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렬 쇼!

이홍렬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이홍렬의 라디오쇼>의 선곡표엔 딱 두 곡만 있다. 나머진 차를 옆에 세우고 한참 울거나, 웃다가 눈물이 날 지경인 그의 목소리다.

이홍렬은 약속시간 10분 전에 도착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말을 시작했다. “잘 지냈수? 오늘 촬영도 하나?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이홍렬이 기억하는 기사 중 가장 유쾌한 문장을 하나 소개할 필요가 있다. “아, 글쎄 <레이디 경향>에 장회정이라는 예쁜 기자가 있어요. 기사에, 세상에 내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고 썼어. 내가 너무 새새거리니까. 그게 너무 귀엽고, 유쾌하고 좋아서 기억하고 있어요. 2007년이었지? 아마 맞을 거야.” 틀어막는다고 말 못할 입은 아니련만, 그 마음만은 십분 이해한 채,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오전 10시부터 12시 사이에 택시를 타면, 열이면 열 <이홍렬의 라디오쇼>를 듣고 있어요. 청담에서 홍대까지 40분을 들어도 음악은 안나오고.
하고 싶었던 거야. 음악 없이 한 시간 재밌게 해보자.

2009년 4월이었죠? 전영록 씨랑 ‘동갑이니까 괜찮아’ 촬영할 때도 그랬어요. “내가 다 할게, 뭘 물어봐? 또 뭐가 있을까? 질문 안 해도 돼요.” 그러니 음악 없는 라디오가 얼마나 신이 날까?
개그맨이 되는 건 중학교 2학년 때 목표를 딱 정했어요. ‘국민학교’ 5학년 6학년 그때는 장래에 뭐가 되겠다, 뚜렷한 청사진이나 뚜렷한 희망은 없었고. 그냥 우리 학년 때는 기술자? 뭐 구체적인 게 없었지. 근데 내 별명이 살살이였어. 서영춘 선생님이 굉장히 인기 있었을 고 무렵이니까. 그때 녹음기를 갖고 싶었어요. 작은 녹음기를 그렇게 갖고 싶었어. 시나리오를 보면서 이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고 저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고. 그 사람 목소리, 또 다른 사람 목소리…. 이걸 혼자서 막 하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혼자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어른 목소리 아이 목소리 누구 목소리, 그런 걸 흉내를 내고 놀았어요. 그걸 내가 지금 하고 있네, 지금! 그래서 라디오 진행할 때마다 초등학교 때 생각이 자꾸 나는 거야. 그게 이뤄지는 거지. 잠재적으로 그게. 이뤄지는 거지.

잠재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온 건가요?
아니, 엄청 절실했지. 근데 개그맨은 장래가 없었어요. 코미디언은 식비라도 나왔지. 근데 코미디언은 항상 그때 유행하던 슬랩스틱 때문에, 무슨 일만 있으면 도마 위에 올라가는 게 코미디였어. 그걸 염두에 두면서 나는,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더라도 말하자면 격이 좀 있는, 슬랩스틱도 필요하면 하되, 좀 다른 코미디를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어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뭐, 아휴. 세월이 가면 갈수록 (꿈이) 굳어지고 그랬지. 굳어지고 또 굳어지고. 내가 아까 얘기를 했던 라디오는, 가끔 그랬던 기억이 문득 떠올라요. 편지를 읽는다는 게, ‘부모님의 연지곤지’라는 코너가 있어요. 옛날, 부모님의 사랑 얘기 사연을 읽는 거야. 그게 다른 데 편지 읽는 거 하곤 틀려요. 다른 데서 편지 읽는 것도 남자 목소리 여자 목소리 하지만, 이거는 정말 리얼한 남자 목소리 여자 목소리를 반드시 혼자 해야 되고. 저기서는, 양희은 씨하고 강석우 씨가 하는 데는 주거니 받거니 하잖아. 조영남 씨, 최유라 씨도 그렇고. 이거는 완전히 혼자서 모노드라마를 해야 되니까요. 그렇지. 그때 생각이 나지.

여기까지가 단 5분 남짓의 대화다. 촬영 중에도 이홍렬은 쉬지 않았다. “이거 입으라고? 난 주는 대로 입어요. 멋있다 이거. 근데 평소에 이런 걸 입으면 난 소화를 잘 못하겠어. 사진은 정말 어려워. 배에 굉장히 힘을 줘야 하는데? 끝났나, 이제? (이순재 톤으로) 이제 그만 하지? 마이크를 던지라구? 이거 다 산 거 아닌가. 아, 대발아 마이크 좀 주워와 봐라….”

일요일이었고, 그가 운영하는 크라제 버거 홍대점에서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내가 주말엔 꼭 거기 있으려고 해요. 손님들도 만나고, 내 약속도 하고 그러지, 같이 가죠? 오늘 (이)동우랑 (정)재환이랑 만나기로 했어요. 패션 감각 하면 또 동우가 최곤데, 걔가 이제 거의 안 보일 거예요. 우리 차에서 인터뷰 계속할까?” 그래서, 같이 차에 탔다.

아무래도 MC니까, 청중이 있고 반응이 있어야 자연스럽지 않아요? 수다와 방송은 다르니까, 라디오를 할 땐 헛헛함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목소리를 듣는 대상이 앞에 없으니까, 불특정 다수니까.
이게 있어요. 지금 라디오 방송할 때는 옛날에 방송했던, 옛날에 너무 철없이 방송했던 거에 대해서 참회한다고 그럴까? 라디오를 너무 우리가 장난처럼 방송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지금은 이 라디오, 내 목소리, 어떤 말 한마디 한마디를 정말로 수많은 사람이 들어요.
서울지역뿐 아니라.

전국 방송이잖아요?
아, 전국 아니야. 로컬인데, 가끔 이런 말을 해요. 강원도, 충청도 그쪽에 내가 질문을 해요. “자, 지금 어디까지 듣고 있어요? 어디부터 잘 안 들리기 시작해요?” 그러면 막 반응이 와요. “여기 어디예요, 여기 어디예요, 어디예요….” 그렇게 차 안에서 듣는 사람이 첫째 고맙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집에서 “저는 주분데요” 하고 듣는 데는 더 감동해요. 주부들은 사실 교통방송을 안 들어도 되거든. 근데 굳이 나를 찾아온 거란 말이야. 또, 더 내가 추구하는 거는 뭐냐면, 라디오를 내가 좀 알아요. 아주 건방지게 얘기해서 라디오를 좀 알아요. 라디오로 데뷔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이렇게 표현을 하지. 라디오는 귀로 듣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듣는 거예요. 하루 이틀 잘해가지고는 채널이 돌아오지 않아요. 절대로.

이제 3년째죠?
진짜 2년, 3년 해야 돼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거예요. “야, 너 아침에 그거 들어봤냐?” “차에서?” “응, 무지 재밌어.” 그런 거지. 근데 재미있어 하는 이 사람은 정말 오랜만에 들어서 무지하게 재밌었지만 나는, 매일 재밌어야 돼. 그래서 나는 지금도 변함없이, 완벽하게 준비를 해요. 워낙 성격이 꼼꼼해요. 꼼꼼한데, 성격이 꼼꼼해서 피곤한 게 아니라 꼼꼼해서 고마워. 이 꼼꼼한 성격이 나를 만들어 준 거니까. 옛날엔 남자가 왜 이렇게 꼼꼼한가 하고 짜증날 때도 있었어. 그러다 언제인가부터는 내 성격을 사랑하기로 했어요. 어차피, 내가 내 성격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바뀌지가 않아, 이 성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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