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준상을 만나서 나눈 엄격한 얘기

절도 있는 남자의 시선은 그대로 박혀서 흔들리지 않는다. 영화 [북촌방향] 개봉을 앞두고 배우 유준상을 만나서 나눈 엄격한 얘기.

수트, 셔츠, 보타이 모두 란스미어.
수트, 셔츠, 보타이 모두 란스미어.

 

검정색 수트는 엠프리오 아르마니, 흰색 셔츠는 반하트 옴므, 검정 넥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검은 구두는 니나리찌.
검정색 수트는 엠프리오 아르마니, 흰색 셔츠는 반하트 옴므, 검정 넥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검은 구두는 니나리찌.

처음부터 아내 얘길 해서 미안한데, 라디오에서 홍은희 씨 목소리를 들으면 아주 가까운 여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알 수 없는 죄책감이라니.
하하하, 그런가? 지금 나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30대보다는 오히려 40대에 더 일관적으로 보여주는 면이 있다. 아내가 옆에서 그렇게 동의해주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거다. 엄청나게 고맙다.

아내에 대한 남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처리할 건가?
그냥 두는 게 아내한테도 좋은 거고….

결혼이 당신을 성장시켰나?
많이. 하지만 크게 변한 건 없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내가 막 혼자 노래 연습을 한다. 다른 사람은 감당 못한다, 한 번 들어도 힘든 걸 365일 옆에서 듣는다 생각해봐라. 피아노 칠 때도 “에이 거기 틀렸잖아, 거기” 자기 일 하다가도 그런다. “어우, 그만해 좀. 됐어, 이제” 그러면 난 “어, 미안해” 그러곤 또 하고 있는 거다. 계속.

그렇게 몇 개월 동안 오른손 따로 왼손 따로 연습해서 쇼팽을 완성했고, 2010년에 어떤 인터뷰에선 7분 30초 정도로 목표하고 있는 교향곡을 4분 33초까지 완성했다 말했다.
영화 <북촌방향>에 그 피아노 연주가 나온다. 쇼팽의 C단조. 따라 라라라~ 띠리 디리리리. 이런 곡이다. 교향곡은 일단 거기서 머물러 있다. 대신 가요를 많이 만들었다.

지금까지 쓴 그림일기도 열 권이 넘는다 들었다.
데뷔부터 일 년에 한 권씩이다. 옛날에 원고지부터 시작했다가 이제 한 권씩 묶어서 열 대여섯 권 정도 되는 것 같다.

집요함이랄까….
좋으면 계속 한다. 글쓰기, 음악은 너무 좋아서 계속하게 됐다. 피아노도 악보 보고 하다가 어느 순간 혼자 쳐봤다. 더 잘됐다. 모든 게, 자연스럽게 습관이 됐다.

당신의 그 집요함이 홍상수 감독과 통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도 어떤 신을 30번, 40번 찍으니까. 배우가 머리를 비우고, 그게 몸에 익을 때까지.
투수들이 생각 안 하고 던져도 정확히 들어가는 거랑 똑같은 것 같다. 한 100개 던질 때까지는 ‘자, 요번엔 내가 왼쪽으로 던져야지, 오른쪽으로 던져야지’ 혹은 ‘커브? 변화구?’ 하고 생각하게 된다. 어느 순간 그 생각조차 지워진다. 이번에 <북촌방향> 찍으면서는 어느 순간 공 던지는 게, 이게 너무 힘들어서, 어깨가 빠질 것 같아서 처음으로 도망칠 생각을 해봤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 때는 안 그랬나?
그때도 뭐, 꿈틀댔을 거다. ‘이게 대체 뭐야? 어후, 한두 신 촬영하는 건데 내 에너지가 우와!’ 정말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소진됐다. 하지만 끝난 다음엔 “감독님, 몸은 너무 힘든데 꼭 다시 하고 싶습니다” 그랬다. 이번에 찍을 땐 그냥, “어… 일단 어떻게 도망칠 수 없을까?” 그러다 나와 보면 스태프 동생들이 추운데 쭈그리고 앉아서 사람들 막고 있는 거 보고, “내가 널 봐서 다시 들어간다” 그랬다.

