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들의 캣워크

쇼가 시작됐다. 지금부터,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다.

매달 화보 촬영을 할 때마다, 가장 큰 고민은 모델이다. 모델 때문에 원망이 생기고 울화가 솟고 혈압이 오른다. 매번 같은 문제니까 해결이 쉬울 듯해도, 그게 또 매번 어떻게 안된다. 화보 촬영 전엔 미리 준비 해야 하는 크고 작은 일들이 있다. 비슷해 보여도 정확한 순서가 있고 일의 경중이 나뉜다. 목수가 식탁 하나를 만들 때도 나무를 고르고 설계도를 그리고 쓸 도구를 마련해두듯이, <지큐>에 실린 사진 중 어느 것 하나도 생각 없이 후딱 찍고 마는 건 없다. 모델은 패션 화보의 주재료이고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하는 부문이다. 거문고로 치면 나무, 와인으로 치면 포도다. 토양이 비옥한 곳에서 햇볕 잘 받고 자란 건강한 재료가 훌륭한 음식과 악기를 만들 듯이, 좋은 모델이 입어야 좋은 옷도 태가 난다.

<지큐> 패션의 기본은 건전함과 단정함을 전제로 하지만, 그렇다고 매번 뒷마당에서 아침저녁으로 책만 읽은 것 같은 파리한 남자를 통해 트위드 재킷이나 데저트 부츠를 소개하려는 건 아니다. 술 먹고 길바닥에 넘어지기도 하고 여자를 꼬시느라 머리에 이제 막 뭘 바르는 중이거나, 어떤 컷에선 일견 방탕하고 색정적으로 보이더라도 이면의 전제는 ‘건강한’ 남자다. 보여주고자 하는 건 깊게는 ‘스피릿’이지만 화보의 물성이 ‘비주얼’이다 보니 아무래도 몸이 먼저다. 그런데 몸이 건강한 모델이 없다. 아직 덜 자란 육체거나 의도적으로 발육을 멈춘 것 같은 괴상한 형태가 언제부턴가 이상적인 모델의 몸이 된 탓이다. 어쩌다 가끔 살과 근육이 적당하게 혼합된 정상적인 몸을 지닌 모델도 만나지만, 얼마 후엔 똑같아진다. 이 정도면 거의 바이러스 수준이다. 촬영장에 차려둔 점심 테이블에서 김밥 두 개를 달랑 먹고 기신기신 겨우 균형을 잡는 모델에게 집요한 감량의 이유를 물었다. 대답은 맞받아치듯 바로 나왔다. “쇼 해야죠. 지난 번 오디션 때 어깨랑 가슴이 크다고 떨어졌어요. 굶는 수밖에 없어요.” 쇼라고? 그럴 줄 알았다.

쇼가 시작되고, 근본을 알 수 없는 음악과 함께 첫 번째 모델이 나온다. 얼굴이 퀭한 건 봤어도 퀭하다는 형용사가 맞춘 듯 맞는 몸이라니. 더블 재킷을 입었는데 철사에 재킷을 걸어둔 형상이다. 철사가 덜그럭덜그럭 ‘워킹’을 한다. 다음 모델이 나온다. 주머니에 가죽을 덧댄 청바지를 입었다. 골반 아래 마땅히 있어야 할 엉덩이가 없다. 바지 안에 든 건 분명히 공기뿐이란 깊고도 진한 확신이 든다. 공기가 절룩 절룩 굳이 한 바퀴 돌고 들어간다. 이쯤 되면 쇼고 뭐고 온데 간데없이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뮤직비디오만 생각난다. 스릴러보다는 역시 빌리 진인가 하는 사이에 쇼가 끝난다. 딴 생각이 반이었어도 어쨌든 구슬픈 서커스를 한바탕 보고 난 기분인데, 눈치 없는 디자이너가 나와서 손을 흔들고 팽그르르 돌아 벽 너머로 들어간다.

몇몇 쇼를 제외하곤, 서울에서 패션쇼를 볼 땐 늘 비슷하다. 아름답다고 느낀 적, 별로 없다. 남자 몸의 기준이, 한국 남자 모델의 수준이 어쩌다 저 지경이 됐나 한숨이 난다. 이십 대 남자의 몸이 그 정도로 마르려면 학대 수준의 감량을 했을 테고, 그 과정을 생각하면 가끔 혐오스럽다. 모델들 이 기를 쓰고 살을 빼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지금 서울에서 일하는 남자 모델 중에서 잡지나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 수는 극히 제한적이다. 나머지는 일 년에 단 두 번, 서울 컬렉션 말고는 모델로 일할 마땅한 무대가 없다. 그런데 그 쇼의 주인일 디자이너들이 늘 하는 말이 “살 좀 더 빼”일진대 다른 방도가 없다. 죽기살기로 빼는 수밖에.

