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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신체검사

2011.09.15GQ

연비 왕을 꿈꾸는 이 땅의 하이브리드카들. 제원표 숫자로는 드러나지 않는 매력과 단점.

현대 아반떼 하이브리드

기획은 기발했다. 한국 실정과 찰떡궁합인 하이브리드카를 꿈꿨다. 현대차가 국내 시장의 트렌드 변화를 읽는 감각은 누구보다 뛰어나다. 현대차는 기름값이 널뛸 때 쏠쏠한 재미를 본 LPG 엔진을 떠올렸다. 주판알 튕겨보니 꽤 승산 있겠다 싶었을 거다. 낮은 회전수에서 맥을 못 추는 LPG 엔진의 단점을 전기 모터로 감쌀 수 있으니, 이론적으로도 타당했다. 확신을 얻은 현대차는 아반떼 하이브리드를 내놨다. 그리고 공인연비가 아닌 연료비로 환산한 경제성을 홍보했다. 반응은 싸늘했다. 소비자는 단순했다. 연료비로 얻는 이득보단, 간단한 나눗셈으로 드러난 실제 연비에 경악했다. 탱크의 80퍼센트만 채우는 LPG의 충전 방식도 체감 연비를 뚝 떨어뜨린 원인이었다.

현대 쏘나타 하이브리드

토요타의 기술 욕심은 편집증적이다. 하이브리드 기술도 효율적이되 가장 복잡한 방식을 골랐다. 나아가 특허 장벽을 촘촘히 둘렀다. 토요타의 ‘특허 지뢰’를 밟지 않고선 하이브리드카 개발이 어렵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특허를 낸다는 건 기술을 낱낱이 공개한다는 뜻이다. 피해야 할 실체가 명확하니 후발주자의 추격엔 점차 가속이 붙었다. 현대차도 악착같이 뛰었다. 쏘나타 하이브리드가 그 결과물이다. 혼다처럼 전기 모터가 바퀴를 직접 굴리지 않는 병렬식인데, 토요타처럼 전기 모터만으로 달릴 수 있다. 여기에 일본차와 달리 CVT 대신 자동변속기를 물렸다. 프리우스의 연비까진 못 넘본다. 하지만 캠리 하이브리드와 맞장 뜨긴 충분하다.

기아 포르테 하이브리드

포르테 하이브리드의 운명도 아반테와 다를 게 없다. 하이브리드만 쏙 빼놓고 신형 MD로 진화한 아반떼와 달리, 포르테는 휘발유와 하이브리드가 같은 세대여서 빛바랜 느낌은 적다. 하지만 아반떼와 같은 이유로 외면 받았다. 연료비 절감 효과를 강조하고 통 큰 할인까지 제시했다. 반응은 미지근했다. “기대엔 못 미치지만 그런대로 탈 만은 하다”는 이도 있다. 하지만 워낙 소수여서 절대다수의 선입견에 묻혔다. 좀 더 역동적인데다 희소성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엉뚱하게도 포르테 하이브리드의 범퍼는 개조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전기 모터만으로 달릴 수 있는 차세대 모델이 나올 때까지 LPG-하이브리드 형제는 푸대접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기아 K5 하이브리드

쏘나타 하이브리드와 같은 구성이다. 직렬 4기통 2.0리터 엔진과 전기 모터를 짝지었다. 겉모습만 봐선 휘발유 모델과 차이를 눈치 채기 어렵지만, 구석구석 따져보면 거의 다른 차다. 엔진이 대표적이다. 압축비와 팽창비가 다른 앳킨슨 방식이다. 자동변속기엔 토크컨버터가 없다.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끼워 넣은 전기 모터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배터리는 LG화학의 리튬이온 제품이다. 뒷좌석과 트렁크 사이에 숨겼다. 운전감각엔 위화감이 없다. 시속 90킬로미터에서도 잠깐씩 전기 모터만으로 달릴 수 있다. 정보창을 보지 않으면 모를 만큼 은밀하다. 보증기간은 6년/12만 킬로미터로, 토요타 캠리 하이브리드의 5년/12만 킬로미터보다 길다.

