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의 본능

그가 올 한 해 동안 한 일. 한 가지도, 한 방향도 아니다. 그런데도 모두 최대치의 윤종신이었다.

줄무늬 니트는 하버색 by 샌프란시스코마켓, 재킷은 이스트하버 서플러스 by 샌프란시스코마켓, 우산은 폭스 by 란스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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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웃지 말라고요? 그럼 ‘매의 눈’ 만들까?” 어느 해보다 냉철한 말을 많이 한 그가 얼음을 돌덩이처럼 가만히 들고 카메라를 쳐다봤다.
“아, 웃지 말라고요? 그럼 ‘매의 눈’ 만들까?” 어느 해보다 냉철한 말을 많이 한 그가 얼음을 돌덩이처럼 가만히 들고 카메라를 쳐다봤다.

트위터가 그렇게 재미있나?
시간 날 때 항상 이거 한다. 트위터 처음 시작할 때 내가 그랬다. 이게 수다 떨기 좋은 사람한텐 최고라고. 누가 싫은 소리하면 ‘언팔’ 하면 되고.

한때는 팬 사이트 ‘공존’에 열심히 일기도 썼다. 그땐 웬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나? 취해서 쓴 글이 많았다.
어린데도 굉장히 번뜩이지 않았나? 막연하게 고민이 많았던 때다. 요즘은 술 거의 끊다시피 했다. 술 마셨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들? 그거 술 안 먹어도 잘 생긴다.

누구와의 술자리가 제일 신나나?
요즘 프로그램 같이 하는 신동엽이나 강호동, 같이 음악 하는 밴드들.

술자리에선 요새 당신이 중심이겠다.
누가 “이제 니 시대래” 그러기에 “이러다 말 거야” 그랬다. 우리한테 대중은 친했다가 싸웠다가 하는 친구 같다. 친구라고 항상 좋나? 지금은 사이가 좋다. 그러다가 팽 토라질 거다.

기회는 찬스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올지 모른다.
한 업계에서 20년 있으면서 그동안 여러 가지 예를 봤다. 지금이 좋아도, 오버하지 않는 게 맞다. 이걸 어떻게 이용한다기보다 그냥 이 흐름에 몸을 싣는 정도? “내 생애 이런 순간은 더 없어” 같은 비장미를 갖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의연하게 해야 한다.

의연하게 어떻게?
어디서 ‘혹’하는 제의가 들어와도 그 뒤에 뭐가 있나 한번 의심하는 거다. 확실히 마흔 넘으니, 사람들이 나한테 박수를 쳐주는 상황에 마냥 환호성 지르지 않게 된다. 불과 3~4년 전엔 내가 예능으로 치우쳤다고 등 돌린 대중들을 봤기 때문이다.

대중이 무섭나?
무섭기도 한데, 반대로 생각하면 대중의 반응은 결국 과정일 뿐이다. 예능을 막 시작할 때, 변절했다, 잡스럽다 같은 말도 들었지만, 대중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본다. 내가 그렇게 보였으니까. 내 타이밍이 아니었으니까. 대중에게 나를 설득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사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주도 면밀하게는 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대중들은 어차피 기사나, 언뜻 지나가는 것만 본다. 속마음은 골수팬이나 알까? 나는 양쪽을 모두 인정받기까지 7년이 걸린 거 같다.

당신이 예능과 음악 모두 대중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진 몰랐다.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하는 줄 알았다.
내 마음은 말로 설명되는 게 아니다. 왜 후진 영화들이 그렇지 않나? 마지막에 다 대사로 설명하는 거. 그렇게 말로 내 생각을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대중한테 말하고 싶은 건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 말은 남 웃길 때나 필요한 거다.

말로 누군가를 웃길 때, 상대의 기분을 다치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나? 당신의‘ 깐죽’ 캐릭터는 퍽 절묘하다.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고, 듣는 사람의 기분마다 또 다르다. 순간적으로 그 사람 기분이 나쁠지 안 나쁠지 파악하는 데는 내가 좀 빠르다. 구라 같은 경우는 나보다 더 나쁘게 독설을 날려야 카타르시스가 생기는 편이고. 어찌 보면 예능에서 깐죽 캐릭터는 희생자다. 미운 털 박히면서까지 재미를 끄집어낸다. 배우로 치면 악역이랄까? 난 착한 캐릭터는 재미없어서 잘 못하겠다. 뻔한 건 재미없다. 음악에서도 똑같다. 예를 들어, 내가 쓰는 가사에는 발음상으로 튀는 단어도 많이 넣는다. 지금 먹고 있는 이 누룽지탕, 이런 단어도 그냥 이별 얘기에 써버린다.

가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노래에서 가사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가사가 55퍼센트를 넘어가는 것 같다. 노래에서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쩌면 그 이상이다. 기타나 피아노로 곡을 먼저 쓰는데, 그럼 한 30~40 퍼센트 했다 생각한다.

최신 가요를 들으면 10퍼센트도 안 되는 것 같다. 그나마도 계속 반복이고.
반복도 매력적인 기법인데, 잘 써야 말이지. 2000년대 초반부터 사람들이 가사 속지를 읽지 않기 시작한 것 같다. 이젠 사랑 얘기도 첫 줄에 “미치겠어, 너랑 헤어져서” 같은 게 빨리 나와야 한다. 질이 높고 낮고를 떠나서, 세태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발라드에서 특히 더 그렇다. 가사 속 단어가 격하다고 더 슬플까?
음악적인 색깔은 ‘유니크’한 게 좋지만 가사는 ‘공감’이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게 내 음악 철학 중 하나다. 그리고 전형적인 것을 적절하게 깨는 요령도 중요하다. 이를테면 <이별택시>가 그렇다. 이별 노래에 택시가 나오는 건,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전형성을 깨고 들어가 공감을 찾은 거다. 그런 발상의 전환을 좋아한다. 상식을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깨버리는 것, 그게 모든 대중문화의 법칙이라고 생각한다.

