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의 허리처럼 혼자서 돌아라

‘누구의 몇 주년’ 하는 식에 주목하기에 세상은 사뭇 팍팍하지 않은지. 마침 데뷔 45주년 전국투어 중인 남진은 막이 오르자 뭔가를 단단히 휘어잡았다. 마이크만은 아니었다.

45년 동안 노래했으니, 누군가에겐 45년 동안의 남진이겠지요. 그런데 당신을 처음 보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어떤 걸까요?
요즘 세대들은 이름이나 들어봤을까 말까 하겠죠. 김범수가 ‘님과 함께’를 불러서 겨우 나를 알았으려나? 어쨌거나 재밌고 반가운 일이죠.

45년 전에 불렀던 노래는 분명 45년 전의 노래였을 겁니다. 그걸 지금 부른다는 건 뭘까요?
전혀 다른 노래가 된 거죠. 아예 딴 노래라고 봐도 될 겁니다. 마음이 전혀 다르니까요. 그 노랠 부르는 내가 다르니까요.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이런 가사를 지금에서야 제대로 알고 부른다고 느껴요. 그땐 그때대로 안다고 생각했겠지만요.

남진이라는 이름엔 일종의 순수가 있습니다. 남진은 여전히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는, 혹은 지켜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키지도 못했어요. 노래를 쭉 해오지도 못했고. 인기라는 게 그렇잖아요? 수평으로 쭉 올 수가 없는 게, 삶 자체라는 게 또한 그렇고요. 데뷔는 화려했지만 팬도 영원하진 않죠. 시대에 따라 흘러가기도 하고, 허전하고 허탈하고, 슬럼프도 그럭저럭 넘어갔어요. 그때그때 엄청나게 달랐죠. 남진이 여전히 남진이라는 건, 그저 행운이 아닌가 싶어요.

뭔가를 기다렸던 걸까요?
낙천적이긴 한데, 뭐랄까, 오기랄까? 그런 기질이 확실히 있어요. 그런 게 있었으니까 지금 이렇게 투어도 다니고 이러는 게 아닌가 싶어요.

추석에 <나는 트로트 가수다> 무대에서 결정적인 한 방이 있었습니다. 남진이 부른 심수봉의 ‘비나리’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나도 생각지 못했어요.

‘트로트 가수다’라는 제목은 맞지 않았습니다만.
내 말이 그 말이요. 내가 반대했어요. 그 제목 누가 정했소? 하니까 위에서 정했다고 하더라고. 내 한번 물어봅시다, ‘나는 트로트 가수다’라고 하는데 트로트라는 의미가 뭐요? 내 노래가 열 곡이면 트로트는 두 곡 뿐인데, 섭외 잘못한 거 아니냐고 했어요. 이것은 전부 잘못됐다. 타이틀 바꿔라. 장르 갖고 나누면 안 된다고 내가 아주 야단을 쳤어요. 그래도 잔치판을 통째로 깰 수는 없었어요. 어쨌거나 잘해보자 그러는데, 내가 물러섰죠.

‘비나리’는 언젠가 한번 부르리라 벼린 곡 같았어요.
처음에 세 곡이 떠올랐어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랑 양희은의 그 뭐지?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그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랑 ‘비나리’랑 세 곡이 생각났어요. 그 노래들의 가사를 참 좋아해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발라드라 프로그램에 안맞을 것 같았고, ‘낭만에 대하여’는 탱고라서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거든요. 갸냘픈 심수봉을 남자 노래로 바꿔보자, 그렇게 했죠.