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어른의 말이 듣고 싶었다. 이제하를 만났다. 여전히 벽을 놓고 부딪히는 일흔 네살의 소설가이자 화가를 만났다.

<이제하 그림전>을 마치셨는데, 어떠셨어요?
바다에서 살고 싶었는데 기회가 닿아 통영에 내려가서 그린 그림들이에요. 바다 그림이 많죠? 바다는 그리고 싶다고 그려지지 않아요. 3년 살면서 바다하고 친해지면서 그릴 수 있었어요. 내가 고향이 마산이에요. 마산은, 그렇게 예쁘던 바다가 창원공단 때문에 지금 완전히 오염돼서 조개 한 마리 못살아요. 마산 가서 아귀찜 좀 먹고 싶은데, 그 꼴 볼 생각을 하면 끔찍해서 못 가겠어요. 아귀를 해풍에 말려서 꾸덕꾸덕하게 만드는데, 마산 아귀찜이 되게 맵고 맛있어요.

잠깐 거제도에 산 적이 있어요. 통영도 좋고 바다 너머 거제도도 좋죠?
거제도 예쁘죠? 통영에서 거제도 쪽으로 가보니까, 거기 어우, 되게 예뻐요.

포구 쪽이나 유자밭이나 참 생기가 있더라고요.
지역 자체의 활기가 왕성해요.

통영에서 혼자 지내시긴 적적하지 않으셨어요?
작품 하려면 혼자 죽자 사자죠. 그런데, 거기로 서울 친구들 오고, 그쪽 사는 친구들도 있고, 혼자서 해야 제대로 되는 건데 내려가도 그래요. 생선시장에도 가보고 싶고, 사람도 만나고 싶고 이래가지고.

지금까지 작품을 위해 의식적으로 혼자가 되려는 노력을 했나요?
여유롭게 글 쓰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소설가라고 해도 전부 따로 직업이 있죠. 하지만 나는 성격상 어디 정착해 사무실에서 개기는 걸 못 견뎌요. 그러니까 여기저기 다니면서 삽화 그려주고, 글도 쓰고 다방면으로 한 거예요. 생활 때문이었죠. 원고료가 하도 박하니까, 누가 도배해달라면 도배해주고, 구들장 놔 달라면 구들장 놔준 거예요.

사실 작년에 ‘Men of the Year’ 일러스트 때문에 전화 드렸더니, 선생님이 대뜸 ‘얼마를 주면 한다’고 하셨어요. 명쾌해서 좋은 한편, 명색이 예술간데….
안 그러면 예술가가 만날 당해요. 옛날에 양주동 박사라고 알아요? 말빨이 대단한 분이었는데.

그분이 감수한 국어사전으로 공부했어요.
양주동 박사는 원고 청탁자한테 “그거는 얼마 하면 쓴다”는 식으로 따지는 게 다반사였어요. 문학청년들은 순진해가지고 선비가 어떻게 돈을 따지냐고 굉장히 이상하게 봤다고요. 그런데 막상 문예지에 글을 써보니 원고료는 쥐꼬리만 하고, 그것도 번번이 떼이는 거죠. 양주동 박사가 선각자로 보였어요. 상대방이 비즈니스를 하는데, 우리는 선비 운운하는 게 우습더라고요. 근데 제가 좀 ‘버’로 받아들였죠. 전화 받자마자 “그게 얼마요?”그래서 코미디가 된 적도 있어요.

평생 ‘프리랜서’였던 당신에게 ‘밥벌이’의 문제는 회사원보다 첨예했겠단 짐작은 가요.
예술가가 뭔가를 돈으로 환산한다는 건 지나치게 현실적인 감각이죠. 글 쓰는 사람이 그래선 안 되는데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이게 얼마치밖에 안 된다 싶으면 긴장감이 덜해요. 1만원짜리 원고를 쓴다면 똑같은 정성으로 쓰는 것 같아도 3만원짜리 원고만큼 정성이 안들어가요. 문지 시인선의 얼굴도 그 사람 최상의 얼굴을 그린 게 아니에요. 냉정하게 말하면 그것도 딱 원고료만큼 그려지는 거예요. 누군들 최고로 잘 그리고 싶지 않겠어요?

