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레오의 내일 1

2011.10.25GQ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선택할 수 있는 배우다. 그러나 그를 흥분시키는 역할은 많지 않다. 그런 그가 FBI의 전설, 존 에드가 후버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이 영화를 감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기보다 마흔 살 어린 배우에게 이렇게 말했다. 늑대와 같은 자신을 위로해줄 영혼의 동반자를 만났다고.

의상 협찬/ 티셔츠와 코트는 모두 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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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걸음걸이가 불편하다. 지팡이를 짚었다. 간혹 얼굴도 찡그린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하나. 서른여섯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여전히 끝내주게 멋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고통에 신음하는 남자다. 전날 농구를 하다 당한 부상 때문이다. “이제 한동안 농구를 못하게 됐어요.” 세상 끝난 건 같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는 확실히 ‘로맨틱 가이’가 아니다. 그의 작품을 하나하나 모아보면 연약함(<레볼루셔너리 로드>), 상실감(<인셉션>), 광기(<셔터 아일랜드>)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의 분열과 절망을 겪는 남성의 초상이 보인다.

세대를 대표하는 영화배우이자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은 출연료를 받는 남자 배우. 이것은 디카프리오의 인생 1막을 설명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2막, 3막에 더 관심이 많다. 마침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에 합류하게 된 것도 화려한 2막을 위해서다. 여든한 살의 이스트우드가 디카프리오의 나이였을 때, 그는 텔레비전 단역을 전전하던 배우였다. 찍고 있던 카우보이 시리즈였던 <로우하이드>가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 중단된 상태였고, 그 막간을 이용해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이탈리아 웨스턴 작품을 몇 개 찍었다. 미국에서 개봉될지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후 사십 년 동안 그는 영화배우가 됐고, 감독으로 변신했으며, 세계 규모의 영화제작자가 되어, 예순을 넘기고서야 처음으로 오스카를 거머쥐었다.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서른여섯 번째 영화인 <J. 에드가>에서 디카프리오는, 존 에드가 후버의 심리 속으로 들어가 그의 삶과 FBI가 군림했던 시대를 탐구한다. 후버는 1920년대에 범죄 수사대원으로 이름을 알리고, 1932년에는 린드버그 유괴사건과 씨름했으며, 1940년대에는 도덕적으로 의심받는 반공산주의자가 되었고, 존슨과 닉슨 정부 시절에는 자신의 제국을 보존하기 위해 싸운 인물이다. <밀크>의 더스틴 랜스 블랙이 쓴 시나리오는 권력의 어두운 이면을 묘사하기 좋아하는 이스트우드의 취향과 그 기저에 숨어 있곤 하는 두려움과 유약함을 연기하기 좋아하는 디카프리오의 취향이 접점을 이루는 주제다.

그간 같이 작업할 기회가 없었나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다른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지요. 그게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내가 레오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건 언제나 자신을 확장시킨다는 거예요. 계속 새로운 장애물을 찾거든요. 예전의 내 모습이 슬쩍 보입니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스트우드에게) 출연했던 <더티 해리>, <체인질링>이나 이번에 만든 <J. 에드가>도 모두 정의의 이용과 악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주제에 매력을 느끼시는 건가요?
나는 존 에드가와 함께 자라난 세대입니다. 그는 모두에게 영웅이었죠. 시대를 앞서나가 법의학적 증거도 모으고요. 그러나 무고한 사람들을 많이 쓰러뜨린 것도 사실입니다.

조심스럽게 말하지만, 사실 60년대와 70년대의 후버는 권력 남용자로 더 유명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전 그게 이 이야기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후버는 가장 진보한 경찰력과 세계 최고의 수사체계를 완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공산주의에 집착하기 시작했어요. 무서운 일이지요.

(이스트우드에게) 후버가 게이였다는 소문은 들었죠?
이런저런 말은 다 들었지요. 파티 장에서 드레스를 입었단 소리까지. 40년대는 그랬거든요. 남자가 결혼을 안 하면 무슨 문제가 있나.

랜스 블랙(시나리오 작가)과도 얘기를 나눠봤는데 그는 후버의 동성애에 대해서 대단히 분명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정황상이겠지만, 판사는 그에게 분명 게이 판정을 내릴 겁니다”라고 말하더군요. 클라이드 톨슨과 오랜 기간 결혼 비슷한 관계에 있지 않았나요?
이스트우드 그들이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친구이기는 했습니다. 그가 게이였는지 아니었는지는 관객들이 해석할 몫이에요. 성적인 관계를 뛰어넘은 위대한 러브 스토리였을 수도 있고.
디카프리오 그는 분명 톨슨과 오십 년 넘게 관계를 맺었습니다. 둘 다 결혼하지 않았고요. 매일 같이 일했고 휴가도 같이 보냈지요. 그 이상일 거라는 소문이 돌았지요.
이스트우드 그러나 이건 그 남자가 어떻게 주변 사람들을 조종하고 아홉 명의 대통령들을 거쳐가며 버틸 수 있었는가에 대한 영화예요. 난 그가 게이였든 아니든 신경 안 써요.

후버에 대한 영화이니 묻겠습니다. 서로 정치 이야기를 나누나요? 정치 성향이 다른 걸로 압니다만.
디카프리오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스트우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정치 얘기 말고는 나눈 적이 없습니다. 디카프리오 후버는 어느 당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찍을 때의 우리처럼 말이지요. 우리는 어느 당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사업 얘기를 해보지요. 영화 사업 말입니다. 두 분 다 느끼겠지만 모두가 박스 오피스 수치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있습니다. 일요일 오후엔 모두 결과를 알게 되죠. 영화가 실패하면, 영향을 받나요?
이스트우드 상황이 정말 형편없어요. 첫 주에 잘 안 되면 그걸로 끝장이 나니까.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건 정말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인데 관객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방법이 없지요. 그런데 이걸 알아야 해요. 위대한 영화는 대부분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다들 몇몇 멍청한 인간들이 하는 사업을 하고 싶어 하지만 거기에 이름을 올리는 게 자랑스러울까요? 은행 계좌를 갖고 싶을까요? 나도 많이 벌었어요. 운이 좋았죠. 하지만 평균 정도로 벌었더라도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디카프리오 이 일을 하는 동안 어떤 영화가 돈이 될지 안 될지 알고 시작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타이타닉>이 개봉했을 때도 돈 문제는 제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30대에 접어들어 제작에 관심을 가지게 되기 전까진. 사람들이 제게 차트를 보여주기 시작했어요. 제작비는 누가 대는지, 외국 시장에서 얼마를 벌게 되는지, 국내 시장 성적은 어떨지, R 등급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지만 이름을 내건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게 아니라면, 끊임없이 박스 오피스 성공을 목표로 하는 것은 막다른 길이라는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워렌 비티 같은 사람이 <바니와 클라이드>를 위해 몇 개월 동안 캠페인을 하고, 그것 때문에 비평가들이 그 영화를 다시 보고, 그래서 재개봉이 되고, 결국 클래식이 된 그런 시절은 어디로 갔을까요?

    에디터
    글/ 마크 해리스(Mark Harris)
    포토그래퍼
    크래그 맥딘(Craig McD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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