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김성근은 이렇게 말했다

2011.12.02GQ

김성근은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실어달라고 했다. 당연히 그대로 실었다.

퇴임 이후 주로 일본에 계셨습니다. 한국보다 일본이 더 편하세요? 뭐, 일본이니까 아무래도 아는 사람이 적어서 편하게 행동할 수 있고, 그리고 이게 시초가 될지 영원히 이럴지는 몰라도 한국에 대한 불신이 생겼어요. 그게 큰 원인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진실 자체가 소멸해서 분사되는 나라야. 요새 매스컴 관계자한테 이야기하지만, 자유당 시절, 군사 정권 시절 그렇게 언론의 자주를 원했던 사람들이 요새는 언론이기를 포기하니까. 이런 게 한국 사회구나 싶은 걸 새삼스럽게 느끼니까 짜증스러워요. 우리나라가 재벌 사회라 힘 있는 사람한테 평민들이 굴복하고 힘을 못 써요. 이러니까 화가 난다고. 일본 가면 뭐 전부 똑같은 위치니까. 이 나라의 앞으로의 미래라든지 야구계라든지 내가 해임한 이후를 놓고 볼 때 참 답답해.

하필 답답한 한국에서 뵙네요. 그쪽에 늘 있는 건 아니니까, 또 며칠 있다 나갈 예정이에요. 친구들 보러 왔다 갔다 하는 거죠. 마음의 갈등이라고 하나? 그걸 소위 말해서 커버하기 위해서 가는 거예요. 우리 사회는 큰 조직이 개인을 쉽게 죽여요. 그거에 대한 죄의식이나 반성이라곤 없는 사회예요. 그렇잖아요? 지금 여기만 하더라도, 성수대교 사고 때 난리가 났었는데, 성수대교에 대해 아직까지 뭔가 갖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어? 없잖아요.

감독님이 현직에 계실 땐 늘 싸우셨잖아요. 그때는 바꿀 수 있다고 믿으셨던 것 아닌가요? 나는 트라이 많이 했어요. 싸움도 많이 하고. 인정해달라는 생각은 하나도 없지만, 내가 세상 흐름에 1:99, 1:999로 맞서는 것 같았어요. 하나의 올바른 물이 나오면 거기에서 물이 정화돼야 할 텐데 안 됐어요. 답답하지.

혼자서는 버거운 싸움이었죠. 버겁다기보다 내 뜻대로 하고 싶은 말 하고 행동했지만, 매스컴이라든지 이런 데서, 주위에서 같이 움직여주지 않으니까. 지금처럼 다들 고정관념 속에 놀아나고 있으면, 나라는 발전 안 해요. 모든 사람이 발전 안 한다고. 흘러가고, 또 흘러가요. 나라가 발전했다지만 사람이 갖고 있는 기본자세는 똑같아요. 내가 개입하면 손해 본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해임 후 사람들이 구단에 분노를 표시하는 걸 보며 예전과 다르다고 느끼진 않으셨나요? 해고 과정이 불의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했잖아요. 사람들 하고 싶은 대로 한 거죠. 하지만 분노라는 것도, 아까 얘기한 대로 큰 부분이 같이 움직여야 하는 거예요. 큰 부분은 그대로예요. 나는 동조받고 싶지도 않고, 내 판단 아래 움직였어요. 분노는 별로 없어요. 단 하나. 어두운 부분들은 어느 세계나 많아요. 그런데, 그런 것에 대한 기억이 없잖아. 그냥 흘러간다고. 안타까워요. 나 혼자 해서 될 일도 아니고.

동조도 바라지 않으시다니요. 팬들이 그렇게 해줬다는 건 고맙죠. LG 그만둘 때, SK 그만둘 때, 고맙긴 하죠. 고맙긴 한데, 부담스럽죠. 분위기 자체가…. 그 사람들이 움직인다는 자체가 미안해요. 더 슬기롭게 했으면, 아주 스무스하게 끝났을 텐데.

