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런사람이야

도대체 영화배우만 뭐 그렇게 유별난가, 란 질문을 남기고 두 개의 영화상 상식이 끝났다

보타이는 클리포드
보타이는 클리포드

모든 일은 지난 10월 29일 열린 47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서 비롯됐다. 소녀시대가 화려한 축 하무대를 펼치고 있을 때 그를 지켜보는 일부 배 우들의 태도가 심드렁했다는 것.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박 수도 인색했다. 행사가 열린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은 말 그대로 평화로웠다. 그러자 인터넷에는 난리가 났다. ‘소녀 시대 대종상 굴욕’이 검색어 순위 상위를 차지하고 다른 가 수들의 논평도 이어졌다. 이석훈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박수치는 거 어렵나? 웃는 거 어려워? 음악이 나오는데 어떻게 몸이 가만히 있을 수 있어? 정말 너무들 하네”라는 글을 올렸고, “그런 잔칫집에 나 같은 놈이 한번 가서 객석 난입 좀 해드려야 하는 건데”라고 말한 싸이는 실제로 얼마 뒤 MBC <음악중심> 무대에서 객석 난입에 성공했다. 이 논란은 그 로부터 한 달여 지난 11월 18일 열린 8회 ‘대한민국영화대상’까지 이어졌다. 단독 MC였던 배우 송윤아가 소녀시대 제10의 멤버로 ‘소원을 말해봐’를 함께 공연한 가운데 “소녀시대의 공연은 방끗 웃는 얼굴로 봐주세요”라는 재치 있는 자막을 띄워 눈길을 끈 것이다. 지난 대종상 시상식을 의식한 공연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일이었다.

그렇게 올해 열린 두 개의 시상식을 연달아 보고, 그 두 개의 행사를 매년은 아니라도 가끔 참석한 사람 입장에서 맨 처음 든 생각은 사실상 ‘대종상은 원래 그래’라는 거였다. 소녀시대 공연과 맞춰 부산국제영화제의 김동호, 이용관 공동위원장뿐만 아니라 그런 자리를 쑥스러워하기로 유명한 배우 정재영 등을 비롯해 몇몇 원로 배우들의 얼굴(말하자면 근엄한 척하려는 게 아니라 그 누가 무대에 올라와도 그런 모습일 사람들의 얼굴)을 편집해서 보여주는 건 거의 재앙에 가까웠고, 젊은 배우들 역시 그날 처음 선보이는 신곡 ‘훗’ 자체를 ‘처음 듣는 곡이네?’라는 표정으로 신중하게 감상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Gee’나 ‘소원을 말해봐’로 무대를 가졌더라도 그 정도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날 분위기는 원로 배우 김희라가 <시>로 남우 조연상을 수상할 때부터 이미 결정됐다. 대배우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어눌한 발음으로 “계속 열심히 해서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길이 살아남겠습니다”라고 얘기하고, 나중에 는 역시 원로 배우 최은희가 휠체어를 타고 나와 영화발전 공로상을 받으며 띄엄띄엄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데 어느 누가 ‘흥’만 돋울 수 있으랴.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가 소녀시대의 등장으로 확 달라졌다면 흐뭇한 일이었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때 떠오르는 장면은 이른바 영화상 시상식의 ‘레전드’로 평가받는, 지난 2003년 2회 대한민국영 화대상에서 보여준 비와 이효리의 공연이다. 함께했던 탱고 공연의 완성도도 높았지만, 화제가 된 건 이효리가 무대 에서 내려와 송강호와 설경구 앞에서 섹시한 춤으로 그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벌벌 떨게 만든 일이다. 2005년 빈과 채연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퍼포먼스로 다소 ‘오버’를 하며 ‘역시 같은 걸 반복하면 재미없다’는 인상을 심어줬을 정도로 그 날의 기억은 역대 영화상 시상식 초청공연 중 최고의 순간으로 남아 있다. 무조건 객석으로 내려가라는 얘기가 아니라 행사를 준비하는 관계자와 게스트들의 특별한 연출에 대 해 말하고 싶은 거다.

