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나만의 것

E.L.

친구가 선물한 아톰 피규어를 거실장 맨 위, 위협적으로 팔을 뻗은 철인 28호 옆에 두는데, 그 아래 칸까지 피규어들로 빼곡하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친구가 선물한 아톰 피규어를 거실장 맨 위, 위협적으로 팔을 뻗은 철인 28호 옆에 두는데, 그 아래 칸까지 피규어들로 빼곡하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그러고 보니, 아무것도 모을 게 없었다면 먼지라도 모았으리라는 수집벽도 없는 채, 집안엔 꽤 괜찮은 ‘컬렉션’과, “뭐 저딴 걸 다 모았지?” 싶은 해괴한 집합들이 범람하고 있었다.

사실은, 미술품 수집가가 되고 싶었다. 미술품은 살아 움직이고, 만져볼 수 있고, 고귀해 보이며, 매일 감상할 수 있으니까. 괜찮은 수집가는 틀림없이 똑똑해 보일 테니까. 사 모으는 것마다 돈이 된다면 말할 것도 없고, 잘못된 투자였다 해도 그 실수는 문화적인 허세라도 안겨줄 테니까.

하지만 난 안목만 가졌으므로, 갤러리나 경매에서 별것아닌 그림이 비싸게 팔려나가는 걸 봐도 굳이 원통하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수집은 돈으로 계속되는 교육인 셈이라서. 물론, 미술사는 힘의 흥망성쇠와 같으니 진정 위대한 컬렉션은 부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 이루는 거야, 라는 자조는 있었다. 소유욕의 바탕은 혼란스러운 관념과 권위를 지닌 물건에 대한 세세한 지식일 텐데, 디자인을 보는 눈과 뚜렷한 기억력은 자산일 텐데, 미술을 잘 모른다면 입신양명한 남의 집 자손을 쳐다보는 것과 같을 뿐이야, 라는 야유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상상 속의 이웃처럼 미술품을 완상하며 사는 대신, 자기 취향을 믿으며 수집 자체를 사랑한다면 웬만한 것들쯤 모아도 좋을 터였다. 그래서, 이 세상과 다음 생애에 나를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가치 있어 뵈는 뭔가를 심문하듯 수집했다. 아이들이 배열, 분류, 조작을 통해 바깥세상을 학습하기 위해 모으는 것관 당연히 달랐다. 아무튼 크리스티 경매에까지 참가할 만큼 무리수를 두었던 치펜데일 풍 녹색 소파, 그렇게 발화된 빈티지 가구 모음, 중공군마냥 어깨까지 두를 듯 스무 개도 넘는 시계, 폭과 색만 좀 다를 뿐 그게 그거인 줄무늬 티셔츠, 방 두 개를 메운 책, 그리고 청바지 또 청바지…

수집에 대한 논의의 중심에는 흥미로운 모순이 숨어 있다. 뭔가 모으는 취미처럼 익숙한 게 없지만, 그만큼 나가떨어지기 쉬운 습벽도 없다. 수집은 일종의 뜨거운 오락이지만, 단순한 취미 이상이고 풍요로운 기술이며 이윽고 삶 자체를 반영한다. 한편 사춘기가 지나면 흥분은 식는다. 잠복되었던 습벽은 중년 남자의 어느 시기에 다시 출몰한다. 그때, 간절히 갖고 싶은 게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걸 진작 알아챘다 해도 멈출 수 없다. 그게, 없을 때의 공허보단 낫기 때문에.

수집하는 형태는 나이, 연령, 직업, 사회적 지위에 의해 다양하게 분류되지만 축적, 질서, 보유에 대한 욕구로 이루어지는 건 똑같다. 그런데 뭔가 탐구하고, 주문하고, 손에 넣는 것까지의 과정, 갖고 싶고 가져야 하는 목록이 열망과 융합되는 과정을 보면 수집은 어쩜 성스러운 활동 같다. 유일한 걸 허락할 수 없는 인간관계는 끝없는 근심의 원천이되, 물건이 주는 감흥은 범위 넓은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열망은 심지어 신성까지 갖춘다. 화석 수집가가, 신의 피조물 중 이처럼 특별한 게 없고, 그게 오직 자기만의 무량한 기쁨을 위해 생성됐다고 믿듯이. 결국 수집 행위가 그토록 만족스러운 이유는 단순한 탐욕이 아닌 추가된 ‘사랑’ 때문이다. 가끔, 수집품들을 은밀한 곳에 숨기곤, 옷깃을 내보이듯 조금씩 내비치는 수집가가 성도착자 같을 때도 있다. 수집 욕구는 성적 발달단계와 닮은 데다, 성도착이란 본디 본능을 채우려는 행위 아닌가. 사물 자체가 아닌 광기를 통해 수집 행위의 극치를 느낀다면 필시 수집이 성욕까지 대신하리라. 이런 열광은 우표 수집가건 다이아몬드 감식가건 똑같다. 수집가는 수집품을 사랑하고, 감식가는 수집가의 컬렉션에 매료된다는 차이뿐.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하나만 빼고 다 가진 인사가 있다 치자. 누락된 한 가지는, 설사 후진 작품이라 해도 베이컨의 목록을 완성시킨다는 가치가 있다. 마지막 목표는 그 목록의 상징과도 같아서, 기어이 가지려는 애통한 순례가 시작되면 모든 소장품을 합친 것만큼의 무시무시한 가치를 지닌다. 마지막 과녁 없이는 수집이 끝난 게 아니라서!

하지만 무자비한 열의로 찾던 것을 갖고 나면 모든 게 변한다. 기쁨이 이렇게 빨리 식다니. 수집품이란 게 지각 없는 개가 물어다 준 허상일 뿐이었나? 그게 맹목적인 수집 욕구나 화학적 불균형에 불과했나? 수집하고 싶은 마음이 당뇨 같은 하나의 질병이라면 무엇이 인슐린 역할을 할까? 당뇨병 환자들은 인슐린을 멈추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안다. 결국 수집하지 않고 잘사는 방법은 수집하지 않는 길밖에 없다.

백화점에 갈 때마다 단테의 시구를 떠올린다. “이곳에 들어오는 이여. 희망을 버려라.” 하지만 모든 목록을 다 채우는 건 수집의 죽음과 같아서, 다 채우지 못한 어떤 부재는 죽음을 미리 연습하게 해준다. 그러니, 뭔가 모으고 있을 때라도 마지막 하나는 찾지 않을 테다. ‘없다는 것’은 훨씬 특별한 가치를 주니까. 그래서 늘 김완선의 노래를 부른다. 그래, 처음부터 이 세상에는 나만의 것이 없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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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