올 시즌까지 하고 재계약하지 않겠단 결단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으시고요?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나는 모든 세상살이를 자존심이라고 봐요. 자부심. 자부심이란 건 얼마나 자기 일에 몰두했느냐의 문제예요. 적당히 한 사람은 자부심이 없다고. 그러면 해명밖에 안 나오는 거예요. 나는 지도자로서도 그렇고, 감독이나 야구인으로서도 그렇고 전력투구를 해왔어요. 그런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게 무너졌으니까…. 후회를 느껴본 적은 없어요. 단 하나, 끝나보니까 “아,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어요. 감독 하면서는 나이에 대해 무관심했는데, “내가 칠십이구나” 싶더라고. 이제부터 뭐 하나 싶은 그런 조바심은 아니고, 뒤돌아본다고 할까? 이제 현주소를 찾은 것 같아요.

야구만 생각하시던 분이 겨우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으니까요. 진짜 야구란 것 하나 속에 있었으니까, 생각도 행동도 단순했어요. 거꾸로 볼 때, 야구에 모든 걸 몰두하고 있었던 게 원인이고. 나와 보니까 세상일도 아는 게 없고, 친구도 없어졌어요. 칠십대의 외면당하는 느낌도 갖게 되고. 그런 건 있지만 후회스러운 건 없어요.

감독님은 스스로 강한 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난 뭐 강하진 않은데, 약한 사람인데. 인간은 다 약한 거예요. 자기 뜻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서 움직이는 거지, 뜻이 희미한 사람이 약한 거예요. 뜻이 있는 사람은 성격도 강해요. 목적의식이 확고한 사람들이 강해요. 일해야 되니까. 일할 땐 모든 걸 소외시키고 하나에 집중한다는 이야기지. 예를 들어서 과거에 내가 구단과 사이가 나쁘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감독으로서 갈 길이 있으니까 그런 거예요. 단지 인간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아요. 나도 칠십이잖아요. 어떻게 하면 나를 보호할 수 있는지 알아요. 그러나 그건 아닌 거예요.

한국 사회는 융화, 협동, 양보 같은 공동체 정신을 무척 강조하죠. 어떨 땐 일보다 그 정신이 우위에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한국적인 정신은 아니고, 세계적으로 다 마찬가지예요. 조직은 조직의 목적이 있어요. 거기에 따라 사람들이 행동하면 돼요. 그렇죠? 인간적으로 사이가 좋건 나쁘건 아무 상관없어요. 조직이 가고자 하는 길로 모이면 돼요. 굳이 “사이좋게 지내자”는 건 난센스라고 봐요. 그렇게 할 필요 없어요.

한국 사회에서 원만한 인간관계 만큼 중요한 미덕도 없죠. 나는 미팅 많이 하는 조직은 실패라고 봐요. 왜 자꾸 강제로 모여요? 리더의 자위행위라고. 자기만족이에요.

조직 속의 개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도 있죠. 개인이 알아서 해야 돼요. 위에 얼굴 새기고 아부할 필요 없다고.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개인을 살리자, 이런 말 많이 하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아요. 일을 몇 개 풀어놓고, 기한이 3년이면 3년 동안 놔두고 결과를 보면 돼요. 간섭하면 안 된다고. 그래야 맘 놓고 일을 하지. SK에서 한국시리즈 세 번 우승하고 네 번 나갔지만, 시리즈 도중에 미팅 한 번도 안 했어요. 미팅할 시기가 있고, 안 할 시기가 있어요. 매일 하면 사람이 짜증스럽고 위장하게 돼요. “무슨 말로 속이지? 어떻게 넘어가지?” 이렇게 생각한다고.

반면에 LG 트윈스 같은 경우엔 부진의 원인으로 선수들의 ‘개인성’ 문제가 곧잘 지적됩니다. 개인적이라는 말 안에 자율 관리란 말이 있어요. 관리 속에 자율이, 자율 속에 관리가 있어요. 똑같은 말이에요. 개인주의의 원인을 따져보면 돼요. 사람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돈 벌고 잘살고 싶은 건 본능적인 거예요. 단 하나, 그전에 조직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돼요. 조직이 이득을 얻기 전에 내가 얻으려고 하니까 조직이 망하는 거지.

감독님이 선수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부분은 조직의 목표를 중시하는 태도인가요? ‘내가 아닌 우리’ 같은 말을 누구나 하잖아요. 우리는 공동의 목표가 있는 거라고. 그것만 통일하면 돼요. 그 생각이 없을 때는 아무리 우승을 많이 했어도 그건 개인인 거예요. 어떤 위기가 오면, 모래알처럼 사라져버려요. 목적의식이 똑같은 팀은 위기가 왔을 때 더 단단해진다고. 그렇게 리더가 같은 목표를 공유하게 만들어야 해요.

