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을 마치며 별의별 것에 다 참견했다 – 1

2010년을 마치며, 있는 대로 오지랖을 넓혀 별의별 것에 다 참견했다. 시종일관 바른 말만 하려다가, 그렇지않아도 지루한 판인지라 유머도 섞었다. 여기에 없는 열한 명의 남자 이름은 약 일백 페이지를 넘긴 후, MEN OF THE YEA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올해의 영화 홍상수의 <하하하>
대체로 홍상수는 봄여름에 좀 더 유쾌한 영화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하하하>는 대번 ‘쾌’자를 떠올리는데, 전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구경남(김태우)이 설파하던 ‘짝’을 향한 행진곡은 비로소 어떤 완성을 이룬다. 홍상수 영화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위해 노력이라는 걸 하는 건 거의 처음인데, 심지어 방중식(유준상)은 안연주(예지원)를 위해 백부에게 관계를 인정해달라고 무릎 꿇는 행동을 (꿈에서가 아니라) 진짜로, 한다. 시종일관 극장을 웃음소리로 채우는 유머는 자조부터 포복절도까지 인절미 주무르듯 이어지고, 언제나 그렇듯, ‘홍상수의’ 배우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기념하지 않는 2010년 영화상은(상이 무슨 대수냐지만) 모조리 가짜다.

올해의 여우주연 <하하하>의 문소리
“문소리 고향 어딘지 아세요?” <하하하>의 시사회가 끝난 뒤, 참을 수 없게 된 기자들이 화장실 찾듯 다급히 물었다. 그녀의 고향이 부산이고 열 살까지 살았다는 걸 아는 지금도 그녀의 연기가 어떻느냐 하면, 신기하다. 사투리를 감추려는 여자의 다채로운 ‘사운드 스케이프’가 영화를 뚫고 나오다시피 한다. 극 중 문소리가 연기한 문화관광해설가 왕성옥은 올해 여자 캐릭터의 극점이기도 했다. 임상수를 이겨낸 발칙한 전도연과 별의별 연기를 다하며 고군분투하는 고현정이 있지만, 문소리가 한 건 ‘이외의’ 것이라 비교가 어렵다. 세병관에서 해설을 마친 왕성옥이 남들 문으로 나갈 때 혼자 벽으로 가는 것부터 다르다.

올해의 남우조연 <방자전>의 송새벽
<방자전>의 송새벽은 다른 공기를 마시는 배우 같았다. <부당거래>에 그가 나올 때 객석에선 “어머, 저 사람 송새벽이야!”했고, ‘오늘의 미친 짓’을 광고할 땐 “저 사람 송새벽이야?” 그랬다. 모두가 기억하지만 아무나 알아볼 순 없는 얼굴. 내년엔 주연작이 개봉한다.

올해의 여우조연<인생은 아름다워>의 김용림
김용림이 모슬포 송악산 언덕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할 때, 배는 비로소 닻을 내린 듯했다. 그러고는 줄곧 위엄과 자비로 어른의 자리를 지켰다. 최정훈과 제주 방언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연기는 단순히 경력으로 치는 리듬이 아니었다. 거역할 수 없는 삶, 1986년 <사랑과 야망>에서 태수 엄마 하던 때의 박력은 한 올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였다. 그걸 보며, 좋은 배우의 좋은 연기란 저런 게 아닐까, 마음을 쓸었던 적이 몇 번이던가.

올해의 연기 <지붕뚫고 하이킥> <구미호 여우누이뎐>의 서신애
서신애는 <지붕뚫고 하이킥>으로 기억될까? <구미호 여우누이뎐>까지 봤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영특하고 순한 역할에서 두 눈에 새빨간 쌍심지를 켠 독살 맞은 역할까지. 서신애는 한 해에 그 ‘대단한’ 연기를 다 보여주었다. 그러니 어쩌나. 이제 누구도 서신애에게 그저 애처럼 굴라고 요구하는 건 무례한 짓이다.