원고료나 삽화료나, 우리나라가 터무니없이 박하긴 하죠.
삽화료는 몇십 년 그대로인 걸 제가 항의해서 7~8년 전에 올렸어요. 한 사람이 만드는 고유한 이미지를 대접해주지 않아요. 일본 같은 삽화료가 책정된다면 더 정성을 들일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삽화 자체가 부수적인 장식, 낙서 비슷한 대우를 받아요. 일본 책 보면 삽화좋은 게 얼마나 많아요? 거기에 눈이 익어가지고 우리나라 책들을 보면 화가 다 나요.

그 현실 감각이 당신이 자주 얘기했던 ‘재주를 믿지 않는다’는 말과도 연결돼요. 예술가의 특권의식을 공격하는 말 같았거든요.
기초적인 기량만 닦아서 개성을 추구하면 재주가 되는 거지, 특별히 딴 게 없어요. 독특한 선으로 델리케이트한 개성을 표현해내면 그림이 재미있어지는 거죠. 그런 정도지, 이게 저거보단 낫다 이렇게는 말 못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기초도 안 돼 있어요.

재주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게 아니란 말씀이시죠?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세속적인 율법과 도덕의 강박관념에서 얼마나 풀려날 수 있느냐가 예술가의 재주예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재주란 건 없어요. 기초적인 것이 되어있고 정신이 자유로우면 돼요. 꾸물거리는 뱀을 그리고 싶은데, ‘사람들이 뱀을 싫어하지 않을까?’하는 강박 때문에 뱀 그리기를 포기하는 거예요. 자기를 풀어놓은 사람은 뱀이 예쁘다고 생각되면 그냥 그려요. 그게 개성이 되는 거예요. 재주는 환경이나 조건에서 나오는 능력이에요.

당신이 시며, 그림이며, 소설이며, 음악이며 여러 분야를 하니까 사람들이 ‘재주도 많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그림을 잘 그린다는 말은 있을 수 없어요. 그림은 찾는 과정이에요. 매번 흔적만 남아요. 얼마나 애를 써서 땀을 흘리고 또 다른 흔적을 찾아 가느냐는 문제지, 완성된 예술이라는 게 없어요.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나는 안해요. 완성되면 그걸로 끝인데, 그 완성이 앞으로 어디 소용이 있고 감동이 있겠어요?

예술이 흔적이라고 하시니까, 그리는 족족 불태워버리던, <유자약전>의 유자가 생각나는데요.
반 고흐 그림이 위대하단 건 구도나 색깔이 아니라, 그 붓 터치 하나를 놓고 이 양반이 얼마나 노심초사하고 다시 그렸는지, 그 흔적을 재량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장욱진도 그래요. 자기 걸 찾으려고 캔버스를 문대고 깎은 흔적들이 자기 그림이 됐죠. 그런 게 재주예요. 끊임없이 시도하면서 자기한테 맞는 걸 찾으려고 하는 게 재주예요.

하지만 아무리 독특한 예술 작품이라도 시장에서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범위 안에 포함되지 않으면, 그것이 ‘개성적’이라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시장을 고려하는 능력도 재주에 포함될까요?
그거는 대중성이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중성이라는 게 수준 이하예요. 아직 한국이 과도사회이기 때문에 다른 데서는 썩어 죽은 패턴을 따라서 뒤쫓고 있어요. 아파트도 서울과 서양이 개념적으로 달라요. 몇 백년의 교양과 문화적인 층이 쌓인 아파트란 개념과 상자를 얹어놓은 아파트가 같겠어요? 한국은 중산층이 아니라 졸부죠. 중산층의 소양, 예의, 감각, 겸양, 도덕이 없어요.

