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가 끝난 후

파리의 여름 날씨가 34도까지 오른 날, 마레의 쇼룸에서 2012 S/S 남성복 쇼를 막 끝낸, 드리스 반 노튼을 만났다. 그를 만나고 나니 날씨가 돌연 서늘하게 느껴졌다.

어젯밤 쇼가 끝나자마자 한 일은 뭔가?
오랫동안 함께 일한 팀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쇼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끝나면 감성적이 된다. 컬렉션은 절대 나 혼자서는 못한다.그래서 언제나 쇼가 끝나자마자 팀원들에게 고맙다, 수고했다는 말을 꼭 전한다.

쇼 시작 전에 나눠준 새빨간 술은 너무 세서 잠이 번쩍 깼다.
나도 정확한 이름은 모른다. 빨간 소다수가 섞인 보드카 종류였던 것 같다. 확실히 도수는 셌다. 그래서 취했나?

한 모금 마시고 바로 내려놨다. 당신의 쇼장에 가면 늘 마실 게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더운 날 낮엔 아이스크림이 있었고, 해질 무렵쯤엔 칩스와 맥주가 나왔다.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길 좋아한다. 그건 손님을 맞는 호스트에겐 가장 기본적인 거다. 쇼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약간의 마실거리 하나로 쇼장 분위기가 단번에 긍정적으로 바뀐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음식 테이블을 캣워크로 사용한 적도 있다.
50번째 쇼를 기념하면서 아주 긴 캣워크를 만들었다. 테이블 가장자리에 모든 사람이 쭉 앉아 저녁을 먹으면서 쇼를 봤다. 손님 수대로 총 2백50명의 웨이터가 동원를 했었다.

어제 해가 질 무렵이었던 쇼장은 후끈했지만 불쾌할 정도는 아니었다. 근데 바짓단도 셔츠도 두 겹, 트렌치코트 밑단도 두 겹이었다. 뭔가 겹치거나 이중적인 것에 끌리나?
난‘ 더블’이 좋다. 미묘하게 겹쳐 입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이번엔 양말을 사용하기 싫었다. 그래서 바지 밑에 조깅 바지의 밑단 세부를 겹쳤고, 반바지 밑에 또 긴 바지를 입히기도 했다. 남자답게 양말을 신지 않아도 단정하고 말끔한 인상을 주고 싶었다.

남자답게?
내 옷에서‘ 남자다운’ 건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옷의 양감과 길이, 세부를 자세히 보면 조금씩 과장되어 있다. 이건 남자들이 입기 편한 옷을 만들기 위해서다. 전통적인 남성복 재단과 클래식함, 데이비드 보위는 항상 내 컬렉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시즌 당신의 런웨이엔 여러 명의 데이비드 보위가 있었다. 첫 번째 룩이 등장했을 때는 음악 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들렸다. 그래서 처음엔 음악 없이 쇼를 진행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데이비드 보위의‘ 골든 이어스’만 반복됐다. 부르델 뮤지엄에 크게 울려퍼지는‘ 골든 이어스’는 좀 의외였다.
지난겨울 쇼는 나에게 정말 특별했다. 데이비드 보위는 청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영웅이다. 골든 이어스만 반복한 건 그것이 정말 복잡한 곡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곡과 함께 틀 수도 없었다. 또 그 곡과 잘 어울릴 만한 다른 곡을 찾을 수도 없었고.

음악이 한 곡만 반복되는 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지난 시즌 당신의 쇼를 보면서 남자가 가진‘ 글래머러스’함이 전혀 느끼하지 않다는 데 놀랐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드리스 반 노튼 런웨이에 선 남자는‘ 글래머러스’하고 화려하다. 지난 시즌엔 특히 더 그랬다. 그런데 당신은 언제나 셔츠와 팬츠 차림이다. 셔츠 안에도 티셔츠를 겹쳐 입고, 셔츠는 늘 바지 속에 넣어 입는다. 당신이 만드는 런웨이의 남자들처럼 화려하게 입고 싶을 땐 없나?
티셔츠와 셔츠, 치노 팬츠는 내 유니폼이다. 패션이 가진 화려함은 나와 잘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그건 그냥 내 성격이다. 패션을 만들어가는 건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화려한 옷들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데이비드 보위 같은 경우는‘ 글래머’와 실생활을 잘 결합시키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를 좋아하지만 그와 나는 다르다.

입고 싶은 옷을 만드는 게 아니었나?
25년 전 내가 젊은 디자이너일 때는 그랬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수록 드리스 반 노튼을 입는 사람이 나와 함께 늙어간다는 게 싫었다. 나처럼 쉰 살이 넘은 사람들을 위한 옷을 디자인하고 싶지도 않았고. 젊은이들은 내 나이 또래보다 더 많은 종류의 옷을 입을 수 있고, 많은 실험을 해봐야 한다.

