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의 전성시대

아직도 레코드가 나와요? 한국에서 레코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직도 레코드가 나와요?” 레코드를 들고 다니거나 음악을 틀 때마다, 혹은 인터뷰 때마다 듣는 질문이다. “아, 당연하죠!” 라고 이야기하기에 우리나라 실정상 구할 수 있는 곳이 매우 드물기는 하다. (전국의 음반 소매점을 합쳐도 1백 개가 안 되는 마당에 레코드 숍 자체를 찾기가 더 어려운 게 사실이고.) 이 불투명한 미디어의 미래에 대해 엇갈리는 전망이 존재하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수년 내에 메이저 음반사들의 레코드 제작 공장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고, 실제로 홍보용으로 가끔 직배사들에서 흘러나오던 싱글 레코드의 타이틀 수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반면에, 뉴욕의 명소 중 하나인 빅 시티 레코드는 뉴저지에 새로운 지점을 오픈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미 동부의 알렌타운에 위치한 더블 데커 레코드 숍이 몇 년 전 오픈해 점점 그 규모를 확장하고 있는 것도 목격했다. 결국 레코드 사업은 ‘볼륨이 작아지는’ 음반 판매 사업과는 다르게, 누가 더 매력적인 아이템을 신선하게 들여오는 가-에 관련된, 일종의 콘텐츠 사업이나 ‘웰-메이드 컬렉션’ 에 그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월마트’ 같은 시스템이 사라지고, 일종의 ‘편집샵숍 개념이 도입되었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 듯하다. 흐리지만 부분적으로 맑음, 이라고 생각한다. 음반이 대량으로, 큰돈을 만드는 시대는 지났지만, 음반 자체가 제품화되면서 개별 음반이 소소하게 거래되는 형태는 아마도 꽤 오래 지속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컬렉터들을 대상으로 한 리이슈 시장은 꽤 존재하는 편이고, 수년 만에 레코드 공장이 오픈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온다. 레코드는 물리적인 매체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형태다. 앞으로는 디지털 음원과 CD의 구도가 아니라, 디지털 음원과 레코드의 구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박민준 (프로듀서, DJ)

그것은 한마디로 영물 같았다. 잡음도 없고, 노래도 더 많이 담기고, 게다가 크기도 작았다. 이름은 콤팩트디스크. 시디라고 줄여서 불렀다. 중학교 때 잘 가던 레코드 가게에는 시디가 몇 장‘ 전시’되어 있었다. 국내에서 시디가 생산되지도 않을뿐더러 시중에서 구하기도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몇 장은 속에 담겨 있었는데. 당시 그 가게 내부 특유 조명에 반사되어 오묘한 빛을 뿜어대던 그것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몇 년이 지나자 시디는 레코드나 카세트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음반 시장 최대 호황기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프린트들은 1만원 이상의 값을 해내기엔 왜소해 보이고, 디스크나 패키지는 오랜 세월 동안 진화하지 못했다. ‘시디 시대’가 시작된 이래 한 장의 앨범 안에서 커버가 갖고 있던 비중은 상대적으로 하락했다. 작아진 크기와 더불어 많은 제작자나 아티스트들이 커버 아트에 투자하는 비용을 줄였다. 이럴 때 자연스럽게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레코드 시장의 대표 주자로 존재했던 LP, 서구에서는 바이닐Vinyl이라고 더 많이 불리는 고전적 의미의 ‘레코드 판’이다. 컴퓨터가 아무리 진화해도, 컴퓨터가 인간이 직접 연주한 사운드를 대체할 수 없듯이, 그 어떤 최첨단 사운드 재생 기술도 레코드에 담긴 따뜻한 소리를 따라가지는 못한다. 또, 레코드의 위용 넘치는 패키지는 시디의 프린트들을 소소하게 보이게 한다.

91년 사운드스캔이 미국 내 음반 판매량을 집계한 이래 LP는 최근 최고의 판매 기록을 경신해나가고 있다. 2008년에 1백88만 장, 2009년에 2백50만장, 그리고 작년에는 2백80만 장을 넘겼다. 그 비중이 여전히 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유일하게 성장하고 있는 음악의 물리적인 매체라는 점에서 그의의를 찾을 수 있다. 휴대의 불편함을 보완하기 위해 LP 안에 디지털 다운로드 코드를 넣어서 제공하는 것이나, LP의 소리를 곧장 디지털 파일화하는 턴테이블이 보편화되는 추세는 이 상황을 더욱 긍정적으로 보게 한다. 물론 레코드가 음악의 제1매체 자리를 되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레코드는 아티스트들에게는 시디나 MP3보다 더 많은 영감과 동기를 부여하고, 팬들에게는 앨범을 소유하는 더 큰 만족을 주는 최고의 음악 매체다. 분명 음악의 ‘디지털 파일화의 시대’ 한가운데서도 제법 큰 역할을 해낼 것이며 머지않아 국내 음악 시장에서도 레코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단순한 애호가로서의 믿음만은 아니다. -김영혁(소니뮤직 해외사업부 본부장)