그런 측면에서 <마초를 죽이려고>에서 미국 중산층의 윤리의식을 주목하신 거군요.
미국이 역사는 짧아도 개척시대부터 그런 게 쌓여가지고 제대로 된 중산층들이 우리보다 훨씬 많아요. 우리나라는 강남 사람을 중산층이라고 하는데, 아직 멀었죠. 더러운 돈으로 한탕 하거나, 요행으로 대박 쳐서 부자가 된 사람이 많아요. 그림도 모르고, 블록버스터나 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중산층 행세를 하고 있으니까. 중산층은 그런 영화 안 봐.

말씀하신 영화를 비롯해서, 새로운 미디어를 발 빠르게 섭취한 편이시죠?
영화 칼럼 쓰면서 하도 많이 봐서 질려가지고 요새는 거의 안 봐요.

혹시 <아바타>는 보셨나요?
봤는데 그거 아파치랑 싸우는 서부 영화를 어레인지한거던데? 기술만 좀 새로울 뿐이지 주제가 없어요. 아파치족 동정하는 서부 영화랑 똑 같은 패턴이지 뭐. 그러니까 상은 기술상만 탔잖아요?

듣기로는, 예전부터 컴퓨터로 글을 쓰셨다고 들었어요. 홈페이지도 직접 운영하시고요.
직장도 안 다니고 사회적으로 만나는 사람도 없으니까, 소통하는 게 홈페이지밖에 없어요. 그런데 요즘 컴퓨터 안 쓰는 사람들도 있나? 뇌세포가 어떻게 된 사람들만 죽자 사자 안 쓰려고 그러지. 최인호는 아직도 원고지에 써요. 박완서 씨 같은 분은 “야, 이렇게 편리한 게 있나?”하고 컴퓨터 나왔을 때 제일 먼저 덤벼들었어. 그렇게 순발력이 뛰어난 분도 있죠. 그러니까 상투 안 자르겠다고 버티다가 다 늦게 상투 자른, 그런 거예요.

컴퓨터를 쓰면서 젊은 세대들과 소통은 좀 시도해보셨나요?
블로그 들어가서 댓글도 달고, 서정주 선생 폄하하는 것 때문에 싸움판에도 뛰어들어봤죠. 그래서 그 친일 가지고 설전 벌인 거를 <능라도에서 생긴 일>에 일부 실었어요. 우리나라가 지금 두 쪽으로 갈라져 있어요. 눈에 띄게도 갈라져 있고, 마음속으로는 아주깊게, 좌우로 갈라져 있죠. 1945년 해방부터 지금까지 한 걸음도 앞으로 못 나갔어요.

좌우 말고 ‘신구’에 대해 여쭤봤습니다만….
아, 젊은 세대들은 또 요게 조금 달라. 내가보기에 이 양반들은 만화 보고 비디오 보고 자라고, 민주화 항쟁이니 광주니 부당한 사태를 실감한 적이 없어서, 분노를 해도 금방 식어버리는 거예요. 어떤 면에서는 편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는데, 뭐냐 하면 벽이 없는 거야. 자기가 싸워서 밀고 나가야 할 벽이 없으니까 공중에 부유하고 있어. 우리 때는 독재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치열했어요. <초식>이 나한테는 그런 작품이었죠. 그래서 요새 애들 보면 뭔가 묘하게 뻥하고 멍청해요. 영화 얘기도 곧잘 하고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상식도 많은데, 정작 자기이야기를 주장한다든지 논리를 끝까지 전개한다든지 이런 게 없어요. 축구에나 홀려서 아우성이지. 외국인들이 그걸 보면 얼마나 해괴할까?

<마초를 죽이려고>의 마초도 그 ‘벽’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선생이나 선배의 개념이 거의 없어진 때, “제대로 된 선생이 뭘까? 라고 생각하는 젊은이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란 설정을 했죠.