그럼 10대 때는 어떤 옷을 입었나?
그땐 나도 아주 미쳤었다. 1970년대 후반 열여덟 살이었을 때 50년대 빈티지가 유행해서 그런 옷들을 막 사 입었다. 어떨 땐 낭만적인 남자로 보이고 싶기도 했다.

벌써 50대가 되었나? 당신을 처음 본 건 2004년 겨울 멀티숍 레클레르에서였다. 그날은 당신의 책 출판 기념회였는데, 참 수줍어 보였다.
난 모든 파티에 다니는 그런 디자이너가 아니다. 사람이 많고 화려한 장소는 불편하다.

많은 인터뷰에서 파티보다는 가드닝이 좋다고 밝혔다. 매우 큰 정원을 가지고 있다고도 들었는데, 지금쯤이면 전문가 다 됐겠다.
가드닝이 얼마나 어려운데 벌써 그렇게 됐겠나. 내 정원은 빡빡한 패션 세계를 벗어나는 유일한 곳이다. 그곳에서 난 차분함과 활기를 얻는다. 휴식을 취하면서 깨닫는 것도 많다.

주로 어떤 것?
집중하고 관심을 쏟으면 결국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자연은 그게 통하지 않는다. 비가 오면 막을 수 없고, 햇빛이 나면 그걸 가릴 수 없다. 그건 누구도 바꿀 수 없는 현상이다. 그래서 뭐든 흐르는 대로 즐기게 된다.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이다.

유럽 사람들은 보통 한 달 동안 여름휴가를 보낸다. 당신도 그런가?
이탈리아 카프리에서 3~4일 정도 머문다.

긴 휴가를 싫어하나? 설마?
그렇다. 카프리는 좋은 곳이지만 거기서 오랫동안 있을 순 없다. 내 정원이 있으니까 휴가 때도 거기서 꽃과 풀을 가꾸며 지낸다. 그 외엔 일만 하며 지낸다. 난 일 중독자다.

남성복이 끝나고 두 달 지나면 여성복 쇼다. 여성복 쇼 준비는 다 됐나?
난 남성복과 여성복 컬렉션을 동시에 준비한다. 그래서 지금 여성 컬렉션은 중간 단계에 와 있다. 8월 말까지 모두 끝내야 하는데, 당신이 말한 것처럼 유럽은 이제 휴가라 모든 공장이 3주간 쉰다. 그래도 이미 모든 원단이 공장에 다 들어가 있으니 걱정은 없다.

남자 옷과 여자 옷을 동시에 만드는 건 어떤 기분인가?
이 두 개의 컬렉션은 언제나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내가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절개다. 특히 재킷을 만들 때 예민하게 절개를 따진다. 남자 옷은 아무래도 여자 옷보다 제한이 많다. 남자 옷은 화려하게만 만들 수 있는 옷이 아니니까.

당신의 옷이 화려해 보이는 건 실루엣보다는 소재나 세부가 화려해서 그런 것 같다.
맞다. 많은 세부를 요구하는 디자인이기 때문에 프린트만 담당하는 사람, 자수만 놓는 사람, 신발과 가방만 담당하는 사람 등 총 20명 정도의 디자이너와 함께 일한다. 난 이 모든 작업을 조직화시키고 조정한다. 직원들은 내가 놀랄 정도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곤 한다.

드리스 반 노튼의 컬렉션에는 명확한 주제가 보인다. 제프 베르헤인의 작품, 보 브루멜, <위대한 개츠비>나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브라이언 페리, 데이비드 보위 같은.
예술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더 새로운 것을 보게 되고,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엊그제는 쇼 시작 세 시간 전에 아니시 카푸어의 전시를 후다닥 보고 왔다. 그날이 마지막 날이라 꼭 시간을 내야만 했다. 10분 만에 전시를 둘러봤는데, 결코 잊을 수 없는 10분이었다. 이런 것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쇼를 시작하게 되면 단지 옷만 보여서는 안 된다. 장소와 음악, 헤어와 메이크업 등 모든 것이 반드시 완벽한 하나의 그림이 돼야만 한다.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재미있었던 건?
<아이 엠 러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영화였다. 장면 하나하나가 다 기억에 남는다. 정말 아름다운 영화다.

당신은 왠지 향수보다 비누를 즐겨 쓸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보이나? 좋아하는 향수가 얼마나 많은데. 특히 프랑스 전통 향수 제조회사인 카롱CARON의 향수를 즐겨 쓴다.

혹시 드리스 반 노튼 향수나 화장품을 생각해본 적 있나?
미래에 뭘 하게 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만, 현재 그런 계획은 없다. 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쁘다. 내 일을 더 잘 조정하고 노련하게 해내는 게 우선이다.

당신이 향수를 만든다면 어떤 향일까? 당신의 정원에서 잎사귀를 따서 만들 것 같다. 이름은‘ 드리스의 정원’ 어떤가?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뭔가 일을 더 벌리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드리스 반 노튼의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내 옷을 입는 사람들은 옷보다 인격이나 성격이 드러난다는 생각. 기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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