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결사적으로

2011.03.03정우영

강태환은 음악가다. 그에 따르면 ‘생활인과 다른’ 전문가다. 50년간 ‘나팔’을 불었고, 40년간 프리 재즈를 연구했다. 그를 만나고 세상에서 확신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라이브 연주를 할 때 색소폰과 방석, 그 외에 필요한 준비물이 있나요?
방석은 꼭 없어도 돼요. 피아노 커버 접어서 앉아도 되니까. 악기 수리에 필요한 도구를 챙겨가요. 악기는 고장 날 수 있으니까.

즉흥 연주를 위해 마음을 진정시킨다거나 하는 그런 준비는 없나요? 공연 전에 소리를 지른다든가, 명상을 한다든가, 그런 뮤지션들 많잖아요?
공연 전까지 친구랑 술 먹고 놀다가 음악하는 날 그러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연주자는 체력이 뒷받침되는 가운데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어요. 나는 천재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항상 조심하는 편이에요.

‘조심’한다는 건 ‘준비’한다는 말 인거죠?
전문가는 생활인과 달라요. 감정에 휩쓸려서 오늘 할 일 안 하고, 내일 하자는 건 말이 안 돼요. 어떤 면에서 스포츠맨과 비슷해요. 스포츠맨이 몸 관리하듯이 해야 돼요. 그런데 요새는 그게 안 통한다고 주변에서 그러대요.

안 통한다고요?
후학들은 그런 자세를 별로 안 좋아한대요. 하지만 전문가는 그렇게 해야 돼요. 전문가는 포기할 것이 많아요. 누구나 인생의 길이는 거의 똑같아요. 뱅뱅 돌아가면 언제 도착하겠어요.

즉흥 연주를 하기에 앞서 어느 정도를 미리 정해놓으시나요? 그러니까 얼마만큼 즉흥인가요?
즉흥 음악에 요령이란 없어요. 공연 시간이 몇 분이니까 몇 분 안에는 끝내자, 중간에 네가 듀엣을 하고 그 다음에 내가 솔로 하고, 이 정도만 정해놔요.

사람들은 보통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불안을 느끼잖아요? 선생님은 어떻게 그 불안을 받아들이게 됐죠?
기질적으로 새로운 길을 가고 싶어 했어요. 새로운 걸 만나면 굉장히 흥미로워하고 반가워하고 기뻐하는 그런 기질이 있었어요.
처음 음악을 시작한 건 타의였다고 들었어요. 집안에 예술가가 없어요. 양조장 집안이었죠. 학교에서 부잣집 아들이라고 자꾸 밴드부를 시켰어요. 클라리넷 안 하겠다고 만날 도망 다니면서 엄청 두들겨 맞았죠. 폐활량이 안 좋고, 몸도 약해서 약을 달고 살았거든요. 나팔 불 만한 신체 여건이 아니었어요. 공부도 잘 안 했는데, 막상 중학교 시험 보고 나니까 갈 데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인천 동산 중학교는 특차, 서울예고는 실기만 보고 남자는 저 혼자 합격했으니 내가 클라리넷에 재능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하. 수업도 열외로 매일 연습 했고, 학교 다니는 동안 행사도 많이 돌았어요. 근데 하다보니 제 미래가 보였어요. 음대 가고, 유학 갔다 와서 교수하고 학장하다 은퇴하는 코스였죠. 왜 음악 교육을 받으면 전부 그렇게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서울예고 2학년 때 자퇴를 결심했죠. 내가 맞았다고 생각해요. 내 친구는 음대 학장까지 하고 은퇴해서 집에서 화초에 물주고 있는데, 전 아직도 쌩쌩하게 음악 하는 걸요. 뭐가 나은 거죠?

당신의 결단은 오로지 당신이 책임지면 되지만, 즉흥 협연의 경우에는 좀 다를 것 같은데요?
즉흥 협연은 솔로보다 더 심각한 거죠. 상대방이 내가 예측하지 못한 표현을 할 때도 그에 맞는 대처를 해야 작품이 되거든요. 그 사람한테 짓눌려도 안 되고, 그 사람을 눌러버려도 안 돼요. 젊은 사람들은 거의 누르려고만 해요. 기술 몇 가지로 눌러놓고, 자기가 더 잘했다고, 이겼다고 해요. 만약 음악가가 자기가 이겼다고 말했다면, 사실 그 무대는 버린 거예요. 특별한 기술로 누르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기술이 부족한 사람이죠. 거기서 더 나아가야, 누르는 건 기술이 아니란 걸 알아요.