올해의 배우 <시>의 윤정희
윤정희는 배우의 미덕이 꼭 ‘열연’에 있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줬다. 50년 넘게 지켜온 ‘순수’ 이미지가 없었다면, <시>의 결말이 그만큼 극적이고 아팠을는지 장담할 수 없다. 스스로 믿는 걸 오래 지킨다는 것. 어떤 요란스런 재능도 그것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올해의 데뷔 미스에이
체조부 같기도 하고, 무용단 같기도 하고. 다섯 소녀는 ‘Bad girl good girl’을 부르기 전에 다리부터 찢었다. 무대에선 가끔 예쁜 표정을 짓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무대에 몸을 던졌다. 엎드리고 구르고, 다시 또 찢었다. 남들은 쓰지 않는 허벅지 안쪽 근육, 가슴과 쇄골 사이 근육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예뻐 보이려고 애쓴다거나, 섹시해 보이려고 몸을 배배 꼬지 않아 더 아름다웠다. 이어 나온 ‘Breathe’에선 표정마저 지웠다. 물구나무설 땐 비장하기까지 했다. ‘여전사’니, ‘보이시’니 하는 건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온전히 여자인 채로 무대를 박살내는 건 본 적이 없다.

올해의 무대 샤이니 ‘헬로’ 10월 30일 MBC <음악중심>,2 NE1 ‘아파’ 10월 31일 SBS <인기가요>
일주일에 세 번, 공중파 3사의 가요 프로그램은 한바탕 푸닥거리를 펼친다. 주류 음악의 판도가 어디에 있는지는 출연 가수의 면면을 보면 답이 나오고, 무대의 스피드와 화려함은 누군가의 기를 죽이기에도 충분해 보인다. 달리고 또 달리니까. 그런데 잠깐 멈춘 적이 있다. 샤이니는 ‘헬로’의 마지막 무대에 올라 가만히 앉아 노래했다. 다섯 소년은 편안해 보였고, 노래는 감싸듯 퍼졌다. ‘헬로’가 이런 노래구나 새삼, 들었다. 그런가 하면 다음 날 2NE1은 ‘아파’의 첫 무대를 선보였다. 넷은 의자에 앉아 그저 노래했다. 박봄이 “변했니 니 맘속에~” 하며 찌릿찌릿 파고들 때, 음악이 원래 이런 거지 싶었던 기분. 이틀간 조용했던 두 무대에서 잠시 쇼를 쉬고, 음악을 들었다.

올해의 노래 미스 에이 ‘Bad Girl Good Girl’
취향의 평가는 좀 관대할 수도 있겠지만, ‘세련됨’의 평가는 양보의 여지가 거의 없다. 어느 땐 무식한 게 좋고, 어느 땐 가슴 찢어져서 좋은 게 노래라지만, 박진영은 이 노래에서 감상자의 상태마저 무효로 만든다. 절제된 악곡과 거의 동물적으로 조여오는 리듬의 완급은 미처 한국에 없었던 ‘세련됨’이다.

올해의 소녀 아이유
소녀 팬이야 집 앞에서 ‘오빠’ 얼굴이라도 한번 보면 직성이 풀리겠지만, 사회적 책무로 가득한 아저씨 팬은 다르다. 좋아하는 미소녀의 사진은 침대에 놓고, 자신은 바닥에서 자는 헌신의 이야기는 아저씨들 차지다. 아저씨들은 올해 아이유를 섬겼다. 아저씨가 아니라 또래가 봐도, 청년이 봐도, 천진하고 귀여운 아가씨였지만, 아저씨들은 이렇게만 얘기하면 서운해하면서 덧붙였다. “우리 아이유 양은 실력파 가수라규!”

올해의 안무 비 ‘널 붙잡을 노래’
이효리가 도통한 듯 골반을 두드려도, 가인이 울부짖듯 맨발로 뛰어도, 태양이 본능으로 박자를 이겨도, 소녀시대가 단체로 화살을 쏘아대도, 비가 가슴을 내놓고 꿀렁꿀렁 내려가는 장면 하나를 이기지 못한다. 마침내 그 굉장한 동작을 하고서, 나는 어떡하냐며 짓는 표정까지 이어지면, 세상에서 가장 부족한 건 말이 아닐까 싶어, 말을 잃는다. 그렇게 강한 걸 당분간 또 볼 일이 있을까? 처음엔 웃지도 못했다.

