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건축에 관한 노트

젊은 건축가 10인이 말했다. 도시의 외형을 책임지는 것은 건축이고, 건축의 핵심은 결국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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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전원주택

정재학(38세, 서가 대표)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은 주택과 인근의 작은 상가들이다. 동네 건축이야말로 그 도시의 질을 결정짓는다. 평소 한옥이나 근대건축에 관심이 많은데, 종묘를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지루하기 쉬운 제례건축인데도 생동감이 느껴져서 오래된 건물이란 생각이 안 든다. 요즘 소형 아파트의 평면 연구도를 진행 중인데, 용인의 이 전원주택이 단초가 되었다. 두 가족이 아래위로 살도록 설계했고,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입주자들의 생활 습관을 최대한 배려했다. 어떤 공간이든 사람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옷 자체보다 입는 사람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옷차림이 멋진 것처럼 건축물도 외형보다는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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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동 옐로 스톤

신창훈(41세, 운생동 공동 대표) “가장 중요한 건 의도다. 의도가 명확한 작업은 모든 과정이 즐겁고 술술 풀린다. 내 작업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크링’이다. 건축가들이 아닌 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물이라는 말이 기뻤다. 무엇보다 건축 자체의 철학보다는 대중과 소통하는 건축문화를 만들고 싶었던 게 내 의도였으니까. 여긴 ‘옐로 스톤’이라는 건축이다. 유리에 노란색 필름을 씌워 새로운 질감을 만들었다. 오늘 입은 재킷도 얼핏 가죽 같지만, 면에 왁스를 먹여 만든 새로운 소재다. 오늘 이걸 입은 건 실험한다는 면에서 건축과 패션은 소통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의도였다. 괜찮아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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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 초콜릿 디자인 갤러리

김기환(42세, 그늘건축공방 대표) ‘”여긴 2004년에 설계를 시작해 2006년에 준공한 내 사무실이자 갤러리이고 카페다. 설계자와 클라이언트, 양쪽의 입장을 동시에 겪은 힘겨운 작업이었다. 건축에서 중요한 가치는 결국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옷도 마찬가지 아닐까? 패션에 집요함을 보이는 건축가도 많지만, 난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옷보다는 편하고 장식이 적은 옷을 더 좋아한다. 옷이 사람을 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옛날 군주들이 입었던 화려한 옷들이 오히려 왕의 얼굴을 잊게 만들었다고 한다. 모든 것의 본질은 결국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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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동 플래튠 쿤스트할레

백지원(38세, 얼반테이너 대표) “유년 시절 목장에서 자랐다. 한겨울에 눈으로 이글루를 만들었는데, 그게 내 첫 건축물이다. 플래튠은 28개의 컨테이너를 쌓아 만든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양한 창조활동이 가능하게 만드는 곳이다. 1년 넘게 독일 친구들과 문화적 사고의 차이를 절실하게 느끼면서 완성했다. 오늘은 컨테이너 색깔에 맞춰 준야 와타나베 재킷을 입었다. 어깨가 딱 달라붙는 완벽한 친밀함 때문에 입을 때마다 내 재킷이라 느낀다. 내가 만든 건축물도 이 옷 같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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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도자고개

하태석(40세, 아이아크 건축가들 공동대표) “서울에서 이천으로 3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도자고개가 있다. 현재는 1차 완공된 상태고 구름다리 건너편까지 도자기 구조물이 이어지면 인프라스트럭처, 도예, 설치미술 조경을 융합한 최종 건축물이 된다. 융합과 참여라는 나의 건축 이상이 담긴 작품이다. 작업을 할 때 융합과 지속 가능성 그리고 ‘테크롤로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201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전시한 ‘미분생활 적분도시’는 미래 도시 건축에 관한 것으로, 당장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봐도 좋다.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으로 건축 작업을 시도해봤는데 나름대로의 보람이 있었다. 물론 재미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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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한강시민공원 플로팅 스테이지