여름이 훌쩍 지나자 호젓한 가을 바람을 맞기 위해 이제하의 카페 의 문은 열려 있었다. 세월은 이제하의 얼굴을 흰색으로 쓴 무수한 문자가 적힌 종이처럼 만들었다. 변하지 않은 건, 그 앞에 여전히 ‘벽’이 있다는 것뿐이다.
여름이 훌쩍 지나자 호젓한 가을 바람을 맞기 위해 이제하의 카페 <마리안느>의 문은 열려 있었다. 세월은 이제하의 얼굴을 흰색으로 쓴 무수한 문자가 적힌 종이처럼 만들었다. 변하지 않은 건, 그 앞에 여전히 ‘벽’이 있다는 것뿐이다.

당신이 얘기하는 ‘마초’는 ‘본받아야 할 대상’ ‘타파해야 할 대상’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이제는 스승 자체가 없어요. 옛날에는 스승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그랬는데, 이제는 존경하고 귀담아듣고 배울 만한 대상이 없어요. 요새 애들은 영화배우, 스타가 우상 아니에요? 훌륭한 스승을 마음속에 지니고 싶어도 그런 사람이 없는 거야.

하지만 워낙 앞만 보고 가는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어른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분위기도 있어요.
그렇기는 하죠. 근데 어른이라는 게 정치판의 거물들인데, 하루아침에 변절하고 돈 빼돌리고 그러니까, 안 믿는 거야. 집안에서 아버지를 믿느냐 하면, 그건 90년대부터 여성 작가들이 얼마나 할퀴어놨는지 아버지를 개똥으로 알아요. 아버지가 사회적으로 무기력해지기는 했지만, 옛날 아버지는 돈 못 벌어도 아버지였잖아요?

그 말은 좀 의외인데요? 당신이야말로 남성적인 속성의 권력을 비판적으로 봐 왔잖아요?
나는 무서워했어요. 아버지가 외국을 떠돌다 몇 년 만에 와서는 대나무로 만든 개수통에 나를 처박은 일이 있어요. 그게 기억에서 안 지워져서 아버지랑 밥 먹을 때는 거의 눈감고 먹었죠. 그건 공포였지 개똥도 아니라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굉장히 큰 벽이었어요.

당신이 문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자신을 응시했을 때, 아버지와의 관계가 당신의 삶에서 가장 주요한 문제로 떠올랐나요?
그렇죠. 문학을 하게 된 동기였을 거예요. 아버지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외톨이로 책을 읽게 했고, 뭘 끼적거리는 버릇을 길러줬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문학으로 가게 됐죠.

1990년 여름호 <작가세계>에서 읽었는데, 그때 이미 <마초를 죽이려고>를 언급하셨더라고요? 그때부터 구상하고 계셨으면 꽤 오래됐잖아요.
그때는 막연하게 일생동안 선생을 찾아 헤매는 남자의 얘기가 떠올랐어요. 그때부터, 본받을 만한 존재에 대한이미지가 머릿속에 있었죠. 연재할 때까지만 해도 제목이 ‘선생님’이었는데, 출판사쪽에서 심심하기 짝이 없고,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을 제목이라는 거야.

좀 더 도발적이어야 한다는 거죠?
응. 요새 애들이 선생님을 개똥으로 아는데 선생님이라고 했다가는 아무도 책 안 살거라고, 자꾸 고치자고 두번 세번 전화와서 이리저리 생각하다 보니 마초가 나온 거예요.

‘마초를 죽이려고’라는 제목이 괜찮다고 생각하는게, ‘죽이려고’가 굉장히 애매한 서술 같거든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마초에 대한 태도를 세련되게 드러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 원수를 만나면 원수를 죽이고 아비를 만나면 아비를 죽이고, 불교경전에 그거 있잖아요. 그걸 끌어들여 쓴 거지.

<금각사>의 주제의식도 그 구절에 담겼죠?
그것도 일종의 그런 거지 뭐. 탐미. 미를 좇다가 태워 없애는 것이야말로 극복하고 소유하는 거라고 믿는 거.