올해의 풍운아 강승윤
<슈퍼스타 K 2> 허각의 우승이 재미있는 건, 존박이 우승하는 가정보다 훨씬 다양한 상품이 다양하게 팔릴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강승윤이 가장 먼저 홈런을 날렸다. 그러고는 군림하더니 버텼다. 혹시 윤종신이 예선부터 현승희가 아닌 강승윤을 밀었던 이유는 그 파워를 직감했기 때문일까? 듣는 이의 호감에 따라 누가 누구보다 낫다는 식의 말이 들끓는 동안, 그리고 예외 없이 그 이름 모두가 점차 선도를 잃는 동안, 강승윤은 보는 사람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모두에게 기회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진 강승윤이다.

올해의 컴백 DJ DOC
DJ DOC가 다시 머리 위로 수건을 돌렸다. 알아서 기라며, 아니면 뛰라며. 이후 6년 만이다. ‘I Wanna’가 실패한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걸까? 멋 부리고 힘주는 대신 확실히 ‘뽕끼’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예능에서 보여주던 ‘개과천선’ 콘셉트는 잠시 버렸다. 흔들고, 털고, 꺾고, 소리치고, 그러다 방송사와 ‘맞장’도 뜨고. 종횡무진 이판사판, 2010년 여름은 DJ DOC가 접수했다.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올해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모르고 산다.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래서 배운다. 도리를, 배려를, 지혜를, 사랑을. 4대가 모여 사는 모슬포 양씨네 집엔 비밀이 없었다. 누군가는 그게 불만이라 입을 내밀었지만, 그 울타리 속에서 스스로 깨치며 성장했다. 아들의 남자친구가 ‘저도 아들이에요’ 하며 엄마의 품에 안기고, 평생 밖으로 돌던 남편이 어느 아침 방을 닦는 아내 옆에서 가지런히 생을 마감하고, 티격태격하던 서로와 결혼해 더욱 서로를 알고, 동생이 생기고, 아버지처럼 살겠다고 다짐하고….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며 인생은 과연 아름답지 않은지, 인생은 또한 어떻게 아름다운지, 스스로 묻곤 했다.

올해의 기획 <남자의 자격> 합창단
그들이 보여준 건, 온전한 개인으로서 어떤 최대치를 구현해야만 ‘하모니’를 이룰 수 있다는 명백한 이치였다. 이경규를 비롯한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그 속에 섞여있을 땐 연예인 같지 않았다. 그저 일원으로서 열심이었다. 여기에 합창단 개개인의 면면이 더해지고 모든 신뢰의 근간에, 박칼린의 걸출한 실력이 있었다. 의심 없이 믿고 따르면서 ‘사랑합니다’ 말할 수 있는 지도자를 최근의 한국에서 만난 적이 있었나? 선생님의 연말 학예회를 준비했던 초등학교 때, 합창단이란 노래를 잘하거나 그 자체가 꿈인 아이들의 집합이 아니었다. 오히려 군중 속에 묻히는 방법을 깨닫는 첫 번째 수단에 가까웠다. <남자의 자격>합창단편의 기획은, 그런 관념을 뒤집은 데서부터 성공적이었다.

올해의 소년 김탁구
<제빵왕 김탁구>의 원톱 주인공, 김탁구를 올해의 소년으로 뽑는다. 세상의 이치나 사회의 매정함 따위는 뭉개버리고, 엄마와 빵을 향해 보여준 집중력 있는 고군분투야말로 달리는 소년의 전형이다. 그리고 그 뒷면에는 배우 윤시윤이 있다. 드라마 속 김탁구의 에너지는 <지붕 뚫고 하이킥>을 뛰어넘고야 말겠다는 윤시윤의 의지와 만나 시청률 50퍼센트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소년의 얼굴을 한 청년 윤시윤을 올해의 두 번째 소년으로 선정한다.

