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대

티켓몬스터 신현성 대표는 한국의 마크 주커버그라고 불린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주커버그의 슬리퍼만큼도 신경 안 쓴다.

신현성 대표를 처음 만난 건 2010년 8월의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신현성 대표와 티켓몬스터는 청담동 SM엔터테인먼트 맞은 편 어디 골목 어귀에 있는 작은 사무실을 얻어 쓰고 있었다. 소셜 커머스가 뉴스거리로 소비되던 무렵이었다. 대부분 소셜 커머스란 인터넷 사업이 있다더란 식이었다. 티켓몬스터란 업체가 선두인데 고작 스물다섯 살 짜리 친구들 다섯 명이 만들었다더라. 그 친구들이 MBA 명문 와튼 스쿨을 나와서 미국에서도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맥킨지란 컨설팅 회사를 다녔다더라는 식으로.

사무실은 아수라장이었다. 책상 몇 개 위에 노트북 위에 자장면 그릇 위에 사업 계획서가 올려져 있는 형국이었다. 청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입은 신현성 대표가 손을 내밀면서 양해를 구했다. “제 친구들이 좀 늦을 것 같아요. 곧 올 건데 조금만 더 기다려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신현성 대표한테 티켓몬스터의 공동 창업자 5인방을 모두 모아달라고 부탁한 참이었다. 다들 바빴다. 한 사람은 분당에서 영업을 하다가 달려오는 중이라고 했다. 억지로 다섯 명을 모아서 사진을 찍었다. 문득 빛 바랜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1999년 네이버컴이 삼성SDS에서 분사한 직후 이해진 창업주와 당시 직원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참 못 찍은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인터뷰는 사무실 앞에 있는 카페에서 했다. 몇 마디 나누자마자 알 수 있었다. 신현성 대표한텐 분명한 통찰이 있었다. 인터넷의 변천을 꿰뚫고 있었다. 신현성 대표는 말했다. “이베이 같은 인터넷 쇼핑몰이 인터넷을 통해 상품을 팔았다면 티켓몬스터나 그루폰 같은 기업들은 인터넷으로 서비스를 파는 겁니다. 앞으론 인터넷에서 오프라인의 모든 걸 팔고 살 수 있게 될 겁니다.”

인터넷 쇼핑몰로 돈 좀 벌겠단 젊은 창업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인터넷 상거래의 본질을 바꿔놓겠다고 나선 사람은 없었다. 신현성 대표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신 대표는 말했다. “인터넷은 또 한 번 크게 변할 겁니다. 같이 창업한 친구들과 그 얘기를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너무 재미있어요.”

신현성 대표의 소식을 다시 들은 건 초가을 즈음이었다. 티켓몬스터의 매출은 매달 두세배씩 커지고 있었다. 지식경제부나 언론들은 티켓몬스터를 성공한 벤처 사례나 창업 사례로 소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상 주겠다는 곳도 많았다. 상 줄 테니 참가비 좀 내라는 경제 언론들의 모금 행사도 적지 않았다. 어른 경제인들은 신현성 대표와 티켓몬스터를 제 배 아파 나은 자식처럼 취급했다. 아니었다. 티켓몬스터가 성장하는 데 어른 경제인들과 어르신 관료들이 해준 일은 거의 없었다.

창업을 하기 위해 처음 미국에서 한국에 왔을 때 신현성 대표와 신성윤 이사와 이지호 이사는 기가 질렸다. 도대체 접수해야 할 서류가 너무 많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카이스트 출신으로 한국 사정에 밝은 권기현 이사와 김동현 이사가 없었더라면 서류 장벽 때문에 창업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어른 경제인들은 티켓몬스터란 이름도 채가려고 했다. 사이트 문을 연 날 티켓몬스터란 이름을 새치기 등록한 다음 고액의 이름값을 요구했다. 고작 5백만원의 자본금으로 창업한 5인방한테 그런 큰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한국 경제는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빼앗아가려고만 들었다. 좀 된다 싶으니까 이젠 너도 나도 티켓몬스터를 칭송하고 있었다. 인용하기 바빴다.

사실 신현성 대표를 성공한 벤처 기업인으로 키운 건 한국 경제 생태계가 아니라 미국 경제 생태계다. 신 대표는 대학교 때 첫 번째 창업을 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만 빠졌다. 아버지가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신현성 대표의 아버지는 그가 멀끔한 회사에 들어가길바랐다. 그럴 만한 능력도 있었다. 신현성 대표는 아버지 말씀을 따랐다. 그럴 만한 나이였다. 후회했다.

신현성 대표가 창업했던 벤처는 구글에 8백억원에 팔렸다. 미국 젊은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뛰고 있다. 제2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되고, 제2의 마크 주커버그가 되고 싶어서 창업이란 도전을 겁 없이 감행하고 있다. 신현성 대표는 그런 도전 문화를 체험했다. 모두가 대기업 직원이나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한국에서 미친 창업을 하게 된 동기였다. 오히려 한국의 선배들이 그를 말렸다. 신현성 대표는 말한다. “한국에선 창업해봐야 망한다, 큰 기업들한테 헐값에 팔릴 뿐이다, 큰 기업들한테 밟힌다, 뭐 이런 얘기를 정말 숱하게 들었어요. 부모님한테도 2010년 겨울까지 안 되면 접고 미국으로 돌아가서 취업한다고 약속을 했었죠.”

