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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개의 신제품-3

2011.05.13GQ

부수는 것 빼곤 다 해본 여덟 개의 신제품.

삼성 옙 VP2

“그냥 아이폰으로 녹음해.” 심지어 기자들도 그렇게 말한다. 스마트폰의 녹음 성능이 생각보다 괜찮다. 일반인이 고품질로 녹음해야 할 경우는 많지 않다. 육성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면 족한 게 대부분이다. 음악이나 영상 관련 작업을 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단순 기록의 의미가 크다. 녹음기를 따로 챙기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카메라 또한 일반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품은 아니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800만화소를 지원하는 판국에 그 무거운 걸 목에 걸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건 그럼 무슨 의미일까? 계속해서 새로운 카메라를 사는 건 무슨 의미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디지털 카메라로 오면서 카메라 회사들은 작정하고 카메라를 사진가의 손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젊은 감각에 맞춰서 디자인했고, 별 쓸모는 없지만 재미있는 각종 부가 기능을 포함시켰고, 조작부의 통합 및 단순화로 눈높이를 낮췄다. 청각은 시각보다 경건한 것이어서, 애초에 대중화될 수 있는 여지가 적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신제품이 나오는 녹음기 분야는 ‘최소한의 의지’도 없어 보인다. 유일하게 그 ‘의지’를 보여주는 건 소니다. 삼성 옙 VP2가 증명하는 건 소니의 방향이 옳다는 증거 같다. 녹음을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수 있고, 전문가가 아니어도 그것을 갖고 놀 수 있다는 점을 삼성도 깨달은 것일까? 원음에 가깝게 녹음해주는 PCM 기능은 카메라의 RAW 파일처럼 ‘날것’의 필요성을 알려주고, 프리 레코딩 기능으로 지나간 ‘소리’도 지나간 ‘장면’과 똑같이 아쉬울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눈이 그랬던 것처럼 귀가 호강해야 할 이유를 삼성이 찾아나선 것은 반갑지만, 단번에 소니의 ICD와 PCM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RATING ★★★☆☆
FOR 녹음기 포퓰리즘.
AGAINST 스마트 폰.

아이리버 딕플 D2000

전자사전은 조카들의 세계에 속했다. 엄마와 아빠는 아이들에 대해 합리적이다. 삼촌과 외삼촌과 이모와 고모는 그보단 덜 합리적이다. 그들에게는 ‘있어 보이는 것’이나 ‘조카들이 받으면 기뻐할 만한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공부에 도움이 되는’ 전자사전은 5만원이면 산다. 하이엔드 전자사전에 포함된 모든 기능은 스마트폰과 MP3 플레이어, PMP 등으로 대체 가능하다. 엄마와 아빠는 시소 위에 놓고 본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뜻이라면 5만원 하는 전자사전을, 선물을 주는 거라면 MP3 플레이어나 PMP다. 촌수가 삼이 넘어가는 이들의 선택은 평균대 위에 있다. 공부를 위해서든 선물을 위해서든, 하이엔드 전자사전 정도가 적절하다고 여긴다. D2000의 사양은 그들이 더욱 집요하게 평균대를 고집할 만큼 화려하다. 4.8인치 LCD는 D1000보다 0.5인치 커진 것이다. 풀 HD 동영상 재생이 가능하고, SRS 트루미디어 사운드 패키지는 SRS WOW HD, SRS 5.1 서라운드, SRS MAX-V 세 가지 음장의 합이다. 감압식 터치나 와이파이 지원이 새로울 건 없지만, 빠져서는 안 되는 요소다. 한 화면에 네 개의 검색결과를 보여주는 콰트로 검색은 포털 사이트의 어학사전처럼 빠르고 편리하다. 러시아어와 독일어, 스페인어 등의 제2외국어 지원이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영어, 일본어, 중국어, EBS 어학 프로그램 삽입은 당연하다는 듯이 마지막에 확인해보는 항목이다. 최저가로 사도 43만원대 후반인 고가의 제품인데, 그 본분은 몇 년째 제자리인 채, PMP와 MP3 플레이어로 변신할 가능성만 엿보고 있다. 전자사전이 조카들의 세계에 속하는 한, 무의미한 사양 업그레이드는 계속될 전망이다. 전자사전이라는 본분에 충실한, 중소기업의 어학기 라인업이 있긴 하지만 그쪽은 또 가방 밖으로 꺼내기 민망할 만큼 조악하다. 전자사전이 놓인 평균대 위에 멀티미디어 플레이어가 아니라 어학기를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

RATING ★★★☆☆
FOR 어린이날.
AGAINST 학생의 날.

    에디터
    정우영
    포토그래퍼
    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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