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난 그저 탐욕스런 소년이지요

2011.03.03GQ

아마츄어 증폭기가 되어 노래하고,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되어 춤추는 한받을 만났다.

우선 아들 은빛선율의 탄생을 축하한다.
고맙다.

부를 때는 그냥 선율이라고 할 것 같은데.
그렇다. 출생신고하니 장모님께서 엄청 화를 내셨다. 아이 이름을 네 글자로 해서 아이 인생이 힘들게 됐다고. 길을 걸으면서 상상을 해봤다. 이 이름이 어떨까? 아이가 한 일흔 살쯤 되어서 머리가 하얗게 샜을 때 은빛선율의 뭔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스웨덴에서 아이 이름을 메탈리카라고 지었다가 호적 등록을 거부당해서 소송까지 갔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정도는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되지 않을까? 2009년에 <GQ> ‘MEN OF THE YEAR’ 때 당신을 설명하면서 눈치 보지 않고 음악을 만들고, 공연하고, 활동한다는 말을 했다. 동의하나?
그런 눈치는 분명 없다.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걸 계속한다. 이렇다 할 전략 같은 것도 없다. 어떻게 보면 순진하기도 하다. 그런 식으로 많은 활동을 한 것 같다. 최근 두리반에서 자립음악회를 한다든지 자립음악 생산자 모임을 한다든지 할 때, 다른 음악가들과 연대를 하면서 생각이 많아지긴 했다. 좀 더 미래를 생각하게 됐다.

혼자서 음반 녹음부터 제작, 유통까지 진행해왔다. 이젠 더 이상 혼자 모든 걸 떠맡지 않겠다는 뜻인가?
거대 유통자본에 반해서 소규모로 생존해보자는 것이 인디였다면, 생존을 위한 하나의 태도로서 자립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음악 생산에 관련된 기술적인 부분들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인데, 지금은 그걸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여러 뮤지션과 청자들이 연대하면서도 가능하다는 개념까지 가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협동조합 같은 거다.

<수성랜드> 앨범이 나온 지 1년 반쯤 됐다. 변함없이 2009년에 나온 가장 뛰어난 앨범이라고 생각하지만, 발매 당시나 지금이나 언급한 곳이 거의 없다. 당신도 대부분의 매체에서 외면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왜 그런지는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나?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 새 앨범이 나왔다는 걸 알리는 게 힘들었고, 어떻게 홍보를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다른 레이블에서 일하는 친구가 자료를 줬다. 기자들이나 피디들의 연락처 같은 거였는데 그걸 다 받고도 연락을 안 했다. 나에게 근본주의 같은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엘리트주의 같은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곳에 있고 싶고 사람들이 꺼리는 곳에서 계속 하고 싶다.

글쎄, 왜 그러고 싶을까?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 좀 미묘한데, 룰 같은 건 아니다. 공중파에도 안 나가고 인디 신에서만 활동한다는 것이 자립음악가의 규정처럼 되면 안 되는데, 활동범위를 한계 짓는 건 그냥 내 선택일 뿐이다. 아마츄어증폭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이 어렵고 힘든 길을 헤쳐서 음반을 사러 올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얼마나 찾아왔나?
많이 찾아왔다. 3집 <소년중앙>은 많이 팔면 5백 장 정도 팔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7백 장 가까이 팔렸다. 혼자라면 한계가 있는데 신촌 향 뮤직에서도 판매를 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수성랜드>는 <GQ>에서도 소개를 했고. 그러니까 <GQ>도 은연중에 자립음악가의 자장에 들어온 거다. 내가 막 빨아들인다.

그러니까 그게 적다는 거다.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같은 거 보면 화 안 나나?
어차피 거기 호명되는 음반도 많이 팔리지 않는 건 매한가지지만 온당한 평가는 좀 다른 차원의 문제 아닌가? 후보 리스트를 보면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좀 신경을 안 쓰게 된다. 나는 그냥 혼자서 열심히 해야겠다 그런 다짐을 한다. 아마츄어증폭기의 음악은 확실히 공통감각에 호소하는 음악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수성랜드>는 대단히 좋은 멜로디와 좋은 가사로 채워진 좋은 대중음악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그전 앨범들보다 대중적으로 접근할 만했다.
만들면서 그런 욕심은 있었다. 이건 좀 많이 팔고 싶다. 5백 장 정도는 팔리지 않을까?

