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까짓 거

인터뷰의 본질은 아마도 누군가의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인터뷰의 실상은 한바탕 소동극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마저 왜곡된 소동극.

대개는 매체가 인터뷰를 요청한다. 그런데 반대로 저쪽에서 의뢰가 들어올 때도 있다. 지난 3월, 편집장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유명한 그룹의 소속사였다. 내용인즉, ‘우리 애들’을 인터뷰하게 해줄 테니, 5천만원을 내라는 것이었다. 전화기 저쪽은 또한 덧붙였다. “이런저런 여성지에서는 인터뷰하는 조건으로 그 정도 금액을 내기도 해서요. 근데 우리 애들이 랑 하고 싶다고 해서 특별히 먼저 물어보는 거예요.” (저런, 감사해라) 편집장은 바로 거절했다. 다른 잡지에 그들의 인터뷰가 실렸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일부 연예인과 매니저가 잡지 인터뷰를 돈벌이나 공짜 해외여행 수단과 연관 짓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인터뷰를 제안하면, 혹시 어디로 가서 진행할 거냐는 질문으로 에둘러 의중을 떠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여행 얘기를 꺼낼 때, 안면도 2박 3일을 제안하라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 메뉴얼도 있지만, 실제로 권해본 적은 없다. 가끔 묻긴한다. “그게 매니저 분 생각인가요? 아니면 당사자 생각인가요?” 질문에 답한 매니저는 아직 없었다. 여행이 아니라면 옷이나 돈도 반긴다. (물론 여행과 옷과 돈을 모두 취하는 경우도 있고.) 촬영한 옷을 공짜로 달라며 떼를 쓰는 게 예전 방식이라면, 아예 특정 브랜드로부터 돈을 받기로 먼저 계약하고 매체에 인터뷰를‘ 해주는’ 게 요즘 방식이다. 통틀어 ‘유가’라 부르는데(무가의 반대말로서), 브랜드가 페이지를 사서 진행하는 일종의 광고인 셈이다. 바른 이미지로 유명한 한 연예인은‘ 유가쟁이’라고 불린다. 돈을 받거나, 브랜드의 옷을 받고 찍는 화보가 아니면 일절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이 소속사가 내세운 방침이라서 생긴 별명이다.

숫제, 인터뷰 무용론도 있다. “인터뷰 같은 거 해서 뭐합니까?” 여전히 ‘신비주의’를 표방하는 듯한, 한 여배우의 매니저가 1년 전 에디터에게 했던 말이다. “시간만 들이고, 말 한마디 삐끗하면 괜히 시끄럽기나 하고.” 매니저는 이런 말도 했다 “아시잖아요. 말 못하는거. 그냥 화보라면 모를까.” 화보만은 진행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매니저가 결말을 알렸다. “다음에 한가할 때 전화 주세요.” 인터뷰 요청이라는 게, 약장사가 약 팔려는 멘트일까? 다음은 없다.

이번엔 좀 이상한 얘기. “아무개 씨는 한 번도 인터뷰를 안 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안 할 거예요.” 매니저는 예언자일까? 이유를 물었다. “말을 잘 못해요.” 꼭 말을 잘하는 게 인터뷰는 아닐 거라고 일렀다. 어쩌면 생각보다 말을 못하는 그의 모습이 진짜 인터뷰의 매력이 아닐는지 덧붙였다. 더구나 그는 개그맨이고 ‘말로’ 웃기는 사람이었으니. “어쨌든 인터뷰는 안 해요.” 이런 이유는 상대를 황당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준비한 답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황당할 순 없다. 지인을 통해 본인의 의중을 직접 들었다. “제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제가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럴 수 있다. 비즈니스라면. 하지만 이건 인터뷰다. 대답도 회사와 나란히 앉아 한 마디씩 상의하며 주고받으려 했나? 그의 존재감은, 그의 이름 석자는 누구의 것일까?

인터뷰를 꼭 해야만 하는 이유? 그런 건 없다. 인터뷰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면, 그 역시 하나의 선택으로서 존중해야 할 테니까. 문제는 인터뷰가 수단이 되고, 조건이 되면서 생겨나는 왜곡된 풍토다. 스타가 점점 캐릭터로만 존재한다는 사실도 이와 맞물린다. ‘국민여동생’이니 ‘국민남동생’이니 하는 말들의 잔치판. 배우는 작품과 배역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가수는 노래의 분위기로 만들거나, 아예 처음부터 캐릭터를 정하고 활동한다. 그렇게 정해진 캐릭터 안에만 있으면 된다. 잘 만든 캐릭터만 있으면 알아서 수익창출 모델이 된다. 그 외의 것은 없어도 그만, 아니 없을수록 좋다. 그러다 한 가지 캐릭터만을 고수하는 것이 마케팅 측면에서 약점이 된다면, 또 다른 캐릭터를 ‘스타일’로 만들어내면 된다. 인터뷰는 싫어도, 패션 화보는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파격 화보’는 이런 흐름을 관통하는 힘센 무기. ‘아무개 이런 모습 처음이야’라는 인터넷 매체의 기사가 뜬다면 성공이다. ‘인터뷰 같은 거 해서 뭐 하냐’던 한 매니저는발리에서 진행된 모 잡지의 패션 화보 촬영에 자신의 친동생까지 데리고 가서는‘ 발리 촬영팀’이라는 캡션으로 소개될 ‘컨트리뷰터’ 사진에도 등장시켰다.

