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연과 그의 나라

영화<고지전>과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작가. 그는 자신만의 나라 안에 한국과 조선을 따로 세웠다.

의상 협찬/ 재킷과 셔츠, 타이 모두 제냐
의상 협찬/ 재킷과 셔츠, 타이 모두 제냐

<공동경비구역 JSA>(이하 <JSA>), <화려한 휴가>, <고지전>까지 당신이 쓴 영화 시나리오는 모두 군대와 관련된 이야기다. 도대체 어떤 군생활을 했나?
처음 밝히는 비밀인데, 사실 면제다. 훈련소까지 갔다가 다시 나왔다. 말 못할 사정이 있었다. 인구수가 많은 72년생이어서 면제나 방위로 빠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지전> 홍보할 땐, 마케팅팀에서 절대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이제 영화도 끝났으니까.

그런데 왜 그리 군대 이야기에 집착하나?
군대처럼 개인을 억압하는 시스템에 대해 관심이 많다. 친구들한테 군대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무반 평상이 꼭 무대 같았다. 그러다 운명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JSA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남북한 군인이 판문점에서 직접 만난다고 했다. 결국 그걸 소재로 <JSA>의 원작인 소설 <DMZ>를 썼다.

그 작품으로 등단했다.
스물다섯 살. 등단을 하고 문학인들 모임에 나가 보니, 나는 젊은 작가라고 불리기도 민망할 정도의 애였다. 가장 어린 작가가 김영하였는데, 나보다 네 살이나 많았으니까. 하지만 너무 준비 없이 등단해서 아무것도 없었다. 보통 작가들이 습작으로 쓴 원고가 라면 박스로 두 박스 정도 된다고 하는데 나는 처음 쓴 장편소설로 등단했으니까. 그래서 한동안 방황만 했다.

그런 방황의 끝에 올해가 왔을까?
영화 <고지전>과 <뿌리 깊은 나무>를 쓰고, <로열패밀리>에선 기획, 각색을 했다. 모든 작품이 호평을 받았다. <고지전>으로 ‘영평상’에서 각본상 받아서 기분이 좋지만, 제작비에 비해 흥행이 잘 안 돼서 아쉽다. 성공했다고 볼 수만은 없다.

마찬가지로 현재 방영되고 있는 <뿌리 깊은 나무>도 수목 드라마에선 시청률 1위지만 전작인 <선덕여왕>처럼 높은 시청률은 아니다.
시청률이 안 나오면 절대 안 되는 드라마가 있다. 예를 들어 MBC 50부작 대하 사극 같은 건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한 방송국의 1년 성과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선덕여왕>은 성공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미니시리즈다. 미니시리즈는 도전해야 발전할 수 있다. <히트>, <최강칠우>, <로열패밀리> 모두 모험의 결과였다. 물론 <최강칠우>는 시청률이 안 나와도 너무 안 나왔다. 어쩌겠나. 시청률 그거 작가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쓴다. 내 취향이 워낙 평범하다. 그리고 좋아하는 작품들은 흥행에 성공하니까 내 취향을 믿는다.

독특하거나 기준이 높아야 대중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라?
대중을 이끌 수 있다는 기대가 없다. 난 대중들이 무섭다. 대중은 엄청난 괴물이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도 그걸 표현하려고 한다. 옛날 왕들은 모두 느끼지 않았을까? 천하를 정복한 왕이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한 순간 백성이라는 괴물을 만났을 것 같다. 그래서 미실은 이런 통찰을 했다. “백성은 언제나 고달팠다. 1천 년 전에도, 지금도, 1천 년 후에도 고달플 것이다.” 이것은 백성은 고달파야만 한다는 말이 아닐까?

그런 문제의식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드러난다. 지배자가 만들어놓은 틀에서 힘을 못 쓰는 개인에 대한 이야기.
내가 91학번인데, 대학 때 잠깐 운동을 좀 했다. 분신정국이라 자고 일어나면 죽었다. 그땐 온갖 날라리도 시위현장에 나갔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너무 무력했다. 그래서 그걸 극복하기 위한 이유를 찾았다. ‘내가 못난 건 아니다’라는 합리화다. 그때부터 개인은 시스템 안에서는 너무나 무력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잘나가든 못 나가든 인간 자체는 차이가 없다. 공중파로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나도 작가랍시고 있는 거다. 그런 거 없으면 사회 부적응자에 굉장히 게으르고 한심한 인간이겠지.

특히 <고지전>에서 두드러지는 문제의식이다.
<고지전>에서 신일영(이제훈)이 포항에서 탈출할 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같은 남한군을 죽이겠는가. 상황 속에서 개인의 의지는 무의미하다. 그래서 시스템이 중요하다. 사람을 악하게 하는 상황이면 개인 본래의 품성과 상관없이 악해진다. 지금 우리의 처지와도 비슷한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어떤 위치가 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믿는다. 드라마에서 캐릭터를 소비하는 패턴을 봐라. 착한 사람은 인기가 없다. 자기 욕망에 충실하고 멋있게 내치는 사람들이 지지를 받는다.

