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혁의 마지막 웃음

추노꾼 이대길은 걸핏하면 눈을 부라렸다. 산천초목은 의연한데, 그 자신 참을 수 없이 쿵쾅거렸다. 7 개월 후, 장혁과 마주했다. 늦은 저녁이었고 조용했다.

“남자 배우는, 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얼굴로 전달하는 표현이 담백해질수 있거든요. 배우는 언제나 그 각을 유지해야 해요. 식스팩보다는 각이 중요하죠.”
“남자 배우는, 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얼굴로 전달하는 표현이 담백해질수 있거든요. 배우는 언제나 그 각을 유지해야 해요. 식스팩보다는 각이 중요하죠.”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의 것, 슬림 팬츠 발렌시아가 at 무이, 팬던트 목걸이 엠포리오 아르마니 by 파슬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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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칼을 줬다. 돌아볼 새 없이 하루하루 달리던 추노꾼 이대길에겐 꽤나 익숙한 물건. 그 칼로 사과를 깎았다. 첫 번째 사과는 껍질이 두껍게 깎였다. 이건 두 번째 사과다. 장혁의 손은 생각보다 뭉툭했고, 사과 껍질은 뱅글뱅글 돌더니 툭 떨어졌다.턱시도 수트, 셔츠, 보타이는 모두 톰 포드, 손목시계는 부쉐론
그에게 칼을 줬다. 돌아볼 새 없이 하루하루 달리던 추노꾼 이대길에겐 꽤나 익숙한 물건. 그 칼로 사과를 깎았다. 첫 번째 사과는 껍질이 두껍게 깎였다. 이건 두 번째 사과다. 장혁의 손은 생각보다 뭉툭했고, 사과 껍질은 뱅글뱅글 돌더니 툭 떨어졌다.
턱시도 수트, 셔츠, 보타이는 모두 톰 포드, 손목시계는 부쉐론

[추노]는 근사했다. 그리고 징글징글했다. 모두 당신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 <추노>라는 드라마부터 반성하는 게 있나?
반성, 안 한다. 반성할 게 없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작품이든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겠지만 보완하거나 그러진 않는다. 그냥, 그건, 그 작품에서, 중요했던 것이다. 그건 그냥 그 상황에서 끝났다고 생각한다.

[추노]를 하고 나서 당신은 어떻게 되었나? 그것이 좋은 작품이었다면 당신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나?
좀 텁텁한 느낌이 있다. 음, 끝나고 나서 제일 좋았던 작품은 사실 <불한당>이었다. 시청률은 7퍼센트였지만, ‘그냥 다 마음대로 해 버리자’고 해서 그런지, 아직까지 뜨거움이 남아 있다. 그런데 <추노>의 텁텁함이라는 건, 이대길이라는 캐릭터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마초적인 남자. 그래서 다음 작품을 위한 영점 조절이 쉽지 않다. 이미지가 곧장 배우에 대한 기대치가 되는 걸 싫어한다. 만약 다음 작품에서 생각대로 조절되지 않는다면 그게 내 한계일 것이지만….

[추노]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건대, 하필 당신이 벼슬아치 아래 엎드려 조아린 모습이 생각났다. 그 장면은 당신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도, 표정도, 그 유명한 식스팩도. 그런데도 뭔가 본 것 같다면, 그게 혹시 진심인 걸까?
이대길은 하루살이 같은 캐릭터다. 날마다 뜨는 해가 다르지 않다. 오늘도 떴네, 내일도 또 뜨겠지. 그 다음날이면, 오늘도 또 떴네. 하루하루가 다른, 변화하는 사람이 아니라 똑같은 인생을 계속 산다. 엎드렸던 그 장면에서 뭔가를 느꼈다면 글쎄, 어떤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정도로만 말하고 싶다.

이대길은 ‘눈’으로 표현하곤 했다. 그 눈은 어떻게 시작됐나?
일부러 어떻게 만든 건 아니었다. 눈 연기를 하는 배우 중에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양조위인데, <색.계>라는 영화에서 딱 한 번 변화를 준다. 살려고 도망칠 때 딱 한 번, 묘하게 메말라있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그건 눈빛이라기보다 사실은 의지인 것 같다. 눈빛에 대한 테크닉으로서의 연기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 제일 좋은 건 경험이 아닐까? 내 마음에 어떤 의지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쳐다볼 수 있는 거라고 본다.