영화 에서 주연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가 비틀스의 레코드를 구입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옆에 있는 동료가 “단 13불에 살 수 있는 CD를 두고, 왜 굳이 600불의 비용을 들여 레코드를 사느냐?”고 묻자, 니콜라스 케이지가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비틀스 마니아고 사운드가 더 낫다.” 세계 음악 마니아들의 최고 관심사 중 하나는 레코드다. 그리고 그들은 잘 만들어지고 특별한 가치를 지닌 레코드에 열광한다. 첫 번째 이유는 레코드가 가진 내적 가치다. 아날로그 방식의 녹음과 마스터링을 통해 만들어진 레코드는 보다 자연스럽고 현실에 가까운 소리를 재생한다. 거기에 음악이라는 무형의 대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크고 선명한 커버 아트가 함께한다. 특별히 제작된 커버는 더 큰 면적을 이용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형태와 구조를 보여주기도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시간적 가치다. 레코드 음반의 제작 기술에 따라 그 결과물은 천차만별이다. 잘 제작된 음반을 개인이 소유하는 순간부터, 그 값어치는 구매한 때와는 다르다. 최근에 제작된 레코드일지라도 소장 가치 높은 요소들(예를 들자면, 수준 높은 사운드, 최초 제작, 한정 발매, 완성도 있는 커버 패키지, 중량 음반, 특별 포스터 삽입 등)을 가지고 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는 높아진다. 만일 한류 음반이 잘 녹음되고 잘 만들어진 ‘레코드’로 전 세계에 판매된다면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격 자체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서보익(키오브 대표)

온라인 레코드 숍을 운영하면서, 음반 선택에서 중요하게 참고하는 것 중 하나는, 구매자들의 선호 형태가 이미 앨범으로부터 이피나 싱글(7인치, 10인치 레코드)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주 지향인 레게나 디제이유스DJ-Use에 한정되지 않는다. 수록 시간에 따른 구분이 시디에서는 장점이 되지 못했으나, 레코드에서는 구매 동기가 되는, 꽤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MP3의 시대를 거쳐오는 동안 앨범이 아닌 싱글 단위의 음악에 소비자들이 이미 충분히 익숙해진 듯하다. 즉, 싱글 단위의 분리적 감상 및 소장 방식이 음악소비의 보편적 기준이 되어가고 있으며, 물리적 형태를 유지한 채 이 기준을 만족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매체가 레코드다.

해외의 수많은 아티스트는 자신이 발매할 음반의 매체로서 레코드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메이저 레코드 회사에 소속된 거물급 아티스트는 다수의 싱글이나 레코드가 포함된 ‘스페셜 에디션’의 발매로 자신의 상업적 가치를 유지하기도 하며, 독립 음반 계열, 또는 신인 아티스트는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7인치를 첫 음반으로 선택하곤 한다. 이전에도 레코드 싱글은 사라진 적이 없으나, 지금은 덤으로 ‘뭔가 있어 보이기’ 까지 한다. 레코드의 구매층이 중장년에서 청년으로 이동하고 있고, 거래시장 역시 중고에서 신품 레코드로 이동 중이라는 점 역시 호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이들을 위한 세련된 레코드의 발빠른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젊은이들이 국내 중고 레코드 숍에서 몇 시간 동안 먼지를 마시며 열심히 ‘디깅’한 결과물이 라이오넬 리치의 옛날 음반이라면, 질의 고하를 떠나, 21세기에는 좀 맥 빠지는 일 아닐까. 예전의 레코드 시대와 다른 음악 감식안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다양하고, 새로운 흐름을 반영한 레코드가 공급될 필요가 있다.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면서 물리적인 음반 생산을 유지하는 데 가장 적절한 매체가 바로 ‘레코드’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한국 시장에서의 필요성과 가능성은 더 확대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지금이 절호의 시기다. 세계는 이미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45알피엠으로. -정희석(봄비노 레코드 대표)

예전에 음악 애호가들끼리 이런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다. 한국은 주거 환경이 안정되지 않아 이사가 잦다 보니, 레코드 애호가가 적을 수밖에 없다고. 물리적인 형태의 매체로 레코드만큼 크고 부담스러운 것도 드물기 때문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레코드를 8트랙 테이프나 릴테이프처럼 ‘추억 속으로’ 사라진 매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그 자리는 차라리 시디가 더 유력하다. 시디는 카피가 쉬운데다, 편의성이라는 측면에서 주도권을 음원에 내줬다. 시디 플레이어의 생산 자체를 중단하는 업장도 많아지고 있다. 시디가 지배한 20년이 오히려 매체 다변화의 시대를 여는 과도기로 보인다. 적어도 물리적인 형태의 매체에서는, 레코드를 뛰어넘는 대안을 찾기 어려울 것 같다. 부담스러운 크기에 비례하는 훌륭한 커버 아트와 특유의 음장감은 실재감 있는 뭔가에 목말라 있는 요즘 사람들의 요구에도 부응한다. 또한 매체가 다변화되는 만큼 매체의 사용자들도 다양해지고, 각각 더 선명해졌다. 레코드가 가진 특별한 가치를 모든 사람이 납득하지는 못하더라도, 소수의 열광적인 사람들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도 레코드 프레싱 공장이 들어서고, 얼마 안 있어 레코드 페어도 열릴 예정이다.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이미 상당히 진척되어 기계를 구매하고, 공장 부지를 알아보는 등 하나하나 착착 진행되는 중이라고 들었다. 이제 아이팟은 잠시 꺼둬도 좋을지 모른다. -이봉수(비트볼 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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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에디터] 책, 음반, IT를 담당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