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자기만의 방

2011.11.09정우영

하루 종일 방안에 쳐박혀 있다가 밖으로 나간다. 너의 방에 가기 위해서.

횡단보도를 건널 때 습관적으로 손을 든다면 아직 아이라는 뜻이다. 침대에 엎드려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건 그리워하는 게 있어서다. 어떤 낮을 보냈든 어떤 술집에 있었든 어떤 거리를 지났든, 결국 방으로 간다. 혼자라는 명분을 찾아서. 불을 끈 채로도 켠 것만큼 익숙한 어둠. 습관 쪽으로 돌아선 사람을 만날 시간이다. 그러나 습관으로도 들춰보지 않는 옛 애인의 사진을 비웃듯, 방 한쪽엔 침대가 있다. “사진은 신성하다. 당신은 항상 거기 없으므로.” 제임스 설터의 문장, 사진에 대해 침대처럼 쓴 문장.

현관문을 잠그지 않을 때가 있다. 늦은 시간 전화한 친구가 좀 자고 가도 되겠냐고 물어올 때, 아니면 누군가가 여기, 내 곁에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 설명하는 게 어려울까 봐, 아니 그런 걸 듣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저 옆으로 와서 안으면 그만일 것이다. 혹시 온 줄 모르고 계속 잘 수도 있지만, 일어났을 때 사자처럼 육중한 존재감이 닥치길 바라면서 잠든다.

함께 침대 위에 있다는 건 드물게 약속이 될 자격이 있다. 그래서, 어떤 모텔 침대가 그리워 혼자 찾아갔다는 남자의 이야기도 그리 이상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찾아간다는 말조차 성립하지 않는 일상, 우리가 정말 상대하기 어려운 것은 자기 방의 침대다. 처음, 남자의 방은 술을 한잔 더 하기 위한 공간이다. 몹쓸 취기와 고성방가에 치이는 새벽녘 술집에서는 “집에서 한잔 더 하겠냐”는 말이 차라리 자연스럽다. 손잡는 것보다 옷 벗는 게 쉬워지고, 친절하게 구는 것보다 “좋다”는 말이 만만한 게 그 방이다. 여자는 대화를 나눌 때와 좀 달라 보인다. 오늘 밤은 기쁨을 위해서, 지금까지 했던 말은 저버려도 좋다. “제가 불면증이 좀 있어요.” 여자가 곧바로 잠든 걸 탓하지 않는다. 오늘 밤은 힘들었으니까. 땀 냄새를 맡으면서도 잘 수 있다면, 깨끗한 이불 속에서 잠드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내일은 쉴 것이다. 내일은 쉬어야 적어도 ‘섹스 중독자’, ‘당신에게 반한 여자/남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들은 모레 만난다. 바둑을 두는 것도 아닌데, 모레는 여자의 집으로 향한다. 어젯밤 여자는 밀린 설거지를 다 하고, 빨래도 마쳤다. 남자가 올 거라고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남자와 아무 상관이 없지는 않다. 그를 의식하면서, ‘내일’을 쉰 탓이다.

남자는 여자의 침대에 누워서 섬유유연제 냄새가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해낸다. 여자와 남자는 섬유유연제 하나로 다른지도 모른다. 빨랫감과 세제가 수돗물에 뒤섞일 때 섬유유연제를 첨가하는, 아름다움을 위한 노고 말이다. 그리고 잠들 때, 여자는 또 하나의 노고를 더한다. 남자는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우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루가 끝났다는 걸 안다. 물론 섹스가 시작된다는 걸 예감하는 게 조금 빠르다. 섬유유연제 냄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아무 문제도 없고 평안하다.” 내일이면 그녀는 다시 화장을 할 것이다. 내일부터는 사랑을 위한 노고까지 더해질 것이다.

남자는 여자의 방에 가고 싶고, 여자는 남자의 방에 가고 싶다. 사람들은 여행을 가면 좀 더 막 살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낯선 곳이 무리할 것을 부추기듯이, 남자는 여자의 집에서 더 몰아붙이고, 여자는 남자의 집에서 더 대담하다. 방이 방의 주인에게 부여하는 권위가 있고, 그에 복속된 각자는 더 사랑받고 싶을 뿐이다. 현대 도시에서 사람들은 늘 어딘가로 도망치는 중이다. 이만한 피난처가 없다. 여자는 남자 방에 있는 스테레오를 좋아한다. “그때 일요일 낮에 누워 있을 때 튼 거 듣고 싶어.”