토요타 프리우스

프리우스는 라틴어로 ‘앞서가는’이란 뜻이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 기획됐고, 그러기 위해 진화해왔다. 직렬 4기통 1.8리터 99마력 엔진과 82마력짜리 전기 모터 양쪽에서 동력을 얻는다. 급가속 땐 엔진과 모터가 합세한다. 멈춰 설 땐 부지런히 엔진의 숨통을 끊는다. 시속 40킬로미터 이하에선 모터만으로 달릴 수 있다. 프리우스의 핵심은 연비다.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연비가 뛰어난 차다. 국내 공인연비는 29.2㎞/l다. 정속 위주로 달리면 실제 연비가 공인기록을 가뿐하게 뛰어넘는다. 그런데 연비란 목적에 집중하면서, 핸들링과 고속주행안정성, 승차감, 공간을 다소 희생했다. 그래도 장점 하나가 너무 눈부시니까, 그 밖의 단점이 거슬리지 않는다. 후회 없을 선택.

토요타 캠리 하이브리드

직렬 4기통 2.4리터 엔진과 전기 모터를 어울려 시스템 총출력 195마력을 낸다. 토요타 하이브리드 시스템답게 강력한 전기 모터를 쓴다. 엔진의 최고출력 150마력을 바짝 뒤쫓는 143마력을 낸다. 국내엔 수입되지 않는 닛산 알티마 하이브리드도 로열티를 주고 토요타의 시스템을 얹고 있다. 캠리 하이브리드는 스케일이 클 뿐 기본 작동방식은 프리우스와 판박이다. 시속 30킬로미터 안팎까진 전기 모터만으로 숨죽여 달릴 수 있다. 가속은 V6 엔진을 얹은 것처럼 힘차다. 무단변속기가 높은 엔진회전수를 유지시키고, 가변 밸브 타이밍 기구가 들숨날숨을 조절하며 전기 모터가 지원사격에 나서는 덕이다. 하지만 피부에 와 닿는 연비가, 프리우스만큼 극적이진 않다.

렉서스 CT200h

CT200h를 토요타 프리우스의 렉서스 버전으로 알고 있는 이가 많다. 크기, 해치백 스타일인 건 맞다. 파워트레인도 프리우스와 똑같다. 1.8리터 휘발유 엔진과 무단변속기, 전기 모터와 배터리를 어울렸다. 동력성능엔 별 차이가 없다. 외모는 CT200h가 한층 매섭지만, 제로백은 10.3초다. 프리우스보다 0.1초 빠를 뿐이다. 공통분모는 딱 여기까지다. 둘은 뼛속부터 다른 차다. CT200h의 운전감각은 프리우스와 확연히 다르다. 몸놀림이 한층 탄탄하고 쫄깃하다. 고속안정성도 확연히 한 수 위다. 스포츠 모드를 누르면 다른 차로 바뀐다. 계기판을 발갛게 물들인 채 왕왕거리며 천방지축 날뛴다. 스포티한 맛에 끌려 고를, 흔치 않은 렉서스다.

렉서스 GS450h

렉서스의 간판 스포츠 세단이다. 렉서스는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는 한편,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등 독일 중형 세단을 무찌르려고 태어났다. 가을엔 한층 과격한 신형 GS가 공개될 예정이다. 토요타(렉서스)의 하이브리드카 전략을 보면 소름이 돋는다. 무서우리만치 집요해서다. 어떤 수고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서로 다른 특성의 차종을 개발하며 노하우를 쌓고 있다. GS450h도 그중 하나다. 뒷바퀴굴림 스포츠 세단과 하이브리드의 궁합이다. 따라서 GS450h는 소식주의 짠돌이가 아니다. 제로백을 5.6초에 끊는 고성능으로, “하이브리드카는 허약하다”는 오해에 일침을 놓는다. 가격과 연비 때문에 인기는 못 끌었지만.

