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아직도 그대는 이은하

2011.03.18GQ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한번 안아주시겠어요?
하하, 그래요.

어젯밤에 가만히 생각해봤어요. 이은하에 대한 첫 번째 기억이 뭔지. 언제인가 KBS <가요대상>에서 좀 과하게 파인 드레스를 입고 깃털 목도리를 둘렀는데, 노래가 끝날 즈음엔 깃털 목도리가 거의 몸 밖으로 나가 있었죠.
그걸 어떻게 정확히 알아요? 맞아요, 부르면서 조금씩 깃털을 내렸어요. 그게 타조털이었는데 하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부를 때에요.

그때 무대의상들은 참 무대다웠고, 가수다웠지요.
전쟁이었어요. 특히 내가 유난스러워서 방송 당일에 다른 사람이 검정 입으면 얼른 화장실 가서 빨강으로 갈아입고, 다들 긴팔 입으면 혼자 확 판 거 입고. 심통맞고 욕심도 많았어요. 한번은 내 블라우스랑 똑같은 걸 다른 가수가 입었길래 숍으로 달려갔어. 나도 참 못 됐지. ‘야, 이거 아무개도 입었더라?’ 그랬더니 ‘네, 그 언니가 예쁘다고 해서요.’ ‘그래? 가위 좀 가져와 봐.’ 목부터 끝까지 옷을 쫙 찢었어요. 딱 내려놓고, ‘돈 줄게’ 그랬죠. 거의 지랄이지 뭐.

분장실마저 함께 썼으니, 얼마나 팽팽했을까요?
분장실을 같이 쓰니까 계보가 잡히죠. 난 너무 어렸을 때 데뷔를 해서, 이거는 도대체 세월이 가도 언니들밖에 없는 거야. 혜은이 언니는 나보다 1년 정도 늦게 나왔는데 나이는 7년 차이 나잖아요. 윤시내 언니는 혜은이 언니보다 한두 살 많은데, 그 언니는 더 늦게 나에어요. 방송으로는요.

1979년은 혜은이의 ‘새벽비’와 이은하의 ‘아리송해’가 맞붙은 해였죠?
KBS에선 내가 가수왕이었고, MBC에선 언니가 탔죠.

얼마 전에 혜은이 씨 수상 장면을 DVD로 봤어요. 발표 순간 이은하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유심히 봤죠.
하하, 내가 어떻게 하던가요?

그게 그러니까, “오케이!” 랄까요? 시원시원한 기운이 과연 이은하군 싶었어요.
하하, 그 전날 하나 받아서 그랬나? 내가 그렇게 당당했단 말이에요?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었나?

이은하는 어떻게든 혜은이와 함께였죠. 증거는 없는데, 대중은 혜은이 편이었던 것 같아요. 이은하가 멀리 기적이 운다며 사방팔방 찔러대면서 밀어붙여도, 혜은이가 풀잎같이 떠는 소리로 “낙엽만 봐도 왠지 슬퍼져요” 하면, 사람들은 혜은이가 여자답고 좋다, 뭐 이런 식으로 흘렀달까요?
언니랑 있으면 늘 나는 머슴이야. 언니는 이효리고 나는 빅마마야. 남자 PD들이 언니 보고, ‘어이구 우리 은이’ 이러면, 또 언니는 조신하게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러잖아요. 나는 뭐 바빠서 빵 하나 먹으려고 하면, ‘야 이 자식아 또 먹냐?’ 이랬고요. 정말 서럽지. 하하.

외람되지만, 살 없는 이은하는 이은하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 생긴 게 이렇게 씩씩하게 생겼는데, 말만 조신하게 ‘그래가지고요, 아래가지고요’ 이런 식으로 하면 그게 되겠어요? 생긴 대로 시원하게 가자, 좋은지 나쁜지 약간의 피해의식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한번은 완전히 뺐잖아요.

84년이었죠?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 때, 옆머리를 무스로 쫙 붙인 쇼트 컷!
맞아! 그때. 내 평생 가장 날씬하고 예뻤을 때. 17킬로 뺐을 때.

그런가 하면 목소리야말로 이은하만의 것이죠. 뿜어내는 허스키. 데뷔곡 ‘님마중’을 들으면서 어떻게 열세 살 여자애를 생각하겠어요.
원래부터 좀 허스키였어요. 어려서도 전화 받으면 저쪽에서 ‘어머, 사모님!’ 그랬어요.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 부를 때, 사실 어린애가 감정은 모르잖아요. 원희명 선생님이랑 녹음을 하는데, 빨간불 들어와서 부르기 시작하면, 그땐 중간에 에디팅이 없으니까 끝까지 다 불러야 돼. 어, 그래 잘했다 다시 한 번, 그런 식이죠. 이미 목이 갔어. 완전히 갔어. ‘헌행님 줘 노래 모탑니다(선생님 저 노래 못합니다)’ 그랬더니, 그래 좋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해보자 그러셨어요. 저는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이 아니라 목이 쓰라리고 아프니까 꺼이꺼이 넘어가게 부른 거예요. 그렇게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이 나왔죠.

    에디터
    장우철
    포토그래퍼
    유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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