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애란이 왔어요 2

2011.07.28정우영

스물세 살인 2002년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무수한 상과 상찬을 짊어진 채로도 무겁지 않다. 그러나 소설가 김애란은 어른이 되는 일의 간단치 않음을 말했다. 그녀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의 제목은 〈두근두근 내 마음〉이다.

원피스는 에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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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라는 골격은 어떻게 나왔나요?
아픈 아이는 좀 나중에 붙은 거예요. 그러니까 최초 설정은 어떤 소년이 엄마 아빠 연애 시절 얘기를 소설로 써서 선물로 드린다, 였어요. 이 아이는 어떤 아이여야 할까, 라는 고민이 나중에 생겼죠. 엄마 아빠의 가장 예쁘고 환하고 새파랗고 싱싱한 시절을 그리는 목소리는 어떤 게 좋을까? 반대로 얘가 그걸 갖지 못한 아이면, 소설을 쓸 때 그 목소리가 좀 달라지겠단 생각이 들었죠. 듣는 사람한테도 그렇고요. 그러다 문득 조로증이 떠올랐지만, 자신이 없어서 한참을 머뭇거렸죠.

어떤 면에서요?
인물이 단지 기능적으로만 움직이면서 의미를 위해 희생되지 않았으면 했어요. 이왕이면 실제 그 아이에 가까워야 하는데, 내가 얘 내면을 잘 그릴 수 있을까 싶었던 거죠. 솔직히 처음에는 내가 얠 좋아할 수 있을지를 확신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나중 되니까 미안하더라고요, 내가 얘를 두려워하고 있구나, 싶어서.

좋아할 수 있을까, 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예쁘게 생긴 아이도 아니고, 제가 잘 모르는 아이잖아요. 하지만 제가 얘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면도 있었어요. 제가 얘를 사랑하겠어!, 하고 주먹을 꽉 쥔다거나 독자들한테 좋아하게 만들겠어, 하고 시작했으면 종이인형 같은 인물이 됐을 거예요. 제가 얘를 두려워하는 건 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거란 걸 알았죠. 내가 이렇게 뒤척이고 고민하는 게, 부끄러운 단어로, 주먹 쥐고 각오하는 방법보다는 돌아가도 맞는 길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책에서 아름이가 부모님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서 그러죠“. 상상보다 사실이 많아야 돼”라고. 그 얘길 들으니까 생각이 나는데, 당신도 같은 고민을 했단 생각이 드네요.
그쵸. 저는 상상과 현실이 섞인 이야기를 좋아해요. 땅바닥만 보고 있으면 가끔은 답답해서요, 단지 상상이라고 하면 까치발만 들어도 공기가 달라지니까요. 그런 환기력이 있어서 스카이 콩콩으로 점프도 시켜보고, 스칸디나비아 반도도 가보고 그랬어요. 하지만 그건 잠깐 그리는 창문이고, 사실은 그 창문이 붙어 있는 벽과 그 집에 더 관심이 많아요. <두근두근 내 마음>에서도 텀블링이 나오는데, 얼마만큼 높이 뛰고 얼마만큼 기발하게 멀리 가느냐가가 아니라 그렇게 뛰어오른 다음, 다시 어디에 착지하느냐, 착지의 자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죠. 단지 리얼리즘 같은 게 아니라 자주 말씀하시는 것처럼‘ 쑥스러운 단어’로‘, 쓰는 사람의 윤리’에 밀접한 것 같아요.
하하. 예. 그래서, 공기 자체는 온기가 좀 있지만 서하 얘기도 그렇고, 그렇게 다시 얘가 내려온 자리들을 좀 다져서 균형을 맞추고 싶었어요.

블로그나 리뷰에 인용된 문장들을 보면, 당신의 그런 의도를 좋게 본 독자가 많은 것 같던데요? 문장과 문장 사이의 낙차는 음악처럼 감정을 도약시키는 어떤 면이 있잖아요.
말도 안 되는 꿈이긴 하지만, 이게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제 소설이 노래처럼 읽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문장으로 할 수 있었던 건 읽는 분들의 숨 박자나 호흡에 맞게 나오도록 하는 거였고요. 저는 음악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대성당’의 한 장면이에요. 고딕 성당을 한 번도 못 본 시각 장애인에게, 별로 친하지도 않은 시큰둥한 남자가 손을 잡고 연필로 성당을 그려서 보여주거든요. 그 단편의 주제와 상관없이 저는 음악을 들을 땐 그 이미지가 자꾸 떠올라요. 음악을 만든 사람이든 하는 사람이든, 제가 시각 장애인인데, 저한테 대성당을 보여주는 느낌이거든요.

