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뜨거운 땀방울

금메달, 우승, 천하장사, 세계 챔피언. 목표는 달라도 이 남자들의 뜨거운 땀방울은 영하 12도에서도 얼지 않는다.

왕기춘

왕기춘이 한 판으로 고꾸라지는 걸 본 기억이 없다. “복근이랑 허리힘이 중요해요. 기술이 걸려도 떨어지는 동안 계속 몸을 틀어야죠. 이렇게, 이렇게.” 동아줄에 매달린 채 허리를 탁, 탁 비틀어 채는 그의 땀이 후두둑 아래로 떨어졌다. 19세의 나이에 세계선수권 우승, 현재 73킬로그램급 세계 랭킹 1위. “맨땅에서 매트 올라갈 때, 매트에 한 발 딱 디딜 때, 심호흡 한번 해야 돼요. 제일 긴장돼요.” 매트를 밟으며 검정 띠를 “탁탁” 당길 땐 얼굴이 매듭처럼 단단했다. 왕기춘은 베이징 올림픽과 광저우 아시안게임 두 대회에서 모두 은메달만 땄다. “올림픽에선 제가 다쳐서 그랬다지만, 아시안게임 때는 진짜 너무 분했어요. 판정에 대한 불만은 둘째 치고 한 발로 버티는 유도선수를 실력으로 못 메쳤다는 게, 제 자신이 너무 실망스러웠죠.” 부상당한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수도 받았다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다시 그 상황이 오면 거기 공격 안 하고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2009년 은퇴 선언번복 이후 왕기춘은 더 강해졌다. 53연승. 이원희가 갖고 있던 한국 유도 최다 연승기록도 깼다. “다음 올림픽에서 아키모토랑 한 판 더 해봐야죠. 아, 저 이제 나이트는 안 갑니다.”

사재혁

사재혁이 불끈 솟은 어깨를 퉁퉁 치며 말한다. “이제 한 70~80퍼센트는 돌아왔어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다섯 번째 수술이었다. “다 제 복이죠. 다행히 회복이 빠른 편이에요. 지금은 이제 나이 먹어서 좀 늦어졌네. 배도 좀 나왔고.” 지난 5월, 용상 비공인 세계신기록을 달성하며 최고조의 컨디션을 보이던 상황이라 부상은 더 아쉬웠다. “저, 용상을 잘하는 거지 인상이 절대 딸린다곤 생각해본 적 없어요. 안 그래요?” 아직 온전치 않은 몸 상태. 사재혁은 아쉬운 듯 ‘가벼운’ 바벨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몸을 데웠다. 중학생 시절부터 전국대회를 휩쓸고 다니던 사재혁의 목표는 빨간 원판을 양쪽으로 3개씩 끼운 바벨을 드는 것이었다. 각각 25킬로, 봉 무게까지 170킬로그램. “마지막으로 220킬로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빨간 거 4개씩. 그런데 안 될 거 같아요. 연습 때 213킬로그램까진 하긴 했는데. 그거 말곤 일단 올림픽 2연패 해야죠. 런던 올림픽 때까지 안 다치는 게 목표예요.” 역도는 혼자서 한다. 상대도 없다. 외롭다. “한 방이에요 한 방. 역도도, 인생도. 선택한 무게를 들면 이기고, 못 들면 끝나는 거죠.” 철썩 머리에 얹은 얼음주머니에서 물이 줄줄 흘렀다. “어우 시원해!”

김동현

엘보우, 엘보우, 잽, 잽, 스트레이트, 훅. 샌드백을 펑펑 칠 땐 얼굴에 오만 주름이 다 잡혔다. 폼 잡지 않는 건, 링 위에서나 훈련장에서나 마찬가지. “맞는 건 하나도 안 아파요. 내 직업이고 좋아서 하는 일인데, 즐겨야죠. 농사지으려고 논에 나갔는데 발에 흙 안 묻히고 뭘 하겠어요.” 그래도 거머리는 싫은 법. “아르바이트요. 제 커리어랑 관계없는 일은 죽어도 싫어요. 예를 들면… 보안요원? 운동한 친구들 그런 거 많이 하는데, 돈은 벌겠지만,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요. 운동해야죠.” UFC 무대에서 그는 거칠 것이 없었다. “디아즈랑 할 때 경기 후반엔 일부러 가만 있었어요. 이제까지 너무 일방적으로 이겨서 지루하다는 말이 있었거든요. 역전도 당하고 조마조마하게 경기했다는 것만으로도 국내 시청자들에게 격투기 보는 맛을 느끼게 해준 거잖아요.” 대체 어떻게 하면 살벌한 케이지 안에서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는 걸까. “저, 혹시 껌 드실래요?” ‘오함마’ 같은 파운딩을 내리꽂다가, 땀에 젖은 옷을 벗어 던지며 김동현이 흥얼거렸다. “쥬시 후레시, 후레시 민트!”

조성민

“저 덩크 못해요.” 팔다리가 그렇게 길면서 덩크도 못하다니. “제가 탄력이 없어요. 제 키면 원래 다 하는데.” 하더니 금세 어깨를 둘둘 말아 올리고 슛을 던진다. 던지는 공마다 철썩철썩 그물이 바쁘다. 지난해 조성민의 소속팀인 KT는 정규 시즌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선 KCC에 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경험 부족이다, 정규 시즌용이다 같은 얘기를 듣는 게 싫었어요. 못해서 진 거예요. 보세요. 올해는 우승합니다.” 이런 말을 할 땐 눈썹이 미간 쪽으로 팽팽히 모였다. 조성민은 얼마 전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광저우에 다녀왔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깝던 선수가, 결승전에선 농구공만 한 심장으로 여섯 개의 슛을 던져 다섯 개를 쑥쑥 넣었다. 삼점 슛은 세 개 다 백발백중. 자신감이 붙은 조성민은 올 시즌 프로농구 MVP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어쩐지 환호가 좀 아쉽다. “인기에 대한 불만 같은 건 없어요. 어차피 알 사람은 다 알잖아요?” 슛 쟁이, 슛도사, 전자 슛터 같은 이름이 사라진 지금, 그에게 우뚝한 별명을 지어줘야 할 것 같다.

문성민

잘생겼다. 그는 딴소리를 한다. “요한이 형이 제일 잘생긴 것 같아요. 전 쫌 차갑죠.” 고양이과 동물처럼 그는 먼저 다가오는 법이 없었다. “배구는 몸이 부딪히는 운동은 아니니까요, 다른 선수들도 그래요.” 하지만 훈련장 분위기는 차갑다기보다는 숙연했다. 혹시 촬영 전날, 라이벌 대한항공에게 당한 완패 때문인 걸까. “제가 수비 쪽에 취약하고, 상대편은 약점을 파고드니까. 빨리 그런 부분은 보완해야 하니까.” ‘하니까’의 연발이 보따리처럼 무겁게 들렸다. 그리곤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골키퍼처럼 몸을 날리며 리시브를 연습했다. 지붕 같은 속눈썹에는 땀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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