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르라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 후, 한국 축구는 확실한 에이스를 찾고 있다. 새로운 축구를 선보이는 조광래호를 선두에서 이끌 네 명의 선수를 꼽았다.

기성용

박지성은 한국 축구의 상징이자 에이스였으며, 주장 완장을 차고 동료들을 이끌었다. 쉽게 대체하기 힘들 정도로 혼자서 많은 일을 해냈다.“박지성이 컴백한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라는 조광래 감독의 말이 그저 농담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금 박지성의 주장 완장을 물려받은 이는 박주영이고 간판 공격수로서의 비중을 생각할 때도 박주영을 ‘포스트 박지성’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필드 위에서 박지성처럼 ‘실질적인’ 에이스의 역할을 해줘야 할 선수는 기성용이다. 조광래 감독은 부임 후 “세계 축구는 지금 속도와의 전쟁을 펼치고 있다. 한국 축구가 지금보다 발전하려면 이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 축구의 핵심 포인트는 ‘속도’다. 조광래 감독은 빠른 공수 전환을 통해 조밀한 축구를 반드시 실현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선수들을 지도한다. 허리 라인에서의 강력한 압박과 빠르고 정확한 패스의 세밀함은 필수다. 그렇기 때문에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상대의 예봉을 꺾는 동시에 우리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해야 한다. 전체적인 그림을 바라보는 시야부터 정확한 킥을 바탕으로 한 경기조율 능력, 90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체력까지 다양한 자질을 필요로 한다. 현재 기성용은 조광래 감독이 원하던, 나아가 한국 축구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출중한 수비형 미드필더라 할 만하다. 조광래 감독은 얼마 전 “모든 선수의 수준이 많이 올랐지만, 아무래도 (기)성용이가 가장 발전한 것 같다.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그동안 자신을 가두던 틀을 깬 것 같다”며 이례적으로 기성용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비 시에는 포백라인 앞에서 과감한 태클과 현명한 위치 선정으로 1차 저지선 역할을 확실하게 수행한다. 공격 전환 시에는 전방을 향하는 매서운 중장거리 패스로 결정적 찬스를 제공한다. 프리킥이나 코너킥 역시 기성용의 몫이다. 에이스가 언제나 공수의 선봉에 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참아야 할 때와 나서야 할 때를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희생해야 할 때는 자신을 낮추고, 스스로 활로를 열어야 할 때는 놀라울 정도로 과감해지는 것이 진짜 에이스의 역할이다. 기성용의 최근 모습이 바로 그렇다.
임성일(‘mk 스포츠’ 축구팀장)

지동원

박지성이 빠진 후 가장 크게 나타난 문제점은 수비의 과부하다. 이영표까지 덩달아 빠지며, 허리와 측면이 허약해진 탓에 중앙 수비의안정감이 떨어졌다. 지동원은 박지성처럼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 지동원이 측면에 서면 박지성처럼 그라운드의 많은 부분을 커버한다. 측면에만 머물기보다 자주 다른 선수들과 위치를 바꾸며 유기적인 플레이를 펼친다. 물론 박지성에 비해 공격적인 선수지만, 덕분에 미드필더에서부터 상대 수비를 압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조광래 감독은 공이 없을 때 움직임이 좋고 시야가 넓은 선수를 좋아한다. 조광래호가 추구하는 세밀한 플레이를 펼치기 위해선, 일단 필드를 휘저으며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지동원은 활발하게 움직이며 위협적인 원 터치, 투 터치 패스로 순간적인 찬스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선수다. 아시안컵을 비롯해, 중앙 미드필더들에게 골 찬스가 많아진 것은 그가 이런 역할을 잘해내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동원은 중앙에서도 제 역할을 해낸다. 스리톱이든 투톱이든 박주영과 궁합이 잘 맞는다. 투톱일 경우 두 선수가 최전방 공격수와 셰도 스트라이커를 오가며 서로 위치를 바꾸어 상대 수비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지동원은 슈팅이나 골 결정력도 좋지만, 어느 위치에서든 욕심내지 않고 이타적으로 동료 선수를 활용한다. 사실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전국에 이름을 날렸다. 키가 크고 몸이 다 자라기도 전부터, 지도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 있었다. 즉, 체격이 완성되기 전부터 기술적인 부분을 비롯한 개인 기량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고교 시절 남태희 등과 함께 진출한 레딩 FC 유스팀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귀국했지만, 이런 좌절이 오히려 지동원을 더욱더 강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얼마 전 그는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다. 골도 넣었다. 그러나 지금보다 좀 더 꾸준한 출장 기회가 필요하다. 경기에 자주 나서며 체력을 보완하고 몸싸움을 비롯한 ‘피지컬’한 역할에서 좀 더 적극성을 띤다면 단점이 거의 없는, 2014년 월드컵의 당당한 에이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용수(KBS 축구해설위원)

이청용

요즘 축구 팬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름은 다름 아닌 박지성과 이청용이다. 박지성은 은퇴했고 이청용은 다리 골절로 재활 치료 중이다. 월드컵 본선 3연속 득점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이름을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박지성은 최근 10년간 명실상부한 한국 축구의 에이스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없다.