당신의 소설을‘ 기품’이라는 시각에서 읽은 문학평론가 박준석의 글이 기억에 남아요. 기품 있는 개인이 내는 목소리 역시 음악의 내밀한 리듬과 닮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농담이 주는 리듬이든, 문장이 주는 리듬이든, 정서가 주는 거든. 자존감이 있는 인물들이면 좋겠는 게, 그 인물들한테 숨을 불어넣어 주는 방식으로, 대사든 문체든 혹은 감정의 결이든, 리듬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음악에서는 작품에 대한 애정이 음악가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지기 십상이죠. 하지만 문학은 꼭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일치시키지 않는 게, 독자 분들에게 좋을 것 같아요. 하하. 그래야 안 다치실 것 같아요. 시는 모르겠는데, 소설가들은 어쨌든 땅바닥에 붙어있는 세속적인 느낌이 더 많아서요. 사람은 좋은데 작품이 안 맞는 경우도 있고, 작품은 맘에 드는데 인간적으로 절대 친해지고 싶지 않은 작가가 있을 수도 있고요.

사실 이렇게 물어본 건 10대 소녀인 줄 알았던 서하의 정체가 드러나는 대목 때문이에요. 아름이는 편지의 품성을 곧 그 사람의 품성으로 믿고 있었던 거니까요
막 쓰기 시작할 땐, 연애소설도 쓰고 싶고, 성장소설도 쓰고 싶고, 모든 소설은 추리소설이지, 아니야, 모든 소설은 사실 연애소설이야, 뭐 이런 식이었어요. 일단은 그런 걸 정하지 않고 썼지만, 아름이가 만나는 세상이 우리들의 세상과 닮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얘가 아프다고, 특별히 팬시한 세상을 만들어서 선물하면, 그건 배려도 선물도 아닐 것 같았어요. 우리는 다 실망하고 상처받고 오해하고 자빠지고 배신하잖아요. 한편으로는 아름이가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실패할 기회를 한 번 줬다고 생각하면, 독자 분들이 서하를 덜 미워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또 하나는, 알고 보면 아름이도 작가고 서하도 작가잖아요. 이것이 작가가 작가들에게 건네는 안부 인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모든 문학은 쓰기에 대한 쓰기로 읽힐 수밖에 없는 어떤 운명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당신의 이번 장편에서는 꽤 전면적이랄까요.
쓰다 보니까 그렇게 되더라고요. 낱말 카드도, 또 연애편지도 그렇죠. 편지라는 게 문학의 속성일 수도 있고요. 대놓고 드러나진 않아도, 약간은 그렇게 읽힐 수 있는 여지도 있었으면 했어요. 아름이가 그러는 것처럼, 문학 자체가 인간들이 옛날부터 죽음이랑 싸워온 방식이기도 하잖아요.

문득“ 사랑스러워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게 만드는 데는 실패할 것 같단 예감이 드네요. 사실 억지로라도 그렇게 말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거든요.
하하하. 그땐 말 그대로 선배들 앞에서 까분 거예요.

당신이‘ 선배’인 날도 오겠죠?
그렇겠죠? 옛날에 이문재 선생님이 쓰신 산문집에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선생님도 어느 정도 연세가 있을 땐데,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들었다고. “선배들은 그 많은 술값이 다 어디서 났을까?” 작품이나 뭐 다른 걸로 선배인 것보단 나중에 후배들 술 사줄 여유는 있는 선배이고 싶어요. 물론 선배나 후배보다는, 나이 차가 좀 있더라도 친구가 제일 좋긴 해요. 작품으로 만나서 그런지, 동료 의식이 더 강하거든요.

    에디터
    정우영
    포토그래퍼
    신선혜
    스탭
    스타일리스트/ 김홍지, 헤어/ 한지연, 메이크업/ 장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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