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조코비치 시대

7월 어느 날, 조코비치가 흰 옷을 입고 윔블던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맛있는 녹색 잔디를 우걱우걱 씹어대면서.

의상 협찬/ 테일러 코트는 루이지 비앙키 만토바, 조끼와 셔츠는 샤르베
의상 협찬/ 테일러 코트는 루이지 비앙키 만토바, 조끼와 셔츠는 샤르베

 

의상 협찬/ 코트와 바지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양말은 칼제도니아, 신발은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표지 의상 협찬/ 정장은 에르메네질도 제냐, 셔츠는 Z 제냐
의상 협찬/ 코트와 바지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양말은 칼제도니아, 신발은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표지 의상 협찬/ 정장은 에르메네질도 제냐, 셔츠는 Z 제냐

완벽한 백핸드 드라이브, 빠른 발을 이용한 코트 커버리지, 부드러운 서비스 리턴까지. 조코비치에겐 도무지 약점을 찾아볼 수가 없다. “축구나 스키도 재미있었겠지만, 이 정도면 아버지 고집을 꺾길 잘했죠?” 과연 올해가 가기 전에, 조코비치가 한 번이라도 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의상 협찬/ 정장과 셔츠, 포켓스퀘어 모두 구찌 헤어&메이크업/ 베르너 아모트(페이스 투 페이스) 패션 어시스턴트/ 발렌티나 보치아디 패션 에디터/ 로버트 라벤스타이너
의상 협찬/ 정장과 셔츠, 포켓스퀘어 모두 구찌 헤어&메이크업/ 베르너 아모트(페이스 투 페이스) 패션 어시스턴트/ 발렌티나 보치아디 패션 에디터/ 로버트 라벤스타이너

“자자, 가만히 좀 있어봐. 카메라 쳐다보고.” 조코비치는 애완견 푸들 피에르를 꼭 껴안았다. 조코비치는 모든 대회에 출전할 때 피에르를 대동한다. “진짜 좀 화났었어요.” 윔블던은 피에르의 입장을 불허했고, 관중석에서 그의 경기를 지켜봤다. 그러고 보니, 서로 좀 닮은 얼굴.

수년간 지속된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의 경쟁구도는 흥미로웠다. 페더러의 독주체제가 굳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젊은 나달이 왕좌에 올랐다. 그리고 1년. 56주 동안 1위를 독식하던 나달이 2인자로 내려앉았다. 페더러와 합치면 7년 5개월 동안 지속된 ‘2인천하’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제 겨우 스물네 살, 세르비아 전차라 불리는 조코비치는 2011년 윔블던 결승에서 라파엘 나달을 꺾으며 우승했다. 올 시즌 성적은 무려 48승 1패. 이미 결승에 진출하는 순간 세계 랭킹 1위를 확정한 상태였다. 가히 무적이라 할 만한 무시무시한 성적표.

시작은 지난 연말에 열린 국가대항전 데이비스컵에서부터였다. “모든 건 데이비스컵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내 아들이 그때 뭔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죠. 큰 경기에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깨우친 것 같았어요” 조코비치의 어머니 디아나의 말이다. 데이비스컵에서 조코비치가 이끄는 세르비아는 프랑스를 꺾고 우승했다. “엄마 말이 맞아요. 우리 엄만 나보다 날 더 잘 알죠. 데이비스컵 우승 이후로 난 언제나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어요. 테니스 코트에 서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더라고요.” 시즌 첫 번째 메이저 대회인 호주 오픈에서도 거칠 것이 없었다. 조코비치의 경력을 통틀어 두 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 나달은 부상으로 8강에서 탈락했고, 결승까지 올라온 앤디 머레이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1987년 5월 22일, 벨그라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테니스에 재능을 보였다. 아버지는 그가 자신처럼 축구나 스키 선수가 되길 바랐지만, 조코비치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네 살에 테니스를 시작한 그는 금욕주의자를 방불케 할 만큼 테니스에만 전념했다. “일곱 살 때부터 세계 1위가 되는 꿈을 꿨어요. 메이저 대회 중에서도 가장 우승하고 싶었던 대회는 윔블던. 아시다시피 우린 내전을 겪었고, 꿈을 지키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조코비치는 어린 시절 NATO의 공중폭격으로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다. “폭발 경고 사이렌이 울려도 훈련을 멈출 순 없었죠. 그런 경험이 지금 코트에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후 열두 살 때 뮌헨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엄격한 지도자로 유명한 니키 필릭의 지도를 받았다. 신체적 우위에서 비롯된 무시무시한 스트로크와 별개로, 실책이 적고 기본기가 뛰어난 조코비치의 경기력은 어릴 적부터 꾸준히 쌓아온 훈련의 결실인 것이다.

