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 올리고, 주먹은 뻗고

가수 성시경의 말엔 분노가 섞여 있고, 더 견고한 다짐이 있었다. 객석을 위로하는 목소리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를 부르면서 그가 털어놓은 말들.

스타일리스트/ 김봉법 헤어/ 임정아(레드카펫) 메이크업/ 장유진(레드카펫) 검정색 트렌치 코트, 티셔츠, 바지는 모두 Z.제냐, 북극곰 인형은
스타일리스트/ 김봉법 헤어/ 임정아(레드카펫) 메이크업/ 장유진(레드카펫) 검정색 트렌치 코트, 티셔츠, 바지는 모두 Z.제냐, 북극곰 인형은 <한사토이>

7집 <처음>을 듣다가 바로 전 앨범 <더 발라드>를 들으니 목소리가 확 어렸다.
목소리가 조금 변했다. 나이도 들고. 젊은 날, 다 간 것 같은 기분?

‘처음’에서 나는 탁성은 의도적인 게 아니었나?
소리에 주름살이 좀 생겼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부를 노래들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양희은 선배 노래 ‘그리운 친구에게’ 같은 곡을 연습하다 보면 그건 정말 나이 들어서, 양희은 선배 느낌 정도 돼야 할 수 있는 노래이자 대본인 거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는 한 10년 더 있어야 맛이 제대로 날 것 같고. ‘내게 오는 길’을 부르던 목소리에선 멀어지고 있다.

열두 곡 중 다섯 곡을 당신이 작곡했다. 본격적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크게 히트하진 못해도 조금씩 내 색깔을 내도 괜찮다는 판단이 선 거다. 내가 좋은 게 대중이 좋아하는 것과 얼마나 합치되느냐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데 이만큼 걸렸다. 진지하게 음악하는 사람은 늘게 마련이지만…. 나는 너무 더디다.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맛이 있다고 해야 되나? 신이 나면서, ‘이걸 계속 즐겨주는 사람이 있을까?’ 겁도 난다. 우리나라는 희한하게 음악은 점점 완성되가는데 팬은 줄어든다. 내가 누군가와 연애하고 결혼하면 남자 솔로 가수로서의 내 값어치는 얼마나 될지 또 겁이 난다. 난 음악적으로 아직 미완인데.

당신 목소리는 당신밖에 못 내는 데도? 기대했던 건 성시경의 자신감이었다.
그건 이미지 때문이다. 난 되게 소심하기도 하고, 생각이 많다. 논리적으로 부딪쳐야 될 때나 소신에 따르는 편이지, 스스로‘ 나 되게 괜찮아. 짱이야’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만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인기를 실감하면서 사는 사람도 아니다.

방송에서, 당신이 전보다 자유로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 잃을 게 없다는 생각과 내 색깔을 조금은 내고 있다는 자신감, 둘 다인 것 같다. 내 제일 장점이자 단점은, 120짜리를 불러도 90이 나오고, 75짜리를 불러도 90이 나온다는 거다. 콤플렉스처럼.

그런 당신이 답답한 적도 있나?
나는 좋은데, 우리나라는 올 라운드 플레이어를 원하니까. 나는 마이클 부블레처럼하고 싶다.

마이클 부블레의 어떤 점이 좋은가?
애써 감정을 끝까지 안 질러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앨범을 내고 싶다. 내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이 아닌가 싶다. 마흔이 돼서 “다시 못보는 너~” 할 수도 없고. 예를 들면 시나트라의 ‘Change partners’ 라는 노래. 수요가 많으면 힘이 더 날 텐데. 한국어로 할 수 있는 좋은 노래가 너무 많다. 포크 쪽에. ‘이게 진짜구나’ 싶은 노래들. 결국 장필순, 결국 김광석, 결국 조동익. 이병우랑 마이클 잭슨을비교할 수 있나? 둘 다 짱인데. 장필순 선배가 노래하는 걸 가서 들으면 진짜 죽는다. 그걸 로린 힐이나 알리시아 키스랑 굳이 비교할 필요가 있는 건가? 그렇게 하는 게 가장 어렵고, 내가 파야 할 전공이 그쪽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태양계’라는 노래가 좋다.

‘그대와 춤을’ ‘바람, 그대’ ‘두 사람’ 같은 노래가 당신의 지향점 아닐까 생각했다.
노래를 잘하고 말고를 떠나서, 내가 그런 대본이 어울리는 캐릭터인 거다. (박)효신이가 정말 잘하지만, ‘두 사람’을 부르면 좀 어색한 지점이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해줄 수 없는 일’을 부르면 되게 맛이 안 난다. ‘바보’, ‘눈의 꽃’은 효신이밖에 못한다. 나도 ‘두 사람’, ‘태양계’ 같은 노래가 있다. 이렇게 조금씩 색깔이 만들어져 가는 거다.

당신이 10년 이상 해온 인터뷰를 보니 당신의 느끼한 이미지, 남자들이 싫어하는 지점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이미 다 끝나 있었다. 충분히 보여줬는데 안 변한다.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 콘서트할 땐 손톱만큼도 안 떤다. 방송에선 지금도 너무 떤다. 날 좋아하는 사람만 보고 듣는 게 아니니까. 라디오도 안 떤다. 라디오는 ‘우리’니까. 내가 예쁜 구석이 있는 콘텐츠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은 한다. 되게 지쳤었다. 다만, 나는 느끼하지 않고 다정하다. 여자들한테. 누나들이랑 컸고, 아버지는 무뚝뚝하시고.

밥 먹을 때 속도를 맞추거나 계단 오를 때 남자가 먼저 올라가서 손 잡아주는 것 같은 매너? 여자가 그런 대우를 받는 건 당연한 거다.
그러니까. 뭔가 논리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할 때 난 그걸 되게 열심히, 다쳐가면서 이야기한다. 비난이 쏟아진다. 버틴다. 그냥, “그러니까요 제가 뭘 아나요” 그래야 사랑받는 직업군인데, 나는 항상 그렇게 못한다. 그러니까 밉지. 술집에서 어떤 남자가 내 팔을 잡고 “야, 성시경 사인 받아 사인! 야야 사진기 갖고 와! 펜 없어요 펜?” 그러면 나는 “지금 정말 매너 없는 거 아시죠?” 그런다. 그게 내 한계다. 여자 손을 안 잡아줘야만 이쪽에 묻어서 ‘우리는 남자야’ 할 때 난 잡아줘야 한다. 남들이 욕하는 걸 다 느끼면서 되게 괴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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