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영화제에 대해 할 말이 있어요

2011.05.24GQ

영화제의 규모가 커졌다. 궁금증은 더 커졌다. 세 명의 프로그래머에게 물었다.

대부분의 영화제들이 프리미어(최초 상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 한번 놓친 작품은 다음 영화제에서 거의 볼 수 없다. 영화제 간의 연속적인 상영이 어려운 이유가 뭘까?
박도신(부산 영화제 프로그래머)
프리미어를 고집하는 이유는 영화제를 평가하는 기준의 하나로 최초 상영 편수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최초 상영작을 가지고 오려한다. 다른 영화제와 같은 영화를 틀면 영화제의 가치가 떨어지니까. 사실 최초 상영은 일종의 관객에 대한 배려다. 우리 영화제 아니면 보지 못하는 영화를 개발하는 건 프로그래머의 의무고. 단편은, 이전 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영화를 재상영한 경우가 있었다. 연속 상영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박진형(부천 영화제 프로그래머)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는 것은 영화제의 질적인 문제와 연관된다. 오히려 영화제에서 항상 새로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건 많은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하는 한계를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상영이 안 된 다양한 영화들을 소개하는 건 의미가 있다. 영화제는 기본적으로 축제다. 각기 다른 영화제를 연속적인 맥락에서 볼 수는 없다. 각 영화제는 독립된 현장성으로 이해하는게 좋다. 부천 영화제는 한 영화제에서 다양한 영화가 상영되고 그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을 중요시한다.
조지훈(전주 영화제 프로그래머)
전주영화제는 꼭 프리미어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되도록 우리나라 최초 상영은 고집하지만, 월드 프리미어나 아시아 프리미어는 중요하지 않다. 이번 개막작도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 받은 작품을 선정했다. 프리미어 정책은 사실 큰 규모 영화제에서 고집하는 부분이다. 어쨌든 다른 영화제와 겹치지 않게 프로그램을 짜려는 이유는 영화제 간의 성격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화제가 된다고 해서 영화제 특성에 맞지 않는 작품을 소개할 순 없다.