당신 작품 중에도 ‘예술가 소설’이 많았잖아요.
그건 내가 익숙한 소재가 화가들이니까 그런 거지 별다른 뜻은 없어요. 김윤식이라는 원로 평론가가 트레이드마크로 그런 수식을 붙였는데 외국에는 그런 장르 없어. 그냥 소설이지. 소재나 주인공이 음악가고 미술가고 그런 거지. 킬러가 주인공이면 킬러 소설이라 그러나? 아니지.

당신이 만드는 갈등 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기본적으로 예술은 여성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있으신 듯해요.
그럴지도 모르죠. 여성들이 섬세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니까. 좋은 그림을 알아보는 것도 여성들이고, 예쁜 그릇 보면 막 죽고 못 살며 어루만지고.

그게 아니라…, 나비와 꽃이 어우러진 자연 말고 곤죽이 된 늪처럼 더러운 그 ‘자연’있잖아요. 여성을 후자의 자연으로 바라보고 예술도 그쪽이라는 관점이 있다고요.
예술 하겠다고 자기 세계를 움켜쥔 사람들은 늘 찌든 채로 잘 정돈된 세속과의 긴장관계를 만들어내요. 예술은 결국 예술가가 세상을 어떻게 견디느냐는 문제인 거예요.

당신의 소설을 두고 잘 읽히지 않는다는 점과 이미지의 지나친 비약에 대한 지적이 줄곧 있어 왔죠.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리얼리즘 경향이라는 게 물을 그렇게 들여놓은 거예요. 이상 이후에, 가령 모더니즘의 재미난 시라든지 그 이상한 소설들이 쭉 이어져 왔으면 안 그랬을 거예요. 리얼리즘이라는게 가시적인 사회 현상만 가지고 결말이 나오잖아요? 인과관계가 뚜렷해요. 우리가 상식적으로 다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죠. 내 소설이 어렵다는 건 논리적인 인과관계가 아니라, 샤머니즘과 초현실주의에 호소하기 때문이에요. 회화의 표현주의나 초현실주의를 언어로 바꿔서 소설 속에 넣는 거예요. 영화 장면을 그대로 묘사한다고 재현되는 게 아니거든요. 문학적인 언어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고, 독자들도 이미지로서 연상하고 받아들여야 해요. 하성란 같은 작가가 그런 걸 참 잘해요. 언어 몇 줄로 영상이 잘살아나요. 등단작인 <풀>도 사람들이 보기엔 되게 재미없어요. 그 전봇대 밑에 풀 하나로 접사를 하는 건데, 말초신경적인 독자들이 답답해서 그걸 어떻게 읽고 있겠어요.

선생님은 그런 비판들을 받아들이고, 곁눈질은 좀 안 해보셨나요?
딱히 그런 적은 없어요. 하도 리얼리즘 타령하고 으스대는 게 꼴 보기 싫어서 본때를 보여준다고 그렇게 써보긴 했어요. 이상문학상 탔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가 그렇게 쓴 작품이에요.

그러고 보니 꿈 묘사도 적고, 샤머니즘에 기댄 장면은 마지막뿐이네요.
그것도 뭔 소린지 모르겠단 사람이 많았는데, 요새는 영화나 텔레비전 이미지들이 범람하니까 많이 이해해요. 그런데도 어려운 게 박상륭이 소설이야. 공부를 안 하면 안 되는 소설이니까.

소장은 하고 있습니다만, 무슨 내용이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습니다.
나도 두 장 읽고 내려놨는데 뭘. 요설에 가까운 건데 박상륭 특유의 해박한 지식으로 고전과 철학 같은 자원을 동원하고 그걸 또 뒤틀어서 전라도 사투리로 고치니까, 정말 이럴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읽기가 힘들어요.