올해의 딸들 U-17 여자월드컵 대표팀
8강, 4강, 어머나 우승. 20세 이하 대회 준우승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동생들이 더 큰일을 냈다. 현재 여자 축구 고등학교 팀은 19개다. 등록 선수는 3백50명 정도. 수비수가 모자라서 공격수가 수비수로 둔갑하기도 하고, 에이스는 부상을 달고 뛰며 8골을 넣었다. ‘헝그리 정신’ 얘기가 아니다. 그런 악조건 속에 U-17 여자 축구 대표팀은 청소년 월드컵에 참가한 팀들 중 가장 뛰어난 기술을 선보였다. 볼 컨트롤, 드리블, 패스 모두. 남녀노소 불문, 한국 축구에선 도무지 볼 수 없던 축구를 이 22명의 딸이 보여줬다.

올해의 업적 소녀시대
언젠가부터 한류는 딱풀을 묻힌 도로처럼 더디고 느리게 보였다. 그걸 한 번에 뻥 뚫은 게 올해의 소녀시대다. 소녀시대는 날씬한 긴 다리와 파노라마처럼 현란한 얼굴로 일본을 관통했다. 차트 좋아하는 일본에서 최근 조사한 유명인 순위에서는 일본 걸그룹 AKB48와 퍼퓸마저 따돌리고 4위를 기록했다. 아무나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걸그룹이라면 오랜 역사와 정형화된 취향이 있는 일본에서 말이다.

올해의 해프닝 UV 홈쇼핑 음반 홍보 판매
대중음악계를 비꼰 거라는 둥, 한 방 날린 거라는 둥 갖다 붙이기보다 우선 재미로 받아들이는 게 좋다. 분명 유세윤은 재미로 그랬을 테니까. 게다가 더욱 중요한 건 보는 사람도 재미있고 유쾌했다는 거다. 방송도, 방송이 끝나고 쏟아진 많은 이야기도. 다 유세윤과 뮤지가 본능적으로 만든 작품이다.

올해의 레스토랑 비스트로드 욘트빌
2년 전 피에르 가니에르가 정통 프렌치 요리를 내세우며 서울에 상륙했을 때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수공예품처럼 예쁜 요리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마어마한 가격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파티장을 잘못 찾은 것 같은 낯선 기분까지…. 비스트로 드 욘트빌은 올해 초 문을 연, 소박한 프렌치 비스트로다. 간단한 코스 요리에 가벼운 가격표를 달았고, 놀라운 맛을 선보였으며, 프렌치 요리를 이탤리언 요리만큼 친숙하게 만들었다. 이 레스토랑 덕분에 사람들은 순대를 사 사먹으러 갈 때처럼 신나는 마음으로 수비드(저온 조리) 삼겹살을 맛볼 수 있게 됐다.

올해의 콘서트 어어부 프로젝트 콘서트
그날 관객들에겐, 편지라고 하기도 일기라고 하기도 뭣한 글이 들려 있었다. 그걸 읽으면서 무얼 상상하길 바랐는지는 모른다. 백현진은 연기와 노래의 경계가 불분명한 걸 시도하면서 경기 같은 춤까지 곁들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종이는 한 곡의 가사고, 단서였다. 아니, 이 공연 전체가 새 앨범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의 소름 끼치는 단서였다.

올해의 자막 <라디오스타> ‘신정환 정신차려’
온몸의 진이 다 빠진 것처럼 병원에 누워 있는 신정환의 사진과 ‘도박’ 같은 단어가 진실과 거짓으로 엇갈릴 때, 그를 보고 깔깔댔던 모든 순간 또한 배반당한 것 같았다. <라디오 스타>는 신정환이 제대로 물올랐던 놀이터였다. 그가 빠졌을 때, 다른 멤버들의 대응에도 관심이 쏠렸다. 뎅기열은 어설프기 짝이 없는 ‘올해의 무리수’였다. 한편 “신나는 명절, 정이 넘치는 한가위, 환상의 연휴!” 이후 첫 글자만 이어 붙이면 ‘신정환 정신차려’가 됐던 <라디오스타> 멤버들의 메시지는, 공중파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미이자 드라마틱한 재치였다.

