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영향력 아래의 인디

2011.10.18GQ

유희열을 통해, 인디 음악가의 ‘후원자’에 대해 생각했다.

예술과 관련된 오래된 신화 중 하나는 재능이 성공의 중요한 열쇠라는 것이다. 그러나 재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 혹은 성공에 재능보다 더 중요한 지평이 있다는 건 신화만큼이나 오래된 비밀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예술가는 ‘후원자에게 종속된 피고용인’ 이었다. 낭만주의 시대를 거치며 작품을 판매해 이익을 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후원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예술가의 신분은 ‘천재’로 바뀌었다. 이후 예술과 관련된 산업계가 생성되고 그 규모가 커지면서 ‘천재’는 ‘스타’가 되었다. 스타에게는 ‘부와 명성’이라는 일종의 인증이 필요했다. 예술계도 ‘승자독식’ 원리로부터 예외는 아니어서, 부와 명성을 누릴 수 있는 예술가는 극소수로 한정됐다. 재능만으로 부와 명성을 얻기는 불가능한데, 바로 여기서 뭔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예컨대 그 옛날의 ‘후원자’ 말이다.

음악으로 한정해보자면 현대의 후원자는 레이블이 될수도 있고, 홍보기획자가 될 수도 있고, 비평가가 될 수도 있고, 미디어가 될 수도 있다. 후원의 주체도 다양하고, 방법도 다양해져서 음반 제작비나 기자재, 창작 공간을 제공하는 후원에서부터 공연장을 제공하거나 미디어 홍보 등 광범위한 활동까지 후원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러한 후원의 긍정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명암이 있다. 후원자들은 언제나 자신의 안목으로 선택한 특정 예술가를 후원한다. 기대와는 달리, 수혜 대상자에게 평등하고 균등하게 돌아가는 후원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다시 말하면 후원자는 일종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고 이 권력이 언제나 순수하게 행사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후원도 알고 보면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거래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 르네상스 미술의 수호자처럼 칭송되어 온 메디치 가문이 실제로는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예술을 이용했다는 사실이나, 데미안 허스트를 비롯한 ‘The yBa(The Yong British Artists)’를 후원해온 찰스 사치가 한편으로는 해당 작가들의 작품을 대량 매집한 후 평판을 올려서 높은 가격에 되파는 장사꾼이라고 비난 받은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례다.

인디 음악 신에도 후원자들이 있다. 정부 산하 기관과 기업, 레이블이나 공연기획사, 비평가나 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유희열도 우리가 아는 영향력 있는 후원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라디오와 TV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인디 뮤지션들과 그들의 음악을 적지 않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루시드 폴이나 10센치가 대중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데는 유희열의 후원과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많은 인디 뮤지션들이 음반 홍보를 위해 그의 프로그램에 나가기를 소망하고 그것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쯤 되면 유희열은 천국의 문 열쇠를 가진 베드로처럼 세상으로 향하는 인디 음악의 문을 지키는 성스러운 수호자, 혹은 누군가가 농담처럼 말하듯이 ‘홍대의 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유희열이 베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한 기업의 수장처럼 인디 뮤지션들을 직원처럼 부리며 자신의 명망을 연장해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그래서인지 그는 새로운 음악을 발표하지 않아도 항상 음악 신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희열이 소속된 안테나 뮤직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어떤 사람은 유희열(혹은 안테나뮤직)을 ‘고학력 인디 뮤지션 수집가’라고 부르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인디의 후원자, ‘인디’라는 기업의 수장, 고학력 인디 뮤지션 수집가 중 어느 하나도 유희열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모두를 균형 있게 다룰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쯤에서 후원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 이것은 각기 극단적인 형태의 후원자를 상정함으로써 쉽게 이해될 수 있다. 하나는 예술가의 창작을 독려하고 널리 알리는 후원자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가의 창작에 개입하거나 예술가를 줄 세우는 후원자다. 후자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입술을 오므려 디자이너의 컬렉션 전체를 수정하게 만드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 편집장을 떠올려 봐도 좋겠다.

사회학자 피터슨은 예술 작품이 산업 체계를 통과하면서 받는 영향에 주목했는데, 이를 ‘결정 사슬Decision Chains’이라고 불렀다. 결정 사슬은 하나의 작품이 문화산업 내 다양한 부서의 영향력과 결정에 따라 하나의 상품으로 변화함을 보여준다. 피터슨은 컨트리 송을 예로 들었지만, 우리 음악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알다시피 인디 신의 탄생은 이런 ‘결정 사슬’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창작에 영향을 주거나 심지어 통제하려는 내부 과정과 외부 요인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대중이라는 불특정 다수의 모호한 취향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소통 가능한 감상자와의 접점을 찾아내려는 노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원래의 상황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디 신에서도 스타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것이 ‘파이’를 키우고 더 많은 뮤지션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어떤 평론가는 인디 신에서 ‘보편적인 감성’에 호소하는 음악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가운데 ‘보편적인 감성’에 호소하는 음악으로 성공을 거두었던 1990년대 싱어 송라이터들이 모범으로 떠오르고, 인디 신의 후원자이자 조력자로 활동하고 있다. 음악적 성취를 거두었던 1세대 뮤지션들을 모범으로 삼고, 동시대의 인디와는 무관하게 대중적 성공을 거둔 뮤지션들. 특히 문화산업에서 가장 구매력이 높은 소비층인 20~30대 여성을 팬으로 거느린 그들이 월계관을 차지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은 지금 인디 신에 대한 관심이 무엇에 집중되고 있는지 알려준다.

진정성, 음악성, 인디의 가치, 이런 실체 없는 것들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별로 많지도 않은 귀한 후원자와 절연할 필요도 없다. 다만 후원이라는 것은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복잡한 거래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고 그 그림자에 삼켜지지 않도록 긴장해야 한다. 게이트 플라워즈의 보컬 박근홍이 <탑 밴드> 출연을 결정하면서 인터넷에 올린 글에 공감했다면, 김창완이 “줄세우기에서 뒤쳐진 수많은 예비 뮤지션들의 꿈을 짓밟고 싶지 않다” 며 <탑 밴드>의 심사를 거절한 사실도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때로는 급변한다. 그런 가운데 어떤 선택이라도 쉽게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혼동하지 않고 분별력 있게 구분해서 다루어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뮤지션들 스스로, 똑똑하게 새로운 길을 찾아냈다는 점이다. 후원의 가장 오래된 형태는 예술가 각자가 서로를 후원하는 것이다. 인디 신에 새롭게 등장한 일군의 뮤지션들은 ‘자립’이라는 단어로 스스로를 지칭하면서, 서로에게 후원자가 되어주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품앗이 형태의 후원은 있었다. 그러나 생활과 밀접하게 조직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달라 보인다. 서로의 좌표에 대해 고민하고, 휩쓸리지 않도록 격려하고, 함께 대안 공간을 확보하고, 경제적인 자립 가능성도 모색한다. ‘생존’을 가볍게 여기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겁먹거나 위협에 굴복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SNS나 인터넷, 지역 거점을 이용해 소통 가능한 단단한 소수의 팬들을 확보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인다. 신에 등장한 새로운 뮤지션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후원자인 그들의 활동이 어떤 음악적 성취로 이어질지, 또 신과 어떻게 상호작용할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에디터
    아트 에디터/ 김영언
    포토그래퍼
    김종현
    기타
    이일환 (음악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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