렉서스 RX450h

숫자의 함정을 조심하자. GS 하이브리드처럼 450이 붙지만 엔진은 다르다. V6 3.5리터란 점까진 같다. 하지만 GS450h는 성능을 최대한 뽑아내기 위해 직분사 휘발유를 쓰고, RX450h는 연비에 초점을 맞춘 앳킨슨 사이클 엔진을 얹는다. 출력이 GS450h를 밑도는 이유다. 렉서스는 RX450h를 통해 ‘인스턴트’ 사륜구동과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짝지었다. 평소엔 앞바퀴굴림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전기 모터로 뒷바퀴를 굴리면서 사륜구동으로 변한다. 그래서 인스턴트다. 렉서스의 나머지 하이브리드카와 달리 RX450h엔 앞뒤 바퀴에 각각 전기 모터가 들어간다. RX350과의 차이는 뚜렷하다. 연비가 뛰어난 건 물론, 정체구간을 전기 모드로 다닐 때 훨씬 조용하다. 나중에 다른 차에 적응하기 힘들 만큼.

렉서스 LS600hL

렉서스의 최고급 세단이자 하이브리드 실험의 결정판이다. 렉서스가 벼린 하이브리드 기술을 아낌없이 쏟아 부어 만들었다. V8 엔진과 사륜구동을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짝지은 것부터 유례를 찾기 힘든 모험이었다. 엔진과 전기 모터를 뭉친 시스템은 총 445마력을 낸다. 가뜩이나 정숙성 뛰어나기로 정평이 난 LS인데, 엔진마저 수시로 꺼버린다. 정속 주행할 땐 손바닥이 운전대 스치는 소리가 유독 도드라질 정도다. LS600hL의 사륜구동 시스템은 전통적이다. 앞뒤를 기다란 드라이브 샤프트로 이었다. 그래서 RX의 인스턴트 방식보다 구동력을 전환하는 감각이 한층 자연스럽다. 굽잇길이나 미끄러운 노면에서 접지력을 챙기는 솜씨도 한 수 위다. 연비도 같은 성능의 휘발유 세단을 성큼 웃돈다.

혼다 인사이트

토요타 프리우스를 겨눈 혼다의 저격수는 인사이트다. 직렬 4기통 1.3리터 엔진과 전기 모터를 짝지었다. 혼다는 마일드 하이브리드 방식을 고집한다. 전기 모터가 엔진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무는 구조다. 운전감각은 친숙하다. 키를 꽂고 돌리면 ‘부릉’ 시동이 걸린다. 차체가 가벼워 몸놀림도 경쾌하다. 굽잇길을 헤집을 땐 하이브리드카를 몰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게 된다. 하지만 시속 100킬로미터를 넘어서면 가속이 눈에 띄게 더뎌진다. 연비로, 인사이트는 결코 프리우스를 넘볼 수 없다. 저속을 모터만으로 달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크다. 인사이트의 가치는 성능과 연비, 가격이 적당한 균형을 이룬 데서 찾는 게 옳다. 하지만 혼다의 오지랖 넓고 심오한 마음을, 소비자가 잘 몰라주니 문제다.

혼다 시빅 하이브리드

시빅 하이브리드는 신형 인사이트가 나오기 전까지, 혼다의 간판 하이브리드카였다. 인사이트 기술의 뿌리이기도 하다. 혼다는 가볍고 단순한 구조로 하이브리드카를 대중화시키고자 했다. 인사이트와 파워트레인이 같은데다 무게가 65킬로그램 더 무겁지만 연비는 더 좋다. 인사이트가 원가절감을 위해 배터리의 셀 개수를 줄인 까닭이다. 자연스러운 운전감각이 시빅 하이브리드의 장점이다. 일반 시빅처럼 또렷한 핸들링과 민첩한 몸놀림을 뽐낸다. 이건 하이브리드의 낯선 느낌을 감쪽같이 숨긴 결과가 아니다. 메커니즘에 기발한 파격이 없어서다. 결국 시빅 하이브리드는 연비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혼다는 토요타 같은 방식의 하이브리드카 대신 전기차로 곧장 넘어갈 계획이다.