올해 대한민국영화대상은 분위기를 ‘살린’ 배우 박철민에게 특별상이라도 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신인남우상 시상을 하며 수상 소감이 아니라 ‘시상 소감’을 하면서 마치 자기가 수상한 듯 어머니와 지인 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더 열심히 해서 (고작 신인상 정도가 아니라) 작품이나 감독상을 시상하는 시상자가 되겠다”며 ‘시상이나 수상이나 그게 그거 아니냐’는 식의 멘트 로 객석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그런데 올해 대한민국영화대상은 대종상보다 나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아니 그보다 더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결정적인 잘못을 저질 렀다. 방송사에서 주관하는 시상식임에도 불구하고 어처구니없게 녹화중계를 한 것이다. 아카데미 시상식도 동시통역을 하며 실시간 중계를 해주는 시대에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박태환 수영 경기를 내보내느라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 다. MBC가 박태환의 1,500미터 결승 진출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아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 경기 일정이야 오래 전에 확정된 것일 테니 시상식 일정 자체를 바꾸면 될 텐데 그러지도 않았다. 이미 수상자들이 누군지 트위터나 블로그를 통해 다 공유되고 난 다음 녹화중계를 보면서 “후보들을 다 보셨습니다. 그럼 수상자를 발표해주시죠”라는 멘트 에 가슴 설렐 사람들이 있을까. 이석훈이나 싸이는 영화계의 권위의식을 염두에 두고 앞의 발언들을 했을 것으로 여 겨지지만, 마찬가지로 영화인들 역시 ‘스포츠가 최고야’라 고 읊조리며 박태환 한 명을 이기지 못했다고 씁쓸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상식에서 사회자나 출연자의 정해진 시나리오와 애드리브, 초청 게스트 공연의 힘도 중요하지만 무엇 보다 ‘디테일’의 문제도 간과해선 안 된다. 다시 대종상을 돌 아볼 필요가 있다. <포화 속으로>의 탑은 일면식도 없었을 <하녀>의 윤여정 옆자리였다. 신인상을 수상하며 이제 막 영화배우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그는 대선배 옆에서 내내 얼어있었을 거다. 옆자리에 <포화 속으로> 작업을 함께한 배우나 관계자들만 앉아 있었어도 그가 그런 딱딱한 표정으로 내내 앉아 있었을까. 게다가 가장 지적해야 할 대목은 소녀 시대 공연 순간이 아니라 오히려 최은희의 수상 때였다. 영화인 참석자 수 자체가 적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1층에 배우나 영화인들 외에 일반 관객들도 너르게 분포해 있다보니 아카데미 시상식의 공로상 수상 때처럼 최소한 1층 정 도는 전원 기립해서 박수를 보내는 게 아니라, 그냥 보통 관객들은 그들대로 ‘저 할머니는 누구지?’ 하는 표정으로 쳐다 보고 있고, 영화인들 역시 다 함께 일어나지 않는 분위기 속 에서 ‘이거 일어나야 하나?’ 망설이는 표정으로 엉거주춤, 마치 학교 아침조회 시간을 보는 것 같아 참으로 민망했다. 아카데미와 칸영화제 사이에서 애매하게 방황하는 듯한 국내 영화상 시상식들, 그러니까 수상 소감과 멘트는 유머 감각이 거세된 채 뻔하디 뻔하고 국내 중소 규모 영화제들까지 빼놓지 않는 어색한 레드카펫 행사가 이어지는 그런 수많은 영화제를 보고 있으면, 마치 100볼트와 220볼트의 어긋난 만남 같다. 그런데, 좀 더 지난다고, 국내 영화제의 진행과 그 ‘디테일’에 대한 지적이 사그라들 것 같지도 않다