그게 감독의 힘일까요? 그게 감독이지.

좋은 선수의 자질과 좋은 감독의 자질은 어떻게 다른가요? 감독이나 선수나 인내력이 있어야 돼요. 얼마큼 버티느냐, 얼마큼 끈질기냐, 이런 모든 부분이 인내예요. 다음에는 재생능력을 갖고 있느냐. 그리고 적응력이 있느냐. 적응력이라고 하는 건 위기든 뭐든 대처 능력이 있느냐는 거예요. 이런 게 제일 중요한 거 아니에요?

개개인의 목표가 누가 바꾸라고 한다고 쉽게 바뀌진 않을 겁니다. 선수들이 어떻게 공동의 목표를 공유할 수 있을까요? 일단 하나의 목표를 적게 해요. “너 개인 목표가 뭐야? 팀으론 뭐야? 우승이다. 우승하기 위해서 뭐 할래?” 적게 한다고. 약속이니까. 어느 팀에 가도 그 이야기를 해요. “야구는 너한테 뭐냐?”고 물으면 “전부다”, “생명이다” 그런다고. 그렇다면 그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 어떻게 해왔는지 물어봐요. 그리고 네가 어떤 목표를 갖고 이 캠프에 왔는지 물어봐요. 그리고 적죠. 세뇌교육이에요 이를테면.

다른 팀이라고 그런 과정이 없을까 싶기는 합니다. 3개월 세뇌교육을 해요. 그럼, 사람 바뀌어요. 말은 누구나 해요. 3개월 하면 의식도 바뀌고 안 된다고 했던 것도 된다고. 그리고 내가 간 팀은 연습이 많아요. 생과 사를 헤매는 수준이에요. 그러다 보면 선수들이 아쉬움을 가져요. 프로페셔널은 시작이 아쉬움이에요. 아쉬움이 없는 아이들은 전력투구를 안 해요. 아쉬움이 없으면 해명과 변명뿐이에요. 전력투구하는 놈은 오로지 아쉬움 밖에 없어요. 남한테 지는 아쉬움 말고, 스스로 아쉽고, 팀에 아쉬워요. 연습 많이 하는 건 기량도 기량이지만 정신을 조직 안에 넣어버리는 거예요. 그래야 강해져요.

감독의 목표는 분명 우승이지만, 선수 입장에선 확실한 출전 기회를 보장받고, 좀 더 좋은 개인 성적을 내서 연봉을 올려 받는 일이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구단 입장에선 많은 관중을 유치하는 게 우승보다 먼저일 수도 있고요. 내가 일한 팀에서 연봉 안 올라가는 선수 없어요. 이기니까 연봉 올라가는 거예요. 감독은 부모하고 똑같아요. 아이들이 유복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감독의 의무예요. 그래서 감독이 힘들어요. 이런 의식 갖고 있지 않은 감독 많아요. 리더라고 하는 건 항상 그런 생각을 해야 돼요. ‘얘네들 밥 먹게 해줘야지, 연봉 받게 해줘야지.’ 복합적으로 생각해야 된다고. 단순하게 이기자는 게 아니라, 이기니까 이렇다는 걸 선수들에게 자꾸 인식시켜가야 돼.

감독님이 생각하는 인간의 자질도, 감독님이 생각하는 선수나 감독의 자질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에서 제일 나쁜 건 일하기 전에 해명부터 만드는 사람들이에요. 시작하기 전에 먼저 생각한다고. 부딪히고 문제가 생겼을 때 비로소 뭔가를 느끼는 사람들은 자꾸 돌파해요. 시작하기 전에 문제점부터 생각하면 겁이 나서 안 해요. 예를 들어서 8천 미터 높이의 산이 있어요. 위험하거든. 일반 사람은 못 올라가. 그런데 산악인들은 거길 가려 한다고. 거기에 죽음이 있는데 가서 부닥치고, 부닥치고 해요. 인생이라는 건 시행착오가 많은 사람이 성공해요. 시행착오는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겪어요. 트라이 하는 사람. 부닥칠 때마다 고민하고, 또 가고, 또 가고 하는 거예요. 선수나 인간이나 다 마찬가지예요. 처음부터 “이 선수 이만큼 연습 시키면 쓰러지겠다” 싶으면 연습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다 해놓고 보면, 그만한 능력을 인간이 갖고 있어요. 시도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지. 판단하기 전까지는 깊어야 되고, 길어야 돼요. 그렇지만 결단은 빨라야 돼요. 그리고 결단을 내리면 뒤돌아보면 안 돼요. 사막에 왔는데 뒤돌아보면 어디로 가려고요? 갈 데 없어요. 오로지 그 길을 가야죠. 그게 인생이에요.

