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의 도가니

영화 흥행엔 공식이 있다. 하지만 올해 영화계에선 어떤 방정식도 풀수 없었다. 새로운 공식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손님, <도가니> 보셨습니까?” 흥행을 예측 하는 영화인들의 오랜 믿음 하나. 바로 택시기사의 입에서 특정 제목의 영화가 나오면 그 영화는 반드시 흥행한다는 것. 개인적인 경험도 그랬다. <쉬리>가 그랬고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해운대>가 그랬다. 특히 난폭운전을 유발할 정도로 <실미도>를 향한 남성 택시기사님들의 무한 애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소모품처럼 쓰이고 버려진 남자들을 향한 연대라고나 할까. <도가니> 역시 ‘큰 화면 <PD수첩>’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실미도> 혹은 작년의 <부당거래>의 흥행과 유사한 면이 있다. <쉬리>나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해운대>가 어떤‘ 볼거리’라는 측면에서 연중행사처럼 영화를 보는중장년층의 호기심의 대상이었다면, <실미도>나 <도가니>는 보는 이로 하여금 울컥하게 만드는 어떤‘ 공분’公憤의 연대감이라는 측면에서‘ 필견’ 영화로 떠올랐다.

그런 택시기사님들의 입소문과 더불어 ‘부녀회 단체관람 영화’ 역시 그와 비슷한 믿음의 지표이기도 하다. <써니>가 그랬다. 모 비평가는 <써니>를‘ 아줌마 버전의 <친구>’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여성들의 ‘우리가 남이가?’라는 것. 그 역시 ‘연대’의 다른 모습이다. 영화를 연중행사처럼 보는 그들은 지갑이 무거운 대신 귀가 얇다. 연대란 게 뭐 별건가. “너 그거 봤어?”라는 질문에 “아니 뭐 그런 일이?”라고 답하며 함께 화내고 씹는 거다. 스타일이나 미학보다 앞선 소재의 공유라고나 할까. 말하자면 대중들에게는 ‘보고 싶은 영화’ 와 ‘봐야 하는 영화’라는 묘한 이분법이 있다. 그런 점에서 <실미도>, <써니>, <도가니>는 후자 쪽으로 기운다.

물론 ‘봐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리 것이 소중한 것이여’라며 당시 국내 흥행기록을 갈아치웠던 <서편제>가 그랬고, ‘<주라기 공원> 한 편이 현대자동차의 한 해 수익보다 많다’며 한참 떠들썩했던 시기 강제규의 <쉬리>도 그랬으며, ‘우리 영화도 할리우드에서 와이드 릴리즈를 할 수 있다’며 장미빛 전망에 도취됐던 심형래의 <디 워>가 그랬다. 이런 영화들, 그러니까 국내 관객들에게 ‘볼거리’로서의 가치 그 위에 존재하는 영화들은 사실상 톱스타의 존재, 높은 완성도, 그리고 안정적인 와이드 릴리즈라는 이런저런 흥행 공식들의 적용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그저 입소문에 귀를 닫고 안 본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요즘 봐야 하는’ 영화 <도가니>는 기존 흥행공식들로부터 벗어난 것은 물론이고, 위와 같은 초월적인 입소문 (“아이고 저런 죽일 놈들!”)의 극명한 예를 보여주면서도 전혀 다른 지점에 서 있다는 게 흥미롭다. 무엇보다 ‘불편한 진실’을 담은 극영화는 성공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로서는 개봉 이후 한 달 내내 박스오피스 1위를 고수하며 단숨에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개봉 전 ‘성폭행 등의 묘사가 구체적이며 직접적’이라는 이유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고 그것이 흥행에서 결정적인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심지어 <도가니>는 현재 문제가 되는 1분여의 장면을 편집해 ‘15세 관람가’로 재개봉할 예정이다.