지난 시상식들의 잘못과 실수를 지적하고나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질문은, 영화계 및 영화배우의 특권의식에 대한 질타다. ‘도대체 영화가 뭔데?’ ‘영화배우는 뭐가 다른데?’라는 질문 속에서 되짚어볼 첫 번째 시선은 영화로의 묘한 회귀본능이다. 이른바 다른 경로를 거쳐 영화에 이른 연예인들, 흔하게는 가수 출신 배우들을 만나면서 가장 많이 느낀 점은 자신의 종착역을 무조건 영화 로 생각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위계상으로는 음악계와 영화계를 구분할 수 없어도 시간 순서상으로는 음악계와 영화계를 확연히 구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아이돌 가수로서 TV를 지배할 수 있는 기간은 한정돼 있으니 영화든 드라마든‘무조건 연기를 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들을 가 지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건 딱히 틀린 말이 아니다. 언제 나 ‘소녀’나 ‘주니어’로 살 수 없을진대 솔로로서의 탁월한 재 능을 지니고 있거나 MC등 방송인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 지 못한 이상, 그리고 실력 있는 작곡자나 프로듀서의 상시적인 지원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연예인으로서 생명 연 장의 꿈을 이뤄줄 곳은 사실상 영화계 말고는 없기 때문이 다. 데뷔작 한 편 만들고 장장 10년을 쉬어도 ‘영화감독’이 고, 배우로서 수년째 작품이 없어도 ‘시나리오 검토 중’이라 는 말로 자신의 현재를 포장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영화계다.

그래서 비가 영화배우 정지훈으로, 탑이 최승현으로 스스로를 규정짓는 순간, 신인의 기분으로 마치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되어 간 것 같은 조심스러운 근엄함을 유지하게 된 다. 뭐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져 물으려는 게 아니라 윤여정 옆자리의 최승현이 왜 그렇게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남자 연예인들의 경우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시기가 묘하게 그때와 겹친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 다. 말하자면 젊은 그들은 영화계로 의 진입을 마치 현재 자신의 위치로부 터의 ‘졸업’으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대부분은 ‘핑크빛 미래’를 버리지 못하는 만년 취업 준비생으로 살아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다.

두 번째 시선은 영화계와 음악계의 철저히 분리된 듯한 구조다. 보통 그 두 가지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 는 경우가 드물고(국내 그 어느 영화사보 다 규모가 클 SM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한 <꽃미남 연쇄 살인사건> 같은 영화도 마치 독립영화로 느껴지는 이상한 분위기), 엄정화처럼 양쪽을 성공적으로 오가는 경우 또한 드물다. (가령 홍콩연예계의 전성기 시절 장국영, 유덕화, 매염방, 장학우, 여명 등은 그 어떤 시점에도 최고의 가수이자 최고의 영화배우였다.) <디 워> 개봉 당시 ‘영화계가 심형래를 무시한다’라는 식의 발언이나, 윤계상 의 ‘영화계 좌파’ 운운하는 식의 오해 섞인 논란도 분명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특권의식에 대해 말하려면 분명 영화계와 다른 업계 사이의 위계질서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야 하는데, 그건 사실상 권력 문제나 위계라기 보다 영화계 자체의 폐쇄성에서 가장 크게 기인하는 것 같다. 가령 국내에서 ‘최고의 가수’는 ‘최고의 예능인’과 동의어일 수 있지만, 최고의 영화배우가 예능인으로 자리매김 한 경우는 없다. 이른바 영화계 최고스타라 할 수 있는 송강호나 장동건, 원빈과 강동원이 <강심장>에서 무시당하는 광경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영화계 자체가 고령화 사회이기 때 문인 이유도 있다. 우리 나이로는 35세인 1976년생 권상우, 송승헌, 차태현 등이 여전히 영화에서 풋풋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 큰 문제다. 영화사에서 캐스팅을 고려할 때 막연하 게 ‘젊은 남자 주인공’으로 여전히 그들을 떠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 세대교체가 지연되면서 영화가 젊은 관객들의 기호를 잘 포착하지 못하고 그런 폐쇄성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그렇게 모두가 최종적으로 선망한다 는 점에서 특권을 가진 쪽이 영화계일지는 모르지만 실은 거의 신기루에 가깝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영화계로 넘어오는 순간 자신을 ‘엔터테이너’가 아닌 ‘아티스트’로 위치 짓는 경우를 흔히 본다. 따지고 보면 시상식에서의 근엄함이나 과묵함도 분명 그런 태도에서 비롯될 것이다. 오해도 크지만 분명 그 속에는 진실도 숨어있다. 전적으로 그런 식의 분리된 태도가 영화계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갈수록 심심해 지는 한국영화가 필요로 하는 것은 ‘아티스트’가 아니라 ‘엔터테이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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