이해하면서 동시에 포기한 건가?
공연만 봐도 범위를 벗어나니까. 익히 봐왔던 범위를 벗어나니까 키치라고 치부하고.

공연 의상 얘기를 해볼까? 당신은 공연 때 당혹스런 의상을 굳이 입는다. 한진식이라는 본명 대신에 한받이라는 가명을 쓰고 거기에 아마츄어증폭기라는 1인 밴드 이름까지 있다. 그리고 아마츄어증폭기를 다른 자아로서 내세운다. 그게 멜로디와 가사가 대단히 개인적인 부분을 끌어내 만든 거라 본인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만든 보호막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한진식 혹은 한받이 아니라 아마츄어증폭기의 감정과 경험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맞다.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다. 감정을 삼투압처럼 끌어올려 하나의 의식을 치르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의할 때의 복장처럼, 아니면 슈퍼맨이 되는 것처럼 그런 형형색색의 우스꽝스런 옷을 입고 하나의 마스크를 쓰는 과정을 통해 완충을 시키는 것 같다.

아까 키치 얘기를 했지만, 그런 복장을 하고 나갔을 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건 염두에 두지 않았나?
그런 반응들을 생각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입는 건 좀 멋진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통념에서 벗어난 거지만,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면서 멋지다는 생각도 했다.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입기 때문에 감정을 뽑아내기가 쉽다. 내 안에서 하나의 카니발이 형성되니까. 어떤 퍼포먼서로서의 성향이 있는 것 같다. 골방에서 기타 치고 노래하는 사람이었으면 평상시 복장으로 나와서 웅크리고 노래하고 들어갔을 거다. 나에게 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 발산하고 싶어 하는.

유튜브로 남은 기록 중 가장 인상적인 건 2007년 증촌리 공연이었다.
그 얘기 많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걸 보면서 당신이 그런 척을 하는 게 아니란 느낌을 제대로 받았다. 그런 척만으로 거기서 버티고 서서 노래하긴 힘들 테니까.
그땐 거의 벼랑에서 노래하는 것 같았다. 의도는 단순했다. 이 사람들을 진짜 위로할 수 있는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그런데 초반에 하이톤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계속 벼랑으로 밀려가는 것 같았다.

영상 후반부를 보면 당신의 공연을 보던 꼬마애가 손가락으로 귀 주변을 빙글빙글 돌리는 걸 볼 수 있다. 거기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나에게는 작은 인간 승리 같은 에피소드다.

그들을 진짜 존중하는 마음이었는지, 아예 무시하기 때문인 건지 헷갈렸다.
나도 똑같았다. 두 개의 마음이 공존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기획 자체가 좋은 공연은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도 다 빠져 나갔고 황량했다. 그런 곳에서 마지막 위안 잔치라고 주민들 모셔놓고 한 건데, 나중엔 주민들도 거의 없었다. 못된 전체 공연 중 내 공연은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의 당신은 대단히 내성적이고 늘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마츄어증폭기 때는 그런 옷을 잘도 입고 노래를 불러 제끼고, 야마가타트윅스터로 활동할 때는 술도 안 마시고 술 취한 사람처럼 춰 제낀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뭔가 확 가버리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가장 쉽게 설명하면 어린 시절로 가버리는 나만의 기술일 수도 있다.

자기최면을 거는 건가?
그런 건 없다. 몰입을 잘하고 집중을 잘한다. 공연하는 순간만큼은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를 시작한 시점에 대해 말한다면?
2008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아마츄어 증폭기를 잘 안 하게 되면서….

아마츄어증폭기를 그만둔다고 했던 게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있나?
아마츄어증폭기의 캐릭터가 하는 노래는 아버지와도 연관이 많았다. 그리고 한 남자의 외로운 노래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과 결혼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기 때문에 은퇴를 했다. 그리고 야마가타 트윅스터라는, 몸을 사용하는 음악을 택했다. 에너지 소모가 큰 음악이다. 나에게는 죽음으로 좀 더 접근하는 것이다.

