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이 떠나가네

내년 시즌부터 프로농구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가 한 명으로 줄어든다. 용병만 줄어들면 정말 다 괜찮아지는 걸까?

2001~2002 시즌, 대구 오리온스는 ‘전국구’였다. 팀의 주득점원 마르커스 힉스는 그 전까지 KBL에서 볼 수 없던 형태의 외국인 선수였다. 조니 맥도웰로 대표되는 힘 위주의 용병들과 달리, 스몰포워드 포지션에서 화려한 농구로 KBL을 평정했다. 대구는 그해 우승했고, 전년 대비 10만 명 이상의 관중 증가를 기록했다. “원정 경기를 해도 홈경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선수들이 자신감에 넘치다 보니 몸짓 하나, 표정 하나도 달랐던 거죠. 관중이 늘 수밖에요.” 당시 대구 오리온스의 감독을 맡았던 김진 SK 나이츠 기술고문의 말이다.

단테존스는 SBS 스타즈(현 안양인삼공사)의 15연승을 이끌었다. KBL 최고 기록이다. 폭발적인 득점과 쇼맨십을 보여주는 그를 팬들은 ‘단선생님’으로 불렀다. SBS는 단테존스의 활약이 가장 돋보인 2004~2005 시즌에 유일하게 10만 관중을 넘겼다.

KBL은 내년 시즌부터 용병을 한 명으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이유를 함께 공개하진 않았지만, 그간 발표한 내용을 종합해볼 때, 국제경쟁력 강화와 국내 선수의 기량 향상을 도모해 재미있는 경기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KBL의 관중은 2001~2002 시즌 이후 100만 관중 언저리로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국제경쟁력이 올라간다고 자연히 농구의 인기가 올라갈까? 2002 아시안게임 우승은 극적이었다. 중국을 연장에서 꺾었다. 기대를 갖고 맞이한 2002~2003 시즌, 관중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축구의 경우 월드컵이 끝나고 나면 단발성이라도 K리그 관중이 늘어나는데, 이는 경기에 대한 흥미라기보다 축구 특유의 응원문화가 젊은 층을 자극한 영향이 더 크다.

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건, 국내 선수의 기량 향상을 위해 용병을 줄인다는 말이다. 현재 국내 선수층이 가장 얇은 포지션은 ‘스윙맨’이라 불리는 슈팅가드와 스몰포워드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 중 정통 슈팅가드라 할 선수는 조성민뿐이었다. 스몰포워드도 노장인 김성철, 이규섭 위주였다. 이는 용병이 국내 선수의 자리를 잡아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용병 중심의 경기 습관이 만연해 ‘스윙맨’ 위주의 전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탓이 더 크다.

각 팀은 현재 신장 제한이 없는 용병을 두 명 보유하고 있다. 두 명 보유, 한 명 출전으로 규정이 바뀐 이후 각 팀은 노골적으로 좋은 빅맨을 뽑고 빅맨 위주의 전술을 짰다. “돌파로 수비를 휘젓고, 모션오펜스로 박진감 있는 경기를 추구하기보다 일단 용병 에이스에게 볼을 투입하고, 1:1 공격을 시킨 후 안 되면 볼을 밖으로 빼 다른 찬스를 노리는 것이 현재 KBL에서 가장 흔한 공격 방식이에요.” SBS 조현일 해설위원은 몇몇 팀을 제외하곤 자신도 경기를 보는 것이 지겹다는 말을 덧붙였다.

자연히 ‘스윙맨’의 역할은 외곽에 대기하다 슛을 쏘는 역할로 제한됐다. 포인트가드 역시 속공을 전개하기보다 반 코트만 사용하며 용병에게 볼을 투입하는 데 그치고 있다. 게다가 KBL은 현재 지역방어를 허용하고 있다. NBA 역시 지역방어가 가능하지만 잘 쓰이지 않는다. 우수한 기량을 가진 가드와 포워드가 부지런히 움직이며 지역방어를 허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경기는 빨라지고, 득점이 많이 난다. 그러나 현재 KBL엔 그런 기량을 가진 한국 선수도, 그런 형태의 용병도 없다. 올 시즌 KBL이 심각한 득점 기근을 겪고 있는 까닭이다. 현재 리그 열 개 팀 중 네 팀만이 경기당 평균득점 80점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용병을 줄이면 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KBL은 용병 숫자를 줄이면서 선발 방식 또한 자유계약제로 전환했다. 연봉도 14만 달러라는 상한선을 40만 달러로 확 올렸다. 키가 큰 데다 실력도 지금보다 뛰어난 용병이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김주성이나 하승진이 있는 팀에 장신 용병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막막해요. 이럴 경우 가드나 포워드들이 도움수비를 하느라 체력 소모가 많고, 공격력에 영향을 미치게 되죠.” SK 나이츠 가드 주희정의 우려다. 관중들은 내년 시즌 지금보다 더 느리고, 더 획일화된, 더 재미없는 경기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구단 간 빈익빈 부익부가 더 심해질 우려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프로농구 감독 A는 걱정이 많았다. “이전 자유계약 시절에 뛰던 크리스 윌리엄스, 피트 마이클 같은 A급 용병 선수들은 60만 달러 이상의 웃돈을 받고 들어왔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그때는 상한선이 20만 달러였는데, 이제 기본 40만 달러로 시작하는 거예요.”

NBA 신인 최저연봉은 약 40만 달러다. 다시 말하면, NBA급 실력을 갖춘 선수들만이 받을 수 있는 액수를 KBL이 지급한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실력이 좋은 선수가 한국에 올 확률은 높지 않다. 한정된 선수를 두고 경쟁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귀한 용병이 부상당했을 경우 한 시즌을 아예 망칠 수도 있다. 트라이아웃제도의 경우 10개 구단 모두가 트라이아웃에 참여하며 대체 용병의 윤곽을 잡을 수 있기 때문에 부상자가 발생해도 적절한 대체 선수를 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계약제의 경우 공백이 생겼을 때 다시 구단이 정보력을 가동하고, 그만한 실력의 선수를 찾아야 한다. 몸값이 높은 우수한 선수가, 시즌 중에 운동을 쉬고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정말로 용병만 쳐다보고 한 시즌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울산 모비스의 양동근은 KCC의 귀화 혼혈 선수 전태풍에게 많은 자극을 받는다는 말을 했다. 전태풍은 돌파와 속공을 즐기는, KBL에서 찾기 힘든 형태의 가드다. KCC는 하승진을 보유하고 있지만, 가드 위주의 속공 농구도 즐겨 사용한다. 팬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KCC의 관중점유율은 80퍼센트로 10개 팀 중 가장 높다.

용병 숫자만 줄인다고 국내 선수의 경쟁력이 생기고, 시즌이 재미있어질 거란 기대는 허황되다. 국내 선수의 출장시간은 좀 늘어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용병이 뛸 것이 확실한 특정 포지션을 기피하는 현상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KBL은 출범 당시 5년 후 용병제 폐지를 천명했었다. 이제 와서 약속을 지키는 셈이다. 그러나 지금 약속을 이행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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