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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

2011.07.05GQ

산을 등지고 강에 접한 한옥 대청에 그녀가 눕더니.

강은 흐름을 바꾸지 않았다. 절벽은 지구가 도는 속도로 깎이고 있을까? 이런 밤은 항상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 한옥, 6월 밤의 서늘한 바람. 개구리 수십 마리 우는 소리. 대청에 누워 재잘거리다가 닿은 맨살. 어깨부터 배, 허벅지까지 맞닿아 느껴지는 온기 같은 것들.

우연히 만난 여자였다. ‘우리, 언제 한번 꼭 봐요’ 말하면서 했던 악수 정도로 이 관계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눈을 보면서 잡았던 손, 생각보다 길었던 포옹, 오른쪽 목에 닿았던 여자의 뺨 정도? 둘 다, 한 달에 며칠 정도는 평일에 쉴 수 있는 직업이었다. 사심은 없었고, 우리는 남쪽으로 달렸다. 평일 낮의 드라이브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몇 개의 고속도로를 타고, 몇 개의 휴게소에 멈췄다. 어딘가에서 저녁을 먹고 서울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지치면 죽전휴게소 즈음에서 잠을 청할 수도 있겠지. 거기선 몸이 섞일 수도 있겠지. 기대는 막연했다. 경북 어디서 저녁을 먹을 때, 여자가 종업원을 불렀다.

“고기 먹는데 어떻게 술을 안 마셔요? 여기요~.”

여자의 호기는 교외에서 증폭된다. 이럴 때, 남자의 호기는 감출수록 효과적이다.

“술 마시면 서울 못 가. 그래도 좋아요? 운전할 줄 알아요? 나, 내일 아침에 기획회의 있어.”

빈 잔을 채우면서 여자가 눈을 흘겼다. 근사한 한옥 민박집이 근처에 있다 말했다. 쾌재를 불러야 마땅한 상황인데 마뜩치 않았다. 취기를 빌려 저 팬티스타킹을 벗길 바에야, 백열전구 밑에서 가만히 책이나 읽다 잠드는 게 나을 듯했다. 그러기조차 힘든 날이 몇 달째니까. 하지만 늘 혼자 있고 싶어 하면서 이런 날 꼭 여자를 끌어들이는 이율배반.

“산책하러 가요. 해 뜨기 전에 올라가야지 않아? 지금 걸어요.”

한옥에 짐을 풀고, 소주 몇 잔으로 노곤해진 찰나였다. 여자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대청에 누워 있었다. 산을 타 넘은 바람은 서늘했다. 강 흐르는 소리 사이로 새가 울었다. 내내 음악을 들었으니 이제 읽을거리가 필요했는데, 여자가 맨다리로 나왔다. 계단을 오를 때 엉덩이와 허벅지의 경계가 비치는 저 반바지는 아마 아메리칸어패럴. 일어나라고, 여자가 손을 내밀었을 땐 손목 대신 허벅지를 잡을 뻔했다.

강을 따라 걸었다. 가로등 같은 건 없는데 강변북로보다 밝은 건 무슨 조화일까? 막 보름을 지난 달이 보름 달빛 그대로 기울고 있었다. 강물의 결을 비추고 피부를 흰색으로 만들었다. 창백한 밤의 시작.

여자의 볼에 오른 손등을 댔다. 흰색 목이 움츠러들면서, 고개가 손등 쪽으로 15도 기울었다. 한 발 다가서면 입술이 닿겠지 생각할 때 여자가 오른쪽 어깨로 왔다. 왼손이 척추선을, 오른손이 이마를, 입술이 입술을. 키만 한 바위에 여자의 등이, 티셔츠 속으로 등을 쓰다듬던 왼손이 여자의 엉덩이에. 그리고 앞을 향했을 때 풀리는 무릎. 가끔 옆방 여자가 민망한 줄도 모르고 내는 소리보다 선명한 한숨. 티셔츠와 브라는 모래 위에 떨어져 있었다. 여자가, 강변에 누웠다.

“아! 아야….”

여기저기 묻었던 타액이 바람에 마르는 걸 느끼면서, 여자는 빨간 반바지만 입고 누웠다. 강변 모래는 밟기에만 부드러웠다. 백자 같은 여자 등에 모래가 촘촘했다. 손으로 쓸었더니 우수수 떨어졌다. 바닥엔 희미하게 조약돌 몇 개가 보였다. 벽돌을 괴 놓고 여자를 범하다, “돌 빼고 해 새끼야!” 여자의 말을 허락으로 간주하는 한국 영화가 생각났다. 반바지 사이로 틈이 넓었건만, 무릎이고 날갯죽지고 벗겨지지 싶은 바닥. 드러난 피부가, 속옷보다 쉽게 벗겨진다.

“들어가요. 이대로 좀 걷자. 어때?”

몇 살 어린 여자가 ‘까르르’ 웃었다. 오늘 같은 초여름 밤엔 이 정도의 부끄러움이 딱 좋다. 녹색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청춘, 강에 접하고 있으니 한량, 둘이서 반라로 있으니 원시인 듯도 했다. 손에 든 옷가지로 몸을 가리고 걸었다. 가끔, 서로의 손과 혀 때문에 멈칫하다 지붕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옷가지를 내려놓았다. 여자의 얇은 원단과 속옷이 한 줌이었다. 그녀는 곧 더 많은 걸 내려놓을 준비가 돼 있었다.

