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이 촬영장 바닥에 털썩 앉더니 강아지의 앞발을 잡고 말했다. “오늘 잘 부탁한다. 우리 둘이 잘해보자.” 그러고는 덧붙인 말. “넌 딴 델 봐야지. 그래야 재밌다구.” 슬픈 척 우울한 척, 생각 많은 척 안 해도, 정우성은 여전히 스무 살 청춘 같다.
데뷔 후 꽤 오랫동안 정우성의 분신이자 영혼, 전부는 우울함이거나 고독처럼 보였다. 아마도 청춘의 위기와 연민, 진정성이 담긴 빛나는 작품이었던 <비트>의 잔상 때문일 테지. 지구인이 아닌 게 분명하다고 쑥덕이게 하는, 그야말로 우성인자로만 조합된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우성이에겐 하트가 있어.” 그 말은 불편한 카리스마와 당치도 않은 자존감을 목숨처럼 여기는 남자 배우들 사이에선 처음 듣는 품평이었다.
연이은 부상 탓에 링거를 맞고 잠깐 누워 있다 스튜디오에 들어선 그는, 어린 스태프들에게 의자를 양보하고 구부정한 채 서 있었다. 극도의 피로 때문에 눈꺼풀이 떨리는데도 어색하게 웃는 얼굴, 촬영을 함께 한 강아지와 헤어질 때 “오래 살아라” 하곤 꼭 안아주는 낭만적인 서정. 정우성의 ‘스타일’로 굳어진 심각하고 우울하고 멋있어 보이는 건, 이번엔 아니었으면 한다는 말에 그는 한바탕 푸짐하게 호랑나비 춤까지 췄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80년대에 활동했다고 다 듀란듀란이 아니듯이, 배우라고 다 정우성은 아니다. 자신을 버려도 멋진 건, 정우성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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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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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아지 모델/ 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