당신의 음악을 오선지에 옮기려는 시도를 해본 적이 있나요?
아니 그게 옮겨지지가 않아요. 상당히 오래 전에 기록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무용보나 마찬가지에요. 무용보 보는 사람이 아주 드물거든요. 입체적인 거니까요. 그래서 외우는 버릇을 들였어요. 최근 3년간 정리 했다고 말한 게 외우고 있는 것들을 남들도 알아보게 정리하는 작업이었죠. 처음엔 그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어요. 그저 내게 남은 앙금을 좀 깨끗하게 하고 싶은 거였으니까.

어떤 방식의 정리였나요?
집에 있는 옛날 카세트에 매일 녹음하고, 들어보고, 다시 녹음하고 그랬어요. 3년 동안 한 5백 곡을 정리해서 스물다섯 곡으로 줄였어요. 같은 표현 자르고, 참 좋은 것도 구식 표현은 없앴어요. 대중적으로 너무 많이 쓰는 가락도 지웠고요. 좀 허탈하긴 했지만, 옛날 대가들도 1천 곡 이상 써서 지금까지 전하는 명작은 몇 곡 안 되니까, 나야 뭐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죠. 25년 전에 썼던 톤을 살리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열정이나 현장감 때문인가봐요. 음악은 흘러가면 정말 끝이더라고요. 어떤 때는 거의 한달 내내, 한두 가지 문제로 기를 쓰고 매달렸죠. 빨리 답 찾겠다고 밥도 서서 먹고 다시 붙들고 그랬어요.

후학을 위한 작업이었나요?
나를 위해서죠 뭐. 운 좋게 누가 받아준다든가, 후학이 필요로 한다면 도움은 될 거예요. 정리해놓으면 전달이 쉽잖아요. 근데 그것까진 바라지도 않아요.

하지만 당신의 ‘곡’이라는 게 일반적인 기승전결처럼 명확하진 않잖아요? 스물다섯 곡을 나누는 기준은 오로지 자신의 ‘느낌’이 되는 건가요?
제 나름의 기승전결이죠. 뭐냐면, 기술이나 톤의 변화를 느끼는 건 쉬워요. 일례로 제가 일주일에 두 곡을 쓰는 동안 제 주변에는 아무런 사건도 없었어요. 근데 한 곡은 방황해요. 물론 그 나름의 음악적 가치는 있죠. 하지만 한 곡은 너무 차분해요. 기술이 거의 똑같은 두 곡인데 이렇게 달라지는 게 음악이에요. 하지만 딱 내가 기준이란 뜻은 아니에요. 예술은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궁극적으로 내가 행복하고 상대방도 행복한 거죠. 프리 재즈 문외한의 지적이라면 모르겠지만, 나에 대해 잘 알고 소양도 있는 분이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하면 문제의식을 가져요.

프리 재즈의 시작에는 ‘재즈 전통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측면이 있었죠. 하지만 당신의 음악은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정말 아니라기보다, 완전히 지워버려서 애초부터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까요?
그렇죠. 저는 사실 스윙 밴드부터 시작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프리 재즈하는 사람들은 대중적인 표현을 잘 몰라요. 외국 연주자들조차도 스탠더드 재즈를 못해요. 우리는 다른 걸 하니까 그건 뭐 연구할 필요 없어, 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뿌리 없는 음악인 거죠. 기둥이 튼튼하지 않은 집 위에 자꾸 한 층씩 쌓기만 한다면 너무 불안해 보이지 않을까요? 굉장히 위험한 거예요. 그 끝이 행복하지 못할 것 같아요. 다른 건 몰라도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기는 어려울 거예요.