영화제가 최초 상영 편수, 총 영화 편수 등 양적인 부분에만 신경 쓴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 평가에 정량평가가 포함되어 있고, 예산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박도신
좋은 평가를 의식해서, 많은 영화를 확보하기 위해 더 뛰다보니, 아무래도 영화제 사이에서 프리미어가 과열될 수 있다. 하지만 타 영화제와 문제가 될 정도로 프리미어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박진형
예산과 직결되는 문제기 때문에 평가 기준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평가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실질인 영화제의 발전과 좋은 행사를 치르는 데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영화제와 정부 사이에 소통이 필요한 건데, 다행히 작년부터 그런 노력들이 있다.
조지훈
어떤 평가제도가 만들어지든 모든 영화제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대부분의 영화제가 각각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약간의 불만은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건 영화제 평가제도를 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영화제에서 최초로 볼 수 있는 영화들이 많지만 그 기회는 대부분 2회에 그친다. 왜 영화제 상영작들은 대부분 2회 상영만 하는 것일까? 영화의 편수를 줄이고 여러 번 상영할 순 없는 건가?
박도신
인기가 있을 거라고 판단한 영화는 이원화 상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배급사에서는 2회 상영 후 다른 영화제로 프린트를 보내 줄 것을 요청한다. 다음 영화제로 가는 스케줄이 맞아야 하니까. 최초 상영의 경우에도 영화가 너무 많이 공개되는 것을 꺼린다. 2회 상영에만 국한하는 것은 외부적 요인 때문이다. 영화제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상영
횟수는 대부분 영화배급사의 요구를 반영한다.
박진형
언제 극장 개봉을 앞둔 영화인지 고려해서 조절한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2회다. 세계적인 관례로 일종의 기준이라고 볼 수 있다. 칸과 베를린은 모두 2회 상영을 기준으로 한다. 또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는 영화제 입장에서 보면, 한 영화만 여러 번 상영하게 된다는 형평성 문제도 있다. 장사가 잘 되는 영화 상영 횟수만 늘린다면 영화제의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이다. 소개하는 모든 영화에 동일한 기준이 필요하다.
조지훈
전주국제영화제는 2회 상영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영화를 3회 상영으로 바꿀 계획이다. 그 이상은 극장 개봉이나 다름 없어서 힘들다. 상영 편수를 줄이면서 상영 횟수를 늘리는쪽으로 나가고 있지만, 사실 영화관의 물리적 조건이 별로 좋지 않은 이유도 있다. 영화 편수를 늘리기에는 상영관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영화제는 비주류 영화를 보는 마지노선이 되었다. 최근 영화제들은 매번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정작 비주류 영화의 개봉에 대한 관심은 크게 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박도신
영화제는, 영화 자체보다도 축제 분위기 때문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볼거리가 많으니까. 하지만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니아층으로 한정되어 있다. 한 영화제를 보러 오는 관객들이 다른 영화제에도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관객의 폭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까지 결과로서는 미진하다. 상업영화에 만 익숙하던 일반 관객들에게 예술 영화도 재미있다는 생각을 들게 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박진형
상업영화만 보는 관객들이 영화제를 찾는 경우는 드물다. 영화를 적극적으로 보는 사람들만 예술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배급하는 분들도 불평이 많다. 영화제에서 반응이 좋아서 수입해도, 그런 영화들이 흥행까지 잘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 영화는 영화제에서만 해야 돼”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인식이 갈수록 공고해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영화제가 독립영화에 관한 흥미를 일으키면 이것을 바탕으로 마케팅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다. 영화제를 통해 이삼백 명 관객이 본 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대신, 그것이 개봉했을 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는 전초라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조지훈
최근 전체적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수가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운로드를 통해 영화를 쉽게 접하면서 관객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특히 예술영화는 주변 극장에서는 개봉하지 않고 예술 전용관 같은 소수의 영화관에서만 개봉하니까 관람하기가 더욱 불편하다. 반면 영화제는 하나의 이벤트라고 여겨서 많이들 찾는 것 같다. 영화를 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겸해서 전주에 오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제에서는 반응이 좋다가도 정작 영화관에서 개봉하면 반응이 싸늘한 경우가 많다. 일단 가서 보면 좋은 영화들인데, 영화관에 가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생기는 간극 같다.