음악은 지시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 좋은 것들의 목록을 늘리는 중이다. 여자는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다가 남자의 바지에 손을 넣는다. 남자는 좀 더 놀라워진 음악을 듣는다. 여자는 그것을 물고 노래를 따라 부른다. 여자의 노래가 남자의 방에서 새어나온다. 여자는 그 도취적인 음악과 이 남자와 이 남자의 방이 좋다. “더 해줄까?”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는 여자 방에서 마시는 커피를 생각한다. “이 원두 어디서 샀어?” 여자는 집 앞에서 가장 싼 원두를 산다. 뭔가를 사랑할 때는, 그것의 결점조차, 매력적으로 부족한 것이 된다. 남자는 커피를 입에 머금고 여자와 키스한다. 여자의 결벽증에 커피라는 예외가 생긴다. 남자는 입을 떼지 않고 옷을 벗긴다. 팬티는 여자 스스로 벗는다. 대낮처럼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남자는 커피의 흥분과 이 여자와 이 여자의 방이 좋다. 밖으로 나갈 일은 없다. 속옷만 챙겨서 각자의 방으로, 여행하듯이 간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벗은 속옷을 담을 비닐봉지까지 챙겨 나오기 시작한다. 그들은 적응한다. 그들은 익숙해진다.

“워시드 아웃 새 앨범 표지 봤어?” “느끼하던데.” “남자 등판이 크게 보여서 싫단 거야?” 그렇게 따지면 남자의 한 손이 침대 시트를 끌어당기고, 한 손은 여자의 가슴에 가 있는 게 더 눈에 밟힌다. 하지만 남자의 손이 여자의 따귀를 때리고 있었다고 해도, 싫다고 말하려던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침대를 바라보는 불편함이 있다. 본의 아니게 그의 삶에 불쑥 끼어들었다는 자각. 느끼하다는 말은 남의 침대를 가능한 멀리 두려는 시도다. 하지만 모든 침대는 똑같아서, 결국 자기 방의 침대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온다. 루 리드는 “나는 향수가 싫다, 내 것만 빼고”라고 말했다. 남자는 향수에 젖는다. 매우 그립지만, 동시에 지금은 불편하기도 한 향수다. 그들이 가장 좋았던 시절, 함께 침대에 누워 있다가 여자는 말했다. “우리 헤어져도 친구 같은 건 되지 말자.” 좋은 순간을 망치는 말이야말로 뼈저리게 남는다. ‘네 방’도, ‘내 방’도, 친구의 방은 될 수 없다.

내일 아침엔 버스를 타고 일찍 출근해야 하고, 회사에서 마무리 못한 일을 오늘 내로 끝내야 한다. “우리 집 오면 안 돼?” “오늘 할 것도 많고, 내일 일찍 가야 돼.” “우리 집 와서 하면 되지.” “내가 일한다고 가서 니네 집에서 일한 적 있냐?” “오늘부터 하면 되지.” “됐어. 네가 우리 집으로 와.” ‘내 방’과 ‘네 방’의 거리 계산은 시간과 비례해 멀어지는 측량법을 도입해야 한다. 방과 방 사이만 그렇지도 않다. 방의 주인은 늘 뭔가를 하고 있다. 그 침대와 가장 멀어 보이는 건 침대의 주인이다. 남자의 방은 여자가 없다는 것 말고는 완벽하다. 여자의 방은 남자가 없다는 것 말고는 완벽하다. 그와 함께 정말 완벽해지려면, 겨울에 방 온도를 찜질방만큼 올리는 습관을 견뎌야 한다. 여름에 방 온도를 냉장실 수준으로 내리는 습관을 견뎌야 한다. 그는 너무 쉴 새 없이 음악을 튼다. 그녀는 밥보다 커피를 더 좋아한다. 마침내, 섹스가 없는 밤이 온다. 아침이면 레코드 위에 쌓인 먼지를 후 불어내고 노래를 튼다.

방에 있는 모든 사물이 풀어야 할 매듭처럼 보이는 시간. 기분을 새롭게 하는데, 빨래는 공신력 있는 방법이다. 새로 빤 침대 시트 위에 누우면, 하루 정도 여행지의 모텔에 누운 착각이 인다. 그러나 처음 물건을 사서 쓸 때의 이질감을 기대하는 건 곤란하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으로 돌아온다. 이질감만을 추구하는 삶을 계속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눈앞에서 치우는 것뿐이다. 원하지 않게 될 것이고 잊을 수 있을 것이다. 머나먼 여행을 끝내고, 귀가한 밤이다. 침대 시트를 한 번 더 빨아보는 밤이다.

침대에 누우면 앉아 있던 책상이 보인다. 덮지 않은 재떨이 뚜껑이 보이고, 볼륨을 너무 크게 올려놓은 프리앰프가 보이고, 재활용 쓰레기통에 넣지 않은 맥주 캔들이 보인다. 크리넥스 휴지가 어지럽게 놓여 있는 것도 보인다. 여자는 크리넥스 휴지를 쓴다는 점이 더럽게 느껴진다고 했다. 아침에는 코를 푼 휴지로 혼란을 추가할 것이다. 아침에는 침대만이 혼란 없이 정갈하단 걸 안다. 침대는 지난밤의 자신을 반영한다. 뒤척이지 않았다.괴롭지 않고, 헷갈리지 않는다. 침대라는 통로가 있었고, 닫혔다. 당분간은 침대라는 통로 위에서 길을 잃을 일은 없다. 침대 시트를 어지럽게 흩뜨려놓는 아침이다.

    에디터
    정우영
    아트 디자이너
    Illustration/ Finger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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