지금껏 관람 등급 문제로 인한 수위 조절과 논란은 흥행에서의 직격탄으로 여겨졌다. 성인 관람가가 되면서 수십만 명의 잠재 관객을 상실하게 되고(<작전> <닌자 어쌔신> 등), 등급 분류의 논란은 개봉 시기를 확정하지 못하는 일로 이어지며(<악마를 보았다> 등) 관객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간 등급 문제를 작품성으로 돌파했던 작품들이라면 오히려 성인 취향을 강조했던 유하의 <쌍화점>, 파괴력 넘치는 액션으로 승부수를 띄웠던 이정범의 <아저씨>, 그리고 감독의 이름값이 등급의 불리함을 압도한 봉준호의 <마더>와 최동훈의 <타짜> 정도다. 지난 추석 한국영화 전쟁에서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흥행 1위를 기록한 <가문의 영광 4: 가문의 수난>을 보라. 많은 영화인들이 입 모아 얘기하길 이 시리즈의 최고 강점은 막무가내, 그러니까 문제가 될 성싶으면 일단 자르고 보는 맞춤형 ‘15세 관람가’ 전략에 있다. 더불어 그것은 ‘한 핏줄 영화’들이라 할 수 있는 <조폭마누라>와 <두사부일체> 시리즈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도가니>를 비롯, 앞선 흥행작들인 <퀵>과 <써니>와 <최종병기 활>까지 불러오자면, 올해 들어 깨져버린 최고의 흥행공식은 바로 흥행보증수표 배우들의 처절한 몰락이다. 비슷한 시기 <7광구>의 하지원, <푸른 소금>의 송강호, <카운트다운>의 전도연과 정재영, <의뢰인>의 하정우와 장혁, <투혼>의 김주혁과 김선아와 비교하면 <도가니>의 공유와 정유미, <최종병기 활>의 박해일과 류승룡은 어딘가 밀리는 이름들이다. 더구나 <도가니>의 황동혁 감독과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은 충무로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있는 <푸른 소금>의 이현승 감독이나 <화려한 휴가>로 730만 관객을 동원했던 <7광구>의 김지훈 감독, ‘김상진표 코미디’라는 수사까지 껴안고 있었던 <투혼>의 김상진 감독과 비교하자면 한없이 작은 이름들이다. 외화로 넘어가자면 올해 극장가의 달라진 흥행공식으로 흥행배우나 감독을 초월한 한 편의 영화 하나를 예로 들 수 있다. <트랜스포머>처럼 시리즈의 후광을 전혀 입지 않았음에도 흥행에 성공한 전면적인 ‘디지털 액터’들의 영화 <혹성탈출>이다. <트랜스 포머>의 마이클 베이는 알아도 <혹성탈출>의 감독 루퍼트와이어트라는 이름을 외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런 점에서 <도가니>가 지닌 흥행의 힘은 캐스팅이나 스타일 등 영화 내부가 아닌 바깥의 현실로부터 불려져 나온다. 영화 속 자애학원을 둘러싼 아동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법정영화처럼 느껴지지만, 핵심은 그것이 다뤄지는 방식과 과정에 있다. 사립학원의 선생이 되기 위해 바치는 학교 발전기금이란 뇌물, 학원의 비리를 돈으로 눈감아주는 부패 경찰, 사법기관에 만연한 전관예우라는 특혜,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떠넘기는 시청과 교육청, 안하무인의 기독교 교단,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진실을 틀어막는 공권력 등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본 일들의 중첩이 <도가니>의 내러티브다. 여기에 과연 새로 알게 된 사실이나 어떤 영화적 반전이 있기나 한가?

한편,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는 ‘제2의 <도가니>’라는 수식어로 불린 영화가 하나 출품됐다. 바로 정지영 감독의 신작 <부러진 화살>이다. 2007년 재임용에서 탈락해 수년간 법정싸움을 벌이던 김명호 교수가 소송에서 지자 담당 판사에게 석궁을 쏴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석궁 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한 법정 드라마다. 흥행예측에 밝은 한 영화인은 영화를 보고 나오자 마자 바로 자신 있게 ‘500만!’이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렇다면 실화를 다루되 <도가니>나 <부러진 화살>이 과거의 <살인의 추억>이나 <그놈 목소리> 그리고 <아이들…>과 다른 점은 뭘까. 물론 후자의 세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작품들은 아니지만 전자의 두 영화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미제사건을 영화화했다는 사실이다. 바꿔 말해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은 모두 2000년대에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으며 극영화임에도 현실에서의 기존 판결에 대한 거부를 담고 있는, 그러니까 ‘선동적’이라 해도 될 만큼 거의 논픽션에 가까운 영화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 모두 현실에서 ‘신상털기’가 가능한 영화들이다. 사건 당사자들은 물론 그릇된 판결을 내린 판사들까지 SNS를 기반으로 한 관객과 네티즌의 ‘검색’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광주 인화학교가 영화 개봉과 네티즌들의 여론에 힘입어 폐교 수순을 밟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제 관객들은 마치 <슈퍼스타K>를 보며 문자투표를 하듯 개봉한 영화를 보면서도 트위터 등 여러 채널을 통해 문자투표에 나선다. 영화 속에서 잘못된 판결을 내린 판사가 심사위원이라면 관객들은 이제 극장에서 정보이용료 8천원의 문자투표를 하는 것이다. TV를 휩쓸고 있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극장가로 침투한 것이 올해 흥행공식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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