당신 역시 당대의 흐름을 앞서온 작가였잖아요. 일면 그를 이해하시죠?
당대의 흐름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이어져온 건 리얼리즘 하나밖에 없어요. 내가 환상적 리얼리즘이라고 불렀을 때도 평론가들은 그 말을 몰랐다고. 그러다가 마르케스 나오고,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그러니까 이해하기 시작한 거야. 우리나라처럼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데가 또 없어요. 이제는 아예 작품을 진득하게 읽어보려는 애들도 없잖아요. 영화 보고 사진 찍고 무슨 패션만 신경 쓰고. 요즘 젊은 여성 작가들 책 봐. 자기 사진을 두개 세 개 넣어요. 들어가도 뒷표지나 안표지에 단아하게 얼굴만 알린다는 식으로 들어가야지, 폼 잡고 분칠해 가지고 그걸 대문짝만 하게 내보내고, 진짜 완전히 촌스러워.

다른 자리에서 지나가는 말로, 좀 늦게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하셨죠?
새로운 걸 하려는 사람은 늘 외톨이예요. 새로운 걸 하면 언제든지 그 시대와 동떨어져요. 안 그러면 새로운 것도 아니고요. 이상도 박수근도 그랬고, 세잔도 죽을 무렵에나 인정받았죠. 제대로 앞서가려면 고립되고 고독할 수밖에 없어요. 예술가의 운명이에요.

<마초를 죽이려고>에 당신이 쓴 후기처럼 상대적인 의미망이 끊긴 자유로운 세계는 두려운 것이죠. 하지만 동경이기도 해요. 상대적인 의미망에서 벗어난 자유, 예술이라고 치환해도 좋겠어요. ‘아티스트’란 직업을 꿈꾸는 젊은 친구들이 많은데, 대개 동경뿐인 것 같아서요.
인내심이 없어요. 신춘문예도 직명 때문에 덤비는 거예요. 재수 좋아서 당선되면 좋겠다 하는 거죠. 옛날에 우리는 문학 때문에 목숨을 버릴 수도 있었어요. 그 정도로 치열한 집념이 있었죠. 요새 애들한테는 문학도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운이에요. 운 좋게 당선되면 소설 쓰고, 안 되면 그만이고. 그 태도부터가 문학하고 멀죠.

당신은 그 친구들도 새로운 독자로 보나요?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전달에 좀 더 신경 써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독자들 수준이 밑도는 건 어쩔 수 없어요. 되도록 쉬운 말을 골라 쓰고, 스토리도 연결시켜 주려고 애써요. 이번에 <마초를 죽이려고>만 해도 기승전결이 뚜렷하잖아요. 축구 하나에 2백만이 몰리고, 피카소 전에 사람이 그렇게 가고, 그런 게 대단한가요? 완전히 말초신경만 남았어요. 문학이라고 하면 고은이 노벨상 타나 어쩌나 밖에 관심 없죠. 죽어라 책 안 읽어요. 일본은 파출부나 식모, 그 뭐라고 하죠? 이제 식모는 비하하는 말이라고 쓰면 뭐라 그러잖아.

가사 도우미라고 하죠.
예. 그런 사람들도 나쓰메 소세키는 읽어 봤다고요.

젊은 친구들에게 오늘 당신이 한 말들이 어떻게 들릴지 궁금하네요. 사실 짐작은 조금 가지만요. 이런 질문을 마지막으로 해보죠. 당신의 아버지보다 긴 시간을 사셨어요. 이제는 아버지란 존재가 벽이 아닌가요?
이젠 벽이 아니죠. 본능 깊이 잠복해 있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은 있는데, 아버지가 아니라 정치나 독선적인 단체, 패거리 같은 권위적인 문화가 대상이에요. 나는 문학 단체를 싫어해서 전연 소속을 안 해요. 좋은 일도 하고, 좋은 책도 내는데, 여러 사람이 모이면 자연히 그 안에서 권위의식이 생겨요. 벽은 그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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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에디터] 책, 음반, IT를 담당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