유난히 마른 모델만 쇼에 세우는 디자이너에게 이유를 물었다. “패션의 트렌드가 중성적이고 연약 한 거잖아요. 옷도 딱딱한 거 말고 스무스하게 몸에 감기고 그런 게 좋지. 떡대 있는 애들은 그런 옷을 소화를 못해요.” 그러고는 덧붙인다. “185에 58키로 정도면 딱 좋지.” 그 키에 그 몸무게면 그건 살아 있는 시체다. 게다가 중성적이고 연약한 게 언제적 유행인데 아직도 그걸 철썩같이 믿고 따르는지. 너벌너벌한 저지 티셔츠와 바지 엉덩이에 모래를 부은 것 같은 할렘 팬츠, 입고 꿰맨 것 같은 청바지만 만드는 디자이너는 모델의 기본을 운운한다. “모델의 트렌드가 디올 옴므 이후로 바뀌었잖아요. 스모키하면서도 그런지한 패션을 소화하려면 쫙 말라줘야죠.” 몇몇 디자이너가 그 옛날 금송아지 타령하듯 아직까지 에디 슬리먼의 영광을 못 잊는 건 별 수 없다 쳐도, 문제는 왜 다른 유형의 모델을 찾는 디자이너가 없는가 하는 점이다. 디올 옴므 가 있으면 마이클 바스티안도 있고 킴 존스도 있고 요지 야마모토도 있어야 한다. 마른 몸과 근육질, 굵은 허벅지와 짧은 종아리, 빡빡머리와 긴 머리 모두 설 무대가 필요하다.

쇼에 등장하는 모델이야말로 분명한 디자이너의 색깔이다. 파리에선 루이 비통과 앤 드뮐미스터 쇼에 나오는 모델이 겹치지 않는다. 밀라노에선 돌체 앤 가바나 쇼의 모델과 구찌 쇼 모델이 다르다. 뉴욕에 선 스콧 스탠버그가 찾는 모델과 필립 림이 원하는 모델이 정확하게 구분된다. 하지만 서울은 다르다. 대체로 수수깡 같은 모델만 모두들 찾고 원한다. 더 큰 문제는 매스컴에서 만든 모델의 전형이다. 볼 살을 삽으로 떼어낸 것 같은 얼굴의 남자가 몸인지 나뭇가지인지 모를 뭔가를 흔들며 어딘가에 전화를 한다. 손톱에는 검정 매니큐어, 눈에는 시커먼 아이라인, 헤어스타일은 영락없이 어디서 따귀 한 대 맞고 온 형국이다. 분명 허기져 보이는데도 밥은 안 먹고 종일 헤롱대는데, 하는 일은 무려 모델이다. 드라마도 영화도 블로그의 인기 스타도 직업이 모델이라면 몽땅 다 이런 식이다. 그 지경이니 모델을 하겠다 결심하면 무조건 굶고 머리부터 기른다. 남자 모델 위주로 캐스팅을 하는 모델 에이전시의 관계자는 다양한 분위기의 모델로 팀을 꾸리고 싶어도 모델 지망생은 모두 똑같은 스타일이라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모델은 디자이너 탓을 하고 에이전시에서는 모델 탓을 하고 디자이너와 방송 관계자는 ‘지금’과 ‘현재’, 그리고 ‘기본’과 ‘상식’에는 관심이 없다. 성인 남자 옷의 기본은 셔츠와 수트다. 이 옷들은 가슴과 등 근육이 탄탄하게 있어야 제 형태가 산다. 어깨라기보다는 옷걸이 같은 윤곽과 팔뚝이라기보다는 삼십 센티미터 플라스틱 자 같은 골격으로는 옷을 소화하기는커녕 제대로 입지도 못한다. 남자 모델이 남자 복식 의 기본을 못 입는다는 것. 일반상식으로도 전문 지식으로도 납득이 안 되는데 디자이너와 방송 관계자, 모델들은 한결같이 어디서 그런 확신을 얻었을까? 공을 굴리는 난쟁이? 종 치는 노틀담 사원의 꼽추? 아니면 혹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염소머리 괴물 사티로스? 그들이 주는 건 비애와 비통, 기이함과 기괴함이 뒤섞인 ‘불편한 우울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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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패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