윤창기(41세, 경암건축 대표) “경암은 빛나는 바위라는 뜻으로 큰 규모의 웅장한 빛과 물의 덩어리를 의미한다.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플로팅 스테이지의 순수 한국말은 물빛 무대다. 한강에 떠오른 물방울을 형상화한 것으로, LED 표면은 기상 상태에 따라 빛이 변하게 만들어 색깔을 보면 다음 날 일기를 예측할 수 있다.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종종 꾸는 꿈이 있는데, 바로 내가 만든 섬의 초고층 건물 꼭대기 방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이다. 멋진 빌딩 숲 사이로 여기저기 연결된 다리에서 사람들이 움직인다. 이런 꿈같은 건축물을 만들 거다. 하루 중 잠들기 두 시간 전과 잠에서 깨어난 두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이 자꾸 생각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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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바티 리을

김동진(44세, 로디자인 대표) “무채색 옷을 즐긴다. 오늘 입은 것처럼 어디에든 입을 수 있는 검정색 진 팬츠 같은 것. 상표로 포장된 옷은 손도 대지 않는다. ‘바티 리을’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형태가 ‘ㄹ’ 같기도 하지만, 건축이 땅을 대하는 태도, 환경과의 관계가 한글의 자음을 닮아서 그렇게 지었다. 독야청청하지 않고, 도시와 섞여야 좋은 건축이다. 옷이든 건축이든, 미끈하게 잘 빠진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게 더 멋지다. 건축가로서 가장 기쁠 때는 내 마음이 깃든 건축물을 사람들이 좋아할 때다. 공감을 얻지 못하는 건축은 최악의 건축으로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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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 한옥 주택

오영욱(36세, 오기사디자인 디에스빠씨오 대표) “도시의 건축물은 다 각기 소유주가 있지만, 그걸 보는 사람은 불특정 다수다. 즉,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존재다. 유행에 민감한 건축은 10년 후에 이상하게 보일 각오를 해야 한다. 하지만 개성 있는 건물도 도시에 적당히 필요하다. 중요한 건 균형과 조화다. 오늘은 산 지 3년도 넘은, 현장에 나갈 때 입는 옷을 입었다. 하긴, 강의를 나가거나 회의에 참석할 때도 그다지 다르진 않다. 내 옷을 보는 누구라도 그저 ‘오영욱스럽다’고 느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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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사무실 겸 주택

김호민(39세, poly.m.ur 대표) “1970년대에 지은 주택을 개조해서 1층은 사무실, 2층은 집으로 쓰고 있다. 핵심은 집과 집 사이의 담, 도로와 집의 경계를 없앴다는 것. 덕분에 작은 정원으로 쓸 공간이 확장됐다. 아파트에서 할 수 없는 여흥을 즐길 수 있고, 심지어 어머니가 매일 아침 찾아와 정원사로 전업하시기도 한다. 어떤 도시든 건축물이 들어서고 난 뒤 남은 여백이 더 중요하다. 과거의 흔적을 남기면서 현대의 삶을 담아내는 것이 건축물의 역할이니까. 평소 창의적인 일을 하니까, 옷도 그렇게 입고 싶지만, 생각 같진 않다. 오늘은 이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옷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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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동 갤러리 시몬

유병안(40세, 건축집단 MA 대표) “갤러리 시몬과 호텔 사월을 만들면서 평소 시간을 이겨내는 건축에 관한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 좋았다. 침대와 욕실에 두고 보는 책도 법정 스님 법문집과 황경신의 한 뼘 노트 < 생각이 나서 >, 마종기 시 전집이다. 옷 역시 넉넉한 와이드 팬츠와 말끔한 셔츠와 재킷을 좋아한다.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은 동네 슈퍼, 약국, 골목길, 다세대주택이다. 그래서 지금 작업 중인 성당이나 호텔, 공장 작업이 끝나면 금방 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작지만 맛있는 밥집과 83세인 아버지가 단골이 될 수 있는 클래식한 이발소를 만들고 싶다. 먼 훗날 내가 없어져도 이름으로 남겨질 건축물을 생각하며 매번 작업에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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