아직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앨범은 내지 않았다. 공연은 정말 열심히 하고 있지만, 공연은 휘발되지않나?
욕심은 있다. 들으면 신나게 춤이 춰 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직 역량이 안 된다.

좀 노골적인 질문인데,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나?
아내를 통해서….

결혼한 건 최근이니까, 그전에는?
직장다녔다. 후배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건, 대학을 다닌다면 그 때 다 해보라는 거다. 생계에 뛰어들기 전에 녹음, 제작, 유통, 판매까지 한번 겪어보라는 거다.

가사 얘기를 하자면….
가사가 좋지 않나? 아마츄어증폭기는 가사가 참 좋다.

물론, 좋다. 그런데 논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연결이 안 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득이 되는 순간이 아름다운 거겠지만. 거기서 오는 효과를 노리고 쓸 때도 있나?
그런 생각도 안 한다. 재미있으니까 그렇게 쓰는 거다. 다른 사람들이 그걸 재미있어 할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게 노래가 될까 싶은 걸 노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본인의 얘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종류의 작가가 있다. 당신도 그런가?
그렇다. 항상 경험에서 가사가 출발하기 때문인 것 같다.

당신이 좋아한다는 다자이 오사무도 자기 얘기를 쓰는 게 세상에서 가장 비루한 일이라는 식의 말을 했다. 그걸 10년 넘게 해왔는데, 지금 예전 앨범을 돌아보면 어떤가?
1집, 2집 때는 청초했다. 청초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3집은 한계를 많이 넘었고 4집 <수성랜드>는 어떤 의미에선 퇴보한 것 같다. 예전 노래들을 많이 건져 다듬기도 했고.

앨범에 안 들어간 노래도 상당히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어떻게 노래를 만드나?
기타를 치면 뭔가 떠오른다. 걸을 때 뭔가 떠오르는 것처럼.

가사를 먼저 쓰나?
아니다. 기타를 치면서 만든다. 기타를 친다는 건 일종의 회전목마 같은 거다. 회전목마를 타야 한다. 그걸 타야 기억 속으로 가서 자꾸 건져 올릴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어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웃기는 얘기지만 기억의 바다 속을 헤엄치면서 노래를 건져 올리는 거다.

얼마 전에 나온 자서전 <탐욕소년 표류기>를 보면 ‘악행’이란 단어를 쓰면서 그간 했던 나쁜 짓들을 대부분 까발린다. 왜 그걸 굳이 드러내나?
악행이니까. 책에선 반이 잘렸다. 편집자가 신경을 많이 써준 것 같다.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런 걸 세상에 말했을 때 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하나? 실제로 부인도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고. 그걸 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
참회. 어머니는 그걸 보면서 막 우셨다. 왜냐하면 집에 가면 내가 얘기를 안 하니까. 어머니는 내 행적을 책을 통해 보신 거다. 아, 얘가 이렇게 살았구나 하시는 거다.

위악적으로 보이려는 시도는 아닌가?
위악이라기 보다 적나라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악행을 압축해서 많이 쓰진 않았다고 얘기했다. 그 부분에선 나 자신이 위악적으로 보이는 것도 경계를 했던 것 같다. 적나라해지는 것이 어떻게 보면 나 자신을 수련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음, 다른 얘기좀 할까? 좋아하는 여자 아이돌 있나?
레인보우. 레인보우의 ‘A’와 ‘마하’란 노래가 좋다.

왜?
카라 노래를 주로 만드는 사람들이 만들었는데 정말 춤추기 좋게 잘 만들었다. 설날에 아이돌 수영대회도 봤다. 레인보우가 싱크로나이즈드 열심히 연습했는데 30초만 나와서 너무 안타까웠다.

알겠다. 아무튼, 아마츄어증폭기의 <수성랜드>는 후에 크게 재평가 받을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향음악사 경매에 내놓으려고?

그래서 두 장 갖고 있다. 당신은 그런 생각 안 하나?
2집 <극좌표>가 좋다. 과대평가하면 향후 1백 년 안에 그런 앨범은 안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에디터
    문성원
    포토그래퍼
    LEE CHA R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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