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정말 없다

심형래는 문제적 감독이 아니다. 심형래는 영구다. 그런데 영구는 없다. 심형래도 없다.

옛날옛날 한 옛날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리기도 전인 1980년대에 영구란 아이가 살았다. 가장 친한 친구는 땡칠이였다. 어느 날 영구가 놀던 평온한 시골 마을에 귀신이 몰려온다. 영구는 이웃 동네 스님과 힘을 합해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를 물리친다. 1990년대엔 특공대에 자원 입대했다.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영구는 ‘영구람보’라는 별명도 얻는다. 영구는 결혼도 한다. 사람으로 변한 너구리를 색시로 삼는다. 영구 엄마도 수난이었다. 진작에 물리친 줄 알았던 드라큘라가 영구 앞에 다시 나타난다. 꼽추를 시켜서 영구 엄마를 납치한다. 이번엔 헐크로 변한다. 요괴들이 다시 영구 엄마를 노린다. 영구는 엄마 몸 속의 요괴를 물리치지만 악당들은 부시맨을 만들어 영구를 위협한다. 결국, 영구는 영원한 친구 공룡 쮸쮸를 만난다. 영구와 쮸쮸는 악당을 물리치지만 거대 공룡 탓에 서울 시내는 아수라장이 된다.

영구는 10여 년 동안 수십 편의 영화와 TV에서 그렇게 살아온 남자다. 1983년에 태어났고 본적은 <유머 1번지> 다. <유머 1번지>는 한국 코미디의 1번지였다. <개그콘서트>는 ‘유머 201번지’쯤 된다. 한동안 영구가 어떻게 사는지 몰랐다. 용가리에 잡혀갔느니 전쟁에 휘말렸느니 소문만 무성했다. 그러다 영구의 진짜 아빠가 마피아 대부 돈카리 니란 소식이 전해졌다. 영구는 덤덤했다. “띠리리리리리.”

<마지막 대부>라는 제목은 베르톨루치를 연상시킨다. 으리으리한 간판이다. 마땅한 제목은 <영구, 대부 되다>일 것이다. 1987년 <영구와 땡칠이> 이후 영구는 참 많은 곳에 갔고 많은 것이 됐다. 람보가 됐던 <영구람보>부터 황비홍이 됐던 <심비홍>을 거쳐 1995년작 <파워킹>까지 영구는 베트남과 안드로메다를 종횡무진했다. 8년 사이에 수십 편의 ‘영구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구가 대부가 된다는 운명의 장난이, 영구 입장에선 그다지 운명적일 게 없단 얘기다.

심형래 감독의 정서와 태도도 딱 그렇다. 심형래 감독은 <라스트 갓파더>를 온갖 영구물들의 속편의 속편의 속편처럼 찍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 한 귀퉁이에 살짝 영구를 그려 넣는 식이었다. 앞선 영구 영화에선 밑그림도 영구만큼이나 조악했다. <라스트 갓파더>엔 하비 케이틀 같은 수준급 배우가 등장해서 제법 그럴듯한 명화 배경을 그려줬다.

<라스트 갓파더>의 영구엔 오랜 연기의 역사가 배어있다. 영구가 마피아 행동대장들과 야구방망이로 때리고 맞는 장면은 <변방의 북소리>다. 펑퍼짐한 양복 바지와 달라 붙는 저고리와 콧수염과 지팡이와 모자가 찰리 채플린의 상징이 된 건 채플린이 <마벨의 이상한 재난>부터 <모던 타임즈>까지 20년 동안 방랑자 캐릭터만 연기했기 때문이다. 심형래 감독도 30년 동안 영구를 연기했다. 영구 이전에도, 영구 이후에도 바보는 많았다. 하지만 심형래 감독은 영구에게 끊임없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80여 편에 이르는 심형래 감독의 연출작과 출연작 대부분이 영구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채플린은 결국 매카시즘의 광풍에 휩쓸려 스위스로 망명했다. 죽을 때까지 스위스에서 살았다. 하지만 떠돌이 캐릭터는 지금도 미국에 살고 있다. 마찬가지다. 심형래와 영구는 이제 두 사람이다. <라스트 갓파더>로 오랜만에 돌아왔을 뿐, 영구는 늘 어딘가에서 살고 있었다. 희극 배우로서 심형래 감독이 영구라는 인물을 자기 안에서 길러온 건 존경 받을 일이다.