메르데세스 벤츠 S400 하이브리드

V6 3.5리터 휘발유 엔진과 자동 7단 변속기, 전기 모터를 짝지었다. 최대출력은 299마력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성격은 혼다와 비슷하다. 모터는 가속에 살을 보탤 뿐이다. 순항하거나 제동할 땐 부지런히 에너지를 쌓아 둔다. 모든 건 얄팍한 리튬이온 배터리와 납작한 전기 모터 덕분에 가능하다. 무게도 거의 늘지 않았다. 지하철처럼 윙윙거리며 달리는 전기차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쯤 된다. 외모도 일반 S클래스와 같다. 가냘픈 타이어나 푸르스름한 엠블럼으로 차별을 꾀하지도 않았다. 운전감각 또한 자연스럽다. 여느 하이브리드카처럼 시동도 부지런히 끈다. 그런데 완전히 멈춰 서기 직전에 꺼서 처음엔 영 낯설게 느껴진다. 동급 휘발유 S-클래스보다 연비가 좋고, 디젤 S-클래스보다 가속이 빠르다.

BMW 액티브 하이브리드 7

BMW 7시리즈의 하이브리드 버전이다. 이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메르세데스-벤츠와 함께 개발했다. 그래서 S400 하이브리드와 모터 및 배터리가 같지만 성향은 극과 극이다. 각 브랜드의 특성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보수적으로 접근한 벤츠와 달리, BMW는 퍽 급진적이다. 같은 모터에 V8 4.4리터 트윈파워 터보 엔진을 붙였다. 그래서 엔진과 모터를 합친 시스템 출력이 465마력이나 된다. 성능은 폭력배가 따로 없다. 5.2미터가 넘는 거구지만 제로백을 4.9초 만에 마친다. 연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동급 휘발유 모델보다 15퍼센트 줄였다. 장점은 많지만 존재감은 아직 흐릿하다. 어딘지 모르모트의 분위기를 풍겨서일까? 하긴, 토요타도 프리우스를 이만큼 키우는 데 15년 걸렸다.

BMW 액티브 하이브리드 X6

심장은 액티브하이브리드 7과 같은 V8 4.4리터 트윈파워 터보다. 하지만 설정을 다르게 했다. 출력과 토크가 485마력, 79.6kgm로 액티브하이브리드 7을 웃돈다. 아무래도 X6의 무게가 7시리즈 보다는 훨씬 더 나가는 까닭이다. 모터도 91마력과 86마력짜리 두 개나 들어간다. ‘액티브 트랜스미션’이란 이름의 변속기는 두 개의 모터와 한 몸을 이뤄 엔진을 요리한다. 배터리는 리튬이온 방식의 7시리즈와 달리 니켈메탈 방식을 쓴다. 뒷좌석과 트렁크 사이에 담아 짐 공간이 일반 X6과 같다. 액티브하이브리드 X6는 모터만으로도 시속 60킬로미터까지 달릴 수 있다. 제로백은 5.6초다. 순발력도 빼어난 셈이다. 흥미롭게도, BMW가 액티브 하이브리드는 동급 휘발유 차의 고성능 버전인 셈이다.

포르쉐 카이엔 S 하이브리드

포르쉐 최초의 양산 하이브리드카다. 성능보다 효율을 앞세운 최초의 포르쉐이기도 하다. 엔진은 아우디제 V6 3.0리터 슈퍼차저 직분사 휘발유로 333마력을 낸다. 변속기는 자동 8단인데, 47마력짜리 전기 모터와 한 덩어리로 묶었다. 뒷좌석 뒤엔 니켈수소 방식의 288볼트짜리 배터리를 실었다. 납작하고 긴 공구함처럼 생겼는데, 그 속을 240개의 셀로 바글바글 채웠다. 카이엔 S 하이브리드는 공동 개발한 폭스바겐의 투아렉 하이브리드와 기본적으로 같다. 가속 페달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배터리만 빵빵하게 차 있으면, 중저속은 모터로 유유히 헤엄치듯 달린다. 기름은 홀짝홀짝 마시지만, 성능은 V6 휘발유 카이엔을 성큼 앞선다. 마음에 하나 걸리는 건,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포르쉐란 점이다.

    에디터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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