형광등은 여러모로 적나라했다. 등엔 아직도 작은 조약돌과 모래의 흔적이 있었다. 그대로, 우리는 좀 누워 있었다. 이제 새 소린 안 들렸다. 대신 스위스든 체코든 다를 것 없을 강물 소리. 왼쪽 어깨 언저리에 여자의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다. 친밀함의 조건은 뭘까? 몸을 섞는다고 사람이 가까워지진 않는다. 외려 멀어질 수 있겠지. 위험한 건 다만, 이대로 둘이서 가만히 있을 때. 여자가, 가리지 않고, 몸에 몸을 의지할 때. 눈과 코와 입술의 굴곡을 내 어깻죽지에서 느낄 때. 그러다 눈이 맞을 때. 여자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을 때. 귓가에 모기 소리가 들릴 때?

“풉. 우리, 여기서도 안 되겠는데?”

시꺼먼 산모기 세 마리가 접시 같은 여자 가슴에 붙어 있었다. 쳐 잡으면 피가 터질 것 같았다. 멀리서 늙은 남자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이유로든) 두 번 정도 좌절된 섹스는 풀이 죽게 마련이지만 이날은 달랐다. 둘이 나체로 있는 게 그저 자연스러웠다. 서울이 아니어서? 평일이라서? 숲 속이어서? 어쨌든 우리는 다 벗은 채, 부끄러움도 없이, 조금 더 뒹굴었다. 마룻바닥에 닿은 등은 차가웠고 맞닿은 배, 얽힌 허벅지, 가슴께가 따뜻했다. 오늘 이후로 서울에 갈 일은 없었으면…. 모래 자국이 박혀 있었던 여자 등엔 이제 가로줄이 가 있었다. 대청 몇 칸이 그대로 배겨 있었다. 엉덩이에 한 줄, 허벅지에 두 줄, 빨개진 무릎.

“오빠 내일 기획회의 있다며, 지치진 않네?”

“거짓말이었으니까.”

(그 반바지는 드라이브 가자고 전화했을 때부터 챙겨 나왔겠지? ‘경마장 가는 길’에서 문성근이 그랬어. “네가 지금 나와의 잠자리를 거부하는 이데올로기는 무엇이더냐?” 핏줄이 푸르스름한 맨다리에 그런 반바지를 입은 너 같은 여자애가 강가로 산책가자 조르는데 마다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는 뭐니? 내일 아침엔 도포라도 걸치고 걸을까? 아까 누웠던 강가에 다시 누울까?) 속으로 삼킨 말들. 두꺼운 이불을 깔고, 알록달록한 홑청을 덮었다. 창호지 발린 문을 열었는데 달이 있었다. 사막에서 이런 식으로 별을 봤던 밤도 있었다. 또 다른 여자애와, 각자의 침낭 속에서. 지금처럼 바람을 맞으면서 몸을 포갠 밤.

“그래? 누군데? 아직도 연락해?”

호칭이 ‘오빠’가 됐을 때 생기는 거리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까운 사이는 아닌 채, 서로 몸만 열었을 때 생기는 친밀함은 또? 오빠라 부르고 반말을 하는 관계에 질투가 개입한 결과, 이 여자는 오늘까지라고 결론 내렸다. 해가 뜨고, 몇 개의 휴게소에 들르고, 서울에선 커피를 마실 것이다. 거기까지다.

나는 돌아누웠다. 섹스 같은 건 포기한 남자처럼 물었다.

“연락하면 왜, 질투가 나나?”

여자의 생머리가 왼쪽 어깨를 가리고 늘어져 있었다. 가슴골은 보름을 막 넘긴 달처럼,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풉, 내가 왜?”

여자가 어딘가를 깨물면서 웃었다. (관계가 조금 더 진전된다.) 가슴께에 있던 여자의 정수리가 아래로, 홑청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밤이 조금 더 길어진다.) 사타구니 언저리에서 이마, 코, 입술, 혀를 차례로 느꼈다. (관계 같은 건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지체 없이 한숨을 내쉴 때, 새벽 2시였다. 여자가 안달 났을 때, 2시 45분이었다. 초음파 같은 신음소리가 강물에 섞였을 때, 시계를 볼 틈은 없었다.

아침엔 여자보다 먼저 눈을 떴다. 강가에 누웠다가 지붕에 의지하다, 이불 속으로 들어간 밤이 끝났다. 주차장이니, 놀이터니, 화장실이니, 강의실 같은 데서 여자랑 잔 적 있다고 자랑하던 남자들은 뭘 한 걸까? 섹스와 스릴은 안 어울린다 생각하면서 홑청을 들추고, 햇빛에 비치는 여자의 몸을 보는 7시. 혼자 걸을까, (그놈의) 책을 펼치나, 아침은 어디서 먹나 생각하다 왼팔을 그녀의 목 아래로 넣었다. 여자가 본능처럼 파고들었다. 이런 안락이 맥락도 없이 따뜻하기만 해서, 다 내려놓고 다시 청하는 아침 잠.

    에디터
    정우성
    일러스트레이터
    Finger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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