신현성 대표가 스물다섯 나이에 성공한 벤처 사업가가 될 수 있었던 건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먼저 세상을 배웠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말했다. “얼마 전 소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공동구매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물여섯 살의 젊은 기업인, 신현성 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작년 5월 자본금 5백만 원으로 친구 네 명과 함께 창업해서 8개월 만에 직원 110명, 매출 2백억원의 기업을 일궈냈습니다.”

대통령은 신현성 대표를 한국의 마크 주커버그라고 이름 붙였다. 신현성 대표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대통령 업무 보고에 불려갔다. 성공한 인터넷 사업 사례로 티켓몬스터를 소개했다. 대통령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밥도 먹었다. 사실 티켓몬스터가 성공하기까지 대통령이든 방송통신위원회든 해준 건 없다. 오히려 신현성 대표와 티켓몬스터가 희망이자 상징이자 영웅이 돼주길 바랐다.

“저는 달라지지 않았어요. 돌아보면 제 주변 사람들이 달라진 거 같아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들한테도 새로운 생각들을 배우고 있어요.”

신현성 대표는 끊임없이 주변 사물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소셜 커머스가 돈이 좀 된다 싶으니까 대기업들이 달려든 적도 있었다. 신 대표는 당황하지 않았다. “대기업이 하기엔 소셜 커머스 사업은 노동집약적입니다. 젊은이들이 매달리면 효율이 나지만 대기업이 덩치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만만치 않은 경쟁 업체들이 등장했을 때도 그들한테서 배울거리를 찾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전 변화를 즐기는 타입인 거 같아요. 지금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업에서 늘 새로운 걸 궁리하곤 합니다.”

오랫동안 인터넷 시장의 최강자는 NHN이었다. 그 아성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일부는 티켓몬스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구글에서 페이스북으로 젊은 인재들이 이동하면서 화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NHN에서 티켓몬스터로 인재들이 옮겨왔다. 진정한 인재들은 창조적 모험을 원한다. 누군가 뛰놀 공간을 만들어주면 불안정하다고 해도 달려든다. 너무 오랜 동안 한국에선 아무도 뛰놀 새로운 공간을 열어주지 못했다. 그 사이에 벤처 붐은 사그라졌고 1990년대 후반에 생겨난 벤처 기업들만 공룡처럼 비대해졌다.

신현성 대표가 티켓몬스터로 바라보는 미래는 단순히 소셜 커머스로 돈 좀 벌었다는 정도가 아니다. 새로운 플랫폼이다. 새로운 경제 생태계의 허브 역할을 티켓몬스터가 해내는 일이다. 지금 페이스북이 미국에서 하고 있는 일이다. 대통령은 매출과 고용 창출로 신현성 대표를 한국의 마크 주커버그라고 칭찬했다. 신현성 대표가 정말 마크 주커버그와 닮은 점은 그가 가진 비전이다.

신현성 대표는 티켓몬스터가 더 많은 인재를 끌어들이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말한다. “계속 매일 성장하는 거죠. 사람들은 티켓몬스터에 몸담으면 자신의 가치도 커진다고 느낄 거고 당연히 티켓몬스터에서 더 많은 일을 해내려고 할 겁니다.”

신현성 대표는 시장과 기업의 생리를 깊이 깨우쳤다. “잠시 기업 컨설팅을 했지만 제가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제한적이었어요. 다시 컨설팅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제대로 제 경험을 반영해서 조언을 줄 수 있을 거 같단 생각도 합니다. 제가 티켓몬스터를 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수백, 수천 명을 움직이게 하려면 분명한 목표를 갖고 회사가 달려나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벤처 캐피털 사람들도 티켓몬스터의 속도에는 다들 혀를 내두른다. 매일 회사의 모습이 달라질 지경이다. <소셜 네트워크> 속 마크 주커버그에게 숀 파커가 있었던 것처럼 신현성 대표한테도 멘토가 있다. 온라인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만든 네오플의 허민 전 대표다. 네오플은 2008년에 넥슨에 3천8백억원에 인수됐다.

“허민 대표님이 저처럼 스물다섯 살 때 창업을 했다더군요. 10년 동안 일해서 큰 자산을 만들었죠. 이제 허민 대표가 하고 싶은 일은 음악과 야구랍니다. 야구는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한테 양보했다고 우스갯 소리처럼 말씀하시면서, 음악은 꼭 하고 싶다고 해요. 저도 기타도 즐기는 편이고 음악에 꿈도 있어요.”

신현성 대표는 이어 말한다. “꿈이 있다면 음악?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지금의 경험을 큰 조직에서 활용해보는 일? 10년 뒤에 뭐하고 있을 지 저도 궁금해요.”

신현성 대표는 꿈을 물으면 매출 목표나 직장의 이름 대신 진짜 꿈을 이야기한다. 돈을 벌기 위해 창업을 한 게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현성 대표는 얘기한다. “2011년 티켓몬스터의 공식적인 매출 목표는 2천억원 인데요, 솔직히 2천억원 밖에 못하면 속상할 거 같아요.”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성취가 중요하다. 신현성 대표에겐 지금의 한국 젊은이들한테도 나눠줘야 할 무엇이 있다. 바로 젊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