<북촌방향>이 유난한 이유가 뭔가?
평론가 정성일 선생이 홍상수 감독에 대해 쓴 글과 어떤 외국 평론가가 쓴 글에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마법을 부렸다”는 대목. 나는 정말 감독님의 마법에 푹 빠졌던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다.

“나 홍상수 감독 영화 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여러 번 얘기하지 않았나? 당신이 가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게 아니었나?
<해변의 여인> 오디션을 본 적 있다. 감독님이 불러주셨다. 다섯 시간 넘게 낮술을 마셨다. 술도 못 먹는데 백세주를 네 병도 넘게 마셨다. 그때 나에 대한 모든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거기 있던 많은 분이 그랬다. “이번에 유준상 씨 무조건 (출연)하시겠네요. 감독님이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하신 분은 없었습니다.” “아이, 감사합니다” 하고 왔는데, 캐스팅이 딴 사람으로 나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를 되게, 욱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화가 났나?
“이게 도대체 뭐지?” 그런 심정이었다. 너무 신기한 거다. ‘나는 내 걸 다 줬는데? 그게 그런 게 아니었나? 난 뭘 한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바보같이 모든 것을… 왜 다 얘기했어? 응?” 혼자 그러면서 감독님과 꼭 해보고 싶어졌다. 원래 욕심 없었다. 지금도 그런 건 잘 못한다. 감독과 배우는 같이 합의점을 찾는 게 이상적이지, “이건 무조건 저한테 어울리니깐 하게 해주십쇼” 하는 성격 자체가 못 된다. 그때도 다시 찾아가서 “저, 꼭 나중에 하겠습니다” 그래야 하는데 안 찾아갔다. ‘언젠가는 불러주시겠지. 안 불러주시면 어쩔 수 없고’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딱 불러주셨고, 그때부터 그냥 열심히 해야지 생각이 든 거다. 그런 과정 때문에 욕심들이 한번 쓸려 내려갔다. 사실 그런 일들은 많이 겪었다. 확정됐다가 다음 날 신문에 다른 사람 이름으로 발표되는 경우를 여러 번 당했기 때문에. 홍 감독님은 내가 정말 다 줬기 때문에 좀 다른 경우인 셈이다. 지금도 그때 얘기를 감독님이랑 웃으면서 한다.

검정색 수트는 엠프리오 아르마니, 흰색 셔츠는 반하트 옴므, 검정 넥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검은 구두는 니나리찌.
검정색 수트는 엠프리오 아르마니, 흰색 셔츠는 반하트 옴므, 검정 넥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검은 구두는 니나리찌.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에서 당신은 연기를 자연스럽게 잘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묘한 수위에서 느껴지는 어떤 합이 있었다.
순전히 감독님이 만들어주신 거다. 나에 대한 관찰이, 감독님은 이미 엄청나게 돼 있는 거다. 감독님이랑 찍을 때는 생각 자체가 일단 ‘스톱’이다. 그래서 내가 그 동안 해왔던 것과 감독님의 방향이 일치하는 지점이 많을 수 있는 거다. 스스로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그거 아나? 지금까지 얘기하는 동안 당신 검은자위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보통은 칼 쓰는 사람들 눈빛이 그렇다. 역시, 집요함인가?
그 일기들. 힘들 때 다시 그 글들을 보면, ‘그래, 내가 이렇게 훌륭한 생각을 했는데 지금 이렇게 나약해?’ 하고 다잡게 된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형성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부끄러움 없이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나한텐 제일 중요하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질 때마다 ‘왜 그래, 왜? 실망을 주면 안 되지. 너 지각했어? 이노무시키, 왜 그래. 다시 열심히 해.’ 이렇게 되는 거다.