과연, 연예인 패션 화보가 전성기를 맞으니, 패션 디자이너나 스타일리스트나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스타의 이미지 만들기 최전방에 있는 이들이 섭외의 중요한 관문이 되었다. 배우 아무개를 인터뷰하려거든, 소속사에 백날 전화해봤자 소용없고 어디 미용실 원장에게 전화하면 된다는 식의 얘기다. 그렇게 성사된 인터뷰 현장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 일쑤다.

일단 촬영현장엔 수많은 사람이 우글거린다. 섭외를 주관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자신의 메이크업 콘셉트에 의상이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의상을 준비한 스타일리스트는 사진 톤이 의상을 살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사진가는 포즈가 어색하다고 말하고, 매니저는 스타가 메이크업을 싫어한다고 말하고, 스타는 촬영을 즐기고 있다고 방송국 카메라에 말한다. 그리고 그런 말은 수시로 변한다. 그 와중, 독자의 공간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혹시 허무 개그가 아닐까?

어쨌든, 인터뷰가 시작되기도 한다. 매니저가 옆에 앉는다. 홍보사 직원이 의자를 가져다 앉는다. 한 명, 두 명, 많게는 다섯 명인 경우도 있었다. 스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건 네가(누군가를 지목하며) 얘기해.” 그러니 아주 입체적인 인터뷰가 되려나? 물론 다 그렇진 않다. 촬영장은 도깨비시장 같았으되, 인터뷰 자리엔 꼭 혼자 앉고자 하는 이도 있긴 있으니까. 솔직한 말 혹은 솔직하게 설정된 말이 오가고 인터뷰가 끝나면 전화가 오기도 한다. 함께 자리하지 못했던 매니저다. “인터뷰에서 무슨무슨 얘기했다면서요? 빼주세요.” 그럴 수 없다. 왜 그래야 하나? 또다른 전화 내용은 이렇다. “아까 찍은 사진 빼주세요.” 대답은 같다. 그럴 수 없다. 왜 그래야 하나? 상황마다 제각각이지만 있었던 걸 없는 걸로 바꾸고, 했던 말을 안한 걸로 바꾸며, 취했던 포즈를 안 취한 듯 바꾸려는 시도가 이렇게도 자연스럽다니.

마침내 인터뷰가 지면에 실려 나왔으니, 이제 팬들이 나설 시간이다. 요즘 팬덤의 특별한 성격은 좋아하는 스타를 그저 바라보며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스타로 만들어내려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스타의 머리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헤어스타일리스트를 교체하라고 소속사에 항의를 하는 식이다. 인터뷰를 대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바라고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원치 않거나 뜻밖의 모습을 볼 때, 그들은 대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쉴드’로 대표되는 팬덤의 역할은 여론을 만들고 몰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는 사이, 때로 인터뷰는 모종의 음모가 있는 함정기사로 둔갑하기도 한다. 우리 오빠가 대답하기 싫어하는 얘길 묻는 의도가 뭐냐, 혹시 누가 시킨 거냐는 식으로. 그런데 이런 상황은 사실 팬덤의 결속과 존재증명을 꾀하는 놀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그리고 놀이는 해피엔딩을 지향한다. 스스로 극복해서라도. “기자가 함정을 팠는데 오빠가 절묘하게 피해갔네요. 우문현답이네요. 역시 우리 오빠.” 어디론가 굴러 떨어졌던 인터뷰는 가까스로 (진흙을 털어 말리며)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인터뷰가 인터뷰로 확고하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은 스타가 자신을 온전히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환경 탓이다. 그건 기댈 곳이 있다는 안정감을 주겠지만 동시에 말 한마디 온전히 제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표식이다. 스타는 책임지지 않는다. 대신 캐릭터가 책임을 지면 된다. 그리고 새로운 캐릭터를 입으면 된다. 다른 한 가지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매체마다의 고유함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과 잡지와 방송의 영역조차 구분되지 않는다. 어떤 매니저들은 말한다. “이왕 인터뷰를 할 거라면 <무릎팍도사>에 나가겠죠.” 이 말은 작금의 인터뷰의 가치를 압축한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준비한 한 마디를 ‘퍼뜨리는’ 것과 선택적인 독자들을 향한 지면에서 뜻밖의 질문과 ‘마주치는’ 것은 다르다. 전자를 취하고 후자를 외면하는 한, 인터뷰는 점점‘ 홍보’와 같은 말이 되어갈 수밖에 없다.

뉴스의 진창이 이미 궁금해하기도 전에 소식을 쏟아내니, 궁금할 것도 없는 시절이다. 그러니 인터뷰란 그저 유행에 뒤떨어진 퇴물이 아닐까? 이렇게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할 사람,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