대범한가? 대범할 땐.

어떨 때 소심한가?
딱 중간인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말이 ‘밸런스’인데, 미지근한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차가울 때고 있고, 정말 뜨거울 때도 있고, 그러니까 지금 대범하다고 말하지 못하고 대범할 땐 대범하다고 말하는 거다. 소심한 것도 마찬가지다.

때를 아는 건가? 글쎄,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오차가 좀 있다.

배우가 화면을 책임지는 건 당연하지만, 당신은 그중 너무 빽빽해 보이기도 한다. 당신은 영점조절을 원한다지만, 그러기엔 오히려 빈틈이 아쉽달까?
‘내’가 들어가 있지 않은 표현을 트렌드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무조건 따르는 게 아니라 자기와 밸런스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음, 절권도를 하고 있는데, 그게 무술과 스포츠를 총집합 시킨 거다. 그러니까 형태의 무술이 아니라, 피지컬한 무술이다. 그냥 상황에 맞추는 거다. 기본적인 자세는 있지만 하나의 공식일 뿐이다. 그 상황에서 이기면 된다.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당신이 유부남이라는 것은 뭐랄까, 뭔가 좀 완충시켜 주는 것도 같다. 이렇게 뜨겁고 꽉찬 배우가 ‘ 청춘’이기까지 하다면, 꽤나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물론 “품절남이니 어떡해요”하는 공치사도 있지만.
결혼했지만, 그건 그냥 사적으로 결혼한 거다. 배우로서는 기혼이나 미혼이나 상관없는 장점을 만들어 보고 싶다.

하하, 그러니까 총각행세까지 하겠다는 말인가?
하하, 예전엔, 사십대 배우들이 고등학생 연기를 했다. 그래도 된다는 사회적인 암묵의 약속을 한 거다. 그런데 지금은 감정도 정확하게 현실에 의거해서 만들어 보여줘야 되고, 굉장히 구체화되었다. 할리우드는 배우가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배우로서의 느낌이 그렇게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저 배우가 매력이 있으면 그냥 매력이 있는 거다. 그런 게 좋지 않나?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보고 싶다. 짐승남이니 품절남이니 하나의 수식어로만 그 사람을 한정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끊임없이 당신이 작품으로 증명해야 하는 일 아닐까? 혼자만으로는 안 될 일이다.

어느새 당신에게 ‘연기파’라는 말이 종종 붙는다. 말은 다 말일 뿐이고, 그게 덫이 되는 순간만 조심하면 될 것이지만, 당신을 그 틀에 넣자니 왠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당신이 미남 배우라서다.
솔직히 얘기하면, 잘 생긴 편인 것 같다. 잘 생겼는데 한계가 있는 얼굴인 것 같다. 그래서 그 한계를 지우려고 노력한다. 배우 얼굴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 정해진 틀이 있는 얼굴, 그래서 뭔가 얼굴에 장난치기도 한다. 칼자국을 낸다든가 하는 식으로. 멍든 분장도 참 많이 했다. 이상하게도 굉장히 서민 역할이 많았다. 지금까지 작품에서 살아온 집이 방 한 칸을 넘긴 적은 없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정말 잘 살아도 어쨌든 망했다. 그런데 얼굴에도 트렌드가 있다고 본다. 미남형이라는 것도 80년대 다르고, 90년대 다르다. 배우의 느낌에 따라 얼굴이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미남을 표현해야 되는 장면에서 그걸 보여 줄 수 있으면 된다.