<뿌리 깊은 나무>의 태종 이방원 같은 왕을 말하는 건가? 그를 지지하나?
태종과 이도 중에서 어느 쪽을 지지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이번 작품에선 선과 악을 불분명하게 그렸다. 캐릭터 운영법에도 한발 나가서 다른 걸 해봤다. 아마 누구도 미워할 수 없을 것이다. 이도, 채윤, 정기준, 소이까지 넷 모두 다. 그래서 어려울 수 있다. 쉬운 드라마라는 갈등이 명확하게 딱 둘로 나뉘어서 치열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개연성이 없고 갈등만 남은 드라마는 쉬운 게 아니라 막장 드라마겠지.

그런 ‘막장 드라마’가 시청률이 높으면….
내가 강의 때마다 말하는 식당 이론이 있다. 당신이 식당에 들어갔다. 한 테이블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다른 한쪽에선 남녀가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어떤 테이블에서 욕하면서 싸운다. 사람들이 어딜 보겠나. 대부분 싸우는 곳을 본다. 그래서 갈등만 나오는 막장 드라마가 히트하는 거다.

막장 드라마가 필요한가?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없을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막장 드라마가 많아지고, 사람들이 그것들만 소비한다면 문제일 것이다.

작가로서 막장 드라마를 쓰는 건 일종의 용기가 필요한 걸까?
용기가 아니다. 막장 드라마라고 불리는 작품을 쓴 모 작가는 정말로 재미있고 옳다고 생각해서 쓴 거라고 들었다. 돈 벌려고 쓰는 용기 같은 것이 아니라, 진정성이 있는 거다.

당신에게 작가로서의 진정성은 무엇인가?
세상을 향해 할 말이 있는 사람이 작가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상황은 슬플 것 같다. 세상을 향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작가로 남고 싶다. 물론 문제의식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계속해야겠지만.

드라마 제작 환경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해결책으로 논의되는 사전 제작은 지지부진한 이야기다. 나는 사전 제작은 반대한다. 반대가 아니라, 사전 제작 드라마는 성공 가능성이 낮다. 왜 사전 제작 드라마가 망하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분석해보면 알 수 있다.

시청자 혹은 네티즌과의 호흡?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작가 입장에서, 내가 쓴 것을 실제로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보면 작가는 더 강해진다. 1, 2회를 쓰고, 그걸 영상으로 보면 3회를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미실이 단적인 예다. 캐릭터를 구성하고 극본을 넘겼다. 그런데 고현정의 연기를 보고 “와, 저렇게 표현했어! 그래. 그럼 내가 더한 걸 보여주지” 하고 다시 써줬다. 그럼 또 배우가 더 대단한 걸 보여준다. 이런 피드백이 드라마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런 피드백을 줄 수 있는 배우가 좋은 배우겠다.
놀라게 해서 다시 극본을 쓰게 하는 배우. 이번엔 한석규가 그렇다. 드라마를 보다가 막 욕을 했다. 하하.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하는 거지? 상상조차 못한 모습으로 이도를 표현했다.

한석규는 예상한 답이다.
의외의 배우가 있다면? 김남길. 잘할 줄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비담은 김남길이 해낸 거다.

극본을 잘 쓴다는 건 어떤 기준으로 나뉠까?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를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진짜 있는 것보다 있어 보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극본도 마찬가지다. 진짜 잘 쓰는 것보단 잘 쓰는 것처럼 보이는 게 중요하다. 나보다 잘 쓰는 작가는 많지만 잘 쓴 것처럼 보이는 작가는 많지 않다.잘 쓴 것처럼 쓰는 작가는 회당 얼마를…. 하하. 벌이가 나쁘지는 않다.

돈 걱정이 없다면 더욱 새로운 걸 하고 싶지 않나?
시나리오도 썼으니 감독 생각도 있을 것 같다. 영화감독은 한번 해보고 싶다. <고지전>에서 장훈 감독이 연출을 끝내주게 잘했지만, 장훈 감독이 박상연은 아니라서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모든 것이 그대로는 표현이 안 됐다. 나의 이야기를 온전히 표현하고 싶다는 맥락에서 감독을 한번 해보고 싶다. 문제는 감독을 하려면 많은 걸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많다.

소설을 다시 쓰는 건 어떤가?
정말 소설가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소설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꿈은 사실 <삼국지>를 쓰는 거다. 정비석 삼국지, 이문열 삼국지 같은 박상연 삼국지를 꼭 써보고 싶다.

그것도 잘 쓴 것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할까?
아니, 진짜 잘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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