올해의 술 맥주
맥주 올해의 술은 사케도 와인도 막걸리도 아닌 맥주다. 어느 해보다 여름 내내 마신 맥주량이 많았던 이유가 궁금하다면, 기억을 되감아 월드컵과 폭염에 맞추면 된다. 지난 월드컵 대회 때보다 한국 경기가 심야에 많았다는 점, 거리 응원이 이제는 좀 지겨워졌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집에서 맥주 캔을 수도 없이 땄다. 그리고 올 한 해 열대야 일수는 12.4일로 평년(5.4일)보다 7일이나 더 많았고, 2000년 이후 가장 무더운 여름 밤으로 기록됐다. 후텁지근한 여름 밤에 맥주 말고 생각나는 게 또 있나?

올해의 음식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말이 어려워 그렇지 맛은 쉽다. 육즙은 덜하지만 고기 본연의 맛이 풍부하고 훨씬 고소하다. 잠자고 있던 고기의 맛을 끌어올리는 원리라고 할까? 스테이크를 진공 포장하지 않고 공기 중에 그대로 숙성시킨 이 고깃덩이가 올 한 해 외식업계의 이슈였다. 그리고 이 기술을 체득한 여러 스테이크 집이 새로 문을 열었다. 당분간은 드라이에이징이라는 말이 맛있는 스테이크를 뜻하는 단어로 인식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입맛에 따라 일반 숙성 스테이크로 다시 돌아오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올해의 서울 동네 한남동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리움이 생기면서부터, 뿌리를 생각하자면 ‘이태원’이라는 거대한 자기장이 있을 것이다. 한남동이 올해 특별한 무드에 휩싸인 것은 꼼 데 가르송이 생기고 버진이 생기고 꿀이 생기고 옥사나가든이 생기고 더 스파이스가 생기고, 공간 해밀턴이 생기는 잇단 ‘오프닝 세리머니’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본디 한남동이 품은 오래된 매혹을 헤치지 않고 생겼다는 게 중요할 것이다. 오래 살아 있는 것과 정제된 새로움의 충돌. 시당국이 디자인 디자인 외치며 도시를 공사판으로 만드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한남동은 제 힘으로 가장 멋진 동네가 되었다. 심지어 ‘그놈의’ 디자인도 예뻤다.

올해의 광고 천호식품 산수유
그동안 중소기업 광고는 무조건적인 주입식으로 승부하거나(대리운전 광고), 촌스러움으로 밀어붙이는(별이 다섯 개) 방법밖에 없었다. 천호식품은 그 틀을 깼다. “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천호식품 회장님의 리듬감 넘치는 경상도 사투리와 머리를 싸매는 발 연기는 물론, 주옥 같은 카피까지 모두 역작이다. 술 한잔 넘기면 술상이 엎어지고, 화장실 변기가 박살 나는 그동안의 복분자주 광고에 비해 이 얼마나 우아한 접근인가? 끝내주는 효능을 직접 말하지 않아, 되려 더 큰 효능을 상상하게 되는 전략적이고 기술적인 광고다. 아, 물론 김창완이 등장하는 2편 광고가 나오기 전까지의 얘기다.

올해의 수상작 김인숙 <안녕 엘레나>
동인문학상은 2010년의 수상작으로 김인숙의 <안녕, 엘레나>를 선정했다. <안녕 엘레나>는, 스케일의 크기와 소재주의로 치닫는 신인 작가와 더욱 안일하고 습관적으로만 흐르는 기성 작가의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보여준 작품이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다는 점도 부정할 순 없다. 지난해 미당 문학상이 보여준 ‘파격’을 동인문학상에 기대하는 건 무리였을까? 좀더 예민해야 할 ‘산문 정신’이 아쉬운 결정이었다.

올해의 눈물 김연아
김연아가 파란 점으로 조지 거쉬윈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에 맞춰 춘 춤은 미학적으로 아름다웠다. 동시에 기계적으로 완벽했다. 더블악셀과 트리플 토루프가 잔실수도 없이 깔끔한 여백으로 떨어질 땐 모두 뒷목이 뻐근할 정도로 긴장했었다. 아무래도, 그렇게 ‘어린 여자애’의 배짱으로 온전히 이겨낼 수 있는 순간은 아닌 것 같은 불안도 있었다. 그런데 ‘연아’가 울고 있다. 연기를 마치고 돌아서자마자 터진 김연아의 눈물은 완벽한 소녀의 것이었다. 벅차고 여린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서 그 얼굴을 보던 어른들도 같이 울었다. 그렇게 행복하게 울었던 적이, 올해는 없었다.