감독님은 지금 사막에 계신가요? 해임된 시점부터 다시 사막을 헤매고 있어요. SK에서 5년 지내는 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개인적으로 억울한 점도 있었지만 사생활 문제 아닌가 싶고. 이제부터 어떻게 움직이고, 성장할까의 문제지.

작년부터 지금까지, 새로 부임한 감독들의 나이가 상당히 어립니다.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요. 야구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 중에 우수한 사람들 많아요.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제일 무시받는 게 경험이에요. 경험이라는 게 어마어마한 건데, 우리나라는 경험을 무시해요. 나이만 먹으면 소외시키고, 젊은 사람, 젊은 사람….

결정권자 입장에서, 경험 많은 감독은 다루기 어렵기 때문일까요? 그런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이에요. 문제의식도 많고요.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걸 극복하고 해결해나가야 하는데, 안 하고 새로운 걸 찾아요. 새로운 거엔 또 새로운 문제점이 있어요. 이걸 잘 모르더라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기 때문에 방법을 많이 알아요, 젊은 사람들은 하나밖에 없어요.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많다고. 야구라고 치면, 이기고 지고는 해요.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야구 전체를 보고, 야구계의 미래를 보느냐? 안 봐요. 전부 개인밖에 생각 안 해요.

감독님이 그리는 한국 야구의 미래는 어떤가요? 메이저리그에 우리 팀 하나가 가는 거예요. 그리고 월드시리즈 하는 거. 아시아에서 일본이나 우리가 메이저 리그에 가야 해요. 팀 하나 만들어서 미국 가면 된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실행해 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게 발전이에요. 고정관념 속에서 놀면 사람이 발전이 없어요. 콜럼버스가 미국 대륙에 가는 거랑 마찬가지예요. 상식 속에서 누가 그런 짓을 하겠냐고. 죽음하고 직면하면서 간 거 아니에요. 우리가 메이저리그 팀과 같이 야구한다는 건 누가 봐도 우스운 얘기예요. 그런데 과거에 위인이라고 하는 건 전부 미친 사람들이에요.

SK 감독으로 계실 때도 그런 비전을 공유할 만한 사람은 없었을 것 같은데요?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에겐 앞이 없어요. 나는 배고팠어요. 그러니까 언제든지 내가 문제의 도마에 올라가 있었죠. 나무라고 하는 건 줄기랑 잎이 아무리 커도 뿌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바람 한번 불면 쓰러지는 거예요. 대나무는 뿌리가 깊어요. 대나무는 절대로 안 뽑혀요. 그런 게 야구에 필요한 거예요. 우리나라 야구 관중이 육백만, 칠백만이라고 얘기하는데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좋기는 좋지. 그런데 이 야구가 어디로 가야 하냐 생각했을 때 그걸로 만족하는 건 난센스 아니냐고. 우물 안 개구리가 생각하는 거라고.

야구단을 예로 든다면, 감독이 뿌리 역할을 하는 건가요? 감독은 당연한 거고, 야구인 전체가 그 속에 들어가 있어야 돼요. 감독 혼자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선수들도 그런 생각 속에 있어야 돼요. 그래야 기술이 발전해요. 이겼다, 우승했다 그런 건 조그만 일이에요. 그 기술이 세계에서 통하느냐, 안 통하느냐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돼요.

그 과정에서 감독의 역할은 어떤 건가요? 할 일을 말하자면, 우선 조직과 조직에 속한 사람들의 욕망이 있고 꿈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 꿈이 이루어지게 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에요. 거기엔 여러 방법이 있어요. 권리라기보다 끌고 가야 할 의무가 있느냐, 그게 권리예요. 그 안에서 방법을 어떻게 택할 것인지 결정하는 게 감독의 권리죠.

    에디터
    정우성, 유지성
    포토그래퍼
    아놀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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