마침내 지난 5월, 마드리드 마스터스. 조코비치는 수많은 스페인 관중 앞에서 당시 랭킹 1위였던 라파엘 나달을 무찔렀다. 조국에서, 게다가 클레이 코트에서 압도적인 승률을 자랑하는 라파엘 나달은 동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 주 후, 로마에서 열린 이탈리아 인터내셔널에서 다시 한 번 조코비치는 나달을 제압했다. 철옹성 같던 나달의 왕좌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존 매켄로의 시즌 최다 연승기록인 42연승 또한 그의 가시권에 들어왔다.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프랑스 오픈이 열리기 이전, 라파엘 나달은 우승자로 조코비치를 지목했다. 조코비치가 우승할 경우 매켄로의 기록을 갱신하게 되는 아주 중요한 대회. 그러나 그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전 천하무적이 아니에요. 승리에 대해 생각하진 않아요. 그건 패배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요. 정신적으로 그렇게 접근하는 건 좋지 않아요. 단지 하나의 경기, 이겨야할 한 번의 시합에 대해서만 생각하죠. 이제껏 그렇게 해 왔고, 잘 풀리고 있어요.” 결과론적으로 윔블던 우승까지 해치운 지금, 그가 프랑스 오픈에서도 우승했다면, 매켄로의 기록을 넘어 기예르모 빌라스가 1977년 세운 역대 통산 최다 연승인 46연승도 깰 수 있었다. (무자비한 크로스 백핸드 스트로크로 테니스 팬들을 경악하게 만든) 리샤르 가스케와의 16강전을 떠올려보면 패배는 더욱 아쉽다. “다섯 달 동안 내삶과 테니스 경력은 최고였어요. 놀라운 기간이었지만, 이제야 마침표를 찍는 것 같네요.” 실망하거나 포기하는 대신, 조코비치는 그가 그렇게 갈망하던 윔블던을 준비했다.

한 번씩 사이 좋게 메이저 대회 우승을 나눠 가진 조코비치와 나달은 결국 윔블던 결승에서 다시 만났다. 윔블던 측에서 조코비치가 항상 대동하는 애완견 피에르의 입장을 불허하는 바람에, 대회 기간 내내 기분이 몹시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렸지만, 결승에선 누구보다 침착했다. 베이스라인을 굳건히 지키며 날리는 폭발적인 스트로크는 제아무리 발빠른 나달에게도 버거워 보였다. 게임 스코어 5대 4에서, 나달의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1세트를 따낸 조코비치는 2세트에서 한 게임만을 내주며 나달을 압도했다. 3세트는 서브가 살아난 나달의 차지. 그러나 네 번째 세트에서 조코비치는 나달의 약점인 백핸드를 집요하게 공략했고, 결국 3대 1로 우승을 차지했다.

윔블던 우승 후 베오그라드 중심가에서는 10만여명이 모여 조코비치의 우승을 축하했다. 그는 조국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젊은이들은 그를 우상으로 받든다. ‘놀(조코비치의 애칭), 당신을 사랑해요’, ‘놀은 왕이다!’ 같은 문구가 넓은 광장을 메웠다.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에요. 이런 걸 만들어줄 수 있는 건 세르비아인들뿐이죠.” 조코비치는 기쁨에 겨워 예정에 없던 세르비아 유행가를 즉석에서 부르며 승리를 자축했다. 자신감 넘치는 인터뷰와 다혈질적인 성향으로 간혹 거만하다는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그는 경기 외적으로도 본받을 점이 많은 사람이다. 콧대 높은 스타의식보다 재치 있는 유머로 항상 동료 선수와 팬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것은 물론 아이티, 일본 등 재해를 입은 국가를 돕는 데도 앞장선다. 그가 라커룸에서 동료들을 완벽하게 흉내 내는 영상은 유튜브에서도 큰 인기를 끌 정도였다. 가장 박수를 많이 받은 것은, 라파엘 나달과 마리아 사라포바의 흉내였다.

“이제까지 사람들이 라파엘 나달과 로저 페더러를 번갈아 외쳤다면 이제는 ‘노박! 노박!’이란 단 하나의 함성이 경기장을 차지하겠죠.” 조코비치의 어머니 디아나는 윔블던 우승을 계기로 조코비치의 시대가 열렸다고 자신했다. “나달과 페더러는 너무 강력해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어요. 몇 개월 동안 계속 이기고 한 번 정도 지면 겨우 가능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되었네요. 결승전은 제가 잔디 코트에서 해본 최고의 경기였어요.” 윔블던 결승이 끝난 후, 조코비치는 벌러덩 코트에 누웠다. 그리고 조코비치답게, 코트의 잔디를 먹었다. “그냥, 별 이유 없었어요. 미리 생각해둔 것도 아니고요. 꽤 맛있던데요? 잘 관리된 것 같았어요.” 새로운 챔피언의, 유쾌한 시대가 열렸다.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