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의 노래

설명하지 않고 김영호에게 기타를 그냥 건넸다. 그는 조율부터 했다. 이윽고 노래를 부른다. 누가 봐도 ‘장군감’인 김영호가 부르는 애절한 ‘헤어진 후에’. 충무공이 노래를 불렀다면 꼭 저랬으려나?

의상 협찬/ 핀 스트라이프 쓰리피스 수트는 휴고보스, 셔츠는 제이프레스, 타이는 란스미어, 구두는 수기 에보카 옴므, 기타는 아이바네즈 BY 기타네트
의상 협찬/ 핀 스트라이프 쓰리피스 수트는 휴고보스, 셔츠는 제이프레스, 타이는 란스미어, 구두는 수기 에보카 옴므, 기타는 아이바네즈 BY 기타네트

지금 부른 노래 제목이 뭔가? 처음 듣는 노랜데.
오석준의 ‘헤어진 후에’라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노래다. 나만의 방식으로 불러서 더 모를 거다. 지금은 소리를 당겨 불렀다.

<바람에 실려>에선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을 ‘질러’ 불러서 반응이 좋았다. 꽤 오랫동안 검색 순위 1위였다.
프로그램에서 내가 노래를 부르는 건 전혀 예정에 없었다. 임재범 형님이 갑자기 사라져서 할 수 없이 부른 거다.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은 전혀 몰랐다. 그래도 현장 반응은 좋았다. 우는 스태프도 있었고.

울었다고? ‘청중 평가단’의 리액션은 방송에 안 나왔다.
나도 감동받은 스태프 얼굴이 <나는 가수다>처럼 막 편집될 줄 알았다. 하하.

<바람에 실려>에서 임재범이 갑자기 사라졌다 나타났을 때 화가 단단히 난 모습이었다.
화를 낸 게 아니고, 그냥 짜증 낸 거다. 대장이면 책임을 져야 되지 않을까? 딱 그 정도다. 촬영 초반에 갈등도 있었지만 지금은 의형제다. 돌아오기 전에 형님한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신의 뒤에서 진심이 되어주겠다. 절대 의심하지 않고, 믿어주겠다.”

방송에선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비슷해서 더 부딪치는 느낌이다.
재범 형님도 나보고 우리가 많이 닮았고 말했다. 한데, 자기보다 내가 1백 배는 더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다. 자기는 통제가 안 되는데, 나는 통제가 되니까.

그런 통제가 방송에서도 보인다. 로버트 드 니로를 흉내 내려고 점을 붙이면서 문중의 어른들께 죄송하다고 인사도 하고.
내가 약속, 규범 이런 거에 정말 약하다. 온몸에 자물쇠를 채운 것 같다. 그러나 일단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킨다. 그런 면에서 자유로운 재범 형님이 부럽다. 노래 빼놓곤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전혀 없지만. 하하.

하지만 노래를 ‘제대로’ 하는 건 매력이다. 당신도 말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노래를 사랑한다. 만약 나한테 노래가 없었으면 내가 살았을지 죽었을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정말 죽었을 수도 있다.

노래가 사람을 살린 건가?
하하. 농담이 아니라 진짜 어떤 분께서 내가 단명할 거라고 예언했다. 내가 생각해봐도 오래 살 거 같지 않았다. 아버님도 삼촌도 일찍 돌아가시는 걸 봤으니, 우리 집은 단명 하는 집안이구나, 서른다섯은 못 넘기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오래 살 것도 아닌데, ‘나 혼자 살다가 죽자’라며 살았다. 여자를 만나도 상처 주지 말자고 다짐하고.

저돌적으로 다가가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한 번도 먼저 여자에게 다가간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진짜 마음에 드는 여자가 생겨도 여자가 먼저 말하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끝.

일부러 무관심한 듯 보이려고 노력하는 건 아닌가? 여자는 자신에게 무심한 남자에게 호기심을 느끼니까.
전혀. 어렸을 땐 출가해서 스님 생활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내가 살아온 환경이 너무 싫었다. 가난해도 너무 가난하니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서 이렇게 살 바엔 다 비우고 절에 들어가 축지법이나 배우자고 결심했었다. 그래서 여자에게 관심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원래 여자에게 관심 많다. 표현을 못할 뿐이지.

꾸준하게 ‘섹시한 남자’ 역할을 해오고 있다. 벗기도 몇 번 벗었고. 이번에 출연한 <완벽한 파트너>도 섹시 코메디다. 이번에도….
이번에도 벗었다. 엉덩이까지. 한 설문조사에서 내가 가장 섹시한 남자로 뽑힌 적이 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조사라고 생각했다. 난 ‘섹시’하고는 일억 광년쯤 떨어져 있다. 가장 단순한 남자면 모를까.

단순한 남자치곤 너무 많은 일을 한다. 음악에 미술 전시, 이달엔 시집 출간도 한다고 들었다.
단순하게 상황마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거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거 거의 못하고 산다. 압구정동을 한 시간만 걸어봐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 여자가 오십 명도 넘는다. 하지만 다 만날 순 없다. 지난여름엔 <트렌스포머 3>에서 박쥐 옷을 입고 날아다니는 걸 보고 너무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방팔방 알아봤는데, 결국 못 구했다.