올해의 효율 광화문 복원
복원 4개월을 앞당겼다. 광복 60주년 기념 행사에 맞췄다. G20 정상회의가 겨우 3개월 후였으므로, 그 시점에서 실제 단축한 공기는 1개월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며칠 전에 편액이 갈라졌으니, 공기 단축이 진짜 문제라고 보긴 어렵다. 효율이란 들인 힘에 비해 실제로 유효하게 쓰인 분량의 비율이다. 한국 정부가 좋아하는 경제 성장률 같은 지표처럼, 숫자로 얘기해볼까? 3년여를 들여 복원해 3개월 동안 유효했다. 지금 한국 정부와 서울시의 효율이 혹시 그 정도는 아닐는지.

올해의 기능 리트윗
‘일파만파’란 말이 이렇게 잘 들어맞는 경우가 있을까? 리트윗 한 번에 수천, 수만 명의 불특정 다수가 또 다른 불특정 다수가 올린 글을 봤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더 이상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닌 게 되는 순간. 잘 이용하는 이들은 스타가 되었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2010년, 트위터가 스마트폰과 함께 모바일과 웹을 장악하는 흐름의 중심엔 리트윗 기능이 있었다. 누군가에겐 두려움으로, 누군가에겐 구원으로.

올해의 2등 한명숙과 존박
둘 다, 승리가 예측됐던 후보였다. 한명숙 전 서울시장 후보는 출구조사 당시 오세훈 현 시장을 0.2퍼센트 차이로 앞섰다. 허각과 김지수가 이하늘을 찾아갔을 때 이하늘은 소주잔을 놓고 말했다. “마셔, 어차피 우승은 존박이야.” 부정하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종은 오세훈 시장 47.4퍼센트, 한명숙 전 후보 46.8퍼센트였고, 2억 원의 상금을 수령한 우승자는 허각이었다. 둘 다 졌다. 하지만 끝난 건 선거와 오디션뿐이다. 존박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경쟁이 있다면 프로로서 이어질 것이다. 한명숙은 소신에 따라 계속 행동하고 있다. 12월 6일엔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대한 재판이 열린다. 정확한 건, 승부 자체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올해의 시집 장석남 <뺨에 서쪽을 빛내다>
‘서정시 쓰기 힘든 시대’라는 말을 장석남은 늘 천연덕스럽게 밀어낸다. ‘바위를 밀어보고’ ‘저녁 종소리를 듣는’ 목가적인 세계의 충만함으로, 서정은 여전히 서정의 자리에서 굳건하다. 장석남 시인의 <뺨에 서쪽을 빛내다>는 이전부터 드문드문 보이던 김수영적인 세계로 한 발 더 내디딘 작품이다. 인용에서 김수영이 보이기도 하지만, 고해성사 같은, 때로는 너무 노골적인 일상의 드러냄이 전에 없던 대상과의 차가운 거리를 획득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올해의 성녀 엄정화
엄정화가 <슈퍼스타 K 2>에서 보여준 선하디선한 눈빛은 지나치게 물러서 되려 낯설었다. 가수 엄정화가 이제껏 구축한 캐릭터 역시 그런 여자는 아니었기에 더욱. ‘맨 인더 미러’를 부른 존박에게, “정말 너무 좋았어요. 특히 발음이…”라고 말하거나, 심사평을 말하다 “아, 오늘 왜 이렇게 말이 안 되지?” 할 땐 심사위원으로서의 존재 자체를 회의했다. 이승철과 윤종신이 벼린 날을 세울 때, 그녀는 마더 테레사처럼 모두를 보듬어주기로 작정한 것 같은 말만 했다. 그게 프로그램의 균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심사위원이 하는 위로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건 출연자들의 정신건강에 보탬이 될 수는 있어도, 오디션 자체에도 또한 시청자들에게도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출연자들은 방송 후에 이렇게 말했다. “엄정화 선생님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결국, 좋은 일을 한 셈이 되었다.

