성과 안지만이 뛸 예정이다. 그들의 구위가 웬만한 마무리투수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더이상 선발과 마무리가 투수진을 대표하지 않는다. ‘강팀의 조건’이 변하고 있다. 에디터/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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