한번 영화제에서 소개된 영화는 다른 영화제에서 상영되지 않기 때문에 경쟁이 심할 것 같다. 영화를 선점하기 위한 어떤 노력들이 있나? 아니면 서로의 영화제를 위해 안배를 하는 건가?
박도신
부천 영화제나 전주 영화제와 다르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기가 겹치는 군소 영화제들과 경쟁 아닌 경쟁을 해야 한다. 다행히 부산 영화제가 세계적으로 자리를 잡아서 수월한 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놓치는 영화들도 있다. 또 세계적으로 영화제가 급속도로 늘어나서 다른 나라 영화제와도 경쟁해야 한다. 국내 영화제 끼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아예 영화가 제작될 때부터 배급까지 지원하는 노력을 겸하고 있다.
박진형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인맥이라서 초청된 감독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배급사, 제작사들과는 더욱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 영화제에 대한 믿음을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리도 아무 영화나 가지고 올 수는 없다. 영화제의 성격에 맞춰서 영화를 수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제를 15년 정도 하다 보니까 어떤 관객들이 매년 찾는지 알게 되었고, 그만큼 관객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수급한다. 또 부천 영화제만의 특색이 도드라지기 때문에 우리 영화제에 어울리는 영화는 다른 영화제에 안 어울릴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영화가 꾸준히 나온다는 것이다. 영화가 일찍 완성되고 일찍 개봉하면 전주 영화제를 선택하고, 완성 시점이 가을이면 부산 영화제를 선택하는 것 같다. 영화배급사가 시기에 맞는 선택을 할 뿐이다.
조지훈
영화제에 영화를 가져오는 것은 영화를 수입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한마디로 영화제는 작은 영화 수입사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영화 수입사가 관심을 갖지 않거나 망설이는 영화를 주로 선택한다. 전주 영화제가 소개한 영화가 곧 다른 영화 수입사들도 수입하고 싶어하는 영화가 되게끔 노력한다. 사실, 다른 영화제를 고려하는 것보다는 차별성을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제의 크기가 커지면서 상업화된다는 비판도 받는다. 만약 예산 때문이라면 5천원으로 고정된 입장료를 올리는 방안도 있지 않을까? 그건 아예 고려하지 않는 건가?
박도신
입장료 인상은 매년 검토하는 부분이다. 매년, 내년에 올리자는 식으로 15년이 지났다. 입장료를 갑자기 올린다는 것은 조심스럽다. 관객들이 가격에 민감할 수 있다. 올해도 검토 중인데, 가격이 오르면 수익이 발생하겠지만, 사실 티켓 수익이 차지하는 부분이 그렇게 크진 않다. 돈을 올렸다고 큰 돈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또 입장료를 올려서 돈을 벌어도 난감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올해는 티켓 가격인상을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 같다. 영화제 관계자 사이에서‘ 이제는 올려야 하지 않을까?’하는 의견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박진형
영화제는 비영리사업이고 공공재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15년 동안 가격이 한 번도 안 올랐다는 건 좀 부담스럽다. 수익을 발생시켜 자기 부담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부분이 필요하다. 하지만 공공재의 성격이 있는 만큼, 저렴하게 즐기는 것에 중점을 두자는 생각도 만만찮다. 가격이 저렴해서 생기는 또다른 문제는, 오히려 저렴한 가격 때문에 티켓을 사두고도 정작 관람하러 오지 않는 관객이 있다는 것이다.
조지훈
티켓 판매 가격에 대해서는 전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경기도 어려운데 가격을 올리긴 쉽지 않다. 영화제는 주어진 예산을 잘 활용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영화제를 처음 찾는 관객들이 점차 늘어나는 상황에서 가격 인상을 통해 진입 장벽을 높이기는 어렵다. 티켓 가격이 낮으면 아무래도 접근성이 높아지니까.

영화제 스케줄에 맞춰서 영화를 챙겨 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영화제 이후에 영화를 볼 수 있게 하는 대안은 없을까?
박도신
영화제가 영화를 소개만 하는 시기는 지났다. 좋은 영화를 상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배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영화 후반 작업 지원도 하고, 스크립트만 본 상태에서 현금 지원도 한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배급 경로를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선댄스 영화제>는 자신들이 만든 채널을 통해 판권을 산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올해가 지나면 뭔가 가시화될 것 같다.
박진형
올해 부천 영화제가 끝나면, 부천과 경기지역에 있는 공공 상영관을 중심으로, 반응이 좋았지만 수입하기 어려운 영화를 다시 상영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할 예정이다. 서울 쪽 예술영화 전용관과도 이야기 중이다. 첫해이기 때문에 예산 문제가 있고, 반응을 살펴야 해서 아주 많이 상영하진 못할 것 같다. 일단은 실험적으로 운영해보고 내년부터는 더 잘할 수 있도록 하려고 배급 업체들과 이야기 중이다.
조지훈
전주 영화제는 2009년부터 독립영화 판권 배급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영화제가 영화 판권을 직접 구입해서 개봉하는, 말하자면 영화제가 영화배급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일반 영화사에 비해 수익면에서 자유로운 편이어서, 영화제에서 외면당했던 영화들을 개봉할 수 도있다. <바흐 이전의 침묵>부터 1년에 2편씩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작년 폐막작인 <알라마르>를 5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아트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션/정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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