올해의 작명 코리아노사우루스보성엔시스 Koreanosaurus Boseongensis
코리아노사우르스 보성엔시스는 세계 최초로 한국 이름을 딴 공룡이다. 지난 2003년 5월, 한국공룡연구센터 발굴팀이 보성군 득량면 비봉리 공룡알 화석지에서 일부 골격의 화석을 발견해 복원했다. 한국공룡연구센터장 허민 교수는 “예전부터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공룡을 발굴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코리아노사우르스 보성엔시스는 약 8천5백만 년 전 대한민국 보성에서 살았던 공룡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됐다. 사실, 발견한 사람의 이름이나 발굴지역의 지명을 쓰는 일은 학계의 관행이다. 실제로 중국 윈난Yunnan 지방에서 발견된 공룡의 이름은 윤나노사우르스다.(하지만 차이나노사우르스는 아니다.) 축하할 일이지만 씁쓸한 이유는 뭘까? 한국은, 아직 개인의 영예보다 ‘국격’이 중요한 나라이기 때문일까?

올해의 충성심 원빈
원빈 하면 떠오르는 것들. 강원도, 아저씨, 내 핑계대지 마, 우리 아들은 아니야. 이제 여기에 하나 더 붙었다. 바로 버버리 프로섬. 올해 그는 각종 시상식과 무대 인사, 시사회와 제작 발표회에 끈질기고도 맹렬하게 한 브랜드만 입고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버버리 프로섬 매출에 크리스토퍼 베일리보다 원빈의 공이 더 크다. 지나친 ‘풀 착장’ 탓에 가끔 브랜드의 피규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정도면 충성심 하나는 끝내준다. 게다가 어울리기까지 하니 별 불만 없다.(실제로 대종상 남우주연상 수상 때 입은 릭 오웬스의 어깨 뽕 재킷은 저게 뭔가 싶었다.) 다만, 원빈은 지조가 있으나 브랜드는 절개가 없었다. 버버리 프로섬 한번 안 걸쳐본 연예인, 아마 없을걸?

올해의 알몸 <하녀>의 이정재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스토리’보다 ‘스타일’을 살린 영화라지만 그 ‘스타일’이란 게 뭔진 알 수가 없다. 뭐든지 다 가진 졸부로 나온 이정재 역시 영화 속에서 끝내주는 ‘수트 간지’를 보여주려고 한 건 알겠는데 어째 좀 어설프다. 정명숙 비스포크와 장미라사, 제냐와 란스미어까지 입었지만 정작 그가 가장 멋있어 보인 건 벗었을 때였다. 그것도 완전히. 젊은 애들이 툭하면 옷을 북북 찢어대도 ‘몸’ 하면 역시 이정재다.

올해의 두상 차두리
차두리가 머리를 빡빡 깎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 정도로 예쁘니 어떤 털로도 가릴 필요가 없다. 한동안 뜸해서 잠깐 잊었는데 올해는 텔레비전만 틀면 나온다. 서울을 대표하는 우유와 아줌마들의 재산목록 1호라는 김치냉장고 광고까지 찍었으니, 올해의 두상에 뽑힐 만하다. 이하늘과 길, 골방 브라더스도 빡빡머리지만 차두리와는 다른 이유로 머리를 미는 게 분명하다.

올해의 잡지왕 김민희
전대미문의 ‘패셔니스타’ 김민희의 사진을 ‘다른 이름으로 사진 저장’ 한 번 안 해보고서야 패션을 안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러니 그녀처럼 된다면 당장 생빚이라도 낼 여자들을 노린 패션 브랜드와 잡지에선 툭하면 김민희를 부른다. 부르니 가서 찍었을 테지만 올해 찍은 패션 화보만 해도 웬만한 모델보다 많다. <보그>, , <바자>, <엘르>, <쎄씨>, <마리끌레르>, <인스타일>, <얼루어>, <하이컷>, <오 보이>. 화보에 잘 나오는 신민아, 공효진, 류승범도 이 리스트에 비하면 조촐하다. 찍었다 하면 모조리 다 예쁘니 불평할 이유가 없지만, 내년에는 그녀의 목소리도 듣고 싶다. 격려의 의미에서 올해의 잡지 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