당신의 즉흥 음악 뒤에 굳이 재즈라는 장르 명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요?
처음부터 재즈를 진지하고 무겁게 생각했고, 재즈를 기본으로 연구를 진행했어요. 그래서 처음엔 프리 재즈라고 했지만, 점점 재즈의 요소가 없어져서 지금은 그저 ‘즉흥 음악’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즉흥이 아무리 매끄럽고 재치 있어도, 그게 아름답지 않으면 별 가치가 없다는 거예요. 즉흥을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아름다운 게 중요하다는 거죠.
너무 아름다워서 다시 듣고 싶게 만드는 거요. ‘결사적으로’ 한다고 그러잖아요? 어떤 천재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도, 결사적으로 하는 사람은 못 당해요. 아름답게 연주하고 싶어서, 저는 결사적으로 했어요.

하지만 단지 ‘순환호흡’으로 신화화된 면이 있어요.
그렇죠. 그게 참 민망하더라고요. 사실 그건 결사적으로 연구해서 개발한 기술도 아닌데 말이에요. 관악기는 단음악기라 숨 쉴 때 음이 끊어지거든요. 피아노나 기타는 여음이 있어서 연결이 되는데, 나팔은 맥이 끊길 수 있어요. 그래서 익힌 게 순환호흡이에요. 풍문으로 들은 게 있어서 혼자서 쉽게 터득했어요. 자료가 없어서 그렇지, 어느 나라 민속 음악에도 다 그런 호흡법이 있었을 거라고 봐요. 전 세계적으로 저만 쓰는 것도 아니고요. 뭔가 표현하고 있는데 관객들이 숨은 언제 쉬나, 보고 있으니 민망해요. 물론 순환호흡에도 깊이는 있죠. 처음 배우면 2~3분은 너끈히 해요. 하지만 10~20분이 어려워요. 산소 부족으로 얼굴이 빨개져요. 침도 잔뜩 고이죠. 그 침을 삼키면서 불 수 있는 수준이 돼야 40분까지 가요.

음악을 하는 목적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어렸을 때는 스타가 되고 싶었죠. 턱시도 입은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요. 대부분의 음악 하는 사람들이 그런 꿈을 꾸죠. 그러다가 우리의 미묘한 감성을 건드리는, 그 소리의 여운을 알았어요. 내가 음악 감상실에서 들은 그 대가들의 소리를 꼭 한 번 내보고 싶은 데, 그게 어렵더라고요. 스무 살도 안 됐을 때였지만, 지금까지 그 마음 그대로예요. 남이 못 듣는 소리를 이제는 더 많이 듣죠. 행복해요. 그걸로 족한데, 일면식도 없는 외국 사람들이 날 초청하고, 신문에도 실어주고, 음반도 내줘요. 외국에서 초청이 와도, 연구 시간 줄어드는 게 아까워서 안 가는 걸요.

당신이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모든 관객이 들을 수는 없죠. 통념적으로 알려져 있는, 즉흥 음악은 관객을 배반하는 음악이다, 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팝 음악만 듣던 사람이 들으면 불쾌할 테고, 음대생이 들어도 참 기분이 나쁘겠죠. 둘 다 고정관념으로 음악을 들을 테니까. 실제로 미대 가서는 연주를 많이 해봤는데, 음대에서는 거의 못해봤어요. 그게 아니라면 연주자의 발표가 잘못됐겠죠. 즉흥 음악에는 이런 부분이 있어요. 정적인 부분과 격렬한 부분의 조합을 5대5로 해도, 격렬한 부분의 인상이 강하니까 관객은 9대1로 느껴요. 곡을 만드는 사람은 모르고 지나가는 부분이죠. 제가 젊어서 ‘공간 사랑’에서 연주할 때는 스님 불러다 반야심경 시켜놓고 그걸 반주로도 음악을 했어요. 무모한 실험이었지만, 참 격렬했죠.

당신도 젊었으니까요.
하지만 관객을 위해 이렇게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내 공부라고 생각했지. 지금 그 스타일로 하면 젊은 사람들한테 인기 좀 끌지 않을까 싶어요. 하하. 예술가는 항상 뒷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스치고 지나가 버려서 뒷모습밖에 못 보는 게 이상적인 예술가예요. 인기가 있다면 재빨리 앞으로 가라는 거죠. 음악은 늘 설명하기 어렵지만, 고정관념화되는 것, 그러니까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이미 구식이에요.

    에디터
    정우영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