매달 음반을 하나씩 내는 ‘Monthly project’도 그런 의미의 기획인가?
그보단, 음악을 옆에 두고 매달 하자는 뜻으로 시작한 거다. 공감을 얻으려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주위에서 좋게 보지도 않았다. 이게 상업적으로 효율적이지 못하니까. 녹음실도 매달 염가로 계약해야 하고, 모든 일상이 노래의 소재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과 메모도 해야 한다. 작곡의 엄숙주의와 비중함을 중시하는 사람은 아마 못할 거다.

한 달은 어떻게 쪼개서 쓰나?
3주 고민하고 일주일 정도 음악에 투자한다. 월간지 기자 같다. 그래서 내 트위터 자기소개가 ‘<월간 윤종신> 편집장’ 이다. 뭐, 지겨워지면 그만할 거다. 아직까지는 재미있다. 내가 하겠다고 선언한 거니까 한 해는 해야 쪽 팔리진 않을 텐데, 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사실 이 프로젝트와 새 음반 <행보>가 <슈퍼스타K 2>의 덕을 좀 봤다.
시기가 잘 맞았다. 운이 좋았다. 요즘 너무 “윤종신, 오~” 하는데 다 과대 포장이다. 내 노래를 남이 부르는 걸 들으며 예의주시하는 일은 1997년 박정현 앨범 때부터 늘 해왔던 거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 내가 말을 좀 잘하는 편이고. 그런데 심사평이 너무 이슈가 돼서 좀 조심스럽다. 난 존보다 피아노도 못 치고, 허각보다 고음도 안 올라가고, 음악에 전지전능한 사람이 아니다. 이러다 내 라이브 음정이 조금만 불안하면 “지는 뭐 잘하나” 할 것 같다. 근데 그렇게 따지면 축구 해설위원은 다 축구 잘해야 되나?

<슈퍼스타K 2>에서 당신은, 축구 해설위원인데 해설도 잘하고 축구도 잘하면서 중계 카메라 촬영까지 잘하는 사람 같았다.
<슈퍼스타K 2>가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음악과 방송이 뒤섞인 프로그램. 그러니까 난 본능적으로 PD들이 뭘 하는지까지 보이더라. 방송 흐름을 아니까, 재인이 노래 심사평할 때 “좋은 가수가 될 것 같습니다”라고 짧게 끝내기도 했고, 은비가 움직이는 카메라를 바라보는 것들까지도 눈에 보였다.

당신과 강승윤의 반전 드라마는 내심 전략이 있진 않았나?
아니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승윤이 처음 뽑을 때 이놈 정말 장난 아니겠구나 했는데, 갈수록 좀 잘못 봤나 싶더라. 그런데 또 막판에 심사위원들이 멘토를 해줄 기회가 있어서 그 녀석에게 ‘본능적으로’를 주면 뭔가 터질 것 같았다. 물론 이게 망했으면 또 다 내 책임이었겠지.

<슈퍼스타K 2>가 흥행하는 요즘 시대에 데뷔해야 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슈퍼스타K>엔 출연 안 했을 것 같다. 연줄 통해서 기획사 들어갔겠지.

발라드를 불렀을까?
그렇다. 유희열이가 어디서 한번 말한 것처럼, 지금 우리 음악계에는 ‘어덜트 컨템포러리’ 시장이 있어야 한다. 듣기 편안한 음악, 인생 살아가는 이야기, 그런 게 다 어덜트 컨템포러리다. 누가 나에게 “음악이 왜 그렇게 진부한가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진부라는 것이 각도를 넓히면 익숙하다는 거고, 또다시 생각하면 편안한 음악이라는 뜻이다. 요즘 사람들 리모델링이나 건물 새로 짓는 거 좋아하지 않나? 뭐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해하는데, 새롭고 혁신적인 음악을 만들 사람이 나는 아닌 것 같다. 나는 발라드 장인이 되고 싶다.

그 틀 안에서도 변화하는 게 있지 않나?
요즘 통기타 음악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심플 미학’에 빠져 있다. 이번에 곡 작업하고 있는 것도 통기타 하나에 멜로디 하나 넣었더니 가수 쪽에서 ‘오케이’가 됐다.

만약 아이돌을 키운다면 어떨까?
사실 아이돌은 내 전공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난 합숙 반대주의자다. 오랫동안 연습생을 했는데 어떻게 보편적인 아이들의 정서를 대변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인터뷰할 때 적어도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야 한다.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학교 다니고, 똑같이 수능 보고, 그래서 기왕이면 가사도 자기가 쓰고. 지금 아이돌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내가 바라는 가수가 그렇다는 거다. 마이클 잭슨이 ‘Heal the World’를 부를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마이클 잭슨이 어렸을 때부터 연예인 생활 했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의 상처와 삶을 과연 알까?”

그런 의미에서,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연애담이 없는 유부남이라는 건?
지금은 작가로 돌아서는 것 같다. 그걸 상상하고 써내려 간다. 처음엔 힘들었는데, 이제 자리 잡았다. 모드 변환이 되더라.

밑천은 두둑한가?
그런데 어차피 음악을 통해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계속할 거다. 매해 느끼는 게 다 다를 테니, 이야기가 달릴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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