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의 목적

장래희망에 가수라 적고, 연기자도 할 수 있으니까, 라고 말하던 아이들은 이제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장래희망은 연예인. 책도 쓸 수 있으니까.”

연예인의 ‘이름값’만으로 책 구매를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실제 책들을 읽어보면‘ 이름값’ 외에 별다른 미덕이 없는데도, 매우 잘 팔린다.
강명석( 기자) 왜 이러시나. 내용이 부실하다고 책이 안 팔리면 그 많은 후진 노래들을 부르던 가수들은 어떻게 살라고. 드라마든 예능이든 어떻게든 잘나가기 시작하면, 5초만 불러도 헉헉대는 가창력을 코러스로 떡칠해 숨긴 노래를 불러도 잘나갈 때도 있지 않은가. 노래나 드라마가 아니라 연예인을 좋아한다는 건 그 사람이 관련된 어떤 것에든 관심을 갖게 만들고, 그 관심이 무관심한 사람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여론을 만들어낸다. 서인영이 자신의 관심 분야라는 쇼핑에 대해 책을 냈는데, 그의 팬이나 쇼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초보들이 1만3천원을 쓰는 게 뭐 그리 아깝겠는가? ‘이름값’이라는 건, 그 값을 한다.

특정 연예인과 책 기획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상관관계가 있나? 기획 있고, 연예인 있나? 연예인 있고, 기획 있나?
김대균(출판사 편집자) 지금 가장 확실한 마케팅 요소이자, 가장 검증된 세일즈 포인트는 저자다. 생존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저자의 인지도가 가장 중요하다. 출판사에서 연예인 책을 내는 이유는 그들의‘ 이름’ 앞에 독자들이 모이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간혹 저자나 아티스트가 되길 원하거나 이미지를 확장하고픈 연예인이 자신의 기획이나 원고를 먼저 가져오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 특정 연예인을 목표로 하고, 그 연예인의 이미지를 연예인 책 기획의 출발선으로 삼는다. 몇 가지 방식이 있는데, 1차원적으로는 소지섭, 서인영, 김남주 등의 책에서 보듯이 이미 알려진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포토 에세이나 ‘누구식 무엇’ 혹은 ‘누구의 일상’ 따위의 이름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거기서 한 차원 높인다면, 김현주나 권오중처럼 특정 관심사를 파고드는 실용서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마저도 마뜩찮아 기획을 비튼다면, 기존 이미지와는 다른 아티스트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르네상스의 재림’이라는 구혜선과 ‘언더그라운드로 내려간’ 박지윤의 책과 같은 경우다. 그리고 이런 전략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은 단연 타블로다.

뻔히 대필 작가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데다, 글보다 사진으로 책을 채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집’이라는 분류로 옮겨가지 않는 건 ‘에세이/실용’이라는 분류에서 오는 무슨 이득이 있기 때문일까?
표지 정면에 ‘대필 아무개’라고 쓰지 않는 한, 대중들은 대필 작가가 누구인지, 대필 작가를 썼는지 안 썼는지에 관심 없다. 연예인이나 대중이나 책을 내는 건 실력 테스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예인이 책을 통해 전달하는 이미지를 만들고/소비하고, 사고/파는 것이다. 글만 있으면 예쁜 사진을 볼 수 없고, 예쁜 사진만 있으면 “난 연예인이 뉴욕에서 쇼핑백을 들고 찍은 사진이나 보려고 책을 사는 게 아니야!”라는 말을 할 수 없다. 사진집에 가깝지만 실용적인 이미지를 갖는 것, 그게 그런 책들의 실용이다. 사실 그 분야에 깊은 관심은 없으면서 해당 분야의 분위기 정도는 맛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 정도면 충분하다. 요리가 취미인 사람이 애프터 스쿨의 브런치 책을 읽고 요리를 만들 일은 없지 않은가. 그 책은 애프터 스쿨이라는 유명세에 브런치라는 한물 아니라 열물 정도 간 트렌드를 읽으며, 브런치에 대해 ‘익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뭐 그렇게 심각한가. 표지도 예뻐서 들고 다니기도 좋은데. 거기에 브런치, 에세이, 패셔니스타 같은 단어들이 나열돼 있는데.