문제는 영구가 아니다. 심형래다. 심형래식 영구 영화는 액자물이다. 채플린의 떠돌이물도 액자물이었다. 채플린은 어느 시대 배경이건 액자 삼아 그 안에 떠돌이를 집어넣어 영화를 만들었다. 하층민 노동자도 됐다가 위대한 독재자도 됐다. 심형래 감독 역시 <람보>가 됐건 <헐크>가 됐건 <황비홍>이 됐건 <영웅본색>이 됐건 닥치는 대로 액자로 삼은 다음 그 안에서 영구가 뛰놀게 만든다. 하지만 두 감독의 액자는 다르다. 심형래 감독은 영구물의 액자를 구축 할 때 깊이감을 만들지 못한다. <모던 타임즈>에서 떠돌이는 무한 반복되는 컨베이어 벨트와 톱니바퀴 안에서 넘어지고 자빠진다. 영구가 넘어지고 자빠지는 것과 행위는 같지만 의미는 다르다. 배경이 되는 액자가 달라서다. 톱니바퀴가 자본주의를 상징한다는 건 영구라도 알 수 있다. 관객들은 떠돌이를 보면서 웃지만 공장을 보면서 느낀다. 떠돌이와 공장의 어울리지 않는 만남에서 풍자와 감동이 생긴다. 심형래 감독은 <라스트 갓파더>에서 영구물의 액자를 좀 더 번듯하게 갈아 끼웠을 뿐이다.

채플린의 떠돌이물이나 영구나, 인물이 화면 위에서 둥둥 떠다니긴 마찬가지다. 액자물의 한계다. 하지만 심형래 감독은 인물과 배경 사이, 위화감의 틈새에서 자신이 사랑 한 영구의 진짜 위력이 잉태된다는 점을 살피지 않았다. <라스트 갓파더>에 웃음이 모자라고 풍자가 고갈된 이유다. 1987년 개봉한 <영구와 땡칠이>는 그 때 2백만 명을 모았다. 단성사나 서울극장이 아니라 서울 변두리 극장과 지방 소극장을 전전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심형래 영화가 주류 영화계에서 외면 받긴 마찬가지란 얘기다. 그런데도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어린이 관객들과 가족관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요즘의 천만 관객이다.

평단과 대중의 반목 사이에 있다는 점에서 심형래는 채플린보단 에드 우드와 닮았다. B급 상상력으로 외계인이나 드라큘라 영화를 만들었던 에드 우드는 영원한 할리우드의 이방인이었다. 심형래 감독한텐 에드 우드가 지녔던 예술에 대한 강박이 없다. <영구와 땡칠이>나 <우뢰매> 같은 영화들을 스스로도 어린이용 영화로 여겼다. 예술가적 자의식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 에드 우드의 열등감이 없는 건 행운이자 불행이다. 그가 만든 액자에 깊이가 없고 <대부>의 패러디적 모사만 있는 것이나, B급 영화적 상상력을 지녔으나 유아적 상상으로 일관한 건 모두 그의 한계다. <라스트 갓파더>는 <디워>처럼 할리 우드의 B급 영화 시장을 노린다. 에드 우드는 자신의 영화 가 B급 취급을 받는 걸 못 견뎌 했다. 심형래 감독이 기꺼이 그걸 이용할 줄 아는 상업 영화인이이란 건 장점이다.

그는 <용가리>와 <디워>를 거치면서 세상과 까칠한 마찰을 겪었다. <디워>는 애국심에 기댔고 <라스트 갓파더>는 향수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뭉클한 구석도 있다. <디워> 와 <라스트 갓파더>는 스필버그처럼 블록버스터를 만들고 싶었고 코폴라처럼 걸작을 만들고 싶었던 할리우드 키드의 바보 같은 노력이 맺은 성과다. 심형래 감독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길거리 방식으로 <디워>와 <라스트 갓파더>를 만들었다. 그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찰리 채플린은 아직도 통한다. 비행기 탈 때마다 <미스터 빈>을 상영하는 걸 보면서 너무 부러웠다. 슬랩스틱 코미디는 시대도, 국경도 초월한다.” 심형래 감독이 모르는 게 있다. 채플린이 아직도 통하는 건 넘어지고 자빠져서가 아니다. 진정 시간을 초월하는 건 채플린이 만든 떠돌이의 시대성이다. 인물은 시대를 상징할 때 영원히 산다. 영구는 1980년대 만을 상징한다. 그래서 이제, 영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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