윙수트! 사고 영상을 보면 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질 거다.
하하. 그래도 해보고 싶다.

의상 협찬/ 자켓은 브리오니, 셔츠는 제이프레스, 타이는 휴고보스
의상 협찬/ 자켓은 브리오니, 셔츠는 제이프레스, 타이는 휴고보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시간이 많이 부족할 것 같다.
지금도 연기 잘하는 배우지만 대한민국 톱 배우 하면 김영호 이런 수식어를 달고 싶지 않나? 인물이 톱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톱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아, 꽃미남이다’ 이래야 하는데….

아니면 송강호보다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이런 욕망은 없나?
당연히 있다. 강호는 강호만의 에너지가 대단한 배우다. 하지만 내 운이 이것밖에 안 되는 걸 어떡하나. 앞으로는 다를 수도 있는 거니까. 난 나한테 주어진 운명을 믿는다. 지금도 행복하기 때문에 더 큰 걸 더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순간순간 인생을 즐기는 건가? 내가 즐길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목표를 세우고 욕심을 내면 그때부터 집착 생기고, 그 다음부터 고민하게 되고, 자꾸 뭘 안 놓치려고 하게 된다. 한 가지만 추구하다가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포기할 건 빨리 포기하고, 하고 싶은 건 빨리 시작하는 게 좋다.

나에게 ‘영화배우 김영호’라는 인식은 <밤과 낮>부터다. 김영호가 제대로 ‘멍’하고 찌질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갑자기 변할 수 있었던 건 감독 덕분인가?
연기란 사람이 다른 사람을 표현하는 것이다. 당연히 감독의 힘이 아니라 배우의 힘이다. 내 경우 <밤과 낮>에 비해 <미인도>때는 또 다른 인물이었다. 이후 <부산>에서의 모습도 다르고.

그런 다양한 모습들이 김영호 안에 있다는 얘긴가?
정반대다. 난 단순하다. 생각도 없고. 마음에 뭘 담아놓지 않는다. 말하다 말하기 싫으면, 그만두고. 말 자꾸 하는 거 귀찮고, 부딪치면 치고받고, 아니면 그만둔다. 대통령이 불렀을 때도, 가기 싫다 하고 안 갔다. <강심장> 1회 때는 할 말도 없는데 하고 싶은 말을 푯말에 쓰라고 해서 ‘없다’라고 썼다. 그나마 앉아 있는 것도 답답해서 한 시간 만에 박차고 나왔다.

단순함 때문에 어떤 역할도 할 수 있다?
그렇다. 그래서 오히려 손해다.

손해?
한 배우가 여러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게 손해가 될 수 있다. 김영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내가 너무 많이 변하니까 사람들이 나를 기억 못하는 거다. 그래서 한번은 강렬한 역할만 한번 해볼까 생각해봤다. 나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생계형 배우는 아니지 않나? 주연만 줄곧 했는데.
아, 그게 돈이 안 된다. 하하.

그래도 주연인데?
몇 억씩 개런티를 주는 영화는 잘 안 들어온다. “적게 받으시고 나머지는 러닝개런티로 받으세요” 한다. 그동안 뭔가 한 가지 캐릭터를 구축했어야 하는데, 그게 싫은 거다. 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고 선택했으니까. 만약 내가 깡패 역할이나 센 역할만 꾸준히 했으면, 희소가치는 올라갔겠지. 어느 영화나 강한 역할은 꼭 나오니까. 일은 1년 내내 하는데, 다른 배우가 영화 한 편 출연한 것보다 돈은 덜 번다. 그런데 할 수 없다. 내 성격이 그런 걸 어떡하나.

그리도 단순한가?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데, 20대 초반에는 정말 ‘시크’했다. 좋게 말해서 시크지, 나쁜 말로 하면 난폭. 그러다 거친 나를 가다듬을 수 있는 돌파구를 책에서 찾았다. 이십 대 초반부터 책을 정말 많이 읽었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시작으로 십 년 동안 철학, 심리학 분야 등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심취했던 사상이 있나?
프로이트와 칸트 영향도 많이 받았고. 중국 시인 두보를 좋아했다. 그는 상류층으로 살기 싫어하고, 나라에서 돈 좀 받는 것도 부끄러워서 만날 땅만 파지 않았나? 앞뒤 꽉 막힌 사람이어서 좋다. 그의 말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게 됐다. 난 내가 장군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장군보다 문인에 가깝다는 말인가?
무인이지만 문인이기도 한 사람. 두보만큼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 이태백이다. 이태백은 신선이 되기 위해 칼을 잘 쓰는 검술가이기도 했다. 술도 많이 먹고, 글도 잘 쓰는 이태백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몸은 딱 장군감인데.
아, 장군 역할 중 욕심나는 영화가 하나 있었다. <청풍명월>의 조재현 역할. 정직하고 우직하게 나라를 지키는 남자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장군 하지 않았나? <하하하>에서 이순신 장군.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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