배우가 되고 싶냐 스타가 되고 싶냐? 라는 질문이 있으면, 하룻강아지부터 범까지 모두 배우를 택하곤 한다. 글쎄, 스타라는 가치가 하필 이렇게 저질인가 싶기도 하다.
나는 둘 다 되고 싶다. 스타성이 있어야 자기 무대가 만들어 질 수 있고, 그런 인프라가 있어야 방향을 넓힐 수 있다. 사업하는데, 돈은 한 푼도 없이 아이디어만 가지고 갈 수는 없다. 글쎄, 지금 나는 그래도 작품을 받을 수는 있는 정도인 것 같다. 내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정도. 예전엔 되게
고지식했다. 배우가 연기만 잘 하면 된다고. 시간이 지나면서 오픈된 게 많다. 옷이며 머리며 어떤 스타일도 그렇고.

부끄러운 게 있나? 모르겠다. 굉장히 많은 게 있는 거 같은데, 구체적으로는….

당신이 모르는 당신은 ‘부끄러워하는 장혁’인가?
이게 재밌는 게, 왜 네 명의 ‘나’가 있다고 그러지 않나? 나는 아는데 남은 모르는 나, 나는 모르는데 남들은 아는 나, 나도 모르고 남들도 모르는 나, 나도 알고 남도 아는 나.

갑자기 말을 빨리 하고 그러나?
음, 부끄럽다는 건, 나는 아는데 남들이 모르는 나를, 남이 알았을 때가 아닐까? 구체적으로 얘기하기가 쉽진 않다.

배우로서는 어떤가?
배우는 말을 해서 살아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전달자니까. 이를테면 굉장히 파렴치한 역할을 맡았다고 치자. 그건 내가 아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해야 되고 그 감정을 느껴야 된다. 그때 배우가 부끄러워하면 힘들 것 같다 어렸을 때, 말도 안 되는 훈련 중 하나가, 어디 란제리 가게에 들어가서 웃고 있어라 그런 거였다.

그게 뭔가?
학교 때 선배들이 시키는 거다. 전철에 들어가서 “나는 람보다!” 하고 나가라고도 한다. 장난일 수도 있지만 연극영화과 학생에겐 말이 된다. 여기서도 못하는데 무대에선 어떻게 할 거냐는 식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일어나야 할 일이 있다면? 작품이다. 아직까지는 ‘드강영약’인데.

무슨 말인가? 드라마는 강하고 영화는….

그러게, 영화는 좀.
빨리 ‘드강영강’이 되어야 할 텐데. 일단 무대는 넓으면 좋다고 본다. 여기 안에서만 움직일 거야, 이런 생각은 없다. 홍콩배우들이 사실 부럽기도 하다. 왜냐면은 브루스 리란 사람이 그걸 만들어 버렸으니까. 절권도를 해서 그 사람을 멋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아시아 배우로서 뭔가 확장시켰다는 점이다.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이병헌 선배가, 또 비가 한 일, 정말 잘 한 거라고 생각한다. 퀄리티가 있느냐 없느냐 문제 이전에, 앞으로 내가 노력해서 갈 수도 있는 거고, 내 친구나 후배가 갈 수도 있는 거고, 훨씬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얼른 새 작품 하고 싶다.

식스팩이 수호천사처럼 항상 당신과 함께하려나?
음, 잘난 체로 들릴 거 같은데, 운동 시작하고 식스팩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운동을 항상 했다는 소리다. 저번에 어디선가 ‘장혁에게 식스팩이란?’ 묻길래, 활력이라고 대답했다. 식스팩이 활력인 게 아니라 운동을 하면서 땀을 흘리는 것이 활력이다. 오늘 좀, 뭔가 채워졌다 그런 느낌.

혹시 식스팩을 지워야 하는 작품도 할 건가?
남자배우에게 식스팩보다 중요한 건 얼굴에 각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뭔가 담백하게 전달할 수 있다.

하는 일 잘해서 인정받고, 단란한 가정이 있고, 얼굴에 예민한 각마저 살아있으니, 남자로서 부럽다면 타당한가?
글쎄, 예전에 동호대교를 건너면서 보던 아파트 풍경이 생각난다. 가족이 이렇게 모여서 텔레비전을 보든, 뭘 먹든 하는 그런 거실이 너무 부러워 보였다. 이제 그게 나한테 있다. 이 인터뷰 마치면 거기로 간다.

 

턱시도 수트, 셔츠, 보타이는 모두 톰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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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디렉터] 곧 두 번째 책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