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자화상

익숙한 목소리, 조금은 낯선 얼굴. 그러다 “대중은 없는 것 같다” 말하는 이런 표정. 가수 이승열이 빌딩 옥상에서 노래 부를 때, 서울은 배경이 되었다.

밝은 돌색 트렌치 코트는 버버리 프로섬, 감색 치노 팬츠는 샌프란시스코 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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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 반응이 유난하다. 당신이 변신한 것도 아닌데, 이유가 뭘까?
나도 그걸 모르겠다. 3집은 “아, 나 원래 하고 싶은 대로 할래” 그런 거였다. 트위터를 통해서 들려오는 초반의 반응에 대해서는, 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지인이나 레이블(플럭서스)에서 바람을 잡나?’ 그런 생각도 했다.

SNS에는 원래 요동치는 것들을 더 드러내는 효과가 있다. 증폭되기도 했겠지만, 항상 그 정도의 반응은 있었는데 숨어 있었던 게 아닐까?
내 경우엔 증폭이라고 살짝 생각했다. 사람들은 영화를 볼 때나 책을 볼 때도, 신뢰하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중요시한다. 아무래도 그거 아닐까?

겸손…?
아니다. 나도 별점 주고 그러는 ‘스타 시스템’이 싫다. 하지만 의존하게 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게 사람들의 심리인가 싶다. 하지만 앨범은 워낙 산업 자체가 찌그러져서 축소된 지 오래니까 상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목소리든 노래든 그걸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적극적으로 수용해주시니까 음악하는 사람 입장에서 힘이 난다.

이번 앨범이 유난하긴 하지만, 사실 1집부터 지금까지 다 한 덩이 아닌가?
맞다, 책에서 한 챕터를 찢어서 볼 수 없듯이.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유는 대중에게 있겠지만, 1, 2집과의 연속성을 염두에 둔 앨범이다. 애초에 3집을 구상했던 느낌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게 지상과제 혹은 목표처럼 됐다. 1, 2집은 나 자신도 혼란이 있어서 곡 단위로 집중했던 느낌이라면, 이번엔 부속을 선별해 모아서 전체를 만드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그런 유연함이 생겼나?

변해가는 걸 느끼나? 마흔을 넘겼다.
솔로로 시작하자 마음먹고 한 게 어느덧 9년이 흘렀으니까. 이런 인터뷰도 다 연관이 있는 거다. 경험을 쌓으면서 하나하나 정리되는 부분이 있다. 나는 자신감이 있는 편이지만, 노력파이기도 하다. 과거의 경험이 허투루 지나가는 걸 싫어한다. 1집 때는 무조건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 이후엔 좋은 기억들은 물론 모든 트라우마까지 간직했다. 그걸 바탕으로 변화가 이뤄지는 게 기분이 좋다.

시인은 기억의 서랍장에서 하나하나, 적절한 언어를 꺼내 시를 짓는다는 말을 누가 했다.
나도 남의 말을 빌리자면, 기억은 ‘최고의 아첨꾼’이다. 굉장한 무기다. 나 편한대로 조합하는 거니까. 세상에 픽션이 아닌 건 없는 것 같다. 심지어 다큐멘터리도. 하지만 매번 돌아이처럼 미친 짓을 할 게 아니라면 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솔직히 얘기해야 하니까, 그에 대한 강박이 있다. 누구처럼 앨범마다 제한이 없는 어떤 설정을 해놓고, “나는 우주에서 온 주인공” 뭐 그런 얘기를 펼치는 경우에 대한 동경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살짝살짝 아첨하는 기억을 이용해서, 서랍에서 꺼내 곡을 쓴다. 가사도 내가 자주 안 쓰는 말이거나, 최근에 읽었기 때문에 이해가 모자란 말들은 피해야겠다는 결벽이 있다.

안에서 확실히 정리가 된 것만 쓰나?
내가 하는 말과 느낌 사이의 괴리가 좀 덜해야 한다.

앨범 속지에 가사를 손글씨로 쓴 것도 그런 강박인가?
가사를 인쇄하는 게 이번엔 정말 싫었다. 개인적인 느낌의 뭔가를 싣고 싶었다. 발등에 가사를 써서 사진을 디자이너한테 보내기도 하고 집 벽에 낙서처럼 쓴 사진도 보내고 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었다. 실제 메모들을 쓰진 않았다. 더 멋있는 쪽으로 기울었다. 아무래도 디자인이니까.

‘대중적’이라는 말을 믿나?
대중이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틀 자체가 기사나 음악평론 쓰는 사람한테는 도구가 되는 것 같다. 정치판에서도 “어느 후보의 장점은 대중성이다” 이런 말을 한다. 잘 이용하면 굉장한 도구지만, 개인적으로 ‘대중은 없다’고 생각한다. ‘대중은 없고, 팬만 있다’고 정리하고 싶다. 트위터에는 또 이런 말이 올라와 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이승열을 모르는 사람, 이승열의 팬인 사람.’ 하하.

하하. 무서운 말이다.
으쓱할 수 있는 말이긴 한데, 음악을 객관적으로 들을 필요가 있나?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 보면 막 부산한 카메라 워크를 통해서 편집된 관객의 반응을 보면서, ‘대중은 저렇게 열린 마음의 새하얀 도화지 같은 걸까?’ 뭐 이런 생각 또 하다가…. 그런데 아니다. 대중은 없는 것 같다.

대중을 정의는 못해도 분류는 한다. 기업이, 소비 패턴을 조장하려고 그걸 하는데, 음악을 만들 때도 청자를 고려하나? 옥상에서 부르는 노래처럼 던져보는 건가?
내 취향과 귀가 제일 중요하다. 1차적으로 듣는 사람은 나니까. 내가 옥상에서 전파를 쏜다면 인구조사, 연령조사 하고 수익을 따져서 조준 딱 한 다음에 쏘진 않는다. 그냥 뿌리는 거다. 그게 훨씬 흥미롭다. 하지만 소속 레이블이 있으니까, 전파를 쏘는 방향에 대해서는 상의를 한다. 어쨌든 나는 상업음악을 하는 거니까. …얘기하다가 깨달은 건데, 내 말에 모순이 있다. 내가 고려를 안 할 뿐이지, 누군가는 고려를 하고 내 음악을 퍼뜨리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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