한편, 당신은 엄격한 남자이기도 하다. 아들을 90도로 인사하도록 교육한다고 했는데.
잘못됐으면 일단 잘못됐다고 다 얘기하는 스타일이다. 옛날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

확실한 기준이 있나?
누가 봐도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들. 기본적인 것들이 안 지켜졌을 때 정확히 얘기해 줘야 한다. 그러려면 같이 하는 동료들에게 내가 계속 약속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 내가 안 지키고 남을 혼내는 건 거짓말이다. 항상 공연 세 시간 전에 가 있고, 무대 뒤나 옆에서는 절대 누워 있으면 안되고. 안 그럼 흐트러진다.

이번 영화에서 유난히 기대하는 바가 있나?
내가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인물이다. 나도 모르게 마술에 걸린 이야기? 기묘하다. 찍는 동안에도 이야기가 이렇게 펴질 줄 아무도 몰랐다. 난 영화감독 역할이다. 대구에 있다가 잠시 서울에 올라온 한 3일 동안의 이야기다. 계속 같은 사람 만나고 같은 곳을 간다. 어떤 땐 오싹했다. 감독님께 물었다. “근데, 여긴 왜 왔어요?” 감독님이 그랬다. “여긴 오늘 온 걸 수도 있고 어저께… 온 걸 수도 있고.” “어? 그럼 저는 그때 거기 왜 안 가고 여길 왜… 아 그게 이렇게? 히익… 어후, 그런 거예요?” 그랬다. 나중에 알았다. 찍으면서는 “어휴, 이거 모르겠네요. 어휴.” 막 그러면서 미쳐버리다가 액션! 하면 내가 아닌 게 되고. 마지막에, 고현정 씨 만나는 장면이 있다. 정말 고현정 씨한테 홀린 것 같았다. 그 인물이 그렇다. 뭔가에 홀렸다. 마지막 신에 고현정 씨가 카메라로 찍어주고 나는 그걸 보는데, 그게 정말 기묘하다. 보는 분들마다 느끼는 건 다르겠지만, 그래도 비슷한 부분들이 있을 거다. 예고편도 황당하지 않았나?

뭔가 돌이킨다는 건 쓸모없구나, 과거고 뭐고 소용없구나. 그런 걸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보는 순간만큼은 홀릴 수밖에 없다. 그거 하는 동안, 나는 약간 다른 사람이었다.

이 길이 아닌가 의심한 적 없나?
없다.

그런 거 있잖나. “오, 나 음악 이렇게 잘하는데?”
하하. ‘나 아직 멀었구나. 아직 멀었어’ 생각은 한다. 누군가에게 “모자란다. 그게 아니다”라는 얘기를 듣는 게 좋다. 우리 연출님이 “선배님, 죄송하지만 이런 부분은 좀 이렇게…” 하면 “저, 이런 얘기를 제가 육십 됐을 때도 좀 해주세요” 그런다. 하물며 홍상수, 강우석 감독님이 나한테 그런 얘기들을 해주시니까 뭐, 너무 행복한 거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내가 말하지 않나? “더 해.”
아내는 웬만해선 칭찬 안 한다.

여자 홍은희는 언제 느닷없이 매력적인가?
시도 때도 없다.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하나?
소년이다. 이제 소년이 될 수 없는 소년이다. 삼십 대 중반에 써놓은 글 중에, “소년, 이제 너를 떠난다” 뭐 그런 게 있다. 그랬던 소년이 아홉 살 된 아들 보면서 “소년, 널 그냥 떠나지 말아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한다. 애들 눈높이를 맞추다 보면, 떠날 틈이 없다.

유준상은, 어딜 보고 가는 건가?
지금. 앞으로의 지금. 나는 항상 오프닝이다. 시작 직전.

당신도 트위터 같은 걸 하나?
일단 싫어한다. 뭔가 복잡하다. 뭘 막 올려야 되고. 얼마 전에 미니홈피도 없앴다. 혼자 하는 블로그는 있다. 가끔 한 번씩 올린다. 그러곤 나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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