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중원의 실험

2011.05.03유지성

다섯 명이 서게 될 조광래호의 미드필더로 과연 어떤 선수들이 적합할까? 모양은 사다리꼴일 수도, 이등변 삼각형일 수도
있다.

대표 팀 취임 후 조광래 감독은 한동안‘ 스리백’을 이용했다. 이는 그가 이끌던 경남FC의 성공과도 무관치 않은데, 경남은 스리백 수비를 기본으로 활동량 좋은 중앙 수비수가 수비와 미드필드를 오가는‘ 포어 리베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꽤나 재미를 본 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표팀은 경남과는 달리 조 감독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스리백의 구조적 약점들을 노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그는 대표팀 선수들에게 더 익숙한 포백을 사용하면서 좀 더 나은 결과들을 이끌어내기에 이른다. 하지만 지도자들의 고집은 꽤 만만치가 않다. 요즈음 대표팀의 미드필드에‘ 포어
리베로’의 잔영이 남아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것이 그리 나빠 보이진 않는다.

조광래 감독이 애초의 구상과 포백 시스템을 절충시키는 데 키 플레이어로 떠오른 이는 바로 기성용이다. 기성용이 현재 대표팀에서 맡고 있는 역할은 사비 알론소나 안드레아 피를로 스타일에 가깝다. 포백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수비를 돕는 한편, 수비진으로부터 전해진 볼을 간수하며 전방으로 나눠주는 후방 플레이메이커의 역할을 한다. 기성용은 지금의 상황을 꽤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신의 특기인 훌륭한 킥 능력과 좋은 시야를 마음껏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셀틱에서 뛰며 향상된 수비력도 이 위치를 소화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기성용이 이 위치에서 꾸준함을 펼쳐 보이는 한, 필자는 조광래 감독이 구사 중인‘ 4-1(기성용)-4-1’ 형태의 기본 포메이션에 반대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러면 기성용의 앞쪽에서 플레이할 동료들로는 누가 좋을까? 월드컵 지역 예선을 앞둔 현재 필자가 선택한 조합은‘ 지동원-구자철-김정우-이청용’이다. 오른쪽의 이청용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거의 없다. 나머지 자리가 문제인데, 우선 K리그 최고의 득점원으로 떠오른 김정우는 요즈음의 골 기록을 차치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움직임 및 위치 선정이 좋고 다재다능한 선수다. 구자철은 공격형 미드필더에 요망되는 창조성과 세밀함이 돋보인다. 여기서 김정우와 구자철 모두 수비를 할 줄 안다는 점은 적잖은 의미가 있다. 지동원의 측면 기용은 고심 끝의 선택이다. 이는 측면으로 나와 플레이하는 데 능한 지동원의 성향, 그리고 주변 동료들과의 호흡을 원활케 할 법한 그의 기술적 수준을 고려한 결론이다. 자연스럽게 박주영과 위치를 바꿀 수도 있고 유사시 투톱 형태로도 변화 가능하다.
한준희(KBS 축구해설위원)

조광래 감독은 기성용을 수비 진영 바로 위에 세우는 4-1-4-1 포메이션을 시도하려고 한다. 이는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 부임 초기부터 오매불망하던 ‘포어 리베로’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겠다는 의미다. 수비진이 스리백과 포백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기성용이 상황에 따라 수비수와 미드필더를 오가며 전술 변화를 이끄는 것이다. 기성용 앞에는 주로 이용래와 구자철이 뛴다. 이용래는 엄청난 활동량으로 미드필더의 빈 공간을 채우는 역할을, 구자철은 경기 운영보다는 직접적인 득점에 관여하는 임무를 맡는다. 측면 수비엔 공격력이 뛰어난 수비수(심지어 공격수를)를 투입하기 때문에 3-4- 3에 가까운 전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포메이션은 필연적으로 수비의 약화를 불러온다. 기성용의 수비력이 향상됐다고는 하지만 그가 전술의 중심이기에, 기성용을 수비에서 자유롭게 해줄 미드필더가 필요하다. 기성용에게 수비적인 부담이 가중되면 전술 자체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비가 뛰어난 김정우를 기성용의 파트너로 고려해볼 만한 이유다. 최근 K리그에서 공격수로 변신해‘ 킬러 본능’을 뽐내고 있지만 그는 원래 자리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측면 수비까지 공격적인 선수가 맡는 걸 감안하면, 이처럼 허리에 수비가 든든한 선수를 한 명쯤 배치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오른쪽 미드필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이청용이다. 이제 남은 한 자리는 왼쪽 미드필더인데 박지성이 은퇴한 후 조광래 감독은 아직까지 확실한 왼쪽 미드필더 자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염기훈이 K리그에서만큼의 모습만 보인다면 단연 그를 선택하겠지만 이상하게도 대표팀만 나오면 경기력이 떨어진다. 김보경에게 기회를 주는 건 어떨까? 딱히 확실한 선수가 없다면 젊은 선수를 꾸준히 출장시키며 육성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구자철을 왼쪽으로 돌리고 김정우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쓰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지만, 이는 두 선수 모두에게 최선은 아니다.
박찬하(Sky En 축구해설위원)

축구도 유행이다. 최근에는 공격수 숫자를 한 명으로 줄이는 대신 윙어들의 중앙 지향적인 플레이가 강조된다. 4-2-3-1 포메이션을 사용하는 팀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축구계를 지배해왔던 4-3-3과 4-4-2의 장점을 결합한 이 포맷은 3선으로 배치되던 선수들이 4선으로 나뉘어 양 팀 선수들 중원에서 더욱 많은 접촉과 견제를 주고받게 했다. 대표팀 역시 이런 4-2-3-1의 흐름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섯 명의 미드필더 중, 측면에는 이청용과 손흥민을 내세운다. 이전 세대 윙어들이 주로 종적인 움직임에 치중했다면, 지금 윙어들에게는 횡적인 움직임이 중요하다. 레알 마드리드의 무리뉴 감독은“ 중앙에서 기다리며 공격하는 것보다 측면에서 중앙으로 움직이는 공격이 훨씬 더 위력적”이라고 말했다. 많은 팀이 오른발잡이를 왼쪽에, 왼발잡이를 오른쪽에 세운다. 디 마리아, 아르연 로벤같이 왼쪽에서만 뛰던 정상급 선수들도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 후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청용은 터치라인 대신 중앙을 지향하는 플레이에 능하고 침투와 패스 모두 최고 수준에 도달한 선수다. 손흥민은 스트라이커라는 느낌이 들 만큼 공격적이며 직선에 가까운 형태로 움직인다. 둘 다 수비 뒷공간을 노리며 중앙을 공략하는 현대적 윙어의 모습이다.

중앙의 세 자리는 기성용-이용래-구자철이 삼각 편대로 나선다. 4-2-3-1에서 중앙 미드필더들은 위아래에서 넘어오는 볼을 가장 많이 다루는 연결자 역할을 한다. ‘리시브 앤 패스’. 간단해 보이는 이 동작을 실제 필드 위에서 구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성용이 셋 중 제일 중심에 선다. 상대 패스를 차단해 공을 소유한 뒤 앞으로 정확히 전달하는 임무다. 기성용의 뒤에는 영리하고 부지런한 이용래가 있다. 상대 미드필더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견제하는 궂은일을 한다. 꼭지점에 배치될 구자철은 탁월한 트래핑 능력과 빠른 판단력으로 공격을 리드한다. 볼터치, 패스, 슈팅력 3박자를 모두 갖춘 구자철은 4-2-3-1에서 가장 매혹적인 이 자리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서형욱(MBC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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