연예인 에세이로는 ‘갈 때까지 갔다’는 판단이 있었나 보다. 연예인의 여행 서적이나 취미와 취향을 살린 실용서 쪽으로 흐름이 넘어가는 듯하다. 하지만 정보라고 할 만한 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실제 연예인이 참여하는 여행서나 실용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정보의 질이 갖는 중요성은 어느 정도일까?
얼마 전까지 연예인 기획은 출판 기획자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과 같았다. 복잡 다난한 출판 기획에 대한 고민을 날려버릴 수 있는 한 방이었다. 보기에도 멋졌고, 잘 팔렸으니까. 섭외가 어려워서 그렇지 섭외만 하면 끝이었다. 지금 아무리 시장이 변했다 한들 근본은 마찬가지다. 연예인 기획은 섭외 성사 여부가 책 출간까지의 프로세스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정보의 질에 대한 검증은 일단 덮어둔다. 섭외에만 성공하면 대박이라는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미리 축배를 드는 경우가 많다. 저자가 가져온 콘텐츠가 훌륭하지 않다면 양악수술을 하듯, 기획자와 저자의 힘든 피드백 과정이 시작되는데, 그런 꼼꼼한 피드백을 연예인에게 요구할 유능한 기획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정보의 질이 갖는 중요성은 높게 쳐줘야 3순위다. 누구의 책인지, 콘셉트가 무엇인지, 그 밑이다.

책은 언제나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근거가 되는 분야다. 그러나 연예인 책만은 여기에서 예외인 것 같다. 이 예외적인 현상을 긍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보나?
영화 더빙이나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은 성우가 하는 게 가장 완성도가 높을 것이다. 하지만 종종 인기 연예인들이 참여하는 건 그쪽이 쉽게 화제를 모으고, 그들에 대한 친숙함에 대중이 쉽게 다큐멘터리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같은 일본 이야기라도 윤손하가 하면 더 쉽게 느껴질 수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내용이 부실하다고 하지만, 세상에는 내용의 깊이보다 읽기 쉬운 게 더 필요한 사람이 많고, 그들에게 연예인의 책은 가벼운 입문서가 될 수 있다. 그러다 입문서로만 끝날 수도 있지만.

출판사에서는 연예인 책의 독자층을 어떤 사람들이라고 판단하고 있나?
너도나도 궁금해하지만 실상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다. 확실한 건 연예인 책이라고 10대들이 유난히 관심을 갖고 구매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베스트셀러가 아닌 다음에야 출판계의 주 독자층인 20~30대 여성들을 벗어나지 않는다. 홍대에 근거지를 둔 아티스트들의 책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도 시장이 같기 때문이다. 연예인 책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서점에 자주 가는 사람들이다. 서점에 아예 안 가던 사람들이 어쩌다 한번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가, 베스트셀러도 아니고, 양서의 기준에도 들지 않는 연예인 책을 결제하고 뿌듯해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는 일이다.

출판계 전체의 진입장벽만큼 문학계의 진입장벽이 낮아진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연예인이 ‘작품’을 써서 내는 경우는 최근 몇 년에 걸쳐 있었다. 문학계의 시선으로 보자면, 함량 미달이었다. 몇 편의 연예인 소설들에 대해, 문학계 외부의 비평가로서 어떤 평가를 내리나?
다른 분야라면 연예인은 얼마든지 손쉽게 책을 만들 수 있다. 이름을 내걸고, 좋은 편집자와 괜찮은 소재를 골라내면 된다. 하지만 소설은 창작의 영역이다. 누군가에게 미룰 수도, 평가를 비껴갈 수도 없다. 다른 책은 부업 수준이지만, 소설은 또 하나의 직업을 갖는 것과 같다. 그러니 아무나 소설을 쓸 수 없다. 다른 분야에서 창작 능력을 인정받았거나, 혹은 소설로 창작 능력을 인정받고픈 소수만이 도전한다. 애초에 창작자였던 타블로와 이적의 소설은 어느 정도 대중적인 반응을 얻으며 그들의 화려한 경력에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됐다. 구혜선의 소설이 끔찍하다는 사람이 있으면 어떤가. 이러나저러나 지금도 “소설을 쓴 연기자”라는 타이틀로 이곳저곳에 기사가 나간다. 이만하면 남는 장사 아닌가.