다행히 이청용은 돌아온다. 당장은 부상 여파로 대표팀에 합류할 수 없지만 타고난 재능과 풍부한 경험, 아직까지 발전 가능성이 있는잠재력을 볼 때 박지성의 후계자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청용이 세계 최고 리그로 꼽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보여준 적응력은 실로 놀라웠다. 따로 적응기라고 할 것도 없이 볼턴 입단 첫 해부터 주전을 꿰차 2년 차엔 볼턴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지난여름 이적 시장에선 리버풀과 아스널 등 빅 클럽들이 이청용 영입전에 뛰어들었다는 기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흘러나왔다. 볼턴은 올 시즌에서 10월 12일 현재 프리미어리그 꼴찌다. 이청용이 전력에서 이탈한 탓이 크다.

대표팀에서도 이청용의 존재감은 확실하다. 지난해 남아공월드컵을 통해 국제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했다. 남아공월드컵에서 난적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를 상대로 모두 골을 넣었다. 이처럼 빠른 프리미어리그 적응 속도와 팀 내 파급력, 월드컵 무대에서의 빼어난 활약은 선배 박지성의 행보를 꼭 닮았다.

이청용을 차기 에이스로 꼽는 또 하나의 이유는 조광래 감독과의 궁합이다. 이청용은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전술에 최적화된 선수다. 현 대표팀 축구의 키워드는 영리한 판단과 빠른 경기의 전개라 할 수 있는데, 이 두 가지가 바로 이청용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는 결코 한자리에 머무르는 법 없이 쉴 새 없이 공간을 찾고 위치를 바꾼다. 측면에서 중앙으로 꺾어 들어가는 침투능력과 끊임없는 압박 가담능력 또한 뛰어나다. 이청용은 중학교 시절 바로 프로로 뛰어들었고, 지금까지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왔다. 그렇다면 중학생 이청용을 프로무대로 이끈 인물은? 바로 조광래 감독이다.
박문성(SBS 축구해설위원)

박주영

스트라이커가 주장을 맡는 경우는 흔치 않다. 경기를 조율할 수 있는 수비수나 골키퍼, 중앙 미드필더가 더 많다. 대표팀엔 이정수나 차두리 등 그보다 선배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주장 완장은 박주영에게 넘어갔다. 조광래 감독은 그를 매우 신임한다. 아무리 컨디션이 안 좋아도 경기에 출전시킨다. 최악의 졸전을 펼친 한일전에서 박주영의 컨디션은 3:0이라는 스코어만큼 엉망이었다. 그래도 감독은 그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미 그는 박지성이 해주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주영은 지난 폴란드전에서 두 골, UAE전에서 한 골을 넣었다. 상대의 자책골 한 골을 제외하면 한국의 득점은 모두 박주영이 냈다. 세 골 모두 서정진의 어시스트가 좋긴 했지만, 조금만 방심했다면 충분히 놓칠 수 있는 골이었다. 박지성은 대표팀 경기를 뛸 때면 소속팀에서보다 훨씬 더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세 차례 월드컵에서 모두 골을 넣는 등 중요한 경기에서 특히 강했다. 지난 8월 한일전 참패 이후 대표팀 분위기가 가라앉은 시점, 소속팀 아스널에서 고정적인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해 경기감각이 떨어진 상황에서도 박주영은 집중력을 발휘했다. 게다가 최근엔 중앙까지 내려와서 수비에도 가담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체력이 좋아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스스로 에이스로서 박지성의 경기 방식을 의식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후방에서 전방을 바라본다기보다, 앞에서 뒤를 보며 경기를 조율한다고도 할 만하다. 물론 그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데는 중원을 든든히 지키는 붙박이 더블 볼란치 기성용과 이용래의 공이 크지만, 박주영이 프리롤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붙박이 주전이라 할 만한 베테랑 선수가 드문 상황, 젊은 선수 위주로 재편되고 있는 팀에서 아직 ‘어린’ 박주영의 활약은 반갑다. 오랫동안 2002년 월드컵 세대, 그리고 박지성에 의지해온 대표팀의 고민이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도 있다. 그는 대표팀 주장이 된 후 9경기에서 9골을 넣었다. ‘패인은 골 결정력’같은 기사가 사라진 게 대체 얼마만인가?
에디터/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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