책을 내자는 제안을 했을 때, 연예인들의 반응이 대체로 어떤가? 책을 낸다는 걸 또 하나의 ‘돈벌이’로 볼지, ‘명예’로 여길지 궁금하다.
기획사가 연예인의 의사에 앞서느냐 아니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기획사가 주도할 경우 아무래도 비즈니스로 접근하게 된다. 이름만 빌려주고 화보 촬영하는 정도로 머무르기도 하고. 이런 책이 사실 대부분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책이 다른 장르에 비해 돈이 얼마 안 되는 것을 연예계 관계자들이 다 안다. 그래서 돈보다는 이미지를 확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많이들 책을 생각한다. 심지어 앞으로 들어갈 방송과 엮거나 이미지를 위해 기획사 쪽에서 출판 기획서를 짜오는 경우도 있다. 또 예전과 달리 기획사에서 아직 책을 낼 수준이 아니라고 정중히 거절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만큼 연예인에게 책은 돈보다는 이미지와 직결된 작업이라 여기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 같다.

연예인 책의 모범 사례로 떠오르는 책이 있나?
배두나의 <두나’s 런던놀이>. 비슷한 책이 지겨울 만큼 쏟아지는 지금 보면 특별하다는 느낌은 안 들지만 자신의 캐릭터를 가진 연예인-여행-사진-사진 찍기를 책 한 권에 모두 집어넣어 배두나와 런던과 여행 중 사진 찍기와 사진집 보기라는 ‘분위기’를 모두 충족시켰다. 내용의 깊이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하나의 트렌디한 아이템으로는 좋았던 책이다. 그리고 사진 없이 정말 멤버들의 이야기만으로 채운 빅뱅의 에세이. 빅뱅의 팬들도 좋아했겠지만, 그들의 부모도 좋아할 만큼 그들의 성공사가 아주 자세하게 서술돼 있다.

연예인 책을 만드는 예산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부분은 뭔가? 이미 책에 물건을 소개하고, 그것을 받는 식의 노골적인 거래가 자리 잡았다고 들었다.
책 속의 PPL이다. 예를 들면 진행 비용이나 촬영 장소나 제품을 제공해주는 대신 도서 안에 제품이나 장소가 노출된다. 이슈가 되는 연예인 책에 이런 사례는 흔하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진행비를 줄일 수 있고, PPL되는 제품의 인지도가 높다면 오히려 책에 이득이 되기도 하니 마다하지 않는다. 연예인 책을 만드는 데는 일반 도서 진행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거액의 진행비가 든다. 일반적인 도서 계약은 인세 10퍼센트 이내에서 선인세라 하여 계약금조로 몇백만 원을 주는 게 관례다. 그러나 연예인 책은 계약금 자체의 ‘0’ 단위가 다른데다가 이와 별개로 몇천 단위의 진행비가 계약조건으로 붙는다. 그래서 연예인 책은 BEP가 다른 기획보다 월등하게 높다. 나름의 큰 베팅인 셈이다. <구글드>라는 책을 보면 “미국도 출판사들이 대박에만 점점 의존하다보니 편집자는 의미 있지만 돈은 벌기 어려운 책을 내기 점점 힘들어진다”는 구절이 있다. 연예인 책의 유명세에 의존한 출판 기획은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일단 팔리기에 앞서 알릴 수 있는 책을 만들어야 하